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인문학 어렵지 않.아.요. 머리아픈 인문학 짧게 훑어보기
게시물ID : sisa_5519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쌍문동또치네
추천 : 5
조회수 : 68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9/20 17:30:07
누군가와 인문학적으로 대화하고 싶으신가요? 우선 3가지 흐름만 기억하세요 !!  밑에서 그 3가지를 아주 짧게 축약본으로 요약할게요 ㅋㅋ

우선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여기 배고픈 자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요?



중세시대에는 신의 의지가 있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었고 그걸 구원이라 불렀어요
배고픈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잠시 동안 신의 뜻일지언정 결국에는 모두를 먹이실 것이란 믿음이 세계를 이끌었죠.

그러나 수천년이 지나도 신은 배고픈 자들을 모두 먹이시지 않았어요.



칸트, 헤겔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은 완벽한 이성의 소유자니까 그 이성의 힘에 의해 역사는 정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고 했죠. 
배고픈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일뿐 이성이 더 발전하여 그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식량을 개발하고 그것이 고루 분배되는 시스템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수백년 동안 남이 굶어 죽는 것을 지켜보며 끝없이 자기 배를 채우는 슈퍼부자들이 나타났어요.



그러더니 마르크스가 나타나서 역사는 인간의 이성으로 바뀌지 않으며 오로지 이 세상이란 구조 자체가 발전을 향해 가게 되어 있다고 가르쳐 줘요. 인간이 배고픈 이유는 인간의 의지나 욕심 때문이 아니고 사유재산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의 당연한 문제이니까 모두가 더 배고프게 될 것이고 배고픈 자들이 늘어나 다수가 되어 그 시스템은 당연히 망하게 돼있고 새 시스템이 온다는 거죠.

그러나 배고픈 자들과 부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시스템이 망하지 않게 막아냈어요. 부자들은 먹을 것을 일부 나눠주며 배고픈 자들을 지탱시켰고 배고픈 자들은 굶어죽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부자에 협력하며 살고 있어요. 공생관계로 이 세상은 버텨나가고 있는거죠.



여기까지 크게 3가지 인문학적인 관점을 소개했어요. 읽는 분들에 따라 3가지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고 나머지 2개를 부정하는 분들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 3가지 사고가 저를 포함해서 여러분들 사고회로에서 어떤 형태로든 작동하고 있어요. 신을 믿지 않아도 그리스도적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분, 이성의 힘을 믿지 않으면서 이성의 힘으로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분, 마르크스를 부정하면서도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인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고 사는 분들. 우리 모두는 이 3가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 영향 받고 있다는 거죠.


인문학은 이렇게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오래된 생각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거에요.




------------------------------------------------------- 여기까지 읽으시고 더 안 읽으셔도 됩니다. 아래부터는 논의가 좀 더 심화됩니다 ㅋ




제가 보기에 이 3가지는 큰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숙명론이란 것.

신의 의지, 이성의 의지, 구조의 의지.  세가지 흐름은 어떠한 의지를 통해 자연히 세상은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어요. 바로 그점에서 세 흐름은 모두 일종의 종교적인 믿음을 창조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뿌리내렸던 거에요. 인간이란 세상이 발전하고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갖고 싶어하기 마련이잖아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그 다음 논점을 상기하실 수 있을 테죠. .....  숙명론이 부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그거죠. 여기서 또하나의 인문학적 관점이 태어나요.
바로 세상에 정해진 법칙은 없고 세상이 어디로 발전할 지는 누구도 알수 없다는 것. 
철학으로 말하면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고 과학으로 말하면 카오스이론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세상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옳은 모습을 제시하는 목적론은 무의미하다. 
세상이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변화할 뿐이고 그 변화 자체가 본질일 뿐이다...   라는 얘기들이죠.
한마디로 변화는 변화일 뿐 옳은 변화와 옳지 않은 변화가 어디 있단 말인가 !!



인문학의 역사는 수천년 동안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역사의 전진이었어요.
아 물론 그것이 전진이었는지 단순한 변화일 뿐이었는지 그것은 또 관점에 따라 다르겠죠? ㅋ

시사게시판에서는 이 사회와 정치가 정말 발전할 희망이 있는지 의문과 토론이 끊이지 않죠.

과연 이 세상이 발전한다는 것은 가능할까요?

어쩌면 신의 의지에 따른 신의 계획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걸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그리스도처럼 살자고 캠페인도 하며 신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지요.

어쩌면 이성의 발달이 아직 덜 진행되어 세상이 이 모양인거 아닌가요?? 이성을 좀더 개발하고 인간이 좀 더 계몽된다면 세상은 반드시 더 좋아질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기술과 학문의 발전을 위해 연구실에서 기업에서 분투하고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마르크스가 제시한 발전과정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을 걸지도 몰라요. 도대체 누가 과연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영구하게 지속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수천년간 전진해온 질문의 끄트머리에 잠시(200년) 존재하는 한가지 대답일 뿐일 수도 있잖아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혁명을 꿈꾸고 있겠지요. 단지 이제 그 혁명가들은 자신의 생이 다하기 전에 그 혁명을 목격하려는 꿈을 버렸을 뿐 천천히 그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있을 거에요.

모든 것은 아직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진행중인지 아니면 완료되어 사라진 이론인지 결정할수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선택하세요.
세상의 발전을 믿습니까?   아니라면 발전을 믿지 않습니까?
발전을 믿는다면 당신은 숙명론자군요. 누구의 의지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면 당신은 발전을 믿지는 않지,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인가에 희망을 걸고 싶으신가요?


거기서 당신의 인문학은 시작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