거의 칠팔년 된 이야기입니다. 이십대 중반의 저는 여자 친구(지금은 오징아재답게 안생겨요입니다만)와 싸우고 싸우고 싸우다가 결국 차였습니다. 당시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여자 친구 집에 일주일에 두번씩은 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간단하게나마 요리도 하고(그래봐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재료가지고 장난질친 수준)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뭐 아주 집요정 도비였네요. ㄷㄷㄷㄷ
아마 그런것 때문에 제가 쌓인게 많았었는지 시원하게 말싸움을 하고 "끝이다"라는 말 듣자마자 그러자고 하고 바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까 막막하고 서운하고 쓸씁하고 해서 우산도 안 쓰고 바보(최대한 순화해서 썼습니다.)처럼 한 이십여분을 멍하니 비만 맞았었어요.
어둑어둑한 비오는 날이었는데 번개가 치자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 여기를 벗어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작정 택시를 잡았어요. 기사님께서 어디로 모실까요 하는데 막막하더라고요. 머뭇머뭇하니까 이상하게 보였는지 살짝 당황하시길래 일단 집 주소를 말씀드리고 창밖을 내다 보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얼추 이백미터 갔나? 했는데 횡단보도 앞에 그녀가 택시를 막 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뒷모습만으로도 확실하게 알았죠. (아쉽게도 얼굴은 보지 못해서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저도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눈 앞이 흐릿해지는데, 그때 막 택시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노래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연우신이 된 김연우님의 "이별택시"라는 노래였어요. 눈은 흐릿하고 머리속은 새카맣게 변했는데도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절벽에 새긴 글씨마냥 되새겨지더군요. 물론 백미러 사이로 마주친 기사님의 눈빛도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ㄷㄷㄷㄷ
노래가, 음악이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깨닫습니다. 제가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일부러 제외했는데도, 가끔씩 어디선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때의 제 모습과 감정이 살아나네요(+택시에서 눈물 질질짜던 나의 흑역사까지(...))
오늘은 술이 과하지도 않았는데, 이 노래 들으니까 괜시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짧게나마 적어봅니다. 마무리가 어려우니 어찌해야 할지 ㄷㄷㄷㄷㄷ 적어놓고 보니 영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을거 같지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