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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스압] 등대 18화
게시물ID : panic_88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염의포르테
추천 : 11
조회수 : 91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6/15 20: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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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http://todayhumor.com/?panic_88291

1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2

2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3

3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8

4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19
5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24
6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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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97

13화.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63172

14화.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63615

15화. http://todayhumor.com/?panic_88539

16화. http://todayhumor.com/?panic_88543

17화. http://todayhumor.com/?panic_88557



전태성 

--------

 

타닥!

“큭!”

뭐지? 귀가... 저릿한 느낌이었다. 나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귀를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귀가 저릿거리지만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앞에 사람이 보인다. 실루엣이 하늘이인 것 같았다. 언제 여기로 온 거지?

귓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하늘이의 말에 그 소리가 묻혔다.

“자. 일어나요.”

“으...”

“보여줄 게 있어요. 따라와요.”

하늘이가 귀를 잡고 있던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거지? 하늘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하늘이를 따라서 밖으로 나간다. ‘3-3’을 지나 문을 열고 방밖으로.

다른 사람들도 귀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하나 둘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1층의 처형대에 저번과 같은 참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차마 시선을 내리지 못하고 다른 곳만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귓가를 스치는 목소리와 함께 거친 쇳소리가 울렸다. 신음성과 같은 소리가 들리고, 위에서 누군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바라보니 이호철이 달려오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나를 밀치고 지나쳤다. 뭐가 저렇게 급한 거지? 이호철이 순식간에 2층을 지나쳐 1층으로 뛰어 내려가다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계단에서 굴렀다. 그러나 이호철은 엄청 아파 보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일어나 처형대로 다가갔다.

나는 그 때가 되서야 처형대를 보았다. 거기에는 김재영이 묶인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 내 눈에 보인 것은 순식간에 그 상황을 이해시켰다. 그것은 김재영의 팔과 다리가 살갗이 천천히 갈라지는 모습이었다.

이호철과 김주성이 처형대에 매달려보지만 소용없었다. 김재영은 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점점 더 벌어지더니, 결국 끔찍한 소리와 함께 팔이 먼저 뜯겨져 나가고, 이윽고 다리마저 떨어져나간다. 김재영은 그 고통에 쇼크사한 듯 비명마저 지르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에 경악하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하늘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깨웠던 스파크 소리가 귓속에서 다시 한 번 울리며 기절하고 말았다.

 

......

“으음... 오빠?”

“으... 크윽.”

나는 정신이 들자마자 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귀를 쥐었다. 귓속에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눈 앞에서 하늘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일어났어요?”

“어. 그래......”

제기랄. 무슨 일이지? 귀가. 귀가 너무 뜨거웠다. 정신이 없어다. 몸 이곳저곳이 쑤시기도 하고 머리도 어지러운 느낌이다. 내가 뭘하고 있었던 거지? 여기서? 나는 옆에 있는 난간을 짚고서는 간신히 일어섰다. 서서히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뚜렷해진다. 언뜻 시야에 검붉은 것이 비쳤다.

.......

!

“악!”

나는 그대로 하늘이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하늘이가 벽에 부딪치며 신음을 내뱉었지만,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으... 아프잖아요!”

“도대체 왜 이런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하늘이에게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이런 나의 말에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표정으로 싸늘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설마 제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나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뭣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는 거냐고!”

하늘이는 악에 받친 내 목소리에도 오히려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알고 있었잖아요? 제가 이럴 거라는 걸요. 아닌가요? 아니면 이렇게 눈앞에서 사람이 처참하게 죽은 게 문제인가요? 웃기네요. 어떻게 죽든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요.”

“닥쳐!”

하늘이의 말을 듣던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늘이를 쥐고 흔들었다. 하늘이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신음성을 뱉었다.

“윽. 회피하지 마요. 결국엔 오빠도 알고 있었어요. 오늘도 누군가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런데, 막을 방법을 아는데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았다면 저 사람이 저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도! 그런데도 막지 않았던 건 오빠였잖아요? 오빠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결국엔 오빠가 죽인 거랑 다름없다고요!”

“아냐. 아냐. 아니라고!”

“아뇨. 오빠가 김재영을 죽인 거예요.”

내가 하늘이의 말을 부정하려 하자. 하늘이가 내 말을 끊고 단정 짓듯이 말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온 몸에 힘이 풀려 손을 놓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죽였다고? 내 탓인가? 내가 하늘이를 막지 못해서? 내가 하늘이를 막지 못해서 김재영을 죽어버리고 만 건가? 내가 하늘이를 막았다면 김재영은 죽지 않았을까.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다. 내 탓이 아니다. 하늘이에게 말려들면 안 된다. 하늘이를 막는다는 건 곧 하늘이를 죽여야 다는 것이다. 살인으로 살인을 막는 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침착해져라.

....... 하나만 묻자.”

“뭐죠?”

“왜. 도대체 왜! 그 장면을 우리한테 보여준 거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오빠한테도. 이호철한테도.” “......”

“이제 좀 진정 됐나요?”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호철한테도...

하늘이는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진정이 됐으면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요. 저를 죽이려면 확실하게 죽이던가, 그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요.”

-.

하늘이는 싸이렌 소리와 함께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며 불평하 듯 말했다.

... 누구는 누가 할 일까지 대신 해주는데 말이죠...”

그 뒷말은 싸이렌 소리에 묻혔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누군 누가 할일까지 대신한다고? 그건 무슨 뜻이지? 내가 해야하는 이릉ㄹ 하늘이가 대신했다는 뜻인가? 무슨 일을 이야기하는 거지? 설마. 김재영을 죽인 일을 말하는 건가? 나하고 이호철을 따로 언급한 이유는? 김주성과 한지혜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젠장. 그러고 보니 어제의 일기장도 아직 제대로 묻지 못했다. 일단은 따라서 내려 가야하나. 권총은 ‘3-4’에 내버려두어도 되려나ㅣ. 어젯밤에 대충 숨겨놓긴 했지만... 괜찮겠지.

더 이상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짜증나게 느껴졌기에 될대로 되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2층의 난간에서 한지혜가 난간을 짚고 구토하는 것이 보인다. 하긴 저런 광경을 본다면...

오히려 지금 내가 너무 침착한 건 아닐까. 하늘이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은 복잡해졌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차가워진 기분이었다. 무감각해진 기분이었다.

“아악!”

1층 중앙에서 들린 비명소리에서 놀라 고개를 돌리니 김주성이 이호철의 손을 잡고 무언가 하고 있었다. 이호철이 몸을 비트는 모습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갔다. 이호철은 왼손으로 한층 부어 오른 오른손을 쥔 채 김주성의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 날 보더니 재빠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다급해보이기까지 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왼손을 나에게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했지만, 일단 그의 요구에 따라 손을 내밀었다. 이호철은 왼손으로 내 손을 잡고는 손바닥과 손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당혹스러워하며 내 손을 놓았다. 나는 그런 그의 언동에 의구심을 느끼고는 시선을 내려 내 손을 자세히 보았다.

분명히 어느 특별한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손일 것이다. 오늘도 아직 저 참상에 다가가지도 않았으니,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은 이런 내 생각을 배신하고, 이호철이 만져서 묻을 피를 제외하고도, 반짝이는 분홍색의 자국이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화장품인가? 내가 당황하는 사이 이호철은 하늘이에게도 다가가 손을 낚아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도 같은 자국이 보였다. 이호철도 그것을 본 건지 한층 더 당황해했다.

------- 

이호철

-------

“왜 내 손에... 말도 안 되는...”

이러면 모든 사람의 손에 묻어있는 게 아닌가? 한지혜한테도 분명 묻어있을 것이다. 분명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을 것을 확인했는데...? 게다가 나는 이게 묻을 만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묻었다. 왜 이런 결과가 ... 설마 범인이 눈치 챈 건가? 아니, 눈치채 버렸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그 때 하늘이가 역으로 나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니... 아무것도.”

나는 당황해서 손을 잡아 빼며 하늘이에게 대답했다.

“그래요? 이 자국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 것 같았는데. 아닌가요?”

하늘이는 내 말에 의문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늘이의 손에도 똑같이 선명한 분홍빛의 자국.

“큭... 크흐흑. 크흐흐흑.”

제기랄. 나름 머리 좀 써본다고 한 짓이었는데. 결국엔 들킨 건가?

“하아...”

“괜찮습니까?”

내가 실성한 듯한 모습에 놀랐는지 전태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전태성한테까지 이런 소리를 듣다니, 꼴이 말이 아닌가 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옷과 머리카락, 몸까지 피로 목욕한 듯 피범벅이고, 왼팔과 오른손도 퉁퉁 부어올라 있는데, 거기에 실성한 듯 웃어대기까지 하니,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도 모른다.

“괜찮습니다. 그냥 좀 힘들어서... 좀 씻고 와도 되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대답하고는, 전태성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샤워실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를 안쓰럽게, 걱정하듯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의심의 눈초리로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시선에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으나, 애써 무시하며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실 안에 들어온 나는 피범벅이 되어 굳어가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왼손 만을 이용해 간신히 옷을 벗었다. 피와 함께 굳어버린 옷이 쩍쩍 소리를 내면서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나는 벗어버린 옷을 왼손에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피범벅이 되어있는 옷가지에 물을 틀어놓고, 다른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투명했던 물이 내 머리 위에 쏟아지며, 붉게 물들어 핏물이 되어 쏟아진다. 몸에 있는 핏자국이 조금씩 옅어진다. 오른손 손바닥으로 몸을 비비니 붉은 가루들이 떨어져나간다. 오른손으로 머리에서 쏟아지는 핏물을 살짝 받아 보다가 분홍색 자국이 눈에 뜨였다.

이걸로 범인을 잡아내 보려고 한지혜와 밖에서 필담까지 벌이며 화장품을 빌렸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내 예상과 달리 CCTV라도 있어서 내 행동이 들킨 건지, 아니면 그냥 재수 없게 문손잡이에 발라 놓았던 게 걸린 건지, 오히려 범인에게 농락당했다.

나는 고통을 무릅쓰고 신경질적으로 손을 비벼 그 자국을 지워버렸다.

“크흑. 젠장.”

이제 어쩌지. 별다를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전태성? 김주성?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나처럼 피범벅이 되어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김주성이었다.

김주성이 옷을 대충 벗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옆으로 와 샤워기를 틀었다. 물 흐르는 소리만 쏴아아아 울렸다. 조금 더 물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김주성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아무것도 모를테지만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이 저도 모르게 찔리는 탓일 것이다. 나는 몸을 빠르게 씻어내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물을 잠그려 손을 뻗었다. 그 때 김주성이 입을 열었다.

“자네.”

“예? . . ... 그러십니까?”

“이 자국 자네가 한 건가?”

... 아닙니다.”

저건 범인이 한 짓이었다.

“그런가?”

김주성이 내 말에 살짝 아쉬운 눈치였다. 나에게 더 이상 물어보려는 기색도 없었다. 차라리 나한테 물어서 실패를 질책했다면 마음이 편할텐데... 어차피 이미 실패한 것 말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군...”

“그....... 그건 범인이 한 짓일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김주성이 살짝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모두가 모르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범인 뿐일 테니까.

“사실 제가... 어제 한지혜한테서 화장품 하나를 빌려서 자기 직전에 모든 문고리 아래쪽에 묻혀 놨었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범인이 다른 방에 들어가려 했다면 묻을 수 있게요.”

“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범인에게 들켰는지 모든 사람의 손에 그게 묻어 있더군요. 저까지도.”

“그래서 그랬었군. 아까는.”

“예...”

“알겠네.”

김주성은 별다른 말없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질책도 없었고, 다른 말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인 후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게 끝입니까?”

“뭐가 말인가?”

“질책이라던가 그런...”

“자네가 그런 생각을 할 대 나는 아무것도 못했는데, 자네를 왜 질책하겠나. 아무튼 고생했네. 범인을 못 잡은 건 아쉽지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예...”

그는 오히려 나를 격려하듯 말했다.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김주성을 뒤로 하고 원래 입었었던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대충 얼어 놨었기에 덜 마른 느낌이었지만, 이 정도도 입고있던 옷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밖에는 아직 김재영의 시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한지혜가 토했던 자국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치울 엄두도 못 낸 걸까. 저렇게 내버려둘 수만도 없는데.

아니, 일단 다들 어디로 간 거지? 한지혜는? 일단 걱정스러운 것은 그녀였다. 어차피 전태성과 하늘이는 아마도 같이 있을 테니, 한지혜가 2층의 앞에 토사물이 흔적이 있는 방 ‘2-1’에 있었다. 지금도 저기에 있으려나.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2-1’의 문 앞에 서자, 안에서 말하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나는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방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들리는 한지혜의 말에 발을 멈췄다.

“나가요.”

...”

침대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얼굴도 무릎에 파묻고는 이쪽을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나와 그녀 사이에 벽 하나가 세워져 있는, 단절된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한걸음 더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

내 말에 한지혜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생기를 잃어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마치 모형으로 만든 듯한 무기질처럼 느껴지는 두 눈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그 두 눈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정말로 나를 바라보기는 하는 건지 의심될 정도였다.

“괜찮아요?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이제 그녀와 불과 서너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거리감은 수십 걸음처럼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더 이상하겠지만... 달리 그녀에게 건넬 말이 없었다.

내가 한걸음 더 다가가려하자. 한지혜가 입을 열었다.

“나가라고요.”

그녀의 두 눈이 나를 바라보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를 너머 더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냥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노려보는 것보다 소름 돋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한걸음 더 내딛으며 말했다.

“몰라...”

?

“네?”

그녀가 나의 당황 어린 반문에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소리쳤다.

“모른다고!”

어느새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어... 그게...”

“모른다니까!”

그녀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일어나 나에게 한걸음 걸어오며 말했다.

“모른다고. ?”

한지혜는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죽어버린 눈으로 내 가슴 어림으로 시선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 나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지만, 내가 물러서는 것을 본 한지혜가 한걸음 더 다가와 내 가슴에 손가락을 올려 밀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가라고 했잖아...”

나는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움츠리 듯 한걸음 더 물러섰다. 그녀는 더 다가오지 않고, 자리에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올려 말했다.

“어떻게 할 거냐고...?”

그녀와 내 눈이 다시 한 번 마주치지만, 여전히 그녀는 다른 곳을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이대로면... 전부 다 죽어버리잖아...”

“아뇨... 그건...”

“그럴 거라면....... 차라리...”

그녀가 비틀거리며 한발 한 발 다가온다. 나도 그녀가 한걸음씩 다가옴에 따라서 한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차라리... 차라리.......”

한걸음. 한걸음.

.

뒤로 한걸음씩 물러나다가 뒤꿈치와 등이 벽에 부딪혀 멈춰버렸다.

“차라리...”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한지혜가 계속 다가왔다. 한지혜가 멈춰 섰다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차라리 전부 죽여버리면 살 수 있을 텐데... 안 그래요?”

한지혜의 두 눈이 어느새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지혜는 광기로 가득 찬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펜의 날카로운 끝부분이 내 왼쪽 눈동자 앞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하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팔을 막는 게 늦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아닌... 가요?”

대답하지 않는 나에게 한지혜가 다시 한 번 동의를 구했다. 여자에게 무슨 힘이 있는 건지, 펜의 끝이 내 눈동자로 다가온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까 다친 것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탓인가? 어떻게 해야 되지? 한지혜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해야 했다. 모두를 죽여버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설득해야... 지금 그녀가 내 말을 듣기는 할까?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를 지금 그냥 떨쳐버리고 도망친다면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일단은 진정시켜야 한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고서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밀어냈다. 한지혜가 뒤로 밀려나 주춤거리는 틈에 바로 그녀에게 달려들어 넘어트렸다.

“컥.”

한지혜가 등을 바닥에 부딪치며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그녀를 몸무게로 찍어 눌러 제압한 채 소리쳤다.

“진정해요!”

“놔! 놓으라고!”

“정신 차려요!”

“놓으라고!”

내가 진정하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소용없이 그녀는 자기 멋대로 소리치며 버둥댄다. 나는 도저히 어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소리치며 무식하게 있는 힘껏 머리로 그녀의 머리를 박아버렸다.

“진정하라고!”

!

“악!”

“윽.”

서로의 비명이 교차했다. 나는 생각 외로 고통이 큰 탓에 그녀를 놓고 머리를 쥐었다. 머리가 띵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않았다. 그냥 아팠다. 내가 부딪칠 때 그녀도 발버둥 치면서 머리를 흔드는 탓에 너무 강하게 부딪쳐버렸다. 한쪽 눈을 살짝 뜨니 한지혜도 머리를 붙잡은 채 쓰러져 있었다. 나는 한지혜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양손을 붙잡았다.

“아윽! 죽어!”

“크흑.”

그녀가 몸부림 쳤다. 오른손의 손가락이 부러진 고통 탓에 그녀의 왼팔을 놓쳐버리고, 덩달아 오른팔도 놓쳤다. 몸을 그녀와 최대한 밀착하며 오른팔로 그녀의 왼팔을 짓누르고, 왼팔로 그녀의 상반신을 압박했다.

“죽어! 죽어! 죽어!”

그녀가 막무가내로 날뛰며 오른손을 휘두르는 탓에 그것을 피해 그녀의 몸을 짓누르며 최대한 고개를 숙여 그녀와 가까이 했다.

“죽어! 죽으라고! 죽으란 말야!”

! ! !

“컥. 진정해요! . 제발!”

옆구리에 한지혜가 휘두른 펜이 얇은 티셔츠를 뚫고 푹푹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입을 뚫고 나왔다. 몸에 힘이 급격히 빠져나갔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으며 왼팔로 그녀의 목을 눌렀다.

“죽어! ! 콜록! 콜록! 카악!”

!..... ! ....

그녀가 숨이 막혀 괴로운지 기침을 뱉으며, 점점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제발...... 진정해요.”

나는 그녀의 몸에서 완전히 힘이 빠져나간 후 그녀의 목을 누른 왼팔에 힘을 빼내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켁. 크윽... 죽으라고.... 크흐. 죽으란 말야.... 흐흑.... 콜록. 콜록. 흐흑.... 대체 왜. 나한테... 흐흑... . 이런 일이.... 으아앙...”

한지혜가 손에서 반쯤 부서져 나간 펜을 떨어트리고는 울먹였다. 눈물이 그녀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는 목 놓아 서럽게 울었다. 정말 울고 싶은 건 나인데. 피가 옆구리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등이 화끈했다.

하지만... 나만 힘든 건 아니다. 한지혜도 그리고 김주성도 그럴 것이다. 괜히 나 혼자 꽁해 있는다고 무언가 바뀌는 것도 없다. 혼자 자책할 필요도 없다. 결과적으로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한지혜의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그녀와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의 울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쳤다.

.... ? 그 호철씨! 옆구리에. . 피가!”

내 피가 내 옆구리를 타고 떨어져 그녀의 옷을 적시고 나서야 내가 피 흘리는 것을 알았는지, 한지혜가 놀라 소리친다. 자기가 해놓고 기억도 못하는 건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 하아. 됐고, 이제 좀 괜찮아졌습니까?”

“네...... 근데... 피가!”

“누가 그랬는데요?”

“네? ... . !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제가 왜... 내가 왜... 왜 그랬지? 정말... 미안해요....”

한지혜가 내 말에 당황하더니, 이제야 기억난 건지 황급히 사과하며 혼란스러워 했다. 딱히 사과 받으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지혜도 진정했으니까 괜찮겠지.

“됐어요. 괜찮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지혜의 위에서 몸을 비켜 한지혜의 옆으로 털썩 누웠다.

“큭”

“괜찮아요?”

“예.” 딱딱한 바닥이 상처에 닿아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네?”

한지혜의 오른손에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플라스틱 조각이 손에 박혀있었다. 펜을 휘두르다가 저렇게 된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 펜의 조각을 파편을 빼냈다.

“아윽. 아야!”

“됐어요.”

파편을 다 빼낸 후, 다시 바닥에 누우면 상처가 바닥에 닿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침대에 기댔다. 그러자 한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어제 그건 어떻게 됐어요?”

“아. 그건...... 실패했습니다. 범인에게 들킨 모양이더군요.”

“그런가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범인을 빨리 찾아야하는데. 어제의 그 시도는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여기 가만히 멈춰 있으면 안 되었다. 솜에 젖은 듯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직 김재영의 시체도... 치우지 못했다. 그것도 치워야 했다.

“저는 김재영의 시신을 치우려고 하는 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 ... 저도 갈게요.”

한지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내키지 않는 듯 했다. 그런데도 승낙한 이유는 아마 나에 대한 미안함 이거나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일수도 있고, 하지만 따로 말리지는 않았다. 그녀도 따라오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물론 나도 그렇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슬리퍼를 신은 발소리가 나를 뒤따른다. 밖으로 나가자 시큼한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고, 이내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마비시켰다. 토할 것 같았다. 뭐부터 해야 하지? 아래쪽엔 토한 자국이 보였다. 한지혜가 토한 흔적이 보였다. 한지혜가 토한 흔적이었다. 이것도 치워야 하나.

털썩.

아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김재영의 팔다리, 그리고 그의 몸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김주성이 그것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한번 씻었음에도 그것을 치우는 탓에 양팔이 다시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는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쪼그려 앉아 처형대를 살피고 있었다. 처형대의 구석구석 그리고 김재영의 몸도 구석구석 살핀다. 그가 무엇을 알기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우리가 1층에 도착하자,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납득이 간다는 듯이.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를 돕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김주성은 우리가 대여섯 걸음 지척에 오고서야 눈치를 챈 듯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왔는가?”

“예. 저도 돕겠습...”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다가 물을 삼켰다. 시체 냄새가 순간적으로 파고들며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김주성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 다네. 그것보다 자네 그 핏자국은 뭔가?”

김주성이 내 왼쪽 옆구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지혜가 볼펜으로 내려찍었던 곳이었다.

“좀 오해가 있었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그런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아니면 여기 이거라도 돕겠습니다.”

“아니, 도움은 나보다는 자네 뒤쪽이 절실해 보이는군. 잠시 밖에. 그래. 오늘 아침이라도 가져 오게나.”

김주성이 나 뒤의 한지혜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지혜와 나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내 상처에 대해 더 언급하지 않은 것도 배려한 것이겠지. 솔직히 나도 그것을 직접 치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라고 그것을 치우고 싶을까? 아니다. 그도 역겹고 거북한 기분일 것이다. 그의 배려를 받아들이고 싶지만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엔 미안했다.

“그 저라도... ?”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려 했지만, 뒤에서 옷깃을 잡아당기는 감각에 멍한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한지혜가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내 옷깃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대신해서 말하고 있었다. 두렵다고, 혼자는 무섭다고, 김주성의 배려를 받아들여서 같이 밖에 나가자고.

“자. . 사양 말고 갔다오게나. 금방 끝날 거라네. 나 혼자서라도.”

....”

한지혜의 얼굴에서 김주성의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날 보고 있었다. 왠지 조금은 거짓된 가식적인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느낌... 한지혜가 뒤에서 옷깃을 잡아당긴다.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다녀오도록 하죠.”

“천천히 오게나.”

나는 망설여지는 발걸음을 천천히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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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많네여 ㄷㄷ.

아마 에필로그까지 5화? 6화정도 걸릴거같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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