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38세라는 짧은 일생을 불처럼 뜨겁게 태우며 살다 간 황진이는 세상의 풍류남아와 영웅호걸은 원근을 불문하고 모두가 자기의 임이요, 사랑이라고 했다. 30년을 두고 면벽 참선한 지족암의 만석선사를 파계시킨 일, 여색에 지조를 뽐내던 벽계수 이창곤을 달밤에 만월대로 유혹하여 그의 자존심을 한 수의 시조로 여지없이 무너뜨린 일, 한양에서 내려온 양곡 소세양과 더불어 생갑사 치마자락을 끌고 천수원 허물어진 누대 위에서 훗딱 꿈결같이 지나버린 30일의 너무나 짧은 사랑의 아쉬움에 한 시라도 더 붙들고 싶어했던 그 뜨거운 밤과 자기 곁을 떠난 후 영영 찾아 오지 않는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그리워하고 다시 보고 싶어 독수공방의 서러움을 안고 베갯머리 적셨던 그 긴 밤 하며, 명문 재상가의 이생도령과 함께 산 좋고 물 좋은 명산대천을 찾아 금강산에서 시작하였다가 중도에 헤어지고 혼자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팔도강산을 유람하던 시절… 다시 반겨주는 이 없는 송도 땅으로 돌아와 지난날의 남가일몽을 생각하며 허무감을 씹으면서 아아 부귀영화도 싫을세라… 청춘도 사랑도 덧 없어라…한숨 지었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