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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재업)스토커
게시물ID : panic_882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지남친
추천 : 13
조회수 : 97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31 18: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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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골반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 남자들은 이런 몸매를 일컬어 콜라병 몸매라 부르며 좋아한다. 특출난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반반한 얼굴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장점일까……?

 

한 때는 정말 싫었었다. 어떻게 한 번 자빠뜨려 보려는 남자들이 꼬여 들기에 원망했었다. 불행한 인생. 외모도 몸매도 혐오스러웠다면 귀찮은 치근덕거림 당하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을 포기해버리고 나자 굉장한 장점이 되었다. 발정 난 남자들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쉴 틈 없이 선택받고 팁을 받았다. 적어도 노래방 도우미로서의 나의 인지도는 이 일대에서 가장 높았다. 더러운 호흡을 느끼고, 더러운 손이 내 몸을 간지럽히는 게 그렇게도 좋냐고 욕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몸을 더럽혀가며 버는 돈이 좋냐고 손가락질받고, 부모님 보기 부끄럽지 않냐고 욕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나는 부모가 없으니까.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내 눈을 멀게 한다. 거리 곳곳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 향수 냄새, 페로몬 냄새가 내 코를 틀어막는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여자들의 아양 떠는소리, 되지도 않는 작업 멘트를 날려대는 남자들의 소리가 내 귀를 막는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담배를 꼬나문다. 아빠도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내가 배우게 되다니 실소가 터져 나온다. 아니, 3번째 아버지라고 표현해야 하나?

 

술이 내 피를 따라 함께 돌고, 담배 연기가 내 폐를 자극하자 잊고 싶었던 과거가 떠오른다. 잊고 살았던 과거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온다. 오늘따라 우울한 기운이 몸을 휘감는다. 이제껏 잘 버텨왔는데,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잘 지내왔는데.

 

나는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내 첫 기억의 시작은 5살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보육원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무엇이도 그리 좋은지, 무엇이도 그리 즐거운지 입에 걸려있는 미소는 떠날 줄을 몰랐다.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지냈으면 좋았으련만, 머리가 크고 생각을 할 줄 알게 되자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왜 이곳에 있지? 나는 왜 고아지? 기존의 친구들은 하나둘 떠나고,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는데 나는 왜 떠나지 못하지? 여기서 떠나면 어디로 가는 거지?

 

12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나도 한 부부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의 감정은 익숙한 곳을 떠나게 되면서 생기는 두려움,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그저 모든 게 신기했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채 몇 달을 가지 못했다. 나의 새로운 부모는 나를 나로 보지 않았다. 그들. 부모를 그들이라고 표현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들은 나를 입양하기 전에 사고로 아이를 잃었었다.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전국의 보육원을 돌며, 떠나버린 자식과 비슷한 외모의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눈에 띄었고, 내 이름은 잃은 자식과 같은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예전처럼.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예전처럼 공부 열심히 할 거지?’

예전엔 이렇지 않았었잖아. 왜 변한 거야?’

예전처럼 아빠에게 안기렴.’

 

예전엔 내가 아니었잖아! 그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고! 왜 자꾸 나에게서 다른 아이를 찾으려는 거야?

 

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출을 감행했다. 멀리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였지만, 이것 하나는 알았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누군가의 대신으로는 살 수 없다. 나는 길거리를 떠돌았다. 먹다 남긴 채로 내놓은 짜장면 그릇도 핥았고, 제사가 끝나고 조금씩 떼서 대문 앞에 내놓은 음식도 먹었다. 분리수거장의 박스가 쌓여있는 곳은 훌륭한 침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에 아니라 다행이었던 것 같다. 아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죽는 게 나았으려나?

 

그렇게 며칠을 떠돌았을까. 배고픔에 굶주리던 나는 도둑질까지 시작했다. 문구점에서 불량식품도 훔쳤고,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에 숨어 만두도 훔쳤다. 하루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빵에 손을 뻗었다가 그만 잡혀버렸다. 크게 혼이 날 줄 알고 둥그렇게 몸을 말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나는 혼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씻겨주었고, 밥도 먹여주고, 옷도 입혀주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밤에 되어 아저씨도 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방에 들어가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더니 내 어깨를 잡고 물었다.

 

아저씨랑 아줌마랑 같이 살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나의 부모님이 되었다. 처음으로 서로 부모와 자식이라고 여기는 가족이 된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보며 운명이라고 여기며 키웠다고 한다. 부모님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화목했고 유식하진 않았지만, 친절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진정한 사랑에 언제나 감동했고, 부모님께 보답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다. 꼭 성공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8살이 되었다. 생부와 생모는 나름대로 똑똑한 인간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머리가 좋은 건지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부모님은 정말 순수하게 칭찬해 주셨고, 우리는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나는 어린 시절 불행했던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부모님과 나는 점점 더 진정한 가족이 되어갔다. 입양아가 아닌 진짜 딸 말이다. 너무나도 행복했고,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살아갔다.

 

하지만, 내 바람은 하늘이 생각하기에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던 것 같다. 나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빵집 앞에서 무릎 꿇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가게엔 아무도 없었을 거야.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저앉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기하다는 듯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 바삐 움직이는 소방관 아저씨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부모님의 지인 장사꾼 아주머니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한 손에는 100점짜리 시험지를 손에 꼭 쥔 채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이었다. 엄마와 친했던 아주머니가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전해주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자꾸만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걸까? 나에게 부모님이란 존재는 사치인 걸까? 그냥 평생 혼자 살아가야 할 운명인 건가?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건가? 내가 자식이 되어서? 나는 오열했다.

 

그때부터였다. 인생을 포기하게 된 순간이 말이다. 나는 분노했고, 그 분노는 친부모를 향하고 있었다. 애초에 나를 버리지 말았다면, 아니.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갖지 말았다면, 나를 그냥 지워버렸다면! 이런 불행을 겪지도 않았을 거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꼭 성공해서 떳떳한 모습으로 친부모를 찾아 묻고 싶었다. 왜 나를 버렸느냐고. 당신들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느냐고. 내 분노를 풀기 위해 저주를 내리기 위해 찾고 싶었다. 일단 성공해야 했다. 대학을 다녀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곳이 바로 이 노래방이다.

 

나는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더불어 떨구어진 고개로 몸을 훑어보았다. 코웃음이 터졌다. 다 드러난 가슴과 짧고도 얇은 붉은색 원피스. 전형적인 화류계 여성의 차림이었다.

 

내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허벅지를 타고 들어오는 손, 내 입술을 탐하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아가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싫은 티를 낼 수 없다. 교태가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어야 하고, 모든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이게 내 일이니까. 이들이 내 돈 줄이니까.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2차는 가지 않는다. 아무리 포기해버렸어도, 놓아버린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침대까지는 가지 않는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나 같은 아이가 생겨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말이다.

 

나는 평범한 대학생 차림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골목길을 들어섰다.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조금은 비틀거렸다. 새벽바람이 싸늘하게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느껴지는 추위에 옷깃을 여몄다.

 

부스럭-

 

문득 이상한 소리가 내 귀에 잡혔다. 그러나 이후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자 잘못 들었나? 내 옷 소리인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저 빨리 집에 들어가 씻고 싶었다. 내 온몸에 깊게 패여 있는 악마의 손자국을 지우고 싶었다. 그리고 내일도 학교를 나가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숙면을 취해야 했다. 목적이 성공인 만큼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

 

벌써 시계는 3시를 향해 갔다. 집이 가까워져 오자 속도를 올렸다. 주황빛 가로등이 골목길을 훤히 밝혀주고 있었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어둠도,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골목길 바닥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나도 많은 내 앞길 같았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크흡-

 

이번엔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신음 소리. 그리고…… 비닐 소리? 나는 조심스럽게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실수였다면. 그냥 누군가가 낸 소리였다면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는 건? 숨은 것이다. 공포가 몸을 지배했다. 비닐 소리가 너무 신경 쓰였다. 납치. 납치. 납치. 머리가 복잡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휙 나타나 내 얼굴에 비닐을 씌울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부터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집을 향해서 걸을 것이다.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면서 말이다.

 

또각또각-

터벅터벅-

-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는 내 구두 소리와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와 누군가의 코훌쩍이는 소리만 공존했다. 내가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일까? 이제는 발소리도 숨기지 않았다. 너무 무섭다. 아무리 내가 인생을 포기했어도,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성공해야 하고, 친부모에게 복수해야 한다. 여기서 사라질 수 없다. 걸음에 속도가 붙더니 이내 뛰어가기 시작했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허억허억-

 

내 숨소리와 누군가의 숨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저 사람도 뛰고 있다. 나처럼 뛰고 있다. ? 날 잡으려고! 저 앞으로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이 눈에 들어왔다. 살 수 있다. 죽지 않는다.

 

저기…….”

 

꺄아아아아!”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여자? 알 게 뭐람. 난 뒤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를 더 달렸을까. 난 현관문에 다다랐고, 카드를 찍어 문을 열었다. 살았다.

 

5층으로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제 저 사람은 들어 올 수 없다. 날 잡을 수 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층에 내린 후,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복도에 붙어있는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빛나는 가로등과, 짙은 어둠만이 가득한 골목이었다. 지나다니는 이 하나 없는 고요한 골목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예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몸 위에 술집 여자들이나 입고 다니는 옷과 담배가 덧씌워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울컥 눈물이 흘렀다. 어쩌다 저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지금까지의 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바라보니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내가 저렇게 만든 것이다. 병신같이 자격도 없는 내가 말이다.

 

나는 대학생 시절 한순간의 실수로 임신을 해버렸다. 딱 한 번, 매일같이 착용하던 콘돔을 딱 한 번 서로 술기운에 착용하지 않았었는데 그 때 아이가 생겨버렸다. 생리 주기가 일정했던 나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는데, 보란 듯이 2줄이 나왔었다. 나는 남자친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위로받기 위해, 나를 책임지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기 위해 말이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나를 버렸고, 도망치듯 군대로 떠나갔다. 한순간에 혼자 남겨진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낳을 것인지. 지울 것인지. 지우고 싶지는 않다. 내 손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 하나를 없애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낳아서 미혼모 딱지를 얻은 채 키울 용기도 없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적당한 직장을 구해서, 아름답게 연애하다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빠 없는 가정을 꾸릴 용기는 없었다.

 

결국, 낳아서 버리기로 결심하고 아직 배가 불러오지 않았을 때 휴학을 신청했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화장실에 버리고, 쓰레기장에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정을 잘 설명하고 보육원에 맡길 것이다.

 

보육원에 맡기고 나오는 날, 나는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무슨 거대한 짐을 벗어 던졌다는 듯이, 목에 걸린 가시를 넘겨버렸다는 듯이 말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인생이 있는데, 아이 하나 때문에 망치기 싫었다. 모성애 따위는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대학교에 복학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싶었다. 그런데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쟤야? 아기 버리고 온 여자가?’

임신하자마자 남자를 버리더니 아기도 버렸대.’

걸레 같은 년. , 더러워.’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니…… 맞아. 내가 그 더러운 여자야. 내가 아이를 버렸어. 내 배로 낳은 아이를. 그런데 나도 피해자야. 나도 남자한테 버려진 거라고. 왜 나만 욕해? 나도 남자한테 버려졌으니, 나도 그의 아이를 버린 거야. 그게 왜?

 

나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부모님에게 정말 죄송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하더니 애를 버리고, 자신들도 버렸으니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인생이 꼬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던 다짐은 성공하는 듯싶었다. 예전에 꾸었던 꿈대로 반듯한 직장도 구하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온 후로 처음으로 부모님을 뵈었을 때, 두 분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몇 년이 더 흐르고 새롭게 낳은 아이는 유치원생이 되었다. 이제 정말 한 가정의 엄마로서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남편이 내 과거를 알게 되었다. 조여오는 압박에 모든 걸 실토했다. 남편은 이혼하고자 했고, 난 거절할 수 없었다. 2번째 아이는 남편이 데려갔다. 또 버려진 것이다. 내 인생을 원망했다. 버려지고, 버리고의 반복이다.

 

나는 내가 버린 첫 번째 아이가 보고 싶었다. 잘 풀려가는가 싶던 인생이 한순간에 엉켜버리자 버려지는 고통이 배가 되어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만나 사과하고 싶었다. 껴안고 울면서 말하고 싶었다. 엄마가 미안해. 아무 것도 모르던 너를 보육원에 버려서 미안해. 그동안 잊고 살아서 미안해.

 

어느새 내 인생의 목적은 아이를 만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행복한 가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난 그런 것을 누릴 자격이 없는 엄마니까. 그렇게 내 딸이 겪은 인생을 뒤따라갔다. 보육원에 맡기며 빌었던 소원.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렴. 그러나 그 한 가닥 희망이 무너졌다.

 

딸의 인생은 나보다 서글펐다. 내 인생은 내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라면, 딸의 인생도 내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 내가 딸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도대체 왜 너를 버렸을까. 미혼모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더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데리고 키웠을 것을 하고 후회했다. 적어도 서로에게 버팀목은 되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딸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싶지도 않았다. 부족했으니까. 딸에게 저질렀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 눈물을 너무도 적었으니까. 지금 다가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멍하니 담배를 피우던 딸은 어느새 노래방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나는 길거리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미친 아줌마로 보이겠지만 상관없었다. 사실이니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전에 입고 있던 원피스는 벗어 던진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평범한 대학생의 차림. 그러나 이면에는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가질 수 없는 아픔으로 둘러 쌓여져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딸의 시야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 걸었다. 끊임없는 한숨. 비틀거리는 몸체. 아직 술이 깨지 않는 듯 보였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번화가를 벗어나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거리. 나는 발소리를 죽인 채 따라갔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따라잡아 내 품에 안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거부당할까 무서웠다. 무슨 염치로 이제야 나타났느냐고 욕할까 봐 무서웠다.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용기가 없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한기가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외투를 끌어당겼다.

 

부스럭-

 

외투와 머리카락이 만나며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고요한 이곳에서는 기침 소리만큼 크게 울렸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딸의 동태를 눈여겨보았다. 식은땀이 마르며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도 들리지 않았던 건지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따라가다 보니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집에 도착한다. 그 전에 이야기를 꺼내야 하기에 조바심이 들었다. 그러다 잠시 방심한 틈에 누군가가 전봇대에 버려둔 쓰레기 봉지와 부딪혔다.

 

크흡-

 

예상치 못한 충돌에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가 돌려졌다. 나도 모르게 전봇대 뒤에 숨었다. 보이지 않기를 빌면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재회하는 건 원치 않았다. 이상한 여자처럼 몰래 뒤따라가는 모습으로 만나기는 싫었다. 다행히 내가 보이지 않았던 건지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속도가 이전과는 달랐다. 두려움을 느낀 것인지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더불어 내 걸음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는 발걸음 소리를 숨길 수도 없었다. 딸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걸었다. 이제 말을 걸어야 한다. 상황이 이상하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된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딸에게 두려움이나 주는 꼴이라니. 의도했던 행동은 아니지만 위협하는 꼴이라니.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내 울음소리를 들었던 걸까? 딸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뛰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도 따라 뛰면서 조급한 마음에 말을 건네려고 했다.

 

저기…….”

 

꺄아아아아!”

 

예상치 못한 딸의 비명에 걸음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봤다. 이게 올바른 상황인 건가. 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 위해 이 새벽에 딸을 따라가는 선택이 맞는 건가. 또 나만 생각했다. 내 한을 풀기 위해 딸이 공포심을 느끼건, 두려움을 느끼건 상관하지 않았었다. 그저 빨리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끝까지 쫓았다. 이기적인 엄마. 냉혹한 엄마. 처연한 마음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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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게에도 어울리는 것 같아 여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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