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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절대화. 거기서 숙명론과 우연론이 나오지요.
게시물ID : phil_97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라빠돌이
추천 : 1
조회수 : 53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9/20 19:40:20
전 어렸을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늦둥이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라는것이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근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에게 물어봤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셨나요?"라고 말이죠.
어미니께서 "그럼 당연히 사랑하니 살았지.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느냐"라고 반문하시더군요.

그리고 난 뒤에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내 존재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사랑보다 더 절대적인걸 찾았다는걸 말이죠.


형이상학적으로 나는 어디서왔느냐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나 실증적으로 유교가 말하듯이 말하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내가 왔죠.
그래서 의례 자식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한다고 생각을 안합니다.
왜냐고요?

사랑은 연약하고 변덕스러우며 한시적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는 말은 공포스러운 인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존재가 저 연약하고 번덕스러우며 한시적인 감정에 결과물이란 것이죠.
피조물에게 자신이 창조주의 변덕스럽고 연약하며 한시적인 감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것은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불안을 야기합니다.
그것도 수 없는 변수 속에서 우연적 만남에 의한것이라고 하면 더 그렇죠.

기독교에서 3가지를 뽑습니다.
바로 사랑.소망.믿음입니다. 여기서 으뜸이 뭐냐면 바로 사랑입니다.
의외로 믿음이 아니죠.
그것도 이름이 절대적 사랑입니다.
창조주가 있을때 그에게 절대적인 사랑이 없으면 피조물들은 존재의 탄생은 물론 현재 존립까지 모두 위협받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자식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의례 어렸을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절대화시키죠.
심하면 저처럼 아예 사랑이라고 치부하지 않기도 합니다. 사랑은 티비에서 배울때에 너무 나약하니까요.
그래서 생각하는것이 원래에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아버지였다는 겁니다.
만남 이전에 아예 태초부터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수준에 도달하게 되죠. 생각을 안하고 이렇게 믿는다는겁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철학적 사유. 지적 사유가 만들어낸게 바로 숙명론과 우연론입니다.
숙명론은 간단하죠.
모든 우연과 변수들이 다 지금 현재를 만들기 위해 존재했다는 겁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것. 그렇게 되는것이 숙명이었다."가 됩니다.
양자의 호르몬 변화까지도 모두 다 지금 현재를 만들기 위해 씨줄과 낡줄이 얽히듯이 예정된 것이었다. 라는 겁니다.

우연론은 이런것이죠.
"그 중에 단 하나의 변수만 빠져도 나의 아버지가 그때 영장만 나왔어도 나는 없을것이다. 우연에 불과하구나"가 됩니다.
모든 우연과 변수중에 단 하나만 빠져도 현재의 나는 없었을테니 그런 불확실한 우연에 의해 현재가 형성됬다.

우연론은 변수들을 다 개별적으로 보고 숙명론은 변수들을 다 집단적으로 봅니다.
우연론은 변수들이 다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숙명론은 변수들이 다 얽혀서 떨어지지 못하게 강하게 뭉쳐있죠.


결국 신이란건 어머니 아버지의 발전형입니다.
"인간이 나의 존재를 결정했을수는 없다"라는것이죠. 물론 현재 있는 어머니 아버지도 있지만 그 뒤에 더 내 존재를 뒷받침하는게 있단겁니다.
그래서 대다수 민족신화들을 보면 전부 다 어머니 아버지의 다른 형태에요.

존재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이 만들어낸것이 바로 신이란것이죠.
유교는 "그게 무슨 개떡같은 소리야!"라는 겁니다.
그런 개떡같은 헛소리 하지말고 너를 탄생시키고 너를 존재시킨 어머니 아버지에게나 잘해라. 라는게 유교죠.
그게 유교에서 강조하는 효입니다.

근데 이 효라는것이 참 재미있는거에요.
뭐냐면 이 효라는것은 사랑을 박제화시켜버립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었을적 사랑은 매우 격정적이면서 불안정하죠.
여러 호르몬들이 범벅이되고 성욕이 범벅이되고 인지가 범벅이되서 만들어진게 사랑이니까요.

여기서 재미난게 그거에요. 이 효라는것이 저 호르몬. 성욕. 인지는 대다수 거세해버린다는겁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굉장히 불쾌하거든요.
내 존재가 호르몬에 작용에 의한것에 불과하단건 굉장히 받아들이기 껄끄러운겁니다.
그래서 효는 이것들을 대다수 거세해버립니다.

효라는것이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거에요.
효는 유교라는 실천행동학에서 만들어낸 아주 강력한 실상적 존재론입니다.
효를 가만히 뜯어보면 부모님들은 감정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대다수 철학이나 사상이나 종교들은 결국 부모에 만남에 의한 내 존재의 탄생을 설명하는데 노력합니다.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만족할 수 없을때에 신을 상정하고
그것이 불완전한 감정에게 만족할 수 없을때에 효를 상정하죠.

현재의 내 존재를 설명하는데 결국 가장 먼저 동원되는것이 실제적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과 결합이고
그는 곧 사랑의 절대화로 발전하기 시작한다는겁니다.

결국 사랑의 절대화가 많은것들을 만들어내요.
왜 절대화시키느냐.
그게 부모님을 위한게 아니거든요.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절대화 시키는겁니다.
기독교의 신도 결국엔 신을 위한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절대화 시키고 싶어서 절대적인걸 상정한것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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