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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들.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 두번째.
게시물ID : sewol_363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숙한곧휴
추천 : 11
조회수 : 190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9/20 10:20:30
 
 
끝내지못하여 두번째 글까지 쓰게되내요.. 기억하시죠 이아이들 과 선생님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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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이양은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장주이(18). 워낙 활달했던 주이를 보고 엄마는 가끔씩 선머슴 같다고 놀리며 “차분한 오빠와 성격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두 살 터울인 오빠와 가끔씩 티격태격했지만, 다툰 지 채 10분도 안 돼 까르르 웃으며 화를 풀었다. 엄마는 그래서 주이를 ‘아들 같은 딸’이라고 불렀다. 마치 사내아이 같았지만 주이는 감성이 풍부한 소녀였다. 학교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고, 감성 어린 춤도 아주 잘 소화했다고 엄마는 전했다.
활달한 성격의 주이는 멋쟁이 여군 장교를 꿈꿨다. 친구도 많고 학교 일이라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학교 축제 때는 춤 경연대회에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나갔고, 학교 선도부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단체생활의 규율과 규칙을 몸에 익혔다.
올 여름방학 때는 사촌언니가 다니는 한 대학 학군단(ROTC)을 찾아가 여군 장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꼼꼼하게 알아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로 주이의 꿈은 허망하게 물거품이 됐다.
사고 8일째인 4월23일 엄마 품에 돌아온 주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도 가끔씩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주이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안산/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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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양은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접한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전하영(17)양에겐 새 꿈이 생겼다. 유니세프나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우리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세계의 이웃들과 아픔과 희망을 같이하기로 결심했다. 사회복지사가 돼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하며 살겠다던 다짐의 폭을 더 넓힌 것이다.
하영이는 지난해 겨울방학 때에는 한국외국어대 외교통상스쿨을 1기생으로 수료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직전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한 청소년국제교류네트워크 과정에도 관심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난 4월16일은 이 과정의 신청 접수 마감일이었다.
딸의 신신당부를 잊지 않은 엄마는 이날 오전 컴퓨터 앞에 앉아 신청서를 쓰다 말고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개그맨 흉내를 너무 비슷하게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늘 웃음을 안겨주던 하영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의 꿈을 접고, 이젠 경기도 화성 효원공원에 친구들과 잠들어 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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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만군은
“태어날 때부터 고통스럽게 컸던 아이인데, 어떻게 마지막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갈 수가 있을까요….”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이영만(16)군의 어머니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도와 식도가 붙은 상태로 세상에 나왔던 둘째 아들이었다. 태어난 지 닷새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크면서도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응급실에 몇 번이나 실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영만이는 착하고 낙천적인 아이로 자라줬다. 짜증 한번 내는 일 없이 늘 웃는 얼굴이었다. 엄마가 “뭐가 그리 좋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난 너무 행복해요. 학교도 재밌고 친구들도 좋아요.”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장을 보러 가곤 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에게 콧소리 섞인 애교스런 말투로 인사를 했다.
공부를 잘했던 영만이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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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유니나 선생님은…
어느 땐 언니 같았고, 또 어느 땐 친구 같았다. 따뜻하고 자상한 선생님들이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제자들을 구하다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9반 담임 최혜정(24·영어), 2학년 1반 담임 유니나(28·일본어)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기억이다.
지난해부터 교단에 선 최 교사는 학생들을 여동생처럼 대했다. 함께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해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도 자주 교무실로 찾아와 품에 안겼다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탈출하기 가장 쉬웠던 5층 객실에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아이들이 있었던 4층 객실로 뛰어내려갔다. 휴대전화로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말했다. 그러나 9반 학생들은 단 2명밖에 구조되지 못했다. 탈출이 어려웠던 선미 중간 쪽 창문 없는 객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 교사는 2011년부터 단원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수업시간에 일본 씨름인 스모 선수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 일본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했다. 부드럽지만 똑 부러지는 성격이어서 학생들에게 ‘인기짱’이었다. 유 교사도 세월호 5층 객실에 있다 아이들을 구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 실종됐다. 사고 54일째인 6월8일 세월호 3층 식당에서 발견됐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1반 학생들은 10개 반 가운데 가장 많은 19명이 구조됐다.
짧은 생을 마감한 두 교사는 지금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제자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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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1반 김수진(17)양은 태어날 때는 체격이 작고 약한 아이였다. 수진이 아빠 김종기(49)씨는 어린 딸이 걱정됐다. 어느 순간부터 수진이의 키가 쑥쑥 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반에서 키가 가장 컸다. 수진이 아빠는 건강하게 자란 막내딸을 볼 때마다 기뻤다.
수진이의 장래희망은 요리사였다. 두 언니가 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볶음밥도 주먹밥도 척척 해줬다. 수진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났던 4월16일 오전 8시57분부터 가족 카카오톡방에 ‘배가 기울어졌다’, ‘바닷물이 창문 앞에 보인다’며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놀란 언니가 ‘그럼 빨리 나가라’고 했지만, 수진이는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며 나가지 않았다. 오전 9시36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카카오톡방에 수진이의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수진이는 사고 7일째인 4월22일 숨진 채 아빠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경기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들어 있다. 수진이 아빠는 국회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다가 14일째인 지난달 27일 쓰러져 고대 안산병원에 입원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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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은양은
‘숫기 없고 순진했으나 무대에서만큼은 열정을 불태웠던 18살 소녀.’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양을 엄마는 이렇게 기억했다.
“가수가 되고 싶어요”라는 딸의 말을 엄마와 아빠는 ‘사춘기 소녀의 단순한 호기심’이라며 그냥 웃어넘겼다. 하지만 예은이가 한 방송사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신청서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보컬학원에 등록했을 때’라고 쓴 것을 보고는 그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이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던 예은이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도 뮤지컬학원에 나가 꿈을 키웠다고 엄마는 흐느꼈다.
4월30일 뮤지컬 <캣츠> 공연을 예매했던 예은이. 손꼽아 기다렸던 공연장엔 결국 가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일주일 만인 4월23일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딸을 가슴에 묻은 아빠 유경근씨는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스무날 가까이 단식 중이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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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란양은
단원고 2학년 3반 박영란(17)양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집에서는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인 두 여동생도 잘 돌봤다. 먹을 것이 생기면 동생들에게 꼭 가져다주고, 짬이 나면 스파게티 등 동생들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줬다. 엄마가 아플 때는 동생들의 밥도 챙겼다. 아이들 돌보기를 좋아한 영란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났던 4월16일 아침 9시47분 영란이는 엄마에게 ‘배가 기울어졌다’고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는 “무섭다”며 울었다. 아침 9시53분에는 엄마와 아빠에게 카카오톡으로 ‘보고 싶다’는 마지막 글을 남겼다.
영란이는 사고 6일째인 4월21일 물 밖으로 나왔다. 전날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딸을 기다리던 엄마의 꿈에 영란이가 나와 “곧 돌아갈 테니까 집에 가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란이의 장례식은 4월23일 치러졌고 지금은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엄마는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도보 행진에 참여하고 서명도 받고 있다. 갑자기 곁을 떠난 영란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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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인양은
“엄마, 세면도구 가방 어디에 넣어놨어?”
4월15일 밤 11시께 이날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김지인(17)양이 엄마 휴대전화로 연락해왔다. 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다음날 오전 8시52분 엄마는 딸에게 “어디쯤이신지?”란 메시지를 보냈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 시각 세월호는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4월23일 진도 팽목항 신원확인소에서 엄마는 딸을 흔들어 깨웠으나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는 외동딸 지인이에게 모든 정성을 쏟았다. 지인이는 밝게 컸다. 대회에 나가 상을 탈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고,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지인이는 엄마에게 “어른이 되면 엄마 술친구 해줄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가 “이제 다 키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요즘 엄마는 세월호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열심히 받고 있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엄마는 “국가가 아이들을 구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말했다. 지인이는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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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빈군은
“그러면 태권도 잠시 중단하고 공부를 할게요.”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임경빈(17)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운동을 너무 좋아했던 아들의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 많았다. 아들이 운동보다 공부를 하기를 원했다. 경빈이는 그런 엄마의 고민을 알고서는 엄마가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경빈이의 원래 꿈은 태권도 사범이었다. 7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각종 대회에 나가 우승도 많이 했다.
집에서는 살가운 아들이자 자상한 오빠였다. 매주 일요일만 되면 아빠, 엄마와 함께 등산을 갔다. 11살 난 여동생도 잘 돌봤다고 한다. 특히 아빠와는 간혹 피시방에 가서 함께 게임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
학교에서는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축구와 농구를 함께 하며 어울렸다. 운동을 잘하고 착한데다가 성격까지 활달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4월16일,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는 애타게 아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끝내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경빈이는 그날 밤 사고 현장 근처 바다 위에서 발견됐다. 지금은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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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진양은
“엄마, 나 꼭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하고 같은 무대에 설 거예요. 슈퍼스타가 돼 엄마 호강시켜 드릴 테니 그땐 목에 힘주고 다니세용~.” 꿈 많은 열일곱살 정예진(단원고 2학년 3반)양은 엄마를 끔찍이 위하던 ‘친구 같은 딸’이었다.
‘무대 체질’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활달했던 예진이의 장래 희망은 방송계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날마다 연기학원에 다녔고, 지난 4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도 밤 12시까지 학원에서 연기 연습에 몰두했다고 엄마는 전했다.
뮤지컬을 유난히 좋아했던 예진이. 예진이가 있는 곳엔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았다. 토요일마다 요양원을 찾아가 할머니들 목욕을 시켜드리는 봉사활동도 빼먹지 않았다.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와 함께 하는 공연을 꿈꿨던 예진이는 세월호 침몰사고 엿새 만인 4월22일 엄마 품에 안겼다. 그날은 예진이 남동생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진이 얘기 하면 눈물이 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이젠 참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예진이 잊혀지지 않게 얘기 많이 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엄마는 흐느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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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래군은
“오늘 나는 서두원이 아니라 박홍래였습니다.”
5월31일 오후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경기 시작 15초 만에 상대를 넉아웃시킨 서두원(33) 이종격투기 선수는 경기가 끝나자 이렇게 말했다. 경기를 보던 박홍래(17)군의 부모와 형 형래(18)군은 눈물을 흘렸다. 서 선수는 형래를 링 위로 불러 끌어안으며 “나, 약속 지켰다”고 말했다. 홍래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단원고 2학년 5반 학생이다.
홍래의 꿈은 이종격투기 선수였다.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체육관에서 이종격투기를 배웠다. 특히 서 선수를 좋아해 자신의 방에 사진도 여러 장 붙여놨다고 한다. 홍래와 형래는 6월 이종격투기 대회에 함께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홍래는 세월호 사고 8일째인 4월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배가 침몰하기 전 “형, 무섭다. 살려줘”라고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홍래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동생의 장례를 마친 형래는 서 선수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다. 동생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었다. 사연을 전해들은 서 선수는 5월1일 홍래의 납골함을 찾아 명예선수 임명패를 전달했다. 그는 홍래를 위해 5월31일 경기를 꼭 이기겠다고 약속했고, 약속을 지켰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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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양은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정지아(18). 외동딸이었던 지아는 유별나게 엄마를 따랐다. 늘 엄마와 팔짱을 끼고 다녔다. ‘친구 같은 딸’을 둔 엄마가 외려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곤 했지만, 지아는 엄마의 고민을 듣고 위로해주던 자상한 아이였다.
박물관 큐레이터를 꿈꾸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했던 지아는 늘 엄마에게 “을지문덕 장군이 가장 존경스럽다”고 했다. “여학생이 무슨 용맹한 장수를?”이라고 물으면, “하여튼 난 을지문덕이 최고라고 생각해”라고 되받았다. 침착하고 곧은 성격에 글 짓는 솜씨까지 비범했던 을지문덕을 닮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아는 글재주가 뛰어났다. 언젠가 쓴 소설에선 자신을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그리기도 했지만, 성격만큼은 무척 밝았다고 엄마는 말했다. 단짝 친구 6명과 잘 어울려 스스로 ‘6총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4월24일 엄마 품으로 돌아왔지만, 이젠 친구 같은 엄마를 영영 떠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다. 6총사 가운데 살아 돌아온 아이는 단 한 명뿐이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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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아양은
수학여행 갈 준비를 하던 딸은 과자를 한 보따리나 사왔다. 엄마는 딸에게 “왜 이렇게 많이 사왔냐”고 했다. 딸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딸이 수학여행을 떠난 4월15일 아침, 출근하려고 식탁 위에 놓인 가방을 집어 들던 엄마는 깜짝 놀랐다. 반쯤 열린 가방 안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딸 키우려고 힘들었는데, 나 갔다올 동안 엄마 좀 쉬어. 냉장고 위에 엄마 생일 선물 있어.” 5월11일 엄마의 생일을 앞두고 딸이 준비한 ‘깜짝 행사’였다. 딸은 엄마의 생일 선물이라며 냉장고 위에 과자의 절반을 두고 갔다.
이렇게 집을 나선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 김주아(17)양은 세월호 사고 사흘째인 4월18일 엄마의 품에 돌아왔다. 사고 당시 갑판까지 나왔다가 캐비닛에 깔린 친구를 구하려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아는 착하고 활달한 아이였다. 뭘 사러 가든, 놀러 가든 늘 엄마와 함께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5살 많은 언니와 함께 자란 주아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닷새 전인 4월10일은 주아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주아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며 오래 살라고 했다. 하지만 주아는 지금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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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양은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10반 권지혜(17)양은 아빠와 엄마의 결혼기념일(4월16일)을 꼭 기억했다. 지난해 결혼기념일에도 축하 케이크와 선물을 사왔다. 4월15일 아침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엄마에게 “결혼기념일 아침에 꼭 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지혜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빠와 엄마의 결혼기념일이었던 4월16일, 지혜는 세월호와 함께 전남 진도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고 6일째인 4월21일 숨진 채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잠자기 전 지혜는 불을 끄고 엄마와 함께 누워 친구와 학교 이야기 등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엄마가 잠든 것을 보고 살며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아껴 엄마에게 양산과 화장품 선물을 했다. 엄마를 끔찍이도 생각했던 아이였다.
재능도 많았다.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고, 춤과 노래 등 못하는 게 거의 없었다. 성격도 착하고 밝아 늘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는 댄스경연대회에 나가겠다며 친구 대여섯 명과 함께 주말마다 춤을 연습했다고 한다. 공부도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했다. 지혜는 치과의사가 꿈이었다.
아빠는 막내딸을 잊지 못해 요즘도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안타깝게 지혜를 찾는다.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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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화양은
“통솔력도 있고 모든 것을 열심히 하려는 똑 부러지는 아이였어요. ‘예쁘고 자상한 한의사가 되겠다’며, 중학교 때부터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며 꿈을 키웠지요.” 김해화(단원고 2학년 9반)양의 엄마는 바닷속에서 허망하게 져버린 꽃 같은 딸을 이렇게 소개했다.
늘 당당하고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해화. 간호사로 일하는 엄마가 일주일에 두어번씩 야근을 하는 게 안쓰러웠던지, 새벽 2~3시가 넘어서도 잠을 자기 전 꼬박꼬박 안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별일 없지? 나는 공부도 다 했고 해서…. 엄마 일하는데 미안하지만, 먼저 꿈나라 갑니다~”라고.
해화는 엄마와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는 유치부 보조교사로 활동했다. 어릴 적부터 친구도 많았다. 해화가 떠난 지금 친구들이 엄마에게 해화를 대신해 안부 전화를 한다고 엄마는 울먹였다.
4월25일 엄마 품에 안긴 해화는 경기도 평택 서호공원에 잠들어 있다. 딸을 잊지 못하는 엄마는 해화 동생을 데리고 해화 방에서 잠을 청하며 딸을 그린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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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우군은
단원고 2학년 4반 김건우(17)군의 세살배기 조카는 벌써 석달 넘게 집 창문 밖을 바라보며 외삼촌을 기다리고 있다. 틈만 나면 안아주고 사진을 찍어주며 놀아주던 외삼촌. 수학여행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외삼촌 건우를 기다리는 이 꼬마 조카는 요즘 부쩍 “삼촌 언제 오느냐”며 보채 외할머니의 속을 태운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여행이 재미있어서 그런가 보다. 나중에 꼭 올 거야”라고 다독이며 눈물을 몰래 훔친다.
건우는 ‘조카 바보’였다. 누나의 외아들을 끔찍하게 좋아했다. 건우는 올 초부터 엄마를 졸라 요리학원에 다녔다. 요리사가 꿈은 아니었다. 몸이 허약한 엄마가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에게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를 해줬다. 건우는 제법 요리 솜씨를 발휘할 즈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건우의 꿈은 요리를 잘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사랑받는 평범한 남편,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남편도 아빠도 돼 보지 못한 채 세월호와 함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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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군은
단원고 2학년 4반 반장이었던 김호연(18)군의 형 호준(20)씨는 최근 동생의 영정을 들고 일주일 동안 제주도를 다녀왔다. 수학여행을 마무리시켜주기 위해서다. 영정을 품에 안고 수학여행 예정지를 돌아보면 그나마 동생의 넋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호연이는 하고 싶은 게 많았던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교 야구선수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다. 기타와 피아노도 수준급이었다. 한번 관심을 가진 일은 무엇이든 도전하는 욕심꾸러기였지만, 예의 바르고 진중한 성품을 지녔다고 엄마는 전했다.
세월호가 기울어지는 것을 알아챈 호연이는 일찌감치 갑판으로 나왔지만,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다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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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연양은
‘깨박이’란 애칭을 가진 단원고 2학년 3반 김시연(17)양. 어릴 적 엄마가 사준 물개 인형에게 깨박이란 이름을 지어준 시연이는 어딜 가나 이 인형을 갖고 다녀 깨박이가 됐다.
시연이의 꿈은 음악교사였다. 노래를 들으면 악보를 보지 않고도 바로 기타를 칠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시연이는 ‘10년 후 우리들의 모습’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친구들과 찍었다. 동영상에는 저마다 커서 무슨 직업을 갖고, 누구와 결혼할지 등 사춘기 소녀들의 수줍은 꿈이 가득 담겨 있었다고 엄마는 전했다. 귤을 좋아했던 시연이는 “나이가 들면 제주도에 살면서 꼭 귤 농장을 할 거예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제주도 땅은 밟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세월호 침몰 5일 만인 4월21일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바다에서 나왔다. 엄마는 “겁먹은 시연이가 ‘구조대 왔어요. 구조되자마자 전화할게요’라고 울먹이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흐느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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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예양은
안산 단원고 2학년 9반 김초예(17)양은 여동생 둘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맞벌이로 바쁜 아빠와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의 식사와 간식을 꼬박꼬박 챙겼고 공부도 가르쳤다.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장을 보러 함께 다녔고, 엄마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예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몸이 많이 허약했다. 환절기인 봄과 가을만 되면 병원에 다니기 바빴다. 엄마는 잘 먹어야 튼튼해진다며 아무리 바빠도 초예에게는 세 끼 밥과 간식을 챙겨줬다. 그 정성으로 초예는 더는 병원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었지만, 친해지기만 하면 장난도 잘 치는 밝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언어발달 장애아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크면서는 “취업이 잘된다”며 꿈을 간호사로 정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4월15일 밤 “일찍 잔다”며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됐다. 엄마는 다음날 아침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초예에게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초예는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0일째였던 4월25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있다.
초예의 아빠와 엄마는 지금껏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초예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 등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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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민군은
단원고 2학년 5반 박준민(17)군은 바리스타가 꿈이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엄마와 함께 카페를 다니며 팥빙수를 먹다가 우연히 이런 꿈이 생겼다. 그해 9월부터 바리스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지난 1월에 바리스타 3급 자격증을 땄다. 집에 커피 뽑는 기계를 사다 놓고 엄마에게 항상 커피를 만들어줬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5월12일에는 바리스타 2급 자격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4월16일 오전 9시6분, 세월호가 점점 기울자 준민이는 휴대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자꾸만 끊겼다. 오전 9시40분, 가까스로 준민이는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 건 26번째 전화였다. 준민이는 무덤덤하게 “나, 구명조끼 입고 있고 곧 배 밖으로 나갈 거야”라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엄마는 아들이 곧 배 밖으로 나올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준민이는 4월23일이 돼서야 엄마 품에 돌아왔다. 중학교 2학년인 준민이 여동생은 오빠가 있는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갈 때마다 “사랑한다”는 편지를 써 두고 온다고 한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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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양은
단원고 2학년 1반 김수경(17)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오케이 걸’로 통했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하지 않고 모두 들어주는 착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수경이는 친구들이 다투면 앞장서서 화해를 주선했다. 배우나 탤런트 흉내도 그렇게 잘 냈다고 한다. 모두가 찾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살 많은 오빠와 6살 많은 언니를 둔 귀여운 막둥이였다. 한방을 쓰는 언니를 데리고 근처의 맛집이라는 맛집은 다 찾아서 돌아다녔다. 엽기적인 사진도 재치있게 잘 찍어줬다. 가족의 생일이면 편지지에 예쁜 그림을 그려 축하 편지를 꼭 써줬다.
수경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지 8일째인 4월23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들어 있다. 최근 수경이 언니가 남자친구와 납골공원에 갈 때, 졸음 운전하던 남자친구의 눈앞에 수경이가 나타나 화들짝 놀라 깼다고 한다. 수경이 언니는 “수경이가 나를 지켜줬다”고 말했다.
안산/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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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우양은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조서우(17)양은 가녀리고 내성적이었다. 다섯살짜리 남동생이 장난치느라 때리고 도망을 가도 그저 울기만 했다. 말 못할 사정으로 아빠와 4년 넘게 헤어져 살아야 했던 서우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5개월 전부터 아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이후 서우는 한 달에 한 번씩 아빠를 만났다. 끔찍이 서우를 사랑했던 아빠는 늘 머리를 빗겨주고 땋아주곤 했다고 엄마는 전했다.
집에서는 혼자 랩송도 잘 부르고 엄마와는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며 친구처럼 잘 지냈지만, 너무 내성적이어서 친구들과 많이 못 어울렸던 서우. 그런 탓인지 학교생활을 매우 힘들어하다 우울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이를 단순히 사춘기 증상으로 생각해 제때 치료를 못 해준 게 이제 씻을 수 없는 한이 됐다”며 울먹였다.
교회에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던 서우는 수화통역사가 돼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했다.
올봄에는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겨울방학 때는 엄마와 기차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했던 서우는 세월호 침몰 사고 16일 만인 5월2일 차가운 바다에서 나와, 경기도 평택 서호공원에 잠들어 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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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희양은
단원고 2학년 9반 임세희(17)양은 화장품과 미용에 관심이 많았다.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염색해줬고 얼굴 팩도 붙여줬다. 세희는 화장품 등에 향을 덧입히는 일을 하는 조향사가 되고 싶어했다.
세희는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를 마치고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맞벌이하는 엄마와 아빠를 도와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설거지하는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뭐 하나 사달라고 투정도 부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딸이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세희는 4월15일 밤 엄마에게 “배가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딸로부터 온 마지막 연락이었다. 다음날 아침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다급한 소식을 들은 엄마는 애타게 전화를 걸었지만, 딸은 받지 못했다. 세희는 사고가 난 지 9일째인 4월24일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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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숙양은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백지숙(16)양의 꿈은 경찰관이었다. 지숙이는 학교 진로카드에 경찰이 되고 싶은 이유를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썼다. 경찰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쁜 사람을 잡는,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숙이는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도 뭐 하나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어느덧 친구처럼 느껴지는 딸을 보며 ‘이제 다 키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남동생과는 만화영화를 함께 보며 친하게 지냈다.
지숙이는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16일 아침 9시50분께 친구의 휴대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엄마는 “밖으로 나와 바다에 뛰어들어라. 그러면 누군가가 구조해 줄 거다”라고 했지만, 지숙이는 “방송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지숙이는 사고 닷새 뒤인 4월21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나중에 발견된 지숙이의 휴대전화에는 ‘구조되면 연락할게’란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가득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려 애썼으나 끝내 전송이 안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닷새 넘게 바닷물에 잠겨 있었던 지숙이의 손목시계가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딸의 이 시계를 고쳐 차고 다닌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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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강군은
안산 단원고 2학년 7반 허재강(17)군의 꿈은 동물학자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곤충을 키웠고, 산소에 벌초하러 가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새끼 뱀을 잡아 와서는 엄마에게 “귀엽지 않냐”고 묻곤 했다. “크면 오지로 가서 동물을 연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재강이는 중학교 3학년 여동생과 싸운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착하고 순한 성격이었다. 중학생 때 어떤 학부모가 아이들 먹으라고 햄버거를 학교에 사다 준 적이 있었다. 재강이만 먹지 않고 햄버거를 집에 가져가려고 하자 그 학부모가 이유를 물었다. 재강이는 “집에 있는 여동생에게 갖다 주려고 한다”고 했다. 여동생이 신경질을 부리면 늘 져주는 속 넓은 오빠였다.
재강이는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16일 오전 8시46분과 9시44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어졌고 물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침착한 목소리여서 엄마는 ‘별일 아니겠지’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마지막 전화가 왔을 때 빨리 배에서 탈출하라고 할걸….” 엄마는 아직도 이렇게 자신을 탓한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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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나양은
단원고 2학년 2반 송지나(16)양은 직장에 다니는 엄마와 항상 장을 함께 보고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하곤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등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줬다. 지나의 엄마는 이럴 때는 딸인 지나가 마치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심장이 안 좋아 수술을 했지만 해가 지나며 건강하게 자라줬다. 이 모습을 보고 안도한 엄마는 늘 지나에게 “내 옆에 붙여 놓고 너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날이었던 4월15일 저녁 8시45분, 엄마는 수학여행을 떠난 딸에게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지나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다음날 아침,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지나에게 수도 없이 전화를 했지만 지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나는 4월24일 엄마 곁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마지막으로 2-2반 한세영양의 어머니 아버지가 만든 추모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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