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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게시물ID : panic_881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농고농구부
추천 : 11
조회수 : 87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28 01: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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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당황한 탓일까 생각이 좀처럼 쉽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자 꽉끼는 모자를 누군가 억지로 씌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좀 필요한 것 같아.
 
 더듬더듬 어지러운 방을 나와서 냉장고를 열어본다. 캔 맥주가 있으면 좋을텐데...
 
 마침 하이ㅌ 한캔이 있다. 아사ㅎ 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간에 마개를 따고 차분히 한모금 들이켜본다.
 
 
 평소 알던 사람의 얼굴이 생경하게 보일때 가 더러 있었다. 그래 맞아!
 
그런 경험이 분명 여러번 있었고 그 중에는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순간도 있었다.
 
벌써 십여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입대하고 갓 훈련소를 퇴소한 이등병 시절. 자대 배치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어떻게 24시간 같이 생활하는, 그것도 날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 이었던 김상병의 얼굴이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로 보일 수 있을까..
 
 
 
 그 날은 고단한 하루였다. 자리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잠들기 까지의 하루 일과는 기억이 흐릿한데 갑자기 눈이 떠진 새벽 2시경이
 
 또렷히 기억난다.
 
 분명 자다가 알수 없는 이유로 잠이 깼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신이 또렷할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잠이 좀처럼 다시 들지 않아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누워 있던 당시의 내무반이 굉장히 어색하고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한밤중이라지만 어째서 옆사람 숨소리 한토막 들려오지 않았는지...
 
 그날 따라 붉은 빛깔의 취침등은 어째서 그렇게 요사스런 기운이 느껴졌는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보니 슬그머니 겁이 나서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는데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의식은 또렷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나는 평소 똑바로 누워서 자는 편인데 어쩌다 깨고 보니 그날은 평소 날 그렇게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던 김상병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자고 있었나 보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다가 문득 보게 된 김상병 얼굴에 나는
 
 심장이 뻐근할 정도로 놀라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전혀 누군지 모르겠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옆에 누워있었다.
 
 게다가 자는 사람의 무표정이라고는 해도 어떻게 그렇게 비 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아무 표정이 없을 수 있는지.... 
 
 당시에 나는 꼼짝달삭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급격히 밀려오는 공포감을, 또렷한 정신으로
 
 견뎌내야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서 주변 상황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이 내가 생활하고 있는 내무반이라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보려고 애를 써도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누군지 모르는
 
 아무 표정도 없는 남자의 얼굴과 계속 마주보고 있어야 했다.
 
 
  정신이 또렷한데 신체가 내맘대로 통제되지 않아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일까?
 
  갑자기 누군가 날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웃기면서도 다른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웃음.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ㅎㅎㅎㅎㅎㅎㅎㅎ' 같은 웃음이였다. 
 
  나는 입을 열어 대화를 할수는 없었지만 놀라서 누구야! 같은 말을 지껄였던 것 같다.
 
  내 마음속에서만 외치는 말이었지만 느낌상 상대가 듣고 있는 것같았고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누군가는 날 'ㅎㅎㅎㅎㅎㅎㅎㅎ' 비웃고 있었고 나는 누구야 너 어디야 따위로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한테 왜 이래 원하는게 뭐야 라고 물어보자 상대가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거? "
 
 "니 몸을 뺐을거야. 그리고 널 죽일 거야"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목소리. 그러나 그 말이 곧 실현될 것만 같은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가 난생 처음으로 발작이라는 것을 일으켰고
 
 지나가던 불침번이 마침 중대 최고의 FM이라고 불리던 박일병이었기에 나를 발견하고 나는 진정할 수 있었다.
 
 
 당시 내무반은 한바탕의 소란으로 강제 기상을 당했고
 
 고참들은 황당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웠는지 저마다 낄낄거리면서 김상병에게
 
 그러니까 애좀 적당히 갈궈라 며 농담을 해대며 다시 잠을 청했고
 
 김상병은 개X끼야 너때문에 이게 뭐야 나중에 두고보자면서도 그날 이후로 내게 심하게 대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난 비슷한 경험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중에 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그건 자대배지 받은지 얼마 되지않은 이등병이
 
 작업으로 고단한 육체와, 갈굼으로 인한 피폐한 정신으로 만들어낸 환청과 착각 이지 않았을까...
 
 
 얼마 남지 않은 맥주가 맛이 없다. 
 
 
 그래 지금 일어난 상황도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사람 얼굴을 착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머리 속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그래. 다른 사람일리가 없자나.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오랬동안 꿈꿔왔던 순간이지만 막상 사람을 죽이려니까 긴장도 되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거야.
 
 개같은 년. 이건 날 기만하고 걸레같이 이놈저놈 자고 다닌 벌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숨어서 기다리다가 어김없이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이년을 포식자가
 
  사냥감을 해치우듯 칼로 몇번을 찔렀는지 모른다.  그리고 죽어가는 얼굴을 바라보며
 
  비웃어 주고 싶었는데 생경한 얼굴이라니! 순간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얼굴에 칼로 난도질를 해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우와아 따위의 비명소리를 냈었던거 같은데 제발 별일 없기를....
 
 
  이년의 더러운 집을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만 다른 사람 일리가 없다. 품을 뒤져 지갑이라도 확인해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사람 죽이는건 처음이니까 놀라서 잘못 봤겠지. 그렇지 하면서 다시 후드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를 고쳐쓴다.
 
  아차 마시던 맥주캔은 챙겨가야지......  큰일 날뻔했네.  그나저나 저렇게 난도질을 해놨으니까 원한 관계로 인한
 
  살인으로 보겠지. 어차피 상관은 없다. 헤어진지 2년이나 지났으니까.
 
  날 용의 선상에 올려놓지는 않을거라고 확신한다. 다른놈과 섹스하던 순간을 내게 들켰지만 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쿨하게 헤어졌으니까. 사람이 감당할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 오히려 극도로 차분해 질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개 쓰레기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상쾌함을 느끼면서 집을 나선다.
 
  잘못봤을리는 없다. 2년간 몰래 숨어서 지켜봤으니까 개 같은년.
 
 
 
 
 
     
 
 
 
출처 맥주 한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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