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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군대 환송회 사건
게시물ID : humorstory_179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총잡이
추천 : 10
조회수 : 7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0/01/23 03:20:32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땐 내가 생각해도 참 멋지고 순수한 청년이었던 듯. 따르는 후배도 많았고. 
지금은 세파에 시달리며 어쩔수 없이 '옹졸 쫀쫀 협심 새대갈' 증상이 중증이 되어가고 있지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알바 월급을 탄 어느 날. 

돈이 좀 실렸쿠나. ㅋㅋ 

원래 그릇이 작아 많은 돈을 오래 담아 두지 못하기에 후배넘들 술이나 한잔 사야지 하고 기분좋게 캠퍼스를 거닐던 중

마침 후배 한넘이 벤치에 앉아 있네. 

됐다 싶어 '야 월급탔어. 오늘 한잔 쏘께. 후배들 집합시켜봐 ㅋㅋ' 처음에는 그렇게 말할려고 했다.  
(과 인원이 몇명 안되니까 참 서로 친했던 듯)

그래서 후다닥 달려가 후배넘 옆에 앉았다. 

"어~ 형!"





'ㅋㅋ 술먹으로가자~' 이럴라다가.... 너무 싱거운 듯 해서 좀 뜸을 들이자 싶어...

(진지하게 손을 지긋이 잡으며) "후배님아. 할말도 있고.. 오늘 니가 애들 좀 모아보삼" 

"뭐야ㅋㅋㅋ 형. 무슨 일있어?"

"아니 그냥 애들 얼굴이나 한번 볼려구."

"맨날 보면서 ㅋㅋㅋ 머야? 갑자기 진지하게. 군대 가는 사람처럼 ㅋㅋ"



후배님의 바로 요 멘트!! "군대 가는 사람처럼" 

내가 휴학계를 낸것도 아니고 학기말도 아니고 겨우 중간고사 끝나갈 무렵인데 군대 가는 사람처럼 이라니ㅋㅋ   

오호!!! 가는 척 하면 먹힐라나???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철쭉심리(??)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  

요녀석을 몇마디 말로 과연 불가능해 보이는 가짜입대를 어케 믿게 할 수 있을까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데.(너무 진지해 보였을까)   

벤치에 기댔던 등을 바로 세우는 후배님. "설마... 맞어??" 너무 진지하게 묻는다. 




"(약간 쓰레기같은 목소리로 울컥하며) 나도 몰랐어. 뭐가 잘못 됀나봐" - 일단 뭐든 연기력이 기본이다.  

"머야. 말도 안돼. 학기중에 무슨 입대야. 연기도 안돼??"

"너무 지났나봐. (울컥)통지서가 시골로 나왔다는 데 부모님이 글을 잘 모르셔서" 

"진짜야?? 정말 가는 거야?? 이렇게 갑자기?? 이런 경우가 어딨어!!"




"휴학계 내고 오는 중이야"  - 아주 적절했던 멘트.ㅋ 하나하나 녀석의 의심을 깨나가자

"며칠 안남았어..."  -  마감을 좀 타이트하게 잡아조야 극적분위기 연출 ㅋ 

잠시 침묵이 흐른다. 과연 제대로 기술이 걸린겨? ㅋㅋㅋ   




"힘내. 형. 내가 연락하께. ㅅㅂ 심란해지네." 

갑자기 울컥하며 일어나는 후배놈에 놀랐다. 저런 심각한 모습 처음 본다. 

늘 쌩글쌩글하던 녀석이었는데 이 쯤에서 까야 하는데 저 표정을 보고나니 살짝 거짓말한게 무서워지며 

절대 내가 뻥쳤다는 말을 못할분위기다.  




"야.. 저기.. 그게.." 

"이따봐." 그리고선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가버린다. 

먼가 불길한 이 느낌. 그냥 술한잔 하자고 그럴걸.... 




난 그저서너명 모여서 느긋하게 한잔 빨려 한거 뿐이고 ㅠㅠ   

하지만 일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나의 허탈하고 황당한 군입대 소식을 접한 후배녀석들 빛의 속도로 모여 들고 있었다. 

분위기 침울해지며 저녁에 과외랑 알바 다 취소하고 심지어 시험이 한두과목 안끝난 애들도 헐레벌떡 달려오고마는 

끔찍한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단골 꼬치집에 도착했을 때 

벌써 왁자찌껄하다. 

차마 들어갈 생각이 안났다. 

이건 아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ㅅㅂ 내돈 쓰면서 이렇게 초조해 해야 되다니. 거짓말까지 했으니 대책이 안선다. ;;;

일단 들어가자.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까자. 

미안하다고 아까 장난으로 한게 너무 커졌다고. ㅅㅂ 스토리가 부드럽게 안나오네. 




문을 열고 들어 선다. 얼굴에 확 부딛치는 묵직하고 침울한 이 느낌. 

담배 연기 자욱하고 안주도 안나왔는데 벌써 몇잔이 돈건가. 이 분위기... 

말하자. 말하자. 용기를 내서 말하자. 더이상 미루면 안돼. 

"야.. 저기.. 오늘.. 사실.. " 



"형!" 


후배 한 녀석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미안해. 그말 밖에는 할말이 없네. 늘 받기만 하고... 오늘 나 좀 마실께."

그리고선 잔이 있는데도 병째 들이킨다. 이 녀석. 내일 시험이 아니길 간절히 빌어 본다... ㅠㅠ

그 와중에도 속속 모여드는 녀석들. 뭘까 도저히 나의 연약한 결단력으로는 깨수 있을 것 같지 않는 이 단단함은? ㅠㅠ

도저히 사실을 사실대로 깔 분위기가 아니다. 더불어 나의 치명적인 단점 우유부단함과 이번에 제대로 맞물렸구나 ㅠㅠ

실재로 그럴수만 있다면 머리깎고 입대하고 싶어질 만큼 일이 커져 가고 있었다. 

이를 어찌 수습할꼬...  





소주잔이 미친듯이 돌고 있다. 

"좀 있다 동기형들이랑 선배들도 다 올거래. 적당히 마셔. 형" 

헉!! 선배님들!! 조때따. 만천하에 공개되는 구나. ㅠㅠ 

술 마시면서 그렇게 조마조마해 봤던 적이 있을까? 





일단 호랑리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마시자. 

그래!! 술의 힘을 빌리자!!!! - 긋~ 이렇게 편한 방법이 있는 거슬. 

잔뜩 마시자. 그리고 그 힘으로 솔직히 까자!! 

더 늦기 전에 까야한다. 

안그러면 진짜 나 맞아 죽을지도 ㅠㅠ  





미친듯이 일단 마셨다. 술이 좀 올라온다. 

알딸딸~~  됐어!! 지금이 기회다!! 

'일어서자! 지금이다!!!!!'라고 일어서려던 순간,





"형!!!!"

한놈이 울컥한다. ㅠ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ㅠㅠ 

"저번에 기억나요?? 우리 군대 가는 거 다 보고 간다고 했던거." 

"이건 아니죠!!! 형!! 나 형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지. 응?? 너무 서운해. 너무 서운하다고!!!!!!!!"   

어느새 다들 술이 좀 된 거 같고 이 슬픔 속에서 나만 조마조마하게 살벌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고~~ ㅠ  




그 순간 구세주 내 동기 놈이 하나 들어 온다. 

"야!!!!! 어케 된거야?? 무슨 말이야 군대 간다는게. 사실이야???" 

ㅠㅠ 너까지 사색이 되어 들어오다니. ㅠㅠ 내가 죄인이다.  

난 서둘러 그 놈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지하게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 

그제서야 환하게 웃는 이 녀석도 나랑 똑같은 걱정이다.  

거짓말 치고는 너무 와 버렸다고. 

둘이서 이 사태를 어이할꼬 조낸 머리를 쥐어 짜고 있던 중






헉!!!! 

친한 선배들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는 거시 아닌가!!  

나는 일단 몸을 숨겼다. 

올때까지 왔구나. 선배들이 왔으니 더는 미룰수 없는 상황. 




나는 우선 옆건물에서 사태의 추이를 관찰하기로 했다.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점에 in 하는 거다.   

빼꼼. 

헉!!!!!! 내 동기놈이 후배들에게 머라머라 말한다!!!  

다 까는가부다!!!  

느껴진다. 저들의 점점 변화하는 표정이! 당장이라도 슬픔이 분노로 폭발할 것 같은 저 눈빛들. 





꼬치집을 우르르 달려 나오는 후배들. 

"머든 집어!!!"라며 한놈이 외친다. "이 인간 어딨어!!"

후배녀석들 멍석말이라도 할 기세다!  

그 중 한놈은 냉면깃발까지 뽑아 든다.   

분노는 극에 달하고.. 





난 좀 더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어디든 좋다. 저녀석들과 오늘만 마주치지 않기를. 

그런 간절한 생각으로 몸을 휙 돌리며 뒤로 빠지려던 바로 그 순간,





"형!! 여기서 뭐해??" 

아니, 이럴이럴이럴수가!! 

뒤에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 두놈 출현!! 그것도 나의 유일한 퇴로에서. 

술을 마시다 잠시 바람쐬러 나갔다 온 두 녀석들과 운명적인 만남!

순간!!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꼬치집을 쳐다 봤다. 

나랑 녀석들이랑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짧은 1초간... 우리는 서로 멍하니 쳐다봤다. 끔찍한 정적의 순간. 

한 사람을 애타게 찾던 그들과 정말 그들만큼은 간절히 피하고 싶어했던 한 사람과의 레이져빔 교환.  





"잡아!!!!!!!!!!!" 멀리서 한 녀석이 그 정적을 깨고 외쳤다.  

나는 뭔지 모르고 멀뚱해하는 두녀석을 밀치며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욕과 함께 수십명의 후배들의 발걸음이 어지럽게 나를 향한다. 



악몽에서처럼 마음같이 발걸음이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 젠장 ㅠㅠ 

사력을 다해 뛰었지만 그들의 분노의 추격을 물리치기엔 무리였다. 

20여미터도 못가서 분노한 후배들의 무리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욕을 빼고는 대화도 거의 없다. 누군가 외쳤다. "일단 넘어뜨려"

생일빵은 저리 가라였다.  

날아드는 발길질에 파워가 잔뜩 실려 있다. 

냉면 깃대가 급소를 향해 정확하게 계속 날아든다. 

누구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자를 만들셈이냐. ㅠㅠ 

그렇게 술이 취했어도 냉면깃발 만큼은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인간의 놀라운 종족유지본능과 번식본능은 그날 스스로 체험했다. 나는 그렇게 다굴을 당하는 내내 냉면깃발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 된다. 글로는 여기까지만 쓴다. 

지금도 만나면 후배님들이 그때 얘기를 늘 하는거 보면 참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은 거 같다. 

나 또한 그렇고. ^^;;;  



우리의 지금 현재는 10년 뒤에 어떻게 기억될까요?

부디 당시를 회고하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의미도 있고 멋지고 아름다운 전설을 만들어 나가시길.
 
이 글처럼 기억은 새록새록하지만 별 의미는 없는 것이 아닌 뭔가 뿌듯한 성취로. ^^   






어쨋든 냉면 깃발 이 새퀴 끝까지 찾아낸다. 

누구냐? 이제는 정체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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