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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여자, 정혜’를 보았다.
게시물ID : humorbest_88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류나무아래
추천 : 29
조회수 : 4195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3/29 01:27:57
원본글 작성시간 : 2005/03/16 11:18:03

뭐랄까...

어제 ‘여자, 정혜’를 보았다.

당연히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봤기에 재미없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내 마음속에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는 것...

정혜도 나도 사랑 불능자라는 것...
정말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영화 포스터에 글귀가 참 마음에 들었었다..

「시간만큼 쌓여온 기억들... 그 기억이 남긴 아픈 상처...
그래도, 오늘이 어제와 다를 수 있는 건...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

「속삭여본다... 이젠 행복해질거라고」


.... 나는 더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에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이나 꿈조차 없기에...

단순히 그 글귀에 끌려 영화를 보게 된 것 같다...

별다른 대사는 없지만 
김지수의 표정 하나하나가 마치 나라는 듯
김지수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라는 듯
세상에 살아가는 어느 때와 다름없는 한 여자의 일상...

그 속에서 천천히 변화해가는 김지수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같이 눈물을 머금기도 하고...

... 영화에서 단 한번도 김지수를 정혜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 없이...
마치 그런 자신을 비추듯 고양이에게도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듯
영화속 인물은 아무도 단지 이 세상에 숨쉬는 인간이라는 듯
이름도 없이 흘러가버린다...

작가지망생인 그가 김지수를 정혜라 불러주었을 때...
실로 그 행위는 영화에서 굉장한 클라이막스 부분이 아니였을까라고 생각한다...

정혜라 칭해주었을 때
그제서야 김지수는 단지 이 세상에서 일상에 묻힌 한 여자에서
타인에게 있어서 정혜라는 하나의 인격이 되고
소중한 사람이 된 듯한 왠지모를 감동이 왔었다...

나도 단조롭고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이 현실에서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군가가 나를 「현주」라 불러 줄 사람이 나타나겠지...

사랑에 있어서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괜한 모습에 발톱 세우지 않으면서
단조롭게 그의 옆에서 웃으며 행복해 할 날이 오겠지...

세상은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아닌
시간 속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묻혀서
사랑이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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