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편도 여행
게시물ID : mystery_49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겨울생각
추천 : 14
조회수 : 2846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4/09/19 00:32:02
 
비행기 안은 유난히도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 전 좌석이 퍼스트클래스급 이상이었고, 좌석과 좌석 사이의 거리가 성인남성 두 명이 누워야 다을 만한 거리였다.
 
뭔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승객 간의 왕래는 불가능에 가까운 환경인 샘이었다.
 
"여기엔 어쩐 일로 타셨어요?"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뒷자리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해 하는 거란 걸 알아챘지만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오지랖은….'
 
짜증이라는 감정이 조금 올라오자 나는 기분전환 겸 창을 통하여 비행기 밖을 바라봤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떠나길 잘했어.'
 
나는 목에 힘을 풀고 의자 시트에 내 등을 맡겼다.
 
시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자, 마치 나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는 거 같았다.
 
물론 날고 있는 거 맞지만.
 
툭툭
 
"저기요."
 
아까 뒷좌석에서 들려왔던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린다.
 
그녀가 내 어깨까지 쳐가며 말을 거니 이제는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누가 봐도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내 표정은 당황스러움에 가까워졌다.
 
개가 말을 걸고 있었다.
 
정말로 단지 개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정확히는 닥스훈트의 종류에 가까워 보였다.
 
'이 비행기 동물도 타는 거였나. 아니 그보다 개가 말을.."
 
"저기, 가는 길도 한가로운데 서로 얘기나 하면서 가요."
 
개가 얘기나 하면서 가자니…. 오래 살고 볼 일였다.
 
사실 오랜 이란 삶을 가졌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개)의 말에 바로 대답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말고도 두 명의 사람이 비행기 같은 라인에 존재했다.
 
사람들은 그녀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듯했다.
 
"왜 하필 저한테 말을 건넨 건가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이 내 압…. 앞자리니깐요."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내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다니….
 
참 몰상식한 개였다.
 
"그리고 저 많이 어리니깐 말 편하게 하세요."
 
'몰상식한 개새끼였군.'
 
나는 그냥 그녀를 그녀의 자리로 돌려보낼까 싶었지만, 워낙 동물애호가인 나였기에 대충 말상대나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여기 앉을만한 곳이 없을텐…."
 
내가 말을 하기 무섭게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그것참 편리하군'
 
"너 배변훈련은 돼 있지?"
 
내가 비아냥 섞인 말투로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미안 그냥 조크야."
 
그녀는 자신의 몸을 둥그렇게 말아, 내 두 손안에 들어왔다.
 
그녀의 몸은 이상하게도 지나치게 따뜻했다.
 
사실 뜨겁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이 비행기에는 왜 탔어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조금 망설였지만, 그냥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숨길만 한 내용도 아녔다.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힐링할겸 왔지."
 
"단순한 자연치유치고는 대가가 너무 비싸네요."
 
"편도 여행이니깐 상관없어. 어차피…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으니깐."
 
"안 좋은 일이 뭐였는데요?"
 
"… 아내가 죽었어."
 
"어쩌다가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마침 그날따라 늦잠을 잤었지."
 
"그게 아내분이 죽은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기다려봐. 다 이야기 해줄 테니까."
 
"알겠어요."
 
나는 절대 남에게 할 수 없을거 같았던 말을, 처음 보는 개한테 하려 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늦잠을 잔 그 날, 아내한테 화를 냈어. 지금 가면 회사에 지각이라며 안 깨우고 뭐했느냐며 말이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 않고 회사로 향했어."
 
"그런데요?"
 
"회사에 도착해 상사한테 한소리들은 후에 일하는 도중 전화가 왔어. 아내한테서 온거였지."
 
"받았어요?" "받았어,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참 뜸을 들이길래 그냥 끊어버렸어."
 
"와, 진짜 개새끼네요."
 
"… 여튼 전화가 한 번 더 왔어. 나는 받기조차 싫어서 아예 배터리를 빼버렸지."
 
"그때 집에 강도라도 왔나요?"
 
"… 그래 어쩌면 뻔한 이야기야. 그런데 말이야, 아직도 마지막으로 본 그녀 얼굴이 떠올라.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표정이 생각나고, 그녀의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차라리 그때 하려던 이야기나 들어줬더라면…."
 
"그 이야기 듣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냥… 느낌이 그래서요."
 
"어설픈 위로는 안 하는 게 좋아."
 
"… 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괜한 개한테 화풀이하는 꼴이라니.'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내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단순히 떠올랐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너무나도 많은 추억.
 
"많은 일이 있었지."
 
"아내분이랑 있던 얘기요?"
 
"그래, 정말 즐거웠어."
 
"어떤 일들이 있었는데요?"
 
"이번 새해엔 소원 팔찌를 하나 만들어 나에게 줬어."
 
"팔찌는 끊어졌어요?"
 
"응 끊어졌어. 한 5개월 차고 있으니 말이야."
 
"무슨 소원을 빌었는데요?"
 
"… 비밀이야."
 
나는 왠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선 서해 겨울 바다에도 갔었어. 거기에서 갔던 조개구이집이 꽤 맛있었었지."
 
"아, 거기 파란색 지붕 말하는 거죠?"
 
"… 그리고선 놀이공원도 갔었어."
 
"에x버랜드?"
 
"…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감각이죠. 개감각."
 
"ㅋ개드립이네"
 
나는 그녀와 웃으며 계속해서 얘기했다.
 
별 의미 없는 얘기들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전부.
 
그녀와 말을 나누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니, 편안한 걸 넘어 조금은 즐거웠다.
 
마치 아내와 얘기하는듯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 비행기를 타기 전에도 이런 기분이었다면, 내가 이 비행기를 탔을지는 의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감정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미 비행기에 타 있었고 단지 그뿐이었다.
 
"여하튼 그래서 비행기에 탄 거야."
 
"완전 이기적이네요."
 
내가 긴 이야기를 끝 맞추고 말하자 그녀는 정색을 타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아까와 다르게 매우 진지해 보였다.
 
"… 인정해. 하지만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어."
 
"정말요?"
 
"……."
 
"그냥 도망간 거 아닌가요?"
 
그녀의 말이 총알이 되어 가슴에 박혀 왔다.
 
"그래…. 하지만 난 떠나야 해.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의 말에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뱉은 말을 후회했다.
 
이 비행기를 탄 사람 중 이해 못할 사연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난…. 그저 아내가 보고 싶을 뿐이야."
 
나는 원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말했다. 
 
"어떤 아내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질문이 내 수치심을 파고들었다.
 
"아내분이 당신이 떠나길 바랬을까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당신을 원망했을까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당신이 떠나지 않길 바랐어요."
 
"그만"
 
나는 더는 그녀의 말을 듣기 싫었다.
 
어쩌면 정말로 내 아내가 그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그것에 대해 듣기 싫었다.
 
"당신이 메모하나 두고 유럽으로 출장을 갔을 때도,
 당신이 회사 여사원한테 넥타이 선물을 받았을 때도,
 당신이 주말에 빈둥거리며 놀 때도,
 당신이 거짓을 말할 때도
 그녀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 시끄러워."
 
"당신이 일이 있다며 나가 친구들을 만날 때도,
 당신이 간이 안 맞는다며 밥투정을 할 때도,
 당신과 만나기로 한날에 당신이 잊고 오지 않던 날도,
 당신이…."
 
"너 누구야"
 
나는 그녀를 내 무릎 위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선 나는 그녀를 두려움 반, 분노 반으로 바라보았다.
 
"난 그런 이야기까지 한 적 없어."
 
"당신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알고 있었어요."
 
나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당신이 전화를 받지 않던 그 날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 전화를 받았다면 아내는 살아있을 수도 있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소리쳤다.
 
아마도 나의 본심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 때문에 당신에게 전화한 게 아니에요."
 
"… 너 은화야?"
 
나는 아내의 실명을 거론했다.
 
"당신은 돌아가야 해요."
 
어느새 파랬던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왜…. 말하지 않았어…."
 
나의 말은 이중 삼중으로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한 말을 수정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백히 해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깐요."
 
내가 다시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의 말 또한 이중 삼중으로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 말만큼 현명한 대답은 없었다.
 
"난 돌아가지 않을…."
 
"아니, 당신은 돌아가야 해요. 그녀가 단호박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약속했잖아. 결혼할 때 항상…."
 
"그런 기억은 없어요."
 
"아니야, 나 약속 지키는 거 알잖아. 내가 담배도 끊는다고 했을 때, 바로 끊던 거 기억 안 나?"
 
"아, 담배도 피웠었어요?"
 
노을의 강렬한 빛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해요."
 
"같이…. 가면 안 될까?"
 
"안 돼요."
 
"난 당신이랑 있을 거야."
 
어느샌가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발… 날 두 번 죽이려 하지 마요."
 
그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나는 더는 그녀를 설득하기엔 불가능이란 걸 알았다.
 
그녀의 눈은 확신에 찬 눈이었기에.
 
"하지만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데. 어차피 방법도 없…."
 
"있어요. 방법."
 
"… 어떤건데?"
 
"뛰어내리세요."
 
"어?"
 
"뛰어내리라고."
 
"어…어?"
 
"따라오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리둥절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녀의 발걸음이 멈추자 비상탈출용 문이 보였다.
 
"이건 아니야."
 
나는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냐 맞아."
 
그녀가 내 말을 부정하며 어떤 버튼을 누르지 문이 열렸다.
 
엄청난 기압이 내 몸을 빨아드릴 듯 했다.
 
바람은 이상하게도 뜨거웠다.
 
"잠깐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나는 겨우 몸을 지탱하며 말했다.
 
"정말로 보고 싶을 거야!"
 
그녀는 크게 소리치고선 앞발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문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잘 가!"
 
떨어지는 와중에 그녀가 소리쳤다.
 
"그리고 다음번엔 꼭 만나고 싶어!"
 
그녀는 전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아빠."
 
 
 
 
 
 
 
 
 
 
 
 "201번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어요."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희미하게 뜨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해"
 
나는 허공을 향해 사과하곤 다시 정신을 잃었다.
 
 
 
 
 
 
 
 
 
 
 
 
 
 
 
 
 
 
 
 
 
 
 
 
"오빠, 여기 새해기념 소원 팔찌야. 내가 만들었어."
 
아내가 내게 팔찌를 건넸다.
 
"오, 너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아?"
 
"그럼!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ㅋ너 원래 손재주 없잖아."
 
내가 장난스레 말하자 그녀는 날 때리려는 시늉을 한다.
 
"오빠는 소원 뭐할 거야?"
 
"음… 나는 이제 아기를 한 명 키우고 싶어."
 
내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남자가 애 키우고 싶으면 진짜 결혼할 나이라는 거라던데. 오빠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음…."
 
나는 꾀나 깊게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선 대답했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딸."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