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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19장 폭풍전야 下)
게시물ID : history_181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1
조회수 : 4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24 22:37:21
159813일 밤 아동포살수대 진지 포수 박울의 막사
 
삼경(11새벽 1)이 막 시작된 시간. 일렁이는 등잔불 밑에 울이가 누워있었다. 그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깊은 잠에 빠져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런 그녀 옆에 중년의 남자가 산이가 앉았던 나무궤짝에 앉아 면수건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었다. 가끔 울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신음에 작은 한숨으로 답을 하는 그였다.
 
으으으. 어머니. ! 헉헉.”
 
울이가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별안간 큰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냐? 또 그 꿈을 꾼께로구나.”
 
사내는 놀란 그녀의 어깨를 잡고선 안부를 물으며 진정을 시켰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울이는 그의 안면을 알아보고선 화들짝 놀라며 남자의 큰 손을 뿌리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대장님. 언제 오신 겁니까? 저녁때 잠깐 잠이 든 것 같은데 해가 저버렸군요.”
 
이경 때 왔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길래 놔두었지.”
 
그래도 인기척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못 볼꼴을 보여 드려 송구합니다. 여대장님
 
울이는 아동포살수대 대장 여여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여여문은 그런 그녀를 다소곳이 침상에 눕혔다.
 
병자가 무슨 예의냐. 누워 있어라.”
 
그래도.”
 
어허. 이것은 직속상관의 명령이니라. 상급자의 명령에는 절대복종하는 것이 살수대의 첫 번째 규율이 아니더냐.”
 
“...”
울이는 대답하지 않고 누운 상태로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여대장을 빤히 바라보자 짐짓 모른척하고 고개를 돌리고는 헛기침을 하는 그였다.
 
험험. 그래 몸은 좀 어떠냐?”
 
한심 푹 자고 났더니 거뜬합니다. 언제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대답을 마치고선 여여문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이의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나한테까지 거짓부렁 하지 마라. 울이야. 이맘때가 되면 내가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죄송합니다. 이런 몸이라서.”
 
울이는 그의 반박에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선 이불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 이마와 귀가 새빨갛게 변해버린 후였다.
 
무슨 소리냐. 아녀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더냐. 조선의 여자아이들은 보통 13세 때 초경이 시작되는 걸로 아는데 너는 2년이나 늦어서 네 스승과 내가 걱정했었다.”
 
 
울이는 그의 입에서 초경이란 얘기가 나오자 부끄러운 듯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써 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여대장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진 네 스승인 김 첨지와 상의하여 포수 특별훈련 명목으로 그날이 되면 너를 빼 보호해 왔다만. 얼마나 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는 눈들도 있고.”
 
묵묵부답인 그녀에게 여여문은 혼잣말하듯이 말을 이었다.
 
네가 조실부모했을 때 그 동리에서 처음 너를 만난 날이 생각나는구나. 그때 너는 왜군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나와 사야가에게 아동포살수대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었지. 급기야 은장도를 가지고 와서는 내 앞에서 자결까지 하려 했었지. 일단 너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서 울이 너를 남자아이로 꾸며서 살수대에 집어넣었다.”
 
각골난망의 은혜를 어찌 기억하지 못하고 있겠습니까? 대장님.”
 
울이는 이불을 내리고선 다시 침상에 기대어 앉아 그의 말에 감사를 표했다.
 
물론. 내 실력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결국, 포수후보생 중에 너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지 않았더냐? 허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너를 아동포살수대에 넣은 것은 큰 실수가 아니었나 싶으이.”
 
오늘따라 어인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녀는 과묵한 그가 평소와 다르게 말이 많아지자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여자의 예감을 빗나가지 않았다.
 
네 너에게 제안 아니 부탁을 하마. 이쯤 해서 조총병일을 그만두면 안 됐겠느냐?”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몇 걸음만 가면 왜적들이 활개를 치는 이곳에서 어찌 저만 안위를 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 실력을 못 믿어 그런 말을 하시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도산성으로 나아가 왜적의 수급을 몇 개 베어 오겠습니다.”
 
여여문의 말에 당황한 울이는 이불을 팍 걷고선 몸을 움직이려 애를 썼다. 그는 그런 그녀를 만류하며 다시 눕혔다.
 
누워 있으래도. 달거리가 시작되면 네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옆집 산파 할멈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 유독 너의 상태가 심한 편이라고 하더라. 하혈도 많고.”
 
결국. 제가 계집이라서 안되는 것입니까? 계집이라서. 허흑.”
 
울이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절규하며 눈물을 흘렸다. 여여문 고개를 저으며 그의 큰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리며 진정을 시켰다.
 
 
그게 어찌 너의 잘못이겠느냐. 아녀자가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는 것은 하늘이 내려 주신 섭리인 것을. 어른들과 시대가 너에게 못된 짓을 시킨 것이다.”
 
여여문은 그녀의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 아녀자도 조국을 위해 앞으로 나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조선은 다르다. 남녀의 구분이 지엄한 유교의 나라에서 네가 언제까지 포수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 커진 가슴을 헝겊으로 가리고 머리에는 가짜 상투를 틀고서 말이다.”
 
아직은. 아직은 아닙니다. 대장님. 왜군을 제힘으로 몰아내고서. 자진하겠습니다.”
 
스스로 죽어버리겠다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여여문은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때렸다.
 
네 이놈. 어찌 귀한 목숨을 함부로 버리려고 하느냐! 내 너에게 이리 간청하는 이유를 왜 몰라주느냐? 울이야.”
 
여대장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울이는 그가 그녀에게 한 것처럼 손을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아 주며 말을 이었다.
 
대장님. 무서워요. 태어나 15년을 살면서 사람 죽이는 일 말고는 해본 게 없어요. 자신이 없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마. 이번 전투가 끝나면.”
 
여여문은 황급히 말을 마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품속에서 한지로 꽁꽁 싸인 물건 하나를 울이의 침상에 놓았다.
 
서답(서답은 빨래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생리대의 별칭이기도 했다.)이다. 내 네가 자는 사이에 두고 나오려고 했는데 이리되었구나. 미안하다.”
 
대장님.”
 
더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때였다.
 
-야습이다. 야습. 왜적의 구원군이 아군 전초기지들을 급습했다. 비상! 비상!-
 
-댕댕댕댕-
 
군막 밖에서 요란한 징소리와 함께 적의 야간 기습을 알리는 목소리가 진중에 울려 퍼졌다.
 
가봐야겠구나. 몸조리 잘하고 오늘 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여여문이 준 서답꾸러미를 양손에 쥐고 뭉그적거리던 울이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여대장은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서 그녀의 배웅을 대신했다. 울이의 밝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선 오늘은 그가 나설 차례였다.
 
 
---
 
 
춘심아. 이리 온. 이리 오래도. 히히
 
같은 시각.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운룡은 태화강변에 자리 잡은 경상좌도 수군 임시 진지의 자신의 막사 안에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애첩 춘심이를 겨울밤 화톳불 앞에서 희롱하는 흐뭇한 꿈이었다.
 
좌수사 영감. 영감 일어나 보십시오.”
 
으흠. 못생긴 덕례 너는 찾지도 않았거늘. 왜 들어왔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아이고 우리 춘심이 놀랐느냐.”
 
부관은 짧게 한숨을 내시고는 그를 강하게 흔들어 깨웠다.
 
장군! 기상하십시오. 큰일 났습니다.”
 
춘심. . 덕례 아니 부장이 이 밤에 무슨 일인가? 모처럼 길몽을 꾸고 있었거늘.”
 
이운룡은 침상에 걸터앉아 한밤에 자신을 깨운 수하에게 짜증을 내며 물었다.
 
왜적이 다시 태화강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척후선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 저 지긋지긋한 해적 놈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태화강에 교대로 떠 있는 판옥선에서 선조치 후보고 하면 될 것이 아닌가?”
 
부관의 보고에 불평을 늘어놓은 좌수사는 침상 옆에 둔 자리끼를 들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전의 허접스러운 놈들과는 좀 다릅니다. 영감. 우선 적선의 숫자가 백 척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접의 물을 한 번에 시원스레 넘기던 이운룡은 부관의 말에 사레가 들려버렸다. 그는 물그릇을 아무렇게 던지고는 부장의 멱살을 잡고 속사포 같은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정녕 백 척이냐? 종류는? 크기는? 화포를 장착했다고 하드냐?”
 
어두운 밤중이라 뱃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보다.”
 
또 뭐!”
 
끝말을 얼버무려 버리는 부관에게 좌수사는 화를 벌컥 내며 짜증을 냈다.
 
. 그게. 육지의 적 원군도 조·명연합군 전초진지에 야습을 가하는 중이라 합니다.”
 
. 이놈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날 설 모양이구나. 부관은 가서 경상 좌수군 전체를 깨워 속히 승선시키고 전투태세를 갖추라 이르라. 탄약은 몽땅 다 실어라고 하고. 시간이 없다. 속히 가라.”
 
이운룡은 부장을 곱게 놓아주고선 서둘러 갑옷을 챙겨입었다. 갑주에 몸을 구겨 넣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자신과 부하들이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를 말이다. 하지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운룡과 그의 수하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길고 추운 겨울밤과 수많은 적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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