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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얼굴을 가린 사람들
게시물ID : panic_884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3
조회수 : 243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6/08 20:51:28
얼굴을 가린 사람들

사람 무리 사이에 끼인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걸 인지한 건 작년 연말이었다.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사람이다.
지하철 역처럼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속에서,
멈춰서서 얼굴을 가린 그들은 이상하게 주변에서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다.

사람들 무리 사이에 언뜻 보인다 싶어서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돌려보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줄 알고, 같은 지하철 역을 이용하는 후배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후배는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어쩜 이렇게 관찰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있냐고 내심 깔보았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 등하교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심지어는 우리 회사 안에서도 얼굴을 가린 사람이 섞여 있는 걸 보고 무서워졌다.
후배 말고도 몇 명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아무도 그런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점점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외근을 나가서 또 그들을 보았을 때,
같이 있던 후배는 그런 건 안 보인다고 우기길래 힘껏 때렸다.

내가 일으킨 문제는 내부적으로 처리되었고,
그 참에 나는 회사를 관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 고향은 산에 집어삼켜질 것 같은 깡촌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귀찮아서 관리도 안 했지만, 거기에 가서 잠시 휴양 겸 쉬기로 했다.
다행히 솔로에다 저축도 적당히 있었다.
매일 책도 읽기도 하고, 인터넷도 하면서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린 놈들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분명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꽤나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서랍장을 뒤지고 있는데, 추억이 가득 담긴 장난감이 나왔다.
어린 나의 시선을 TV에 못 박아두게 한 히어로였다.
보자마자 이름이 바로 떠오르는 내 모습에 미소지으며
휙하고 뒤를 보았더니,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구지.
아 맞다. 분명 나랑 같은 학교 다니던 친구다.
친구라고 해도 짝궁은 반 년 정도 밖에 못 했다.
그 친구가 여름 방학 때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른들 몇 명이서 산을 훑으며 찾아보았지만 발견되지 않았고,
사이좋게 지내던 나에게 이 인형을 주셨었다.

분명 추억으로 그리울 뿐일 텐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아니, 인형이 아니라 내 기억 한 켠이 신경 쓰였다.
떠오를 듯 말 듯 떠오르지 않는 무언가가 나의 기억을 자극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떠오른 건 생활 잡화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친구가 없어졌던 그 날, 나는 어른들에게 무언가를 숨겼다.
친구가 사라졌다는 슬픔이 아니라, 산에 대한 공포도 아니고,
나는 어른들에게 비밀로 한 것이 들키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무엇을 숨겼겠는가.
그야-, 나는 친구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을 다 먹은 후,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 봤다.
그 날, 친구와 담력 시험을 하기로 했다.
밤에 살짝 빠져나와서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신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신사는 사람 발길이 뚝 끊어진 망한 폐허 같은 곳인데,
어른들은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곳이다.
그 날 나는 집을 몰래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낮과 판이하게 다른 밤 풍경이 무서워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어버렸다.
다음 날, 친구가 사라졌다고 소동이 일었을 때
나는 어른들에게 혼날까봐 비밀로 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잊고 있었다.

나는 신사에 가보기로 했다.
친구를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식사 후 할 일이 없어서였다.
신사는 내 기억보다 훨씬 멀었다.
어른인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돌 계단을 오르고 나서 신사가 아직 원래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놀랐다.
진작에 철거해서 농경지로 쓰고 있을 줄 알았다.
아주 조금 기대하긴 했는데, 신사 주변에 아이가 몰래 숨어들 것 같은 우물이나 구덩이 같은 건 없었다.
그때 분명 어른들이 신사 안도 찾아봤겠지.
집에 돌아가려고 걸어가다가 그냥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신사 정중앙에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소녀가 서 있었다.
눈을 깜빡였다. 소녀 옆에 얼굴을 가린 노인이 서 있었다.
눈을 깜빡였다. 소녀와 노인 앞에 얼굴을 가린 여자가 서 있었다.
눈을 깜빡였다. 여자 옆에 옛날 학생복을 입은 소년이 얼굴을 가리고 서 있었다.
눈을 깜빡였다. 모두 사라졌다.
앞을 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신사 입구 아래에서 얼굴을 가리고 서 있었다.
마치 나를 여기서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그날 밤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듯이.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29245404.html#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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