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졌으면 가끔이라도 우리에게 좀 보여주면 안 된단 말인가?
장진성 /탈북 시인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
요즘 어디가나 임재범 이야기다. 그럴만도 한 것이 어느 음식점이나 커피숍에 가도 임재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의 서울이 좋다. 그의 노래는 도저히 성대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 같지 않다.
한 인간의 깊은 삶이 숨쉬는 심장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노래여서, 그래서 한 소리만으로는 다 부를 수 없어 허스키하게 때로는 산산히 부서지기도 하고, 혹은 갈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두성 흉성 비음 가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현대 발성법을 완벽하게 모아 부르는 그 만의 가창력이어서 어떤 때는 화음처럼 들리고, 정작 노래가 끝났을 땐 한 가수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은 느낌이다. 임재범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임재범을 찬양하는 듯 말이다.
참으로 임재범은 나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또 한 번 감사를 느끼게 해 준 최고였다.
그런 의미에서 임재범은 죄인이다. 나누어야 될 감동을 지금껏 우리 모두에게 꼭 꼭 숨겨오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우리는 예술의 위대함을 종 종 잊고 살았었으며, 노래로 북받치는 눈물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체험할 기회가 적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졌으면 가끔이라도 우리에게 좀 보여주면 안 된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임재범이란 최고의 가수를 잊고 살았던 우리가 죄인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실력에 심취되기보다 최고로 예쁜 외모와 현란한 무대조명에 열광하느라 그동안 최고의 가수를 외면해왔던 우리 스스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변화무쌍한 과학발전의 시대에 살며 날마다 새로운 것을 찾는데 길들여진 우리여서 어느새 진짜에는 둔감해진 탓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침묵하는 진실보다 간혹 먼저 입을 여는 거짓이 대세도 만드는게 아니었을까.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였지만 우리 나라가 미국 쇠고기 수입국 1위가 된 오늘날까지도 그 수십만의 부끄러움은 반성이 없다. 천안함 폭침도 마찬가지다. 연평도 포격으로 그 주범이 증명됐는데도 아직도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는 주장들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나는 우리 나라 최고 가수들만의 무대에 선 임재범이 요즘 중학생들도 안 낀다는 저가 헤드셋을 착용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착잡했다. 한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과학자가 불행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감동을 선물하는 최고의 가수가 외로웠다면 이는 어느새 정서의 본능까지 무감각해진 우리 문명의 고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죄인이다. 임재범이 은둔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를 은둔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그동안 너무도 무관심했었다.
장진성의 블로그 http://blog.daum.net/nkfree
===================================================================================================
그래요 전 재범님 찬양해요...
맘껏 반대 먹이시고 욕하세요....
그래도 사....사랑합니다 재범 횽님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80215&imp=ndcast 기사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