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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는 길
게시물ID : readers_156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세된양말
추천 : 0
조회수 : 2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20 09:30:23
우리 집 가는 길


담배연기가 초승달을 쓰다듬는다.
저 달은 지금까지
새벽에 잠 못 이루고 니코틴과 타르로
쨍쨍 얼어붙은 가슴 녹이는 사람들의
체취와 연기 낀 한숨을
모조리 숨 쉬어 주었다.

달나라에는 폐암이 한창이겠지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밤을 비추게 된 이래로
달나라에는 항상 폐암이 유행하겠지.

그러니 아픈 사람들아
그 아픈 피와 고기와 살거죽과
손톱과 발톱과 고드름 돋은
뇌수까지 전부 버리고 가자
그러나 뼈는 남겨두고 가자
평생 아파 본 일 없는 사람들이
그 쉽사리 부서지는 뼈를 보고
입 꼬리나마 일그러트릴 수 있도록.

아파 본 일 없는 사람들은
항상 병과 죽음 그것이 걱정이더라.
그런데 우리는 병이 자신인지
자신이 병인지 아니면 병이라는 것이
자궁 속에서도 함께하던 형제인지
알 수가 없지 않던가. 우리는 그저
아픔과 사는 것이 체질이라고
흉터 위에 흉터를 덧씌우지 않았던가.

바닥에서 위를 쳐다본다.
그리 깊지도 않은 바닥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하늘에는 청록빛 파도가 출렁이고
발밑에선 구름들이 찢어진 채 흐르고
날개가 커다란 새들 몇몇은
뒤집어진 채 날고 있다. 사방에
초록색 불꽃이다.

창공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 번도 문을 열어본 적 없는 우리 집일까?
이불 위에 잔디가 돋은
파랗고 어둡고 높은
아무도 문 두드리지 않는 내 집일까.
사다리 타고 내려가는 길에
너무 고독해서 헌혈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막걸리 공장 하나 있는
그런 집이면 좋겠다.

달나라에 있는 오두막에
무화과나무 하나 심고
달이 한 번 돌 때마다 무화과 하나 먹으면
음식도 술도, 서러운 가슴에 채워 넣을
담배연기도 필요 없는
그런 집에서 살면
좋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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