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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하늘
게시물ID : panic_882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지남친
추천 : 12
조회수 : 1145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05/30 23: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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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세상에는 인간의 탈을 쓴 벌레가 너무 많아. 지렁이나, 누에 같은 인간에게 이로운 벌레를 말하는 게 아니야.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아주 끔찍한 벌레를 말하는 거야. 바로 너처럼.”

 

야구 방망이를 한 손에 움켜쥔 청년이 눈앞의 남자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청년은 마치 웅변대회에 출전한 사람처럼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남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이미 고장이 나버렸는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죄를 지었으니 법의 심판을 받았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 강도가 너무나도 약해. 난 만족할 수가 없어.”

 

청년은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일부러 도망가라는 듯이 말이다. 남자도 청년의 의도를 깨달았는지 뒷걸음질 쳤다. 고장 난 다리를 애써 다독여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지려고 했다. 청년은 갑자기 속도를 높였고,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남자는 껄끄러운 흙바닥과 키스를 나눴다. 청년은 어느새 남자의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청년은 남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징역 3, 5, 10년이 문제가 아니야. 살려두어서는 안 돼. 해충이면 해충답게 밟혀 죽어야 해. 내가 밟아 버릴 거야.”

 

남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자는 진심이다. 청년은 돋아나 있는 소름을 감상하며 천천히 멀어졌다. 남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살려줘…….”

 

어느새 다가온 청년이 남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청년의 눈은 분노로 인해 빨갛게 충혈되어 갔다. 그와 반대로 남자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남자는 괴로운지 연신 가래가 끓는 듯한 괴상한 소리를 냈다. 더불어 청년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점점 아득해져 가는 정신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남자의 휘적거리는 손이 느려질 때쯤 청년은 힘을 풀었다.

 

역겨워. 더러워!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 거야? 넌 조금의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거야?”

 

청년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해 일갈했다. 남자는 결국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지금 이 상황이, 저 미친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한테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터져버린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몸을 지배했다.

 

아무리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네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방이 막혀있는 컨테이너 안, 전구 몇 개에 시야를 의지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중앙엔 청년이 의자에 앉아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4명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 성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죽었는지 의심될 정도로 피칠갑이 되어있는 사람도 있었고, 기괴하게 뒤틀린 팔이나 다리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청년은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이윽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눈을 떴다. 남자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막혀있는 벽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흐업…….”

 

청년은 깨어난 남자를 응시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으로 사람을 꿰뚫을 수 있다면 이런 눈빛일까. 남자는 두려워졌다. 더 이상 청년과 단둘이 있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남자는 주위에 같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청년의 눈길을 같이 견딜 사람이 필요했다. 남자는 깨우면서 자신과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발목에 달린 전자발찌. 그것이 청년이 자신들을 잡아들인 이유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끄으으…….”

 

하나둘 흩어져있던 정신을 붙잡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청년의 날카로운 눈빛은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졌다. 한순간에 안도감이 밀려들어서 였을까. 지금까지는 여유가 없어 맡지 못했던 진득한 피 냄새가 남자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하루 이틀 묵혀있던 피 냄새가 아니었다. 쉴 새 없이 가축들이 죽어 나가는 도살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진한 피 냄새였다. 도대체 이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성범죄자가 죽어 나갔던 것일까. 남자는 두려워졌다. 그리고 자신의 피 냄새도 이 냄새에 덧씌워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4명의 남자가 모두 정신을 차리자 청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부러진 남자는 저항할 의지를 상실한 듯 보였다. 그러나 피칠갑이 되어 있는 남자를 포함한 팔이나 다리 따위가 뒤틀린 남자들은 청년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몸은 정직했다. 남자들은 마치 거미줄에 걸려있는 벌레같이 몸을 떨었다. 청년은 거미였다. 이제 잡아먹는 일만 남았다.

 

이 벌레들. 해충들. 너희에게 인간의 이름 따윈 필요 없어. 이제부터 너희는 지네, 바퀴벌레, 모기, 진딧물이야. 알았어?”

 

청년은 손으로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 죗값을 치렀어. 나한테 왜 이러는…….”

 

닥쳐! 죗값? 피해자가 용서를 했나? 피해자의 더럽혀진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되었나? 빌어먹을 감옥살이 몇 년으로 너의 그 끔찍한 죄가 씻겨졌을 거라고 보는거 야? 진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어 대꾸한 남자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에겐 분노한 청년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난 이제부터 하늘을 대신해 너희들에게 천벌을 내릴 생각이야. 왜냐고 묻지 마. 잔인하다고 말하지 마. 깨끗한 세상에 너희같이 더러운 존재는 필요가 없을 뿐이고, 너희가 그 어린아이들에게 저질렀던 일들에 비하면 잔인하지 않아.”

 

청년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컨테이너 안을 맴돌았다.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네. 너의 죄를 말해봐. 네가 저질렀던 반인륜적인 행위를 읊어보란 말이야.”

 

피칠갑이 되어 있는 남자는 벽에 등을 기댄 자세 그대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이었다. 청년은 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저렇게 피를 뒤집어쓴 이유도 청년을 자극해서였다. 반항하고, 대꾸하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남자는 한 움큼 피를 내뱉은 뒤 말했다.

 

몰라. 난 아무 잘못 없어. 죽일 테면 죽여. 이 싸이코새끼.”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본인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욕하는 남자를 청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청년은 바닥에 떨어진 낫을 집어 들고 남자에게 향했다.

 

잘못이 없다……. 잘못이 없어? 14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무차별하게 성폭행하고 옆구리를 칼로 찔러 죽인 네가 잘못이 없어?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청년은 흥분을 참지 않은 채 낫을 높이 치켜들었다. 남자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의연했다. 마치 정말로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청렴결백한 모습이었다. 청년은 기가 막혔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청년은 그대로 남자의 목을 향해 낫을 내리꽂았다.

 

-

 

아직 몸에 이렇게 많은 피가 남아있었다고 자랑이라도 하듯 앞 다투어 새빨간 피가 분출되었다. 청년은 분노로 물들어버린 눈빛으로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목각관절인형을 연상케 하는 두 팔을 가진 남자였다.

 

바퀴벌레. 네놈은 죄가 뭐야? 너도 모른다고 할 작정이야?”

 

남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말할게. 잘못했어. 나도 성폭행범이야. 아이를 유린했어. 일을 끝마치고 자궁을 들어냈어. 그땐 그게 너무 즐거웠어. 약한 아이니까, 내가 압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 다시는 안 그럴…….”

 

청년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더러운 벌레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목에 기다란 낫 자국을 새긴 채 앞으로 쓰러졌다.

 

모기.”

 

청년은 전갈의 꼬리처럼 뒤틀린 다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삶을 포기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죽여. 난 충분히 재미 봤어. 영계로 몸보신 한 대가가 죽음이라면 기꺼이.”

 

청년은 차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곧 그의 주머니에서는 수십 장의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전신 나체로 벗겨진 아이의 사진,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어 희롱하고 있는 사진, 겁탈하는 와중에 찍은 사진, 정액이 흐르는 가랑이를 강제로 벌린 채찍은 사진, 수많은 자상을 입은 채 죽어 있는 아이의 사진. 남자는 태연했다. 사진들을 보고도 전혀 느끼는 바가 없는 기색이었다.

 

으아아아! 씨발!”

 

청년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몸에 무차별적으로 낫을 휘둘렀다. 눈물이 흘렀다. 지금껏 수많은 성범죄자에게 천벌을 내렸다. 피 냄새도 익숙해졌다. 살인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한 가지. 그들의 뻔뻔한 모습은 너무나도 역겨웠다. 같은 사람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직이다. 아직 한 명이 남아있다. 청년은 정신을 추슬렀다.

 

마지막으로 진딧물, 네 차례야.”

 

다리가 부러진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녕 살아나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 8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납치했고, 감금했어. 매일같이 유린했고,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했어. 아이를 풀어줄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어.”

 

남자는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해야 살려줄 거야?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서 사죄하라면 사죄할게. 제발 여기서 내보내 줘.”

 

청년은 눈을 부릅떴다.

 

살기를 바라는 거야? 차례를 기다리면서 뭘 보고 뭘 들은 거야? 구차한 모습 보이지 마 벌레 새끼야!”

 

남자의 마지막 시도였다. 어차피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몸부림을 치고 싶었다. 이대로 생을 마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사죄? 그래. 누군가는 너희들이 죽는 것을 바라지만, 또 누군가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기도 해.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사과 하나면 용서를 해줄 수 있을까? 그들의 깊은 마음을 도저히 내 머리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어.”

 

청년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청년이 쥐고 있는 낫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며 생기는 울림이 컨테이너 안을 가득 채웠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죽는다. 청년은 주저앉은 남자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억울하겠지. 법이 판결을 내렸고, 받은 형만큼의 징역살이를 했겠지. 전자발찌를 차고서 자중하고 있었겠지!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느끼며 치욕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겠지. 그런데, 넌 네가 저지른 행동의 책임을 지고 있는 거잖아. 아이는? 아이의 잘못은 하나도 없어. 하지만 앞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야 하잖아. 피해자일 뿐인데, 그 피해를 당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잖아. 더럽혀진 몸뚱이라고 욕먹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내해야 하잖아. 이게 말이 돼? 이러면서 말 몇 마디, 무릎 한 번 꿇는 것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

 

청년은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낫을 내리꽂았다. 남자는 마치 전원이 다 된 로봇처럼 일순간 행동이 정지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청년도 앞으로 허물어졌다. 울고 있었다.

 

뭐가 살기 좋은 세상이고, 뭐가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이야. 이런 쓰레기들이 아무런 마음의 가책도 없이 뻔뻔하게 살아가는데. 아직도 많아. 내 동생의 복수. 내 동생과 같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복수. 내가 대신 천벌을 내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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