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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숫자.
게시물ID : panic_885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aha1
추천 : 18
조회수 : 11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6/15 14: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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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는 술을 들이켰다. 이미 술기운이 그득히 올라왔는지 중얼거리는 말에서도 마치 술냄새가 나는 듯 하다. 다시 독한 위스키를 들이킨 그는 다시 잔을 채우며 중얼거린다.
 

"숫자. 크큭.. 그따위 숫자. 말은 참 쉽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술을 들이킨다. 어느덧 독한 술병의 술은 반절이 채 남지 않았다.
 

"어떤 계집은 자기나 도망칠 것이지, 굳이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내려가선 홀어머니와 어린 여동생만을 남겨버렸어. 멍청하게 말이지.. 큭큭. 누군가의 아들이며, 어떤 동생의 형이고, 지긋한 어느 어르신의 귀여운 손자이자, 내 제자였던 그 아이는 서둘러 내밀었던 로프를 잡지 못하고, 기우뚱 하며 선실로 떨어졌었고. 어떤 멍청한 자식은 자기가 수영을 좀 잘 한다며, 자기 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도로 선실로 내려갔지. 결국 지금은 향초 냄새나 맡고 있을테지만 말야. 크큭.. 멍청한 자식들..“
 

묵묵히 잔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묻는다.
"그래도.. 멍청하다고 욕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는 술병을 기울이다 말고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멍청한거지. 멍청한거야. 내가 눈앞에서 잡지 못한 손이 3개라고. 그때 차라리 날 밀어넣고 살아났어야지. 어린것들이 영웅심리만 있어가지고... 멍청한 것들.. 크큭 “
 

바텐더는 다시 그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긴. 어떻게보면 그녀석들이 현명한 걸지도 모르겠어. 적어도 이런 지옥에서 탈출한 거 잖냐? “
 

"병신같은 미디어에선 삼백여명이 죽은 사고였다고 기록하겠지. '겨우' 삼백 명 말이야. 숫자가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 그 어린 것들의 절망, 희망, 누군가의 아들과 이름은 다 잊혀지고 어느새 300여명이란걸로 퉁쳐 버린단 말야. 멍청한 대중들은 그냥 그때 300명정도가 죽었구나 하고 말지. 그리고 꽤나 힘쓴다는 작자들은 그 위에 더 큰 숫자를 엎어버려. 1명당 1억9천만이니뭐니.. 그건 다 속임수야! 끔찍하고 안타까운것들을 다 덮어버리려는 속임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속에서,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 하루동안 천천히 질식해 죽어나갔다고 하면 끔찍하지만, 단순히 300여명이 죽었다 해버리고 말거든.“
 

술을 더 따르려던 그의 손은 술기운 때문인지 헛손질을 한다. 결국 그의 손은 옆의 빈병을 건드려버렸고, 빈병은 굴러가다 바닥으로 떨어지며 큰 소리로 깨져 버렸다. 하지만 그는 병이 깨지는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른다.
 

"300여명이 아니라 295명이야!!! 병신들.. 제대로 기억하라고! 단지 295명이 죽은게 아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괴롭게 몸부림치다가 질식해 죽은거라고. 이제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어린것들이 부모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울부짖으며 생을 마감한거라고,!! 그렇게 끔찍하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무려 이백구십오명이나 된다고!!!"
서슬 퍼렇게 울부짖는 그를보고 바텐더는 흠칫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혹여나 불똥이 튈까 조심스레 깨진 병을 치우기 위해 돌아나왔다. 그는 남은 술을 병채 잡고 들이킨 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빌어먹을... 그때 선실 창에 매달리는게 아니었어... 그 너머를 보고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그게 미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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