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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주사 -2
게시물ID : panic_885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팔이파리
추천 : 73
조회수 : 3752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06/13 23:19:12
그의 죽음은 녹슨철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그의 탓이다.

5만원 짜리도 섞여 있는 돈다발에서 할아버지에게 줄 천원짜리 세장만 뽑느라 굵은 팔뚝에 우뚝 솟았던 정맥을 낮에 충분히 봐두었기에 어두운 컨테이너 안에서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거만한 그의 모습 때문에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
죽어가는 노인인 걸 알면서 그램수를 속여 자기 배를 채우는 이런 인간은 죽어 마땅했다.

낮에 할아버지가 3천원 받아가고 그가 옆의 인부에게 한 말을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곧 뒤질 노인네가 꼬박꼬박 챙겨 가네. 암이 전신으로 퍼졌다문서? 암도 고철이문 큰 돈 벌 것인디? 크하하하

그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진 걸 확인한 후 난 곧바로 할아버지에게 갔다. 
할아버지는 퉁퉁 불은 라면을 놓고 꾸벅 졸고 계셨다. 왜 이제 왔느냐고 원망어린 눈길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베갯잇에서 꼬깃해진 천원짜리 다발 수십개를 꺼냈다.

이걸 내가 왜 모았는지 모르것어...

할아버지는 소주 병을 땄다.
불은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곱아서 제대로 쥐지도 못하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쥔 할아버지가 말했다.

자네 시간 좀 되는가?
네...
그랴... 이 돈으로 나 장례 간소허게 치루고.. 혹여 돈이 남으문 말여... 내 마누라 좀 찾어주게...

할아버지가 내민 사진은 낡아서 금이 갔다. 그래도 사진의 형상은 알아볼 수 있었다.
곱게 늙은 할머니는 60대쯤 돼 보였다.

한 10년 15년 됐나... 교통사고 나고 마누라꺼정 다쳤는디 곧 죽어도 나 돌보것다고 이혼도 안해준 여편네 미워서 밤중에 도망쳤네...
소문에 듣자니 잘 살고 있다고 허등만....
찾아서 나 죽었다고 꼭 전해줘... 맘 고생 고만허게.... 꼭 말해야 혀... 아직도 나 찾는다고 수소문허고 댕기두먼... 편허게 잘 죽었다고 말해줘...

할아버지는 소주를 한 잔 더 마셨고, 나는 그의 정맥에 주사를 놓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탐스럽게 부른 배를 보며 만지지 못했다. 내 더러운 손이 내 아이와 내 아내에게 닿는 게 못 마땅했다. 아내는 서운해했다. 나중엔 고마워하겠지...

난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솔직히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원했던 일은 아니다.

병원이 처분 돼 한 두달은 시간이 있었고 뒤로 빼돌린 염화칼륨은 충분했다.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고 나는 주사기를 챙겼다.

긴 여정이 될 것이다.

할머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갈라진 사진 뒤의 옛날 주소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할머니를 억지로 첩에 앉힌 배불뚝이 노인은 의심스런 눈으로 나를 봤다. 숨겨둔 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할머니는 기르던 개를 무료로 봐주는 의사선생이라고 음료수며 간식을 잊지않고 챙겨주셨다.

자원봉사팀을 꾸려 서천으로 간지 열흘 째 나는 빈 주사기에 용액을 채웠고 노인의 집을 찾았다.

노인은 밉게도 편안하게 죽었다.
할머니는 3일 내내 울었다.

장례를 마치고 건강검진 때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큰 병은 없으시고, 혹시 보고픈 사람이 있느냐고.

할머니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가슴에 묻은 사람이 둘이나 되는데 무슨 여한이 더 있것어... 암튼 고맙네....
할머니는 마른 눈물을 닦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와 있었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잔소리를 2톤쯤 늘어놓던 아내가 물었다.
집으로 계속 전화 오던데, 무슨 소리야? 할아버지라니? 당신 아버지 찾았어?

나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엄마도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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