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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크리스마스.......온전히 생활관에 갇혀 지내던 날.....
게시물ID : military_490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귤귤히
추천 : 1
조회수 : 70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9/18 22:52:27
2011년 12월 크리스마스에 가까워 지고 있는 어느날 우리는 5대기 기간에 들어갔다.
 
한 두차례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제 5대기를 해도 마냥 두렵거나 허둥지둥 대지는 않았지만 항상 맞후임 째주니가 문제였다.
 
그에게 5대기 임무를 숙지 시키는 일은 상당히 곤혹스러웠고 사이렌이 울려 출동 하려고 하면
 
그의 느린 동작은 선임과 중대장에게 욕을 먹기 마련이었다.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로 그닥 한가하지는 않았지만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연말인지라 마냥 퍽퍽하기만 하지는 않았던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오전 작업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식당에 있는 TV에서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항상 북한 관련 동영상이나 뉴스가 나오면 나오는 리춘희 아나운서가 비장한 목소리로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선임들은 전쟁 나는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전쟁이 나거나 하지만 않겠다라는 것은 알겠지만 좀 귀찮아질 것 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의 작업은 취소되고
 
3중대장이 들어와서 만일의 사태를 준비하라고 장구류를 차고 있으라했다.
 
난 괜히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맞선임인 태바리는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고 나한테 괜한 걱정을 늘어놨다. 하필 이런 시기에 5대기라니......
 
.전군의 경계 태세가 강화 되었고 사단이나 연대에서도 점검을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젠장..........왜 하필 우리가 5대기 일때 이러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그날은 오후 작업도 취소되고 그저 생활관 대기였다. 전쟁은 안 일어난다고 태바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역시나 몇 시간후에 다시 3중대장이 와서 대기 상황은 해제 되었으니 장구류를 해체하고 있으란다.
 
아무리 전군 경계태세 강화라지만 후방 지역은 전방처럼 준비태세 상황이 하루에 몇번 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5대기 부대만 상급 부대의 점검과 점검 상태만 빡세질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5대기 담당 중대는 작업에서 열외되고 생활관 대기였다.
 
물론 장구류를 착용한 상태에서 항시 대기했다.
 
연대에서 점검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듣기로는 연대장이 직접 5대기를 건다는 말도 흘러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좀 더 긴장된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자체 5대기 훈련도 했지만
 
그런 날보다는 생활관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등병이라 누워자거나 자는건 허용이 안되었고 침상 끝에 앉아서 오로지 책만 읽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중대장이 와서 연대에서 5대기 점검이 있을 것이라고 준비하라고 했다. 얼마 후 무섭게 사이렌이 울렸고 우린 평소 자주 출동하는
 
탄약고나 위병소가 아닌 예비군 교장의 사격장 쪽 야산으로 출동했다. 5대기 임무에 대해서는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원점 보존하면서 경시줄은 치는데 그것도 어설펐고 게다가 탐칭봉을 끼고 탐색 격멸 작전을 펼치는 일도 순조롭지 않게 되어서
 
우린 연대 통제관에게 털리고 말았다.
 
돌아와서 하분대장은 우리에게 수없는 훈계를 늘어놨고 봉태규부터 태바리까지에 이은 내리 갈굼을 먹어야만 했다.
 
 특히 째주니 아직도 임무도 잘 모른다면서 그가 혼남은 물론 그 책임이 나에게까지 왔다.
 
분명 숙지 시키고 확인 시켰는데 그는 바보인것 인가 아님 나를 고도로 싫어하는 안티인 것인가..........
 
도대체가 내 앞에서는 이해한척 잘하는척 하다가 왜 선임 앞에서나 실전에 나가면 왜 도대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인가.........분노를 뒤로하고 다시 그에게 어린애 가르치듯이 가르쳐야만 했다.
 
연대 통제관으로부터 털털 털린날 이후로 우린 중대장 간섭하에 5대기 훈련을 빡시게 해야만했다
.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밖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흰 쓰레기가 내리는 그런 날이였다.
 
아침부터 신나게 눈을 쓸고 다시 생활관 대기가 시작되었다. 다른 중대애들은
 
이제 김정일이 죽어서 경계태세가 강화되었다는 긴장감도 없이 평상시처럼 행동했고 쉬는날에는 정말로 편히 쉬었다.
 
그런데 연대장이 심심했는지 이 크리스마스 날에 5개기를 직접 친다는 이야기가 다시 흘러나왔다.
 
중대장은 준비를 하고 있으라했다. 우린 장구류를 차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점심이 지나도록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우리 중대장은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진급에 목숨을 건 간부였다. 그렇기에 연대 간부나
 
훈련이 있으면 항상 잘하려고 하고 잘 보이려고 했다. 연대장 앞에서 싫은 소리를 듣거나 하면 자신의 진급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이 미칠것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어디서 구해왔는지 위병소와 연락망을 따왔고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여전히 생활관 침상 끝에 앉아서
 
 TV를 보며 대기하고 있는 평온한 오후에 연대장 차가 위병소로 가까이 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젠 진짜 치는구나.......그래 죽이되든 밥이되든 빨리 치고 쉬었으면 좋겠다 했지만 여전히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했지만 중대장은 여전히 우리보고 대기하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청소하는 그 순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고 2011년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암울하게 생활관에서 장구류를 착용한채
 
보내야만 했다.
 
다른 중대 애들은 크리스마스 종교 행사를 갔다와서 햄버거 하나씩 물고 오는 판에 우린 우울하게 2011년 12월 25일을 그렇게 긴장감 속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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