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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게시물ID : phil_97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라빠돌이
추천 : 1
조회수 : 614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4/09/21 21:23:13
만약에 6개월뒤에 죽을만한 병에 걸린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아예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상정하지요.

이 사람은 아직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지나요?

진실을 알던 모르던 6개월뒤에 죽는건 똑같습니다.
그말이 생각나네요. 인간의 최고의 공포는 미지의 공포라는 말이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괴로움이 될것이라면 미지에 숨길 바라죠. 미지가 곧 안식처가 되는겁니다.


간단해요.
인간이 미지를 알고자할때엔 자신의 의사결정이 그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때입니다.
가령 어떠한 주식이 얼만큼 오른다는것을 안다던가. 혹은 어떠한 주식이 얼만큼 떨어진다는걸 안다는것이죠.
만약에 내 주식이 떨어진다는걸 알면 팔것이고 오른다고 하면 보관하겠죠.

즉 자신의 의사결정이 자신의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면 무조건 미지를 알려고 합니다.
이때엔 미지. 즉 알 수 없음이 두렵다고 하면서 공포로 생각하죠.

근데 자신의 의사결정이 영향을 미칠 수 없을때라는 어떨까요.
자신이 어떤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한일이 있어서 주식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기에 이걸 팔수도 살수도 없는겁니다.
이러면 그 순간에 인간은 그 주식이 오른다는 사실과 내린다는 사실을 알기 싫어합니다.
이때엔 미지라는 알수없음에 숨어 안식처처럼 활용하죠.


배우자의 불륜사실을 알고 싶은것도 그것이 이혼할 수 있다는 의사결정할 수 있을때에 가능한겁니다.
가령 누군가 자식을 매우 사랑해서 이 가정이 온전히 유지되길 바랄때에
가정이 깨지는것이 죽는것보다 더 견딜 수 없을때에
그 사람이 누군가 배우자의 비밀을 알려준다고 하면 듣고 싶어할까요?

무리한 사고가정이 없는 현실에서도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것. 불타게 열망하는것. 자신에 손에 쥐길 원하는것에 대해서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듣기보단 차라리 미지의 안식처에서 쉬길 바라며 앎이 두렵다고 하죠.
반대로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미지가 공포라며 미지를 욕하죠.

이 모든게 누가하는겁니까?
그 사람이 하는것에 불과한거에요.


실제로 진실과 진리는 진실과 진리일뿐. 그 무엇도 아닙니다.
두려워할것도 기뻐할것도. 슬퍼할것도 즐거워할것도 아니란것이죠.
두려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것은 진실과 진리가 그리하는것이 아니라 그걸 들은 인간이 그러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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