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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문학] 심해왕자. 4
게시물ID : lol_883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름하늘
추천 : 2
조회수 : 368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9/23 09:52:33


그와 같이 게임을 하게 된 지 몇일 뒤, 나는 그의 비밀을 한가지 알게 되었다. 그가 불쑥, 오랫동안 혼자 어떤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튀어나온 말인 듯 나에게 물었다.


"적 정글러가 여기에 오면 와드를 부수겠지?"

"정글러는 모든것을 파괴하지."

"은신이 되어있어도?"

"그럼. 은신된 와드도 오라클을 먹고 파괴한단다."

"그럼 은신은 어디에 쓰는거지?


나도 그것은 알지 못했다. 나는 그때 내 라인에서 적 애쉬의 견제를 피해 cs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적 애쉬보다 cs가 적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이리저리 구르며 cs를 챙겨보지만, 부쉬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랩때문에 나는 무척 불안했던 것이다.


"은신은 어디에 쓰는거지?"


그는 일단 질문을 했을 때는 포기하는 적이 없었다. 나는 cs를 챙기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므로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


"은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이블린도 트위치도 와드도 모두 쓸모없는 녀석들이야."

"그래?"


그러나 잠시 아무 말이 없던 그는 원망스럽다는듯 나에게 이렇게 톡 쏘아붙였다.


"그건 거짓말이야! 와드는 연약해. 와드들은 그들이 할 수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 은신이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믿는 거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적 블리츠크랭크가 그랩을 던지면 왼쪽으로 구를까 오른쪽으로 구를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또다시 내 생각을 방해했다.


"그럼 베인아저씨 생각으로는 와드가...."

"그만! 그만 좀 해! 아무래도 좋아. 난 와드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아. 나에겐 지금 중대한 일이 있어!"


그는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 보았다.


"중대한 일이라고?"


도란검 두개를 들고 체력은 절반도 남지 않은채 미니언을 하나라도 더 먹기위해 이리저리 구르는 나를 그가 바라보다 말했다.


"베인아저씨는 지금 다른 롤 유저들처럼 말하고 있어!"


그 말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런데도 그는 사정없이 말을 이어 갔다.


"아저씨는 모든 걸 혼동하고 있어... 모든걸 혼동하고 있다고!"


그는 정말로 화가 난듯 했다. 그의 인벤토리에 가득 찬 와드의 눈깔들이 모두 나를 노려보는 듯 했다.


"수백만개가 넘는 게임 속에서 와드들은 은신을 하고 있어. 정글러들은 천만개가 넘는 와드들을 부셔 왔고. 그런데도 그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은신을 왜 하고 있는지 알려고 하는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정글러와 와드의 신경전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지? 그건 탑솔러가 와드도 박지 않고 라인을 밀다 따이고선 '우리 정글러는 뭐하냐 ㅡㅡ'라고 외치는거 보다 중요한 일이 못된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편 아무도 사지 않고 오직 나 혼자서만 사서 박고있는 이 소환사의 협곡에 단 하나뿐인 용앞 핑크와드를 내가 박았고, 정글러가 불쑥 나타나 무심코 그걸 부숴버리고 갈 수 있다는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이었다.


"이 넓은 협곡 속에서 유일하게 와드를 박고 있는 나는 그 와드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저곳으로 적들이 지나간다면 나는 와드로 모두 지켜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 하지만 정글러가 그 와드들를 부순다면 나에게는 협곡의 모든 어두운 부쉬속에 적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게 되는거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적 애쉬가 발리를 난사하다 마나가 떨어져 집에 돌아간 듯 했다. 나는 구르기를 멈추고 어택땅을 찍었다. cs도 그랩도 애쉬의 견제도 모두 우습게 생각되었다. 수백만개의 게임 속에서 한없이 낮은 확률을 뚫고 기적처럼 만난 나의 서폿을 위로해주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를 부드럽게 달래고자 말했다.


"네가 박은 와드들은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아... 내가 적 정글러를 죽여서 오라클을 빼줄게... 나는...."


더 이상 무어라 말해야 좋을 지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이 무척 서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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