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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두 여인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882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복날은간다
추천 : 73
조회수 : 21651회
댓글수 : 57개
등록시간 : 2016/06/02 23: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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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우 교수의 수업은 재미있다.
이곳 의과대학의 다른 교수들은 알려주지 않는-, 본인 말에 의하면 쓸모없는 잡지식들을 많이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특별하고 쓸모없는 수업이 특히 재미있다.

" 자~ 모두 이 사진을 보세요. "

김남우 교수가 보드판에 큰 사진 한 장을 붙였다. 

병실 침대에 잠든 한 소년과, 근처의 두 여인이 그려진 사진.
한 여인은 손에 과도를 들고 소년에게 달려들려고 하고 있었고, 한 여인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는 모양새였다.

김남우 교수는 모두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고 판단한 뒤 물었다.

" 여기 이 칼을 든 여인이 이해가 되는 사람? "

당연하게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 그렇지. 이해가 될 리가 없지. 하면 이제, 이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참고로, 이야기는 모두 실화입니다. "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이제부터 김남우 교수의 재미있는 수업이 시작될 터였다.

" 자, 여기 이 두 여인, '송여인'과 '임여인'에겐 각각 어린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안타깝지만, 송여인의 아들은 현대의학으로 치료될 수 없는 상태로,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임여인의 아들 역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

김남우 교수는 아이들이 집중하는지 얼굴을 한번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지 말을 이었다. 

" 송여인의 아들에게서 심장을 이식받을 수만 있다면, 임여인의 아들은 살 수 있다는 점이죠. 여기서 질문하나! "

김남우 교수는 즐거울 때 짓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만약 여러분이 두 아이의 담당의라면, 송여인을 설득해, 아들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도록 하겠습니까? 임여인의 아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요~ "
" ... "

난감한 질문에 섣불리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굳이 지목당하지 않는 이상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던 것이다.
김남우 교수는 그저 빙긋 웃을 뿐, 굳이 대답을 듣고자 하진 않았다.

" 이야기를 계속해서, 임여인은 매일같이 송여인의 병실을 찾아갔어요. 매일같이 병실 복도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죠. 으~~ 얼마나 꼴보기 싫었을까? 송여인의 눈에는, 내 아들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까마귀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송여인이 아무리 속된 말을 퍼부어도, 임여인은 매일같이 찾아와 애원했어요. 어떤 날은 투병 중인 아들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어요. 참 안타깝죠? "

말을 하며 정말로 안타까운 듯 울상을 짓는 김남우 교수의 표정이,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 송여인은 그 사진들을 내동댕이치며 물었어요. "

[ 입장 바꿔서 당신이 나라면 그럴 수 있겠어요?! ] 

" 임여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죠. "  

[ 예! 저라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니 제발! ] 

"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일이 생겨버려요. 정말로 그럴 일이 생겨버렸다는 거죠! 송여인 아들의 치료법이 미국에서 개발된 거예요. "
" 아! "
" 어느 날 송여인은~, 당신에게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정말로 통쾌하다는 듯이~, 복도에 서있는 임여인에게 달려가 말했어요. " 

[ 우리 아들의 치료법이 미국에서 개발됐어요! 당신은 그럴 수 있다고 했죠?! 당신 아들의 장기를 우리 아들에게 이식해줘요! 그러면 우리 아들은 살 수 있어요! ] 

" 어땠을까요? 임여인이 '예~ 그럼요~' 하고 허락했을 리가 없겠죠? 임여인은 절망했어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절망에 빠진 임여인에게 송여인이 말했어요. "

[ 흥! 당신도 못하는군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필요 없어요! 우리 아들은 미국에서 이식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으니까! ]
[ ... ]

" 임여인은 애가 탔어요. 임여인의 아들은 오직 송여인 아들의 심장만이 유일한 살길이었으니까요. 유일한 살길이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거예요. 임여인이 어땠겠어요? 그래서 결국, 임여인은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무엇일지 예상되나요? "
" 설마... " 
" 예 맞아요. 임여인은, 송여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병실로 숨어들었어요. "
" 아~~! "
" 자! 그러면 여기서 다시! 이 사진을 한번 볼까요? "

학생들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한 여인은 손에 과도를 들고 잠든 소년에게 달려들려고 하고 있었고, 한 여인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고 있는 사진.

학생들은 저마다 저 병실 안의 긴박하고 안타까웠을 그날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 표정들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듯이 김남우 교수는 웃음 지었다.

" 몰래 병실로 숨어들었던 임여인은, 아이의 생명유지 장치를 '정지'시켜서 생명을 끊어놓았어요. "
" 예? "

" 뒤늦게 병실로 들어와 상황을 파악한 송여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끝없을 분노로 가득 찬 송여인의 눈에, 과일을 깍던 '과도'가 보였어요. 송여인은 과도를 거꾸로 쥐고, 자신의 아들에게 향했어요. 죽은 내 아들의 심장을, 내 손으로 짓이겨놓기 위해! "

" ......... "

" 처음의 질문을 다시 물을게요.  여기 이 칼을 든 여인이, '이해'가 되는 사람? "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그중 송여인의 심정이 이해가 된 학생들이 하나둘, 손을 들었다.

김남우 교수의 고개가 돌아가며 시선이 움직였다. 멈춰진 시선의 끝이-, 손을 든 학생들을 보는 건지, 손을 들지 않은 학생들을 보는 건지 모호했다. 그 상태로 교수는 말했다.

" 학생들은 의사가 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
.
.

강의실은 침묵들과 생각들에 잠겼다. 얼마 뒤, 한 학생이 이야기적 호기심을 참지 못해 물었다.

" 이게 정말로 실화인가요? 송여인은 정말로 아들의 심장을 짓이겼나요? "

김남우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 두 아이 모두 내 담당이었어요. 어떻게 됐는지는... 말해 줄 수 없군요. 하지만 적어도 나는, 송여인이 충분히 그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
" 왜죠? "

" 그때 미국에서 송여인 아들의 치료법 같은 건, 애초에 개발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
출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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