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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 - 2
게시물ID : readers_155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러먹은놈
추천 : 1
조회수 : 1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18 08:13:31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내 속을 들여다 봐주고 내 말을 경청해주며 함께 짐을 짊어져 줄 사람은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절감했다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삶 하나도 간수하기 바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어른에 대한 동경이 깨지는 순간이었다겉으로만 관심 있는 척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그들이 보기에 좋지만 실상은 내가 좋은 일그것이 최선이라고 깨닫고는 노트에 필기하는 척 소설을 쓰고 책을 읽는 척 상상 속에서 뛰어 놀곤 하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만화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TV를 보며 놀 땐 그렇게 말려대던 주변 사람들이  책을보며 놀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놀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죽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더 심해져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상상하고 몇안돼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를 빼고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 하였다. 그러다 그날따라 글도 읽어지지 않고 친구들은 다른 친구에게 가버리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세제와 락스를 섞어서 삼키고는 일주일을 끙끙 앓거나 산에 올라 비탈길을 향해 뛰어내려 온몸이 엉망이 되도록 구르곤 했다. 우습게도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거나 제초제따위를 먹거나 하지는 않고 죽지 않는 선에서 죽을 것 같은 짓만을 반복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병신같은 짓만을 반복하는 중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날짜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어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3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학교에선 대놓고 잠을 자고 좋아하는 소설을 쌓아놓고 읽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동네 도서관에 가서 다섯권씩 빌려다가 주중에 학교에서 잠자고 책읽고 밥먹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는 신기하게도 죽음에 대한 생각이 안개 걷힌듯 들지 않았다. 어떻게 친해진 것인 지도 모르는 다른 반의 나와 비슷한 선생님들이 건드리지 않는 아이와 점심시간이면 수다를 떨었다. 30분이 너무짧게 느껴질 정도로 경제, 환경, 사회, 철학 따위의 주제를 돌아가며 떠들어 댔다. 고3생활 10개월을 300여권의 책과 5천여시간의 토론으로 채웠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사람들이 왜 돈,명예따위에 쩔쩔매며 매달려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1년이었다. 행복은 너무도 가까이에 있었고 그 행복에 방해되는 것들은 오히려 고3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나를 행복에게 더욱더 밀어붙여 주었다.
영원히 수능이 오지않아서 고3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손에서 펜을 놓은지 5년이나 된 나에게도 오라는 대학은 있어서 시간은 나에게 행복을 가져와 줄 때처럼 다시 행복을 가져갔다. 고등학교를 더이상 가지 않게 된 그 순간부터 머리속에는 안개처럼 자신에 대한 저주와 죽을 방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대학에 가면 다 바뀐다, 대학만 가라 하던 어머니는 막상 대학에 가면 무엇이 바뀌는 지는 일체 말을 않았다.
나는 대학에 들어간 지 1주일 만에 자퇴서를 냈다. 자퇴서를 내고 나니 남는 것은 더욱 심한 자멸감과 자괴감 뿐이라,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은 자퇴서와 동시에 책장에 꽁꽁묶여버렸고 재밌게 보던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도 그만 보게 되었다. 키가 작은 친구와 몸이 마른 친구 둘이 대학을 다른 지방으로 떠나버린지라 더이상 친구는 하나도 남질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년정도 사는 동안 가장 구원받고 가장 사랑했던 것이 책이었기에 생산적인 척을 하기에는 글을 쓰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없었다. 즐거운 척, 행복한 척, 고등학교3년동안 배운 다른이에게 잘보이는 방법을 동원해서 나는 지금 생산적이고 행복하다고 열심히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틴 반년간 이사를 했고, 서울로 올라간 친구 집에 집들이를 했고, 가족들과 여행도 한번 떠났고, 사람들에게 필요없는 책을 몇권 주기도 했다.
무언가 하고 있을 때면 그나마 내가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듯 했지만 결국 착각이었다는 것을 안다. 혹부리 영감이 혹을 하나 더 달고 슬피 울고 있을 때, 놀부가 도깨비들에게 혼쭐이 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불쌍하다 여기기보다는 잘됐다고 통쾌하다고 느끼듯이 나도 내가 힘들고 어렵고 슬플 때면 불쌍하기보다는 통쾌하다고 느끼곤 한다. 나는 최악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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