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koreaexpose.com/voices/brown-male-and-wanted-in-korea/ 갈색 피부, 남성, 그리고 한국에서 환영받기
어느 한 여름 밤, 부산 해운대에서 나는 한국 친구들과 함께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 갑자기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외로운 낯선 친구 하나가 다가오더니, “형씨, 여기서 살기 참 고달프지 않아요? 제가 동석해도 될까요?” 하며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12시간짜리 비행기 안에서 나는 부유해 보이는 앙골라 출신 유학생의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그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와 두꺼운 금반지, 말끔한 가죽신발과 펜디(Fendi)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몇 달동안이나 다른 외국인은 만나본적도 없다는 듯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한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에요. 안 그래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적응하기, 참 쉽지 않네요. 난 언어도 배웠지만 여전히 한국 친구가 별로 없어요.”
서울의 한 국제학생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학교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이슈들을 다루고 정책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방에 들어가자 마자 고충들(complaints)이 적힌 하나의 리스트를 보았다: 표절, 무관심한 교수들, 잦은 휴강. 그런데 다른 무리의 학생들은 전혀 다른 의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교수들의 인종주의적 발언, 한국학생과는 다른 차별 대우, 그리고 방치되었다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김밥천국에서 두 명의 종업원이 중국어로 잡담을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 한 성격 나쁜 고객이 그들을 보고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여긴 한국이야! 한국말 해!” 이어서 그는 나에게도 다가오더니,
나의 묵직한 디자이너 시계를 보며 영어로 칭찬했다.
“Very beautiful".
그리고 마침내, 나의 과거 한국 룸메이트에게 질문해봤다, 혹시 흑인 여성과 데이트를 할 의향이 있는지.
그는 “난 초콜렛 사람들 싫어해” 라며 답했다.
내가 “그럼 난 뭔데?” 라고 묻자,
“오...넌...다르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나도 물론 갈색 피부를 가졌지만 다르다. 나의 부모님은 스리랑카 출신이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런던의 근교로 이주했으니 난 영국인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영국에서 살았다. 비교적 편안한 양육환경에서 자라긴 했지만, 유색 인종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가끔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는 아직 차별이란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한국인들은 인종주의자들이라는 경고를 누차 들었었다. 다문화주의의 본 고장인 영국에서도 이미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난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 덤벼봐’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내가 덤비려 했던 ‘그것’(차별)은 결코 오지 않았다. 시골에 갔을 때도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귀하게 대접받았다. 사실 한국 어디를 가도 내가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는 상황에 부딪힐 거란 느낌은 없다.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앙골라 왕자, 동남아시아 출신 학생, 조선족 종업원, 그리고 그 상상속 흑인 여자친구(룸메이트에게 질문했던). 이들은 모두 힘겨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만 빼고. 난 그들의 나라에서 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서구(the West) 출신인 것이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전 미 프로축구 슈퍼스타였던 하인스 워드는 2006년 극적인 귀향을 이뤄냈다. 그의 한국 방문은 모든 TV 프로그램과 신문 사설의 주제가 되었고 한국의 새로운 ‘다문화’에 대한 수용을 미화하는데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의 외견상 분명한 검은 피부색과 그의 African-American으로서의 흑인 혈통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눈에 비친 워드는 미국에서 온 성공한 한국인이었다. 그가 명성과 부를 얻는 순간 그의 ‘흑인됨’은 벗겨져 없어진 것이다. 나 또한, 워드만큼은 검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표백(bleached)되어지는 느낌을 갖는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서구에 대해서는 색맹이 되니까. 그런 특권의 지위에서 온 것과 함께, 남성이라는 이유로 - 전세계에서 여성으로 살기가 가장 힘든 나라 중 하나인 이곳에서- (http://www.koreatimes.co.kr/www/news/nation/2013/10/113_144974.html) 한국에서 잘 받아들여지는 것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영국이란 나라가 로맨틱한 이미지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스킨스, 닥터 후, 셜록 홈즈 같은 TV 쇼도 감사하다. 영국 여왕 폐하, ‘젠틀맨’의 나라, 오아시스, 비틀즈, 영국식 영어, 베네딕트 컴버뱃치(셜록 주인공), 피쉬 앤 칩스, 축구, 박지성,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도 감사한다. 건배! 난 종종 저녁식사, 술 한잔, 파티를 위해 불려나간다. 하지만 카카오톡에 있는 나의 수백명의 한국 친구들 중에서 내가 한밤 중 길거리에 피흘려 쓰러져 구조가 필요할 때 누가 올 것인지 사실 궁금하다. 별로 많은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는 종종 그저 곁에 두기에 매력적인 외국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난 충분히 세련된 사람이고, 흠 잡을 데 없는 영어를 구사하며, 천국으로 가는 황금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인해, 내가 어디 출신인지를 말했을 때 한국 여성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던 것일 테다.
나의 ‘표백성’(whitening)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내가 결코 백인이 아닌 것을 그들은 모르지 않는다.
난 가끔 질문을 받는데, “영국인이시라고요, 그럼 부모님은요?”라는 질문이다.
난 이 질문을 두려워하곤 했는데, 혹 나의 빛나는 매력이 더럽혀질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에 대답을 하게 되었을 때 찬사나 승인과 친밀감의 표현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심지어 나의 아시아적인 부분(Asian side)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힘든 노동, 효도, 충성과 같은 ‘아시아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진짜 (하지만 이기적인) 서양인들은 모르는. 하지만 그런 나의 아시아적인 부분은 영국인이라는
더 큰 정체성 속 안에 들어가 있는(embeded) 한에서만 인정될 뿐이다.
‘인종주의적’ 혹은 ‘제노포빅(외국인 혐오)’이란 말은 흔히 한국인을 묘사할 때 사용되곤 한다.
한국에 인종주의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한국적 현상은 아니다.
내 피부 톤으로 인해 불편함과 환영받지 못한 느낌을 받은 곳은 전세계 그 어느 곳보다 영국이었다.
나의 인종은 한국에서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나의 국적이 나의 피부색을 구원해줬다.
나는 영국인이란 이유로 인종적으로 차별당하지 않는다.
박노자는 한국을 ‘경제적 인종주의’로 명명하고, 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그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사용된다고 말한다.
나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돈과 비용편익에 대해 계산한다,
그것이 직업이 되었든, 관계든, 결혼이든. 그들은 돈 많은 사람을 우러러보는 반면 가난한 나라 혹은 계급 출신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린다.
마치 그런 사람들은 게을러서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한 것처럼 바라본다.
타자들(the others)을 가난뱅이나 루저로 인식하는 것이다.
대개 피부색은 출신 국가를 알려준다.
정말 무지한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타인을 판단하는 데만 사용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 앙골라 학생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자인 게 분명한데도, 그는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흑인임과 동시에 앙골라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종종 목격하는 것은 인종 차별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여권 차별(passport discrimination)”이라고 부르겠다.
JAMES RAJAPAKSE
James는 서울에서 국제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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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댓글 중에
Zhaleh Boyd
전 분명히 모욕과 신체적 폭력을 봤어요. 내 첫 경험은 한국 온지 두달 째 였는데, 학교 동문인 한 친구가 영어교사를 하려고 한국에 왔다고 연락이 온 거에요. 근데 그 친구를 공항으로 마중나온 사람은 그가 흑인인 것을 보고 학생(어학원)들이 무서워할 것 같다고 그를 공항에 버려두고 왔다는 겁니다. 그 친구는 미국 밖으로 한번도 나간 적이 없었고, 한국말도 모르고 그 계약자외에는 아무 연락할 사람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 친구는 완전 트라우마를 입었고, 나는 학교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들은 후 그 친구를 내 숙소에 들였어요,
대사관에서 그를 다시 미국으로 보내줄 수 있게 되기까지 말이죠.
내가 만난 외교관은 그런 일이 매우 정기적으로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내 집에서 그런 사람들을 재워주고 싶다고 했어요.
지난 3년간 몇 주간격으로 그런 버려진 손님들을 들였어요.
그리고 제 여동생은 한국에서 첫해를 이웃 동네에서 살았는데,
아이들이 자주 와서 돌맹이를 던지고 '아프리카, 아프리카'라고 소리치고, 그걸 본 어른들은 웃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