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todayhumor.com/?panic_88291
1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2
2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3
3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8
--------
“...철 씨. 일어나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뜨니, 한지혜의 얼굴이 보였다. 일부러 깨우러 온 걸 보니 꽤나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나. 나는 몸을 일으키며, 한지혜에게 물었다.
“후우. 몇 시죠?”
“다섯 시 30분이요.”
“다섯 시 반이요? 그럼 가방은 어떻게 됐습니까?”
“4260은 안 열렸고. 3705도 안 열렸어요.”
3705...?
“그건 뭐죠?”
“... 제 전화번호 뒷자리요. 불만 있어요? 누군 드러누워서 잔 주제에 불만 있다고는 안하겠죠?”
저렇게까지 당당하다니, 오히려 이쪽에서 할 말이 없다. 자기 생일에 휴대폰 번호까지 입력한 여자한테 뭐라 할 말이 없다니, 내가 다 처량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아무런 수확도 없습니까?”
“음. 비밀의 방을 찾았어요.”
여자가 살짝 뜸들이며 말했다. 비밀의 방? 해리포터도 아니고 화장실에 무슨 문이라도 있었나?
“비밀의 방이요?”
“3층에 ‘3-3’에 문이 하나 숨겨져있었어요.”
“그 안은요?”
“문이 잠겨있어요. 가방을 열어야 될 것 같은데요.”
결국엔 그 가방을 열 방법을 찾아야 되나. 문을 찾은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지만, 안에 들어갈 수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일단 다들 옆방에서 기다리니까 가요.”
“아. 그러죠.”
나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김재영과 김주성을 포함한 모두가 있었다. 김주성은 그렇다 치고, 김재영은 의외였다. 내가 자는 사이에 좀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김주성이 나에게 말했다.
“왔는가?”
“예. 흠... 그러니까 방은 찾았는데, 잠겨있다는 거죠?”
“그렇다네.”
“디비져 자 놓고 해결되길 바랐냐?”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런 게 아니면 뭔데?”
탁!
김재영이 탁자를 내리치며 공격적으로 물어왔다. 뭐만하면 저렇게 행동부터 나가는 성격은 정말 싫은데... 아까 그 일에 미안한 것도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나오니 나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까부터 계속 아무것도 안하고 불만 노려보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가 어쩌고 어째?”
“당신이 지금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화내고 짜증 낸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죽은 여자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답니까?”
“이런 미친!”
김재영이 탁자를 뒤집어 엎으며 나에게 다가와 멱살을 쥐었다. 옆에서 한지혜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김주성이 김재영에게 달라붙으며 김재영을 말렸다. 그러나 김재영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소리쳤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이 새끼야!”
“그만 두게!”
“당신이 이래봤자 그 여자가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호철 씨도 그만해요!”
김재영이 나를 때리려고 주먹까지 들어 올렸지만, 김주성과 한지혜의 도움으로 맞지는 않았고, 서로 떨어졌다. 괜히 힘만 빠졌다. 시비는 피하는 게 답인데, 왜 맞서 싸우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여기 온 이후로 나도 그렇고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아니, 이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김주성이 김재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정하자, 지금은 암호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였다.
“괜찮아요?”
“네. 뭐... 그래서 암호는 진전이 없습니까?”
“전혀요. 그걸 어떻게 할지 감도 안 잡히는 걸요.”
“그나마 생각해본 건 왜 굳이 수식으로 나뒀냐는 겁니다. 계산기가 있는데 말이죠.”
그건 나도 아까 생각한 거다. 굳이 수식으로 나둔 이유는 수식 자체에 무언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지. x , +같은 게 전부 있는 데 의미가 있을 것 이다. (4X12 + 18X8X20 + 4X13X12) + (4X14X12 + 3X12). 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지? +를 없애고, 끊는다면(4X12 18X8X20 4X13X12) (4X14X12 3X12) 앞에만 생각해보면, (4X12 18X8X20 4X13X12) 3개의 숫자 더미다. 처음은 2개, 3개, 3개. 2개짜리와3개짜리의 차이는 뭐지? 아니 그전에 저 숫자 자릿수의 차이는 어떤 거지?
“수식이 문제군요.”
“수식만 계속 생각해봤는데, 답이 안 나와서요.”
내가 자는 사이 전태성이 고민을 많이 했나 보다. 흠. 수식에서 기호까지 없애면. (412, 18820, 41312) 이러면 너무 헷갈리는데... 아예 숫자를 다른 걸로 바꿔버릴까. 아. 맞다 암호의 종류 중에서도 치환 암호가 있었다.
“숫자를 계산하는 게 아니라 바꿔보죠.”
“바꾼다고요?”
“잠시만요.”
한글은... 모음과 자음이 있으니 단순히 숫자로만 표현되지 않을 거다. 알파벳은...
“1을 a로 2를 b로... 이런 식으로 바꾸면... (dl+rht+dml)+(dnl+cl)가 되는데..."
나는 펜을 집어 들고는 수식의 숫자에 알파벳을 써내려갔다. (dl+rht+dml)+(dnl+cl) 이게 뭐지? 어디서 본 모습 같기도 한데...
“이거 키보드네요!”
키보드. 아!
“키보드 자판이군요. 그러면...”
“이곳의 위치?”
"이곳의 위치요?"
"아. 지도. 지도 좀 봅시다."
지도에 있는 숫자는 위도랑 경도다. 4자리 숫자라는 건 2개는 위도2개는 경도겠지. 지도를 펼치고 등대 위치의 위도와 경도를 확인하니 역시나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위치에 등대가 위치한다. 마침 가방도 시간이 다 됐다. 나는 여자한테 말했다.
"가방 이리 줘봐요.“
위도와 경도 4개의 숫자를 입력하고 가방의 버튼을 누르니 아까처럼 삑거리는 소리가 아닌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열렸다. 안쪽에는 쪽지와 열쇠가 있었다. 나는 먼저 쪽지를 집어 들었다. 옆에서 여자가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와. 대단하네요. 어떻게 안 거예요?”
“그냥 어쩌다 보니... 일단 이 쪽지부터 확인하죠.”
나는 쪽지를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걸 열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이걸 보고 있다면 암호를 풀고 이 가방 열어본 거겠지? 공구로 열었다면, 이 가방은 불타버렸을 테니까 말야. 아무튼 하루를 번 것을 축하해. 덕분에 오늘 하루는 아무도 죽지 않겠군. 취침 시간은 8시니 그 전에 자리 잡도록.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할지는... 이걸 찾을 정도라면 알고 있겠지? 모르면 열심히 찾아보도록!”
8시 전에 자리 잡으라니, 그 방에 자리를 잡으라는 건가? 왜 굳이 8시 인 거지? 8시엔 또 무슨 일이 있으려고...
“그럼 오늘은 아무도 안 죽는다는 건가요?”
“그렇겠죠. 후. 일단 저녁부터 해결하죠.”
“아. 그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전태성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까 내가 김재영과 싸운 것 때문에 배려를 해주는 듯 했다. 나는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기에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전태성은 내 말을 듣고선 밖으로 나갔고, 하늘이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저 애는 왜 저렇게 전태성을 따르는 건지...
"근데 어떻게 영어로 바꿀 생각을 했어요?"
"그냥... 한글은 자음 모음이 있으니까 숫자로는 안 될 거 같아서요. 바꾼 거는 그냥 전에 본 게 갑자기 떠올라서 해본 거죠."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아까 하늘이 말처럼 대단한데요? 근데 그 카메라는 왜 들고 다니는 거에요? 되긴 해요?"
한지혜가 내 목에 걸려있는 사진기를 가리키며 말한다.
"카메라... 고장 나긴 했는데 제가 항상 들고 다니던 거라, 오히려 떼어 내는 게 어색하네요. 여기 처음 왔을 때도 핸드폰은 없는데 이건 있었던 걸 보면 얼마나 잘 잡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네요."
"오. 직업이 사진작가에요?"
"아뇨... 여행하면서 사진 찍는 게 취미라서요. 이번에 섬을 가던 것도, 사진을 찍으려고 가던 거 였고요."
"흐흠. 그래요? 아. 왔나 보네요."
한지혜의 말에 문 밖을 보니, 전태성이2일차 저녁이라는 상자를 들고, 하늘이와 같이 돌아온다.
"저녁도 빵과 음료수 같은 거만 있나요?"
"아뇨... 거기에다가 컵라면하고 통조림 같은 것도 있네요."
"밖에 두 사람은요?"
"이미 줬어요."
"둘이서 드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데...“
“네? 어떤 말이요?”
전태성의 말에 하늘이가 살짝 놀란 듯 물었다.
“창고에 식량이 6일차까지 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여자가 무슨 문제냐는 듯 물었다. 전태성은 그녀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가져온 게 2일차 식량입니다. 그러면 남은 건 길어야 4일. 원래대로 하루에 한 명씩 죽는다고 쳐도, 1일차, 즉 어제 죽은 여자까지 하면7일차까지 있어야 맞을 겁니다. 죽은 여자까지 저희는 모두 7명이니까요. 근데 6일차라는 건. 6일차면 끝난다는 겁니다.”
나, 전태성, 한지혜, 하늘이, 김주성, 김재영, 그리고 그 여자의 시체까지 모두 일곱 명. 마지막 사람이 살아남는 날은 7일차였다. 7일차가 끝이 아니라고? 6일차에 끝난다면, 생존자가 한명... 그렇다는 건.
“그러면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겁니까?”
“그게... 확실하다고는 못하지만...”
“알겠습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그때 여자가 내 말에 끼어들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잠깐만요.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니요?”
“그건 그렇지만, 지금 이야기해봐야 싸우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만 알고 있는 게 좋아요. 우리끼리 서로 의심하기만 해봤자. 그게 더 골치 아프다고요. 누군가를 의심하는 건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합시다. 우리.”
“흐응...”
괜히 이 이야기를 계속해봤자, 서로 싸우기만 더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만 더 곤란해진다. 여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더 따지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럼 오늘은 대충 여기서 끝이겠죠?"
"일단 오늘은... 뭘 더 할 수 없을 거 같네요."
"것보다 그러면 범인은 우리를 어떻게 죽이겠다는 거죠? 아까 그 남자처럼 근육질인 남자는 힘이 좋아서 그냥 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총이라도 쓰려는 걸까요?"
"그러면 저희에게 쉽게 들키지 않겠습니까? 무슨 다른 수를 쓰겠죠."
총은 쏴버릴 경우 소리가 크게 울릴 거고, 그러면 알리바이 같은 게 생겨서 범인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범인이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쓰진 않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 죽이는 거지? 모르겠다. 지금은 일단 먹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이어서 배가 고프다.내가 먹을 것을 집어 들어 먹기 시작하자, 한지혜도 이 상황이 익숙해진 건지 곧장 먹기 시작한다. 아니 그냥 잊은 건가? 하긴, 나도 그 광경을 보고도 지금은 이렇게 멀쩡하니까...
먹을 것을 다 먹어갈 때 쯤 시계를 보자, 6시 30분이 다 된 시각이었다.
"지혜씨."
"네?"
"다 먹고 하늘이랑 먼저 씻어요. 7시까지 씻으면 그 뒤에 남자들이 씻죠."
"... 음흉한 생각하는 건 아니죠?"
"..."
여기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아니 자기 전에 씻어야 할 거 아닙니까?"
"풋. 농담이에요. 근데 우리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그냥 이걸 다시 입어야 되나요?"
한지혜가 옷을 들어 올리며 찌푸린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서 옷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있나요. 별 달리 옷이 없는데...”
"아까 보니 샤워실에 옷이 인원수대로 있었습니다. 그걸 입으면 될 겁니다."
“그렇다네요.”
"너무 준비가 철저한 거 아니에요? 진짜 다른 생각 없는 거 맞죠...? ... 하하. 아니에요."
한지혜가 나의 말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다가 내 찡그린 표정을 보고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비를 했어도 내가 아니라 범인이 했겠지...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씻으러 갈게요. 가자."
"네. 갈게요."
"엿보지 마요."
"아. 안 그럽니다."
한지혜의 한마디에 내 이미지가 순식간에 뭉그러진 느낌이다.
"그거 제가 매력이 없다는 건가요?"
"아... 그게 아니라..."
"풉. 갈게요."
젠장. 순식간에 놀림감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오빠. 전..."
------------------
"풉. 갈게요."
여자가 밖으로 걸어나가고, 소녀가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가 귀에 속삭인다.
"오빠, 전... 엿봐도 돼요.“
나는 소녀의 말과 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바람에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소녀는 살짝 혀를 내밀고는 빠르게 뒤돌아 도망가 버렸다. 나이도 어린 게... 못하는 말이 없다. 저 남자나 나나 둘 다 여자들에게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저 둘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장난스러울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장난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긴장이 완전히 풀린 장난스러운 분위기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살았다는 생각 때문일까.큰 고비를 하나 넘겼다는 것에 긴장이 풀린 걸까.
아니, 긴장을 풀기위해 일부러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당했네요.”
“저도...”
“안색이 아까보다 훨씬 나아지셨군요.”
“그런가요?”
여자들 덕택에 긴장이 풀린 까닭일까. 내 자신이 느끼기에도 기분이 아까보다 나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민할 거리가 남아있었다. 우리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건 누굴까.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짓을...
“전 일단 3층의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아... 그럼 제가 밖에서 사람들을 데려올게요.”
나라고 딱히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저 남자가 그 남자를 만나는 것보단 내가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모닥불이 다시 지펴져 있었고, 그 앞에 중년인과 근육질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굳이 불을 다시 피운 이유가 뭐지?
“어... 다 드셨습니까?”
“대충 다 먹었네. 이제 어떻게 하기로 했나? 슬슬 하루도 끝나 가는데.”
내 말에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고, 중년인이 대답했다.
“일단 8시까진 취침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쪽지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쪽지?”
중년인이 나의 말에 반문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가방을 연 사실 자체를 알고 있지 못했나.
“아. 그 가방을 열었습니다. 거기 열쇠랑 쪽지가 있었습니다. 8시까지 취침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장소는 아마 ‘3-4’인 것 같고요.”
“흠. 쪽지 내용은?”
“안쪽에 있습니다.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알겠네.”
“일단 여자들이 먼저 씻고 있고, 그 다음에 남자들이 씻기로 했습니다. 뭐. 결정 난 건 그 정도입니다.”
“그럼 난 들어가서 그 쪽지 좀 살펴보겠네.”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가만히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나는 모닥불을 가운데에 두고 그 남자와 마주 앉았다. 그제서야 남자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지 않아서, 그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공허함이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몸이 사시나무가 떨듯이 떨려온다. 그런데도 그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왜지? 그의 시선에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나와 시선을 마주치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볼일이라도 있소?”
볼 일이라... 나도 내가 왜 저 남자를 노려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시비를 걸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왜 그를 보고 있을까.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가 소리쳤다.
“너까지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남자가 일어나서 소리쳤다. 나는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 후우...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정확히는 말 못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당신이 그러고 있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전까지 나를 한 대 칠 기세였던 남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김재영이 고개를 숙이며 소리 질렀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저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간만이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엔 시간조차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지만.......
하...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내가 뭘 안다고, 얼마나 잘났다고. 김재영에게 그런 말을 한 거지? 내가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되지 못하는데...
모르겠다. 갑자기 피곤해졌다. 지금 침대에 눕는다면 수면제가 없더라도 잠을 청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걸으며 등대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시간을 물어보니 7시 20분이라고 한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는 샤워기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배수구에 긴 머리카락들이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샤워기로 찬물을 틀었다. 찬물이 온몸을 적시고 지나갔다. 9월이라 그런지 추워서 오한이 드는 기분이 들었지만, 잡 생각들이 찬물에 씻겨 내려가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대충 몸을 씻어내고는 물기를 닦아냈다.
탈의실의 입구에 있던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아까의 그 문으로 올라갔다.
7시 35분. ‘3-4’에 도착하니 이미 문이 열려있다. 다행히 열쇠가 맞았던 모양이다.
“오셨어요?”
“아. 네.”
여자가 나를 반겨줬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짧게 대답해버리고는 옆에 있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냥 옛날 일이 떠올라서요.”
나는 여자의 말을 대충 넘겨버리며, 방안을 살폈다. 크기도 다른 곳과 같았고, 다른 방과 별 다를 점이 없었다. 다만 창문이 없다는 것 정도. 나는 침대의 위에 올라가 누운 채 눈을 감아버렸다. 귓가에 여자와 남자,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피곤하긴 했지만 아쉽게도 잠이 오질 않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이 잠을 자긴 무리였나.
세 명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그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고개를 들어 눈을 뜨니 소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선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요?”
그렇게 티날 정도였나.
“아니. 뭐. 잠이 안 와서...”
달칵
뭐라 변명을 하려는 차, 문이 열리며 중년인과 그 남자, 김재영이 들어왔다.
“아. 오셨습니까?”
침대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 손목에 달린 시계를 보니 시간은 7시 55분. 이제 5분 남았다. 취침 시간을 8시라고 정해 놓은 이유가 뭐지? 8시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래. 왔다네. 자넨 괜찮나?”
중년인의 말에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예. 뭐... 저 사람은 괜찮습니까?”
“애매하다네.”
중년인의 말에 방금 들어온 김재영 쪽을 바라보니,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저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옛날 일이 떠올라서.”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도로 누웠고, 소녀도 시간을 보더니 여자가 있는 침대로 가서 자신도 누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눈을 감고 있으면 언젠간 잠이 오겠지라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삑---------------------
갑자기 울리는 기계음에 놀라 눈을 뜨니, 환풍구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게 뭐...”
-------
추천과 댓글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이나 피드백도 환영!
매일 아침, 저녁으로 1개씩 연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