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 신청 한달만에 치러진 대선
거의 일방적인 국제통화기금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식민지 상태였음에도
구국의 피닉제 이인제 열사가 이회창 표임에 분명했던 20%에 가까운 500여 만 표를 잠식했어도
쿠테타 유신세력의 일파였던 김종필 박태준과의 어찌 보면 굴욕적 야합(?)에 가까운 DJP 연대를 했어도
추운 새벽 기차를 타고 멀리 울산에서 서울에 올라와 힘겹게 한 표를 찍었어도
무려 39만 표 차이, 1.6%P의 박빙으로
김대중이라는 한 시대의 거인이 간신히 이겼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2002년 초봄에 불었던 다시 보기 힘든 노무현의 신선한 돌풍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은 몇 차례의 실책과 당 내부의 돌팔매질로 지지율이 급락하고
수도 이전이라는 회심의 공약으로 충청도 표를 끌어모으고도
결국 내키지 않는 정몽준과 극적 단일화와 투표 전날 막판 지지 철회의 드라마 끝에
겨우 57만 표 차이, 2.3%P라는 경미한 차이로
노무현이라는 시대정신이 근근히 당선되었던 추억이 희미하네요.
나라를 팔아먹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눈 막고 귀 막으며 지지하는 15% 박사모가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그들도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며, 지금 이 순간 숨죽이며 칼을 갈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미 결과는 나왔다며 마음 놓는 섣부른 방심은 끝까지 금물입니다.
겸손함을 내세우고 차분하게 설득해야 하늘이 돕고, 기적이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