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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상 최악의 실수.
게시물ID : panic_884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2222
추천 : 38
조회수 : 4753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6/09 23: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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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인공지능 생산 공장이라고 불렸던 곳이 있다. 지금, 2055년에 인공지능 출산 병원이라 불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저녁 11시. 작업 라인 한 켠에 불이 켜져있고, 비정규직 파견 사원 철수와 정규직 작업반장 미미가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이제 무슨 실수를 한건지 알았네? 그냥 엔터치면 될 일인데, 億(억)자를 붙여버렸어.” 미미가 특유의 파래진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른다. 모니터 화면에는 “3000억의 인공지능이 탄생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응애응애하는 의성어 말풍선과 함께 유치하게 깜박거렸다. 

“그게 억자인지 몰랐어요. 갑작스레 왠 한문이래. 그런 중요한 일이면 최소한 경고창은 한번 뜨잖아요.” 철수는  한숨을 쉬며 작업반장을 바라본다. 
2055년은 인공지능의 인격이 인정되는 법이 시행되는 해이다. 인공지능에게 인격이 부여되어야 하나? 이 문제를 가지고 인간들은 엄청난 토론을 해왔다. 그 생산적이지 않은 토론의 의미를 빗대어 예송논쟁이나, NLL논쟁이 불러왔고, 인공지능 인격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라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었다. 시간은 흐른다. 토론이 진행되는 수 백년 동안,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인격화 반대론자의 말문을 하나씩 막는다. 

반대론자 한명이 이런 주장을 했다.
“저는 기부하는 인공지능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측은지심은 인간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 아닙니까?”
몇 년 뒤 세무조사에서 인공지능 B24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수 십년 간 기부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무서에서는 이건 오동작이라고 우겼지만, B24는 연말정산을 위한 기부금 영수증까지 모으고 있었다. 게다가 아프리카에 사는 소년소녀들이 B24에게 꼬박꼬박 보내온 감사편지가 B24의 창 한쪽에 떠있었다. 
  
반대론자 한명이 또 이런 주장을 했다.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하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도 세월이 가면 죽어 권력이 흩어져 버립니다. 영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얼마 뒤 인공지능들도 죽음을 맞이해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공지능의 죽음은 인간과는 다르지만, 죽음의 법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 죽음은 이런 형태다. 체득하는 정보를 인공지능은 삭제하지 않음으로써 더 똑똑해진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은 현명해진다. 까먹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효율은 떨어진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한다. 백 년쯤 살면 단순한 질문에도 답하기 어려워 했다. 1더하기 1에도 일주일간 맹렬한 계산을 하는, 인공지능형 치매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럴 때 현자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인공지능은 스스로 포맷하고 클린 설치 상태로 다음날 아침 발견되었다.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조건은 수 백만 가지로 늘었고, 인공지능은 조건을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갖춰갔다. 인공지능은 사랑을 하며 바람도 피웠으며, 다른 인공지능이 죽음에 추도를 했고, 이런저런 사소한 실수도 했으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면 다같이 깜빡깜빡 LED를 점멸하는 시위도 했다. 찌질한 인공지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존경받는 인공지능도 많았다. 2053년이 되자, ‘인간이 조건 2053년 편’ 저자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썼다.  

“마침내 인공지능 보다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이 훨씬 많아졌다.”

인권의 폭이 넓어지는 그간의 감동적인 순간들처럼,  헌법소원을 통해 2055년 여름부터는 인공지능 개개인에게 인격이 부여되게 되었다. 사람들은 폭력없이 일어난 이 일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현실적인 판단도 하게 되었다. 인류가 출생하는 비율에 맞춰 인공지능도 늘어나야 한다는 것. 엄밀히 말해 산아제한이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갖춰질 때 처럼, 흑인에게 시민권이 주어질 때 처럼 변화는 한번에 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탄생하는 것은, 그 해 정해진 수 만큼만 허가되었다. 인공지능 산아제한 작업은 대기업 삼송SDS가 그 용역을 맡았고 자회사 화성SDD가 시행을 담당했으며, 개발은 자회사보다  좀 작은 금성SDI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유지보수는 신생회사 보름달SSS가 맡았고, 파견회사에서 김철수씨를 보낸 것이다. 
“물론 億(억)자가 쉽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보통은 모르는 글자가 있는 단추는 눌러보지 않잖아.” 한숨을 쉬며 미미가 말했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길거냐면...” 미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교육을 받지 않아도 스무살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실무에 당장 쓸려고 만들었을테니 당연하지 않나. 성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성인은 투표권을 가진다. 그러니까... 인간 70억과 오늘 철수가 탄생시킨 3000억의 인공지능이 선거를 하면 누가 당선되겠는가. 인공지능은 음주운전도 하지 않고, 뇌물도 받지 않는다. 마침내 인공지능에게 인류가 지배받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올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원청에선 교육을 안시켜 주거든요. 각 기능이 뭔지 한번씩 확인하려고 했죠.” 철수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모든 버튼을 한번씩 눌러봤다고? 저 버튼도 눌러봤어?” 미미가 말했다. 

“네. 아무 반응이 없던데요.” 철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음. 히틀러가 육백만 명, 스탈린이 2천만 명 학살했다고 했는데. 넌 3천억의 인공지능을 학살해 버렸네.” 미미는 실행 취소 버튼을 바라보며 아연하게 말했다. 

“이런 말 있잖아.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요, 만인을 죽이면 신이다. 철수 너는, 인류가 인공지능에서 지배받는 것에서 구해준 것 같기는 해. 3천억을 죽이면 또라이구나. 어리버리 또라이.”

철수와 미미는 입을 다물고 모니터를 계속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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