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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베트남의 역사.txt
게시물ID : history_181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os-Pilas
추천 : 13
조회수 : 247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9/19 23:29:50
 
15세기 무렵 중국 명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워진 베트남의 두번째 독립왕조인 여(黎) 왕조는 태조(太祖) 여리(黎利) 이래로 태종(太宗), 성종(聖宗)의 치세를 거치며 전성기를 맞이하나 성종의 사후를 계기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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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세기의 이(李) 왕조부터 근대의 완(阮) 왕조에 이르기까지 역대 베트남 왕조의 남진을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여 왕조 시대에 이루어진 남진으로 특히 베트남 최고의 성군으로도 불리우는 5대 황제 성종(聖宗)의 대에 베트남 남부에 위치해있던 참파를 거의 밀어버렸습니다.
 
 
성종 사후, 차례로 헌종(憲宗), 숙종(肅宗)이 즉위했지만 차례로 요절하고 8대째에 헌종의 차남 여준(黎濬)이 위목제(威穆帝)로 즉위하지만 전형적인 암군의 모습을 보여주어 무능한데다 주색잡기에만 빠져 정사는 뒷전으로 물려두니 자연스레 조정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등 혼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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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신하들을 내키는 대로 잡아다 죽이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 위목제. 그림에서도 보이다시피 항시 옆에는 후궁이나 궁녀를 끼고 사는 등 주색을 즐겼습니다.
 
 
특히 황실의 종친들을 경계하여 이런저런 구실을 대어 종친들을 하나 둘 잡아다 죽이거나 귀양보내는 행위로 뭇 종친들의 반감을 사고 있었고 특히 조부 성종의 아들, 즉 자신에게는 숙부가 되는 건왕(建王) 여빈(黎镔)의 아들들을 잡아다가 숙청한 일이 화근이 됩니다. 여빈의 아들들은 대다수가 투옥되어 숙청되었으나 간수공(簡修公) 여형(黎瀠)만은 옥졸에게 뇌물을 먹여 도주하는데에 성공했고 그 길로 대신들을 소집하여 1510년, 반란을 일으킵니다.폭정으로 이미 인심을 잃은지라 반란을 막아줄 이렇다할 친위세력도 없었던 위목제는 여형의 반란을 막지 못하고 자살해버렸고 여형은 위목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니 바로 양익제(襄翼帝)입니다.
 
 
하지만 양익제도 위목제와 별반 다를 바 없던 인물로, 재위기간 동안 위목제처럼 주색잡기에만 골몰하여 정사는 돌보지 않았고 오죽했으면 명나라로부터 "저왕(豬王)" , 즉 "돼지왕" 이라고 비꼬아 불리우기까지 했습니다. 거기다 대규모 토목공사까지 병행하여 그 결과, 양익제의 치세동안에는 수차례 농민 봉기가 일어났고 조정 신하들의 반발을 불러오기에 이릅니다.
 
 
결국에는 1516년, 진호(陳暠)라고 하는 인물의 주도 하에 반란이 일어난 것을 도화선으로 조정에서는 호부상서 정유산(鄭惟㦃)이라는 인물이 양익제를 폐살시키고 그 아들인 여광치(黎光治)를 옹립하지만 겨우 세살이었는지라 국정은 조정의 권신들에 의해 농단되기 시작합니다. 정유산을 비롯한 완홍유(阮弘裕), 진호 등과 같은 권신들은 저마다 사병을 동원하여 어린 황제를 끼고 싸움을 벌였고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유산은 여광치를 핍박하여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도성 승룡(昇龍 : 현재의 하노이)에서 탈출하여 승룡의 서쪽에 위치한 서경(西京)으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여광치를 살해하고 5대 황제 성종의 증손자인 여의(黎椅)를 소종(昭宗)으로 옹립합니다만 머지않아 진호와의 싸움에 패해 살해당합니다.
 
 
그 와중에 진호가 이끄는 반란군은 텅 빈 도성 승룡을 점거하고 독자적으로 국정을 농단하며 전횡하기 시작했고 서도의 소종은 각지에 조칙을 내려 진호를 토벌할 것을 명합니다. 이렇듯 허수아비 황제를 두고 권신들 간의 전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신흥강자로 급부상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막등용(莫登庸)이라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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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莫) 왕조의 태조(太祖), 막등용.
 
태조라는 묘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여러 군벌들 가운데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막등용은 본래 일개 어부였으나 무과에 급제, 위목제 치세부터 등용되어 위목제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으며 출세가도를 달려 군부의 수장으로 급부상한 실력자였습니다. 이어 양익제의 대에도 중용되며 "무천백(武川伯)" 에 봉해져 제후로서 실력을 키워나갔고 양익제의 폐살로 말미암아 벌어진 권신들 간의 내란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어 소종은 막등용에게 군권을 위임, 진호의 토벌을 명합니다.
 
 
그러나 군권을 등에 업고 점차 성장하는 막등용에게 위협을 느낀 소종은 점차 막등용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막등용도 제위에 뜻이 있었는지 자신의 딸을 소종의 후궁으로 들이는 것을 빙자하여 딸로 하여금 소종을 감시하게 하고 궁성을 드나들때는 천자의 의장을 쓰는 등 여러모로 소종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행동으로 거의 대놓고 역심을 드러내고 있었던지라 참다 못한 소종은 예전에 죽은 정유산의 뒤를 이어 여전히 서경(西京)에서 독자적 세력을 거느리며 버티고 있는 정유산의 조카 정산(鄭綏)에게 몰래 연락을 넣어 망명해버립니다.
 
 
정산의 세력에 힘입어 소종은 막등용을 역적으로 지목하며 전국의 제후들에게 명하여 토벌할 것을 명했고 막등용도 소종의 탈출사실을 알게 되자 도성을 버리고 도망간 황제는 황제로 인정할 수 없다하여 다른 황족을 황제로 옹립할 것을 천명하였고 1522년, 소종의 동생 여춘(黎椿)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바로 여 왕조의 마지막 황제, 공제(恭帝)입니다. (물론 여 왕조는 중간에 일시적으로 막등용에게 멸망한 후 나중에 부흥하여 전기, 후기로 나뉘는지라 마지막 황제는 아니지만 전기 여 왕조의 마지막 황제를 말합니다)
 
 
막등용의 전횡을 피해 서경의 정산에게로 망명한 소종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정산의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하게 되는데요, 원인인즉 소종의 개념머리없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환관 범전(范田)의 참언만 듣고 행동하여 그나마 자신을 지지해주던 지지세력들을 모조리 떨어져나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얹혀사는 주제에 정산에게도 덤비는 등 갖가지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들로 애물단지가 되다시피한 소종은 결국 정산에 의해 청화(清化)라는 곳으로 쫓겨나 살게 됩니다.   
 
 
한편 막등용은 공제를 겁박하여 공제의 형이기도 한 소종을 타양왕(陀陽王)으로 격하시키게 하고 소종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음껏 전횡하다 1525년, 대군을 동원하여 서경의 정산을 공격, 정산의 세력을 무너뜨리는데에 성공하고 버려진 신세의 소종을 잡아다가 승룡으로 압송해 오지만 머지않아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1527년, 드디어 바라던 바를 이루고자 측근을 시켜 공제로 하여금 선위할 것을 요구하여 공제로부터 양위받아 제위에 올라 막(莫) 왕조를 개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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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로부터 왕위를 인정받는 막등용
    
 
자기 멋대로 명나라가 책봉한 여 왕조의 군주를 폐하고 황제가 되었으니 당연히 명나라의 눈치를 봐야했을 막등용은 사신을 명으로 보내 자신의 즉위사실을 알리며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당시 명의 황제였던 가정제의 윤허를 받아 베트남의 새로운 군주로 인정받습니다. 다만 명으로부터 정식으로 받은 벼슬은 "안남도통사" 라는 일종의 지방직 냄새 물씬 풍기는 것으로 정식으로 안남국왕으로 책봉받은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나라와의 마찰은 꺼렸던 막등용은 그냥 군말없이 벼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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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등용의 요청을 인정해준 가정제.
 
명의 F4라는 명성에 걸맞게 어차피 정사에 관심도 없어서 남쪽 변방에서 어느 놈이 왕이 되건 말건 관심도 없었을 듯
 
 
막등용의 막조(莫朝)에 의해 일시적으로나마 여 왕조가 무너지긴 했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었고 막 왕조의 개창 직후부터 여러 가문들에 의한 여 왕조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막 왕조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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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무렵의 베트남.
 
북부 베트남의 분홍색 영역이 막 왕조, 중간의 노란색 영역이 이후 막 왕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정(鄭)씨, 완(阮)씨 연합세력, 남부의 초록색은 잉여가 된 참파입니다.
 
 
이건 나중에 따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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