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을왕리에서 무서운거 본.ssul
게시물ID : panic_730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엘즈아
추천 : 36
조회수 : 6694회
댓글수 : 55개
등록시간 : 2014/09/26 15:23:51
주식이 떨어져서 열받은김에 몇 년 전 제가 겪었던 이야기를 써봅니다.
 
별로 안무서울꺼에요.. 글을 무섭게 쓰는 재주도 없고, 재미있게 쓰는 재주도 없지만
 
술자리에서 덜덜 떨며 친구들과 했던 얘기를 전해봅니다^^ 약간의 욕설은 조미료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2012년 겨울이었습니다.
 
 
좀 암울했던--;; 얘기지만, 당시 저는 서른살이었습니다.
 
서른.. 많다면 많은, 적다면 적은 나이에 뇌경색 판정을 받았습니다.
 
 
큰 병이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머리, 목, 우측 가슴, 우측 팔, 우측 무릎..
 
몸 부위를 좌르르 나열하는 것 같지만, 위 "부위"들은 제가 서른살까지 살며 수술한 부위입니다.
 
죄다 오른쪽이죠. 물론 센터에 있는 소중이*-_-*는 제외합니다. 그건 다 가운데에 있잖아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우측 뇌에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왜 이렇게 오른쪽이 문제인지..
 
 
 
어린 시절에도 사고가 많았습니다.
 
당시 교회를 다니셨던 외할머니를 따라 농로를 따라 교회에 가곤 했는데
 
그 길에서 참 사고를 많이 당했어요.
 
어느 여름 오후였을꺼에요, 땅거미가 깔리는 오후 늦은 시간에 교회에서 돌아는 길이었는데..
 
오토바이에 치였습니다. 당시 한 5-6살정도 됐었을 겁니다. 몸이 유연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크게 다치지 않고 일어났고..
 
그 다음주에 교회 가는길에 같은 오토바이에 또 치였습니다.
 
그럴수도 있죠..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주에 또 치였습니다. 3주 연속..--;;
 
그쯤되니 저도 사람새끼라고 학습효과가 있었는지..
 
4주차에는 오토바이에 안치이겠다고 길 가장자리로 걷다가 수로에 빠져 반 죽을뻔 하다가 할머니 손에 끌려나왔습니다.
 
 
 
 
그런 연속킬의 위험을 벗어나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는
 
계곡에서 물놀이하다 떨어진 바위에 맞아 무릎이 거꾸로 꺾였다던가..
 
가만히 앉아 일하고 있다가 폐가 터진다던가..
 
물에 빠져 죽을뻔한건 한두번도 아니고..^^;;
 
친구한테 맞아죽을뻔했던 일이야 조크로 가볍게 넘길..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참 죽을 고비 많이 넘겼습니다만 이번엔 다르더라구요.
 
이제까지야 누가(?) 도와줬는지 잘도 살아남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이번엔 그.. 저를 항상 지켜주던, 살려주던 그..것? 그...분?-..-;;
 
어쨌건.. 이번엔 저를 지켜주지 못할꺼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30년, 짧은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뇌경색 판정을 받고 제가 제일 처음 했던 일은 회사에 사표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책임감있던 직원이었던 저는 그 와중에 업무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이쯤되면 사장님이 퇴직금이라도 빵빵히 챙겨줘야하고, 회사에 제 동상 하나정도는 세워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사 업무에 펑크가 없게 열심히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회사 동료들에게는 이직을 한다고 둘러대고는.. 그렇게 저에게 남은 날들을 소중히 사용했습니다.
 
 
가장 걱정인건,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아닌 당시 제 여자친구였습니다.
 
불효인거 압니다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여자친구가 혼자 남을게 걱정되거나 내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 만나는게 걱정되는게 아니고..
 
쟨 도대체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할 정도로 해맑기만 한 애라..ㅋㅋㅋ--;; 걱정이 참 많이 됐었죠.
 
 
 
여자친구에게도 제 병에 대해 말을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마지막을 준비중이란 말도 하지 못했죠.
 
 
 
 
업무 인수인계가 슬슬 마무리 될 무렵의 퇴근시간에 저는 여자친구와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여전히 칠렐레 팔렐레 해맑기만 하더군요.
 
한참을 앉아서 한심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쟤는 뭘 믿고 저렇게 해맑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다 헤어져서 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나 없으면 이제 얘 드라이브 시켜 줄 사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전화해서 밤바다나 보러 가자고 불러내서 출발했죠.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요.
 
평소에도 간간히 들렸던 을왕리로 네비게이션을 찍고 출발했는데 묘하게도 차가 별로 없더라구요.
 
정신나간 사이버 포뮬러들이 분명 있어야 되는 시간인데..--;;
 
 
쿵짝쿵짝하는 음악도 듣기 귀찮아 조용히 달렸습니다.
 
네비게이션이 평소와는 다른 경로로 찍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원래 다니던 길이었는데 밤에 와서 어색한건지.. 아예 다른 길로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안개도 참 더럽게 많이 끼더라구요. 여자친구는 고개 푹 숙이고 옆에서 핸드폰만 만지고 있고
 
저도 좀 위험하다 싶어 속도를 많이 줄이고 가고 있었습니다.
 
왠지 덤프트럭같은게 안개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고 데스티네이션이 생각나고..-..-;;;
 
 
제일 무서웠던건.. 어디서 나는지 모를 쇠를 가는 소리였습니다.
 
슥... 슥..
 
 
을왕리에 거의 다 와서는 길이 참 단조롭습니다.
 
쭈우우욱 직진만 하다가 길이 막히면 좌회전을해서 또 쭈우우욱 가면 해수욕장에 도착하죠, "ㄱ"자 길입니다.
 
그 길 초입에 들어가니 안개도 걷히고 좀 달릴만 하더라구요, 속도를 정상적으로 올리며 가고 있는데
 
아까 들었던 그 쇠 가는 소리가 또 들리는겁니다.. 스윽 스윽..
 
차에 문제가 있나 걱정도 되지만 추워서 내리기도 귀찮고 그대로 달려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 들어가니.. 거 참. 바다에도 안개가 잔뜩 끼어있더라구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여자친구와 가만히 서서 안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귀신나오겠다 ㅋㅋㅋ 이러면서요.
 
참 해맑았죠. 여자친구요? 아뇨. 제가요.
 
항상 칠렐레 팔렐레 크하하항하던 여자친구는 아무 말도 없이 안개만 보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묘하길래 저는 귀신나온다 어흥 'ㅅ' 이러면서 장난을 쳤는데.. 그냥 묵묵히 안개만 보고 있더라구요.
 
나름 따뜻하게 입는다고 입었는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겨울 바다.. 거 참 더럽게 춥더라구요.
 
 
 
 
 
저는 그 때.. 여자친구와 차를 타서는 안됐었습니다.
 
이상하단걸 진작 느꼈어야됐는데.. 왜 느끼지 못했던 걸까요?
 
10년 가까이 만났던 여자친구가 이상하단걸 왜 그 때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요?
 
 
스마트키로 문을 열고,
 
차에 타서,
 
브레이크를 밟고, 
 
오른손 검지로 시동 버튼을 누르고..
 
 
 
 
왼손 네번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에 안전벨트를 걸어 당기고,
 
오른손 엄지로 벨트를 채우고..
 
오른쪽을 힐끔 보며 여자친구가 벨트를 잘 채웠는지 확인하고,
 
왼손으로 라이트를 켜고,
 
오른손으로 기어봉을 잡아 P에서 D로 변경하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수백번, 수천번을 해왔던 그 행동을 하면서
 
왜 저는 여자친구가 뭔가 다르다는걸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요...
 
 
유턴을 해서 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쇠 갈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스으윽.. 스으윽..
 
그 때, 뭔가 잘못됐단걸 느꼈습니다.
 
모든 일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살짝 솟아오른 오르막길에 올랐습니다.
 
쇠 갈리는 소리가 점점 심해지길래 내일 공업사에 차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게 제 마지막 생각이었습니다.
 
 
 
스윽..
 
 
 
스윽..
 
 
 
저 멀리 뭔가가 보입니다.
 
 
스윽..
 
 
 
스윽..
 
 
 
옆에 있는 펜션인지 뭔지 모를 건물보다 더 큰...
 
 
 
스윽..
 
 
검은 후드 망토를 둘러쓴듯한, 정말 기괴한 모습이었습니다.
 
 
검은 팔과 다리가 삐죽하니 망토 바깥으로 나와있는데
 
 
 
 
 
"나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건 정말 무서운거구나 하는 생각에 몸이 떨려왔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저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모습이
 
 
 
흡사 내 목숨을 가지러 온 저승사자 같았고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기괴한 모습이
 
 
 
정말 두려웠습니다.
 
 
 
 
차를 멈춰야 하지만
 
몸이 굳어있어 엑셀에서 발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냥 한없이 그 커다란 그.... 무엇인가의 앞으로 저는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제 옆에 있는 제 여자친구가
 
 
내 눈 앞에 있는 저 비정상적인 거대한 .. 무엇인가보다
 
 
 
더 무서울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차에선 여전히 스윽... 스윽.. 쇠 갈리는 소리가 났고
 
 
 
 
목이 말라 붙었는지 목에서 쇳소리를 내며
 
여자친구를 불렀습니다.
 
 
 
 
 
 
 
저것 좀 봐.. 저것 좀...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저것 좀 봐달라는 말이었지만
 
 
말라 붙은 목에서는 끄어..하는 소리만 나왔습니다.
 
 
 
 
눈 앞에 저건 뭔지도 모르겠고
 
쇠가 갈리는 스윽 스윽하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더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고개도 못돌리고 굳어있는데
 
여자친구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저에게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가까스로 시야 바깥에 여자친구가 움직이는걸 볼 수 있었습니다.
 
제 귀에 속삭이더군요.
 
 
 
 
 
 
 
"저걸 이제 봤어?"
 
 
 
 
 
그와 동시에...
 
차 우측에서 뭔가가 뛰어드는게 보이더라구요
 
 
 
자세히 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그 거대한.. 검은 무엇인가의 앞까지 달리고 있었고,
 
쇳소리는 카랑카랑 귀를 찢어대듯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하하..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 하얀... 보통 사람과 비슷한 크기였지만,
 
미쳐 볼 수 없던 그 것과 충돌했습니다.
 
 
 
 
 
엑셀에서 발을 떼고, 바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하얀.. 그 무엇인가는 제 차와 부딪혔고,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끼이익 하는 타이어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긴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차가 멈춰섰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울음이 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일은 겪어본적도,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볼수도, 들을수도 없었습니다. 목은 여전히 막혀있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무엇인가가 내 눈 앞에 있을테고,
 
 
귓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막이 가득했죠.
 
 
날 찢어 삼킬듯 울려대던 쇳소리도 잠잠해졌습니다.
 
 
 
 
너무 무서워 아이처럼 울기만 했습니다.
 
 
아니, 아이만도 못했지요. 저는 그냥 무서워서 울기만 했습니다.
 
 
 
평생 뭔가를 무섭다고, 두렵다고 생각해본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건, 내 눈 앞에 있는 저건.. 저를 좌절시켰습니다.
 
 
 
정말 거대한 두려움을 직면하니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니, 감정이 좀 가라앉는게 느껴졌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울먹이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밤 공기가 차갑게 내려왔고, 무슨 용기인지.. 눈물을 닦으며 앞을 쳐다봤습니다.
 
 
그래, 차라리 죽여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하, 정말.. 정말 눈 앞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들 정도로 거대했던 그 새카만 무엇인가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차 안을 봤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없습니다. 분명 제 옆에서 고개 숙이고 핸드폰만 보고있던 그 여자친구가 없어졌습니다.
 
 
 
 
 
이건 뭔가 하는 생각은 둘째치고,
 
 
무섭기만 했습니다.
 
 
 
 
그럼 차와 부딪힌 그 하얀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차 우측으로 갔습니다.
 
 
 
거기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시 튕겨 나간건가 하고 샅샅히 뒤져 봤습니다.
 
 
혹시라도 사람을 친거면.. 정말 큰일이니, 정말 샅샅히 뒤져봤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곳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길가로 차를 옮겨놓고 해가 뜰때까지 고개 푹 숙이고 가만히 있다가 해가 떠서야 그 곳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여자친구요?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집에서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진짜 한동안은 여자친구를 믿을 수가 없었죠..--;; 끔찍한 나날이었습니다.
 
차는 오른쪽 범퍼와 오른쪽 안개등, 오른쪽 라이트와 오른쪽 본넷이 망가졌습니다.
제 몸처럼... 오른쪽만 망가졌더라구요.. 수리하고 바로 팔았습니다. 무서워서 못타겠더라구요.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저는 제 옆에 탄게 무엇이었는지, 그 까만것과 하얀것은 무엇이었는지
그 쇳소리는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뇌경색은 이후 오진으로 밝혀졌습니다. 아오 돌팔이-..-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