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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 프랑스 혁명 역사 중심 감상
게시물ID : movie_339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울리비
추천 : 1
조회수 : 234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9/27 21:44:08
뮤지컬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의 공연을 촬영한 3D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프랑스 혁명 역사의 요소들을 최대한 찾아본 것인데, 다분히 확대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ㅋㅋ 쓰고 보니 영화 감상문 같기도 하고 역사 서술(별로 깊지는 않은) 같기도 하고 애매한 성격의 글이군요. 죄송합니다^^;;
 

 
현재 극장 상영 중인 뮤지컬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원제 “1789: Les Amants de la Bastille”)의 공연실황 3D 영화는 “18세기, 혁명 속에 피어난 불멸의 사랑!”을 포스터의 메인 문구로 써놓고 주인공도 두 연인, 귀족 출신에 왕실 가정교사인 올람프(Olympe)와 빈농 출신 혁명가인 로낭(Ronan)이지만, 사실 이 뮤지컬의 진짜 주인공은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웅장한 군무와 앙상블, 무대효과를 통해 ‘민중의 움직임’으로서 표현함으로써,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야 했는지를 감정을 격렬하게 건드리며 말한다.

다만 프랑스 혁명의 정당성을 말하다보니, 그 시대의 역사를 정확히 옮기기 보다는 혁명에 유리한 쪽으로 단순화한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이 많고 역사 왜곡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특히 프랑스 혁명에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이 뮤지컬이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이 아주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혁명 직전보다 더 광범위한 시대의 전체적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

"Je mise tout" : 무료한 궁정 생활을 무도회와 도박으로 허비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스러움을 표현한 곡.
Je mise tout.jpg
(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이 뮤지컬에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국왕 루이 16세는 프랑스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아랑곳 않고 생각 없이 사치를 부리며 놀기만 하는 인물들로 다소 왜곡되고 희화화된다. 이 국왕 부부,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는 당시 혁명파의 왜곡비하가 심했다는 것이 후일에 밝혀지며 재평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대 혁명파는 궁정의 사치의 주범을 왕비로 지목하고 ‘적자 부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조롱했지만, 왕비는 역대 다른 왕비에 비해 적은 비용을 썼고, 자신에게 할당된 예산보다 더 적게 사용했다. 당대 혁명파는 왕비가 무능하고 순진한 국왕을 쥐고 흔드며 국왕의 반혁명적 행보를 조종한다고 선전했지만, 국왕은 왕비나 다른 측근들에게 휘둘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왕권을 지키고자 했다. 왕비는 친절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백성을 생각했다. 구황작물인 감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감자꽃을 꽂고 파티에 참석했다고도 한다. 당시 혁명파는 혁명을 정당화하고 옛 체제를 악마화하기 위해, 국민감정이 안 좋던 옛 적국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를 대표 삼아 그녀에게 온갖 중상을 가했다. 그런 왜곡에 가려진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한 인간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재평가가 지나쳐서 왕비를 간악한 혁명파에게 희생당한 순수한 희생양으로 본다면 그것도 균형을 잃은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후에는 훨씬 검소해졌지만, 초기에는 "Je mise tout"에서 표현하는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도박을 하고, 베르사유 궁에서 화려한 파티를 열고, 폴리냑 부인을 비롯한 소수 친구들에게 과한 연금을 주었다. 궁정의 사치 자체보다 하인들이 꾸며내는 돈 문제와 연금과 증여, 공직에 대한 급여와 직위와 관련된 이권의 투기적 재판매, 재정적 책략 등 주변의 문제가 더 심각했다. 궁정의 옷감과 의상 비용으로 일 년에 십만 리브르를 받던 의복 담당 시녀는 유행이 지나 폐기처분된 옷을 팔아 자기가 챙기곤 했다. 궁정은 국고의 6%를 지출했는데, 일부는 필수적이고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지출이었고 나머지를 줄인다고 재정적자가 해결될 수는 없었지만, 적극적인 절약의지를 보였다면 심리적‧정치적 분위기는 쇄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굴욕적인 부부 생활을 7년 동안이나 계속하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쾌락에 몸을 던졌다. 베르사유 궁에서 대향연을 베푸는 대신 프티 트리아농이라는 작은 별장의 소규모 회합으로 옮긴 것도, 지루해 하거나 남을 지루하게 하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궁정 조신들이 제외되게 만들어 그들이 왕비의 적이 되게 만들었으니 정치적으로는 실책이었다. 당대의 중상처럼 왕비가 왕을 쥐고 흔든 것은 아니지만, 1781년 네케르 재무장관을 해임할 때(이 뮤지컬에 나오는 1789년이 아니라)와 1787년 칼론느 재무장관을 해임할 때 영향력을 행사했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될 때 친정인 오스트리아 편을 들며, 어머니 마리 테레즈와 이후 오빠 요제프 2세의 충실한 정보원 노릇을 했다.

"La sentence"와 "Hey Ha" 사이, 삼부회 시작 장면 : 재정 위기를 해결하고 앙시앵 레짐의 모순을 개혁하기 위해 제1신분 성직자, 제2신분 귀족, 제3신분 평민의 대표들의 회의인 삼부회가 시작되지만 루이 16세는 도통 관심이 없고 놀려고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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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왼쪽은 루이 16세, 오른쪽은 재무총감 자크 네케르.)
 
이 뮤지컬에서 루이 16세는 지극히 무능하고 생각 없는 모습을 보인다. "Je mise tout"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생각 없이 사치를 즐기고, 삼부회를 앞두고는 지루하다고 징징거리고 왕이니까 맘대로 할 거라며 삼부회를 놀이판으로 만든다. 그러나 실제 루이 16세는 간혹 자문회의 중에 졸기는 했지만 정치적 감각이 없지 않았다. 재위 초 2년간 튀르고를 인정하고 지지했으며 1787년 위기가 급박해졌을 때 칼론느의 세제 개혁안에 동의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어느 정도는 맞출 줄 알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자기 귀족’의 반격에 직면했을 때 양보하고 말았다. 삼부회가 제3신분 평민과 나머지 두 특권계급의 대립으로 인해 파행으로 치닫고 제3신분이 ‘국민의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 의회를 선언한 뒤 1789년 6월 23일 친림회의에서, 조세의 평등과 여러 개인적 자유는 받아들이되 공직의 개방과 머릿수 투표(각주)는 거부하고 봉건제도 유지한다며 귀족들이 바라는 것과 같은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했다.

루이 16세는 결코 생각 없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펴려고 이래저래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 이후 혁명의 방해물로 간주되어 처형되는 원인이 되었다. 1789년 7월에 국민의회를 인정하면서도 외국 용병들을 비롯한 군대를 파리로 집결시킨 것은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의 원인이 되었으며, 1789년 9월에 인권선언의 재가를 거부하며 국경에 있던 플랑드르 연대를 베르사유로 불러들인 것은 10월 5일과 6일 가난한 여인들이 왕실가족을 파리의 튈르리 궁으로 끌고 온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의 원인이 되었다. 외국 군주들의 도움―혁명 프랑스 입장에서는 침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을 바라며 망명하려다가 국경 근처 마을 바렌느에서 붙잡힌 1791년 6월 20일 바렌느 탈주 사건은, 구체제를 되돌리려는 세력과 급진적 민중 세력 양자를 억누르는 유산자 중심 입헌군주정의 타협정책을 흔들리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국왕은 혁명전쟁 선포를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패배가 옛 체제의 부활을 부를 것이라는 기대에 부추겼고, 그 기대와는 반대로 패배가 위기의식과 궁정에 대한 불신을 격화시켜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습격이 일어났다. 이로써 왕실 가족이 탕플 탑이라는 감옥에 유폐되어 왕정이 사실상 폐지되고 프랑스 제1공화국이 성립했으며 루이 16세는 처형되기에 이르렀다. 루이 16세는 앙시앵 레짐 시절의 전제왕권을 되살리려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할 만큼 현명하고 줏대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했던 입헌군주정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고집스럽고 어리석었다. 혁명을 제압할 수는 없었고 혁명에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없었던 것이 그의 비극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루이 16세로서는 왕권은 신이 내린 것임이 당연한 진리이기에 왕권이 헌법과 국민주권에 의해 뒷받침되는 제한적 권력임을 거부하고 싶었던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고, 시대에 맞추어 생존을 모색하는 것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니. 그는 보통의 군주보다 크게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본격적인 군사적 진압을 하지 않을 만큼 우유부단한 선량함이 있었지만 상황이 그에게는 극히 나빴고, 어떤 상황에서든 체제를 지키지 못하면 그 체제와 함께 몰락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다.(그런 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래왔다는 사실 지적이다.) 그렇다 해도 옛 체제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출 수 없었던 것인데 국왕 부부를 비롯해 여러 귀족들과 혁명의 흐름에 반대했거나 그렇다고 오해받았던 개인들의 목숨이 그렇게 사라져야 했다는 것은 매우 개탄스럽다. 혁명이 인간 개개인의 침해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를 내세우며 시작되었는데 그에 모순된 유혈을 불렀기에 더더욱.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속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는 실존인물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역사 왜곡이라고까지는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혁명 전 특권층의 문제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형상화된 기호라고 본다. 궁정에서 벌어지는 왕실과 귀족의 사치는 실제로 당시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화려함만큼 눈에 잘 띄었기에 민중의 분노의 주된 표적이 되었다. 궁정에 모인 대(大)귀족들은 그들대로 사치를 즐기며 국고에서 어마어마한 연금을 받아가고, 지방의 소(小)귀족들도 그들대로 변하는 시대에 따라 영락해가는 만큼 영지의 농민들을 더욱 착취하면서, 귀족들은 하층 민중을 돌보지 않았고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삼부회가 소집되고 혁명이 시작된 것도, 국왕과 내각이 이미 모든 세금을 짊어지고 있는 평민 대신 귀족에게 과세하는 것만이 재정위기 극복의 유일한 방법이라 추진했는데, 귀족들도 과세를 받아들일 의향은 있으면서도 왕권을 흔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키우려는 속셈으로 과세에 저항하며 삼부회 소집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 삼부회에서 제3신분이 원래 목적인 과세 동의를 넘어서서 직업 선택의 자유 및 공직의 개방 등 신분적 특권의 폐지를 요구하며 귀족과 대립해서 국민의회가 성립하고 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후로도 귀족들은 혁명에 비타협적으로 굴어서, 영국 명예혁명처럼 온건 부르주아지가 기존 귀족과 적당히 권력을 나누고 혁명을 연착륙시킬 기회를 놓치고 과격 혁명파 하층민들의 경계심을 높여 몇 차례의 봉기를 유발함으로써, 혁명이 산악파의 집권과 공포정치에 이르게까지 급진화되게 만들었다. 이런 어리석음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뮤지컬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하다.

2. 민중
 
Le prologue : 로낭과 농민들이 국왕의 장교 라자르 드 페롤 백작(Lazare, comte de Peyrol)과 그 휘하 군인들에게 대항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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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이 뮤지컬의 주요인물 중 민중을 대변하는 캐릭터는 남주인공 로낭(Ronan)과 그 누나 솔렌(Solène)이다. 이들은 시골에 사는 가난한 농민이었다. 1788년 가뭄으로 흉작이 들어 세금을 낼 수 없게 되자 이 남매의 아버지가 항의했다가 탈세와 반역 혐의로 농지를 몰수당하고 강제노동형을 항소권도 없이 선고받자, 로낭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항의했는데 군대가 총을 쏘아 아버지가 죽고 말았다. 이에 로낭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땅을 찾아 돌아오겠다며 혁명의 기운이 일고 있던 수도 파리로 갔다. 그런데 로낭이 파리에서 데물랭 등과 혁명 활동을 하는 사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솔렌은 매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솔렌은 여성들을 규합하여 ‘여성들의 혁명’을 이끌며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게 된다.

앞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실제 그 인물이라기보다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형상화된 기호라고 했는데, 이 남매도 그 시대 민중들의 고통을 압축해 보여주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 시대의 여러 폐해가 이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당시 프랑스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부유했고, 몇 십 년 전의 프랑스보다 더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성장의 혜택은 차별적으로 돌아갔다. 물가 상승보다 임금 상승이 낮아 임금노동자의 생활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그 이상으로 소작료가 오르면서 토지 소유자와 지대를 받는 영주들이 주로 이익을 봤고, 한 해 농사지어 한 해 먹으면 남는 게 없는 소농들은 별 이익을 얻지 못했다. 앙시앵 레짐의 조세체계는 지극히 모순되어 부유하고 각종 신분적 특권을 누리는 성직자와 귀족은 면세 특권까지 누렸고 세금은 대부분 평민들이 부담했다. 더구나 할당제이거나 기타 징수과정에서 자의적일 수 있는 요소가 있어서 많은 직권 남용이 일어나 고통을 가중시켰다. 또한 지방의 소귀족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락해가는 만큼 지니고 있는 봉건적 특권을 악착같이 잡고 늘어져, 사문화되어 있던 각종 봉건적 세금을 되살려서 갈수록 영지의 농민들을 더 쥐어짰다. 이런 상황에서 1787년과 88년의 자연재해로 흉작이 들자, 수확이 괜찮을 때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던 소농들은 그나마도 못하게 되어 자기 땅을 팔거나 소작을 잃고 날품팔이 노동자나 부랑하는 걸인 등이 되었다. 로낭이 그러듯 국가나 영주에게 내는 세금에 항의하거나 식량을 요구하는 소요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 고향을 떠난 날품팔이나 부랑자들이 수도 파리로 몰려들자, 파리는 실업률 상승과 식량 부족으로 분위기가 흉흉해지며 혁명적 폭발력을 쌓게 되었다. 따라서 로낭과 솔렌 남매가 겪은 일은 흉작, 조세의 모순, 소농들의 몰락이라는 당대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Je veux le monde" : 굶주리고 피폐한 삶을 사는 여인들의 저항을 강렬하게 표현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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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홈페이지)
 
"Nous ne sommes" : 봉기하는 민중에게 복종하라고 경고하는 진압군과 굽히지 않겠다는 봉기자들의 대립을 표현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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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홈페이지)
 
이 뮤지컬에서는 민중들의 소요, 봉기를 정당한 것으로 표현하며 장엄하게 묘사한다. 처음에 로낭의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에 이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를 대비해 보여주며 민중들의 분노가 정당함을 강변한 뒤, "Je veux le monde"에서 솔렌과 여성동료들이 봉기하는 모습을 당당하고 멋지게 표현한다. 그리고 "Nous ne sommes"에서 7월 12일에 루이 15세 광장에서 벌어졌던 충돌을 다루며 궁정의 탄압과 그래도 꺾이지 않는 봉기자들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실제로는 바스티유 습격 직전 군사적 진압이 아주 본격적이지는 않았으며 그날 브로이(Broglie) 원수의 휘하에서 파리 군대를 지휘하는 브장발(Besenval)이 자신의 군대를 샹 드 마르스(마르스 광장)로 이동시킨 후 대기하고만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넘버 역시 역사를 정확히 옮긴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완성된 계획은 없었을지라도 충분히 있었던 무력진압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민중들의 반격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Maniaque" : 로낭이 바스티유 감옥에 끌려가 자신의 미칠 것 같은 복수심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를 역설하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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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이 뮤지컬에서 로낭이 정치범으로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지만, 실제 역사에서 바스티유 감옥은 이미 정치범 수용의 기능을 잃고 잡범 수명만 수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때 수많은 정치범들을 가두었던 탄압의 역사는 민중 사이에 구전되며 앙시앵 레짐의 무서운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파리 교외의 빈민 거주 지역으로 혁명 중 상퀼로트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생탕투안 포부르의 주민들에게, 자신들 근처에서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는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앙시앵 레짐의 형상화로 여겨져 1789년 7월 14일 그날 자연스럽게 공격 대상으로 떠올랐다. 물론 그곳에 화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기를 확보하려 했던 실용적 이유도 있었다.

이 뮤지컬이 민중봉기를 전적으로 긍정적으로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고통이 강조되며 민중이 단결해 봉기하는 장면이 멋있게 묘사되기에 놓치기 쉬울 수도 있지만, 민중봉기의 비이성적이고 무시무시한 측면도 아울러 다루고 있다. "Je veux le monde" 앞에서 솔렌과 여성동지들은 빵을 숨겨두었다가 가격이 오르면 팔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며 빵을 내놓으라고 빵 가게 주인을 협박하고, 그 넘버 중간에서는 가게에 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왕의 재무장관을 빼앗아 오면 된다며 베르사유 궁으로 행진한다. 실제 역사에서 1789년 10월 5~6일의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은 뚜렷한 정치적 기획 없이 무작정 베르사유 궁으로 쳐들어 간 것이었고, 곡물 부족이 민중들을 굶겨죽이기 위한 매점 매석 때문이라는 음모론은 1789년 초와 7월 14일의 바스티유 습격과 7월의 대공포와 이후 수많은 혁명적 소요를 낳고 자코뱅 혁명정부에 통제경제정책을 강요하며 혁명을 위태롭게 과격화시켰다. 그러나 이런 비이성적 분노가 무용했던 것은 아니며 도리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습격은 인권선언 재가를 거부하고 있던 국왕을 가장 혁명적인 민중 사이에 두어 인권선언과 이후 여타 혁명의회의 결정들을 재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매점 매석 음모론과 민중 소요들과 자코뱅의 통제경제정책은 대외전과 내전이 겹친 극심한 위기상황에서 민중 동원과 각종 물자 동원을 가능케 해 프랑스라는 국가 자체의 생존에 기여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참혹한 유혈과 희생을 동반했고 여러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부작용을 낳고 자코뱅과 상퀼로트 세력의 몰락을 불러왔다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귀족과 궁정의 비타협성과 그로 인해 퍼진 음모론과 경계심에, 국왕의 탈주와 혁명전쟁 등의 우연까지 겹쳐 민중의 폭력적 개입을 불렀고, 그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영국 명예혁명 같은 타협적이고 덜 유혈적인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급진과격화되었다. 이 뮤지컬에서 이런 이후 혁명 전개까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혁명 처음, 혁명 전부터 존재했던 민중의 ‘광기’에 대해 이 뮤지컬은 가장 큰 공을 들여 변호한다. "Maniaque"에서 복수심이 너를 망쳤다는 왕의 장교 라자르 드 페롤 백작의 노래에 대해, 로낭은 자신이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하면서도 꿈꾸는 것만으로도 즉시 해방된다며 그 광기를 자유와 동일시한다. 올람프의 악몽을 표현하는 "Je suis un dieu / Le cauchemar" 다음에, 자신과 함께 하자는 로낭에게 올람프가 ‘복수가 아닌 그냥 너를 원했다’며 자신은 그런 복수심이 두렵고 자신의 편인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자, 로낭은 자신의 증오는 ‘네 편이라는 그들이 내 삶을 짓밟고 내 가족을 학살할 때 태어났’다고 외치고 올람프를 떠나 혁명 속으로 뛰어든다. 봉기하는 민중의 비이성적 분노를 그 때까지 그들이 받은 압제와 착취의 탓으로 돌리고 그것이 해방의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강변하는 것이라고 본다.

솔렌을 위시한 하층 여성들의 봉기가 "Je veux le monde"의 빵 가게 습격과 직후 베르사유 궁으로의 행진으로 강렬하게 표현되며, "Je veux le monde"의 가사는 “나는 세상을 원해.”, “여성들이 지배하노라.”라며 페미니즘적 성격을 띤다. 이 뮤지컬은 프랑스 혁명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실제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들은 큰 역할을 했다. 1789년 10월 5~6일의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 여성인권선언을 쓴 올랭프 드 구주와 지롱드파에서 주도적이었던 롤랑 부인 등 부르주아 여성 혁명가들의 활동, ‘혁명적 공화파 여성시민 협회’를 비롯한 여성들의 민중클럽 활동, 의회나 자코뱅 클럽의 회의를 뜨개질을 하며 방청하다 고성과 환호로 의사결정에 개입하던 ‘뜨개질하는 여자들’들의 활동, 식량을 요구하는 봉기, 군 복무, 반혁명 봉기 참여까지. 법 제도도 진전이 있어, 1790년의 법률은 재산 상속이 남자 혈통만을 따라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명문화했고, 여성의 이혼권이 보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이었던 자코뱅파의 공포정치기에, 지롱드파에 속했던 올랭프 드 구주와 롤랑 부인은 여성이면서 정치에 나서서 자신의 성을 배반했다는 반여성주의적 공격을 받으며 처형당했고, 상퀼로트 운동에 속했던 여성클럽들도 여성들이 지나치게 충동에 휩싸인다는 공격을 받으며 자코뱅파의 과격파 탄압 과정에서 폐쇄되었고, 자코뱅 혁명정부는 대가족의 비유로 공화국의 단결을 요청하며 여성들의 역할을 가정 안의 보조적 역할로 한정하는 선전을 했고 여성의 직접적 정치 참여를 제한했다. 이런 와중에도 군에서 여성 전투원들은 남성과 같은 연금 배분을 받는 등 평등하게 취급받았고 여성 클럽 폐쇄 후 많은 여성들이 자코뱅 클럽에 가입하는 등 아예 여성들의 참여가 없었던 것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자코뱅 집권기에 반여성주의적 정책들이 많이 취해졌으며, 급기야 나폴레옹 민법전은 여성의 이혼권을 없애는 등 여성을 항구적인 미성년자로 규정해 가부장권의 지배하에 두었다. 프랑스 혁명 속의 여성주의는 혁명이 표출했으나 놓치고 만 여러 기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혁명 과정과 이후의 일이 이 뮤지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혁명의 시작 부분만 다루는 이 뮤지컬에서는 혁명이 해방한 무한한 가능성으로서 여성시민들의 부상이 표현된다. 이후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실현되지 못한 희망으로서 벅차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질 것이다.

3. 부르주아 혁명가들

"Hey ha" : 로베스피에르가 동지인 당통, 데물랭, 로낭과 함께 이제 혁명의 때가 왔다며 의지를 다지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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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A quoi tu danses?" : 왕정에 맞서서 민중에게 혁명을 촉구하는 로베스피에르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곡
A quoi tu danses.jpg
(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해당 넘버의 끝 부분 동영상)

이 뮤지컬에서 주조연급 등장인물로,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 중 가장 유명할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이 등장한다. 초기 지도자인 미라보도 등장하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테니스 코트의 선서와 1789년 6월 23일 친림회의에서의 총칼이 아니고는 국민의회를 해산시킬 수 없다는 선언, 1789년 인권선언의 전문 등 국민의회의 주요 선언을 하는 역할로 주변적으로만 등장한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정파들 중에서도 공포정치라는 무서운 이름과 결부된 자코뱅파(산악파)의 주요 인물들로 평가가 매우 분분하게 갈린다. 공포정치의 주도자인 로베스피에르는 말할 것도 없고, 당통과 데물랭은 그나마 말년에 공포정치를 반대한 관용파이지만 자코뱅파의 집권에 이르기까지의 급진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고 관용파로서의 행보도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된다.

이 뮤지컬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까지만 다루며 ― 1789년 8월 26일에 공포된 인권선언도 나오지만 사건 진행은 대략 거기까지다 ― 자코뱅파 혁명가들의 복합적인 면모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이 뮤지컬에서 이 실존 혁명가들은 "Au Palais royal / Les prostituées", "A quoi tu danses?", "Ça ira mon amour" 등의 넘버를 통해, 앙상블이나 댄서로 표현되는 민중과 어울리고 그들을 고무하고 이끄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자코뱅파가 민중의 정치 개입과 혁명의 급진화 과정에서 민중과 가장 가깝게 결합하여 가장 급진적인 국면을 이끈 정파이기는 하나, 이 뮤지컬이 그런 특수성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혁명 초기 하층 민중의 요구가 국민의회의 부르주아 혁명 주도자들의 요구와 크게 충돌하지 않고 그들이 함께 행동하던 것을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프랑스 혁명을 ― 적어도 의회의 공식정치를 ― 이끈 부르주아 혁명가들은 하층 민중과 결합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였다. 특히 자코뱅파는 가장 결합 ― 혹은 양보 ― 정도가 강하여 두드러지게, 민중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서도 그것을 탄압하는 마키아벨리적 혼합체의 면모를 보였다.

이 뮤지컬의 "Hey ha" 앞에서 이런 부르주아 혁명 지도자들과 민중 세력의 갈등 및 결합이 아주 분명하게는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장 폴 마라의 인쇄소에 로베스피에르가 찾아와 국민의회의 전언을 인쇄배포해달라고 하자, 로낭은 의회가 그렇게 말만 하는 사이 민중은 굶어죽을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왕이라도 끌어내릴 각오를 하고 싸워야 한다고 항의한다. 이에 데물랭이 농사꾼(paysan)의 망상이라고 비웃자 로낭이 화를 내 싸우고, 당통이 혁명은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며 말린다. 그래서 화해하지만 약간 찜찜함이 남는 억지 봉합에 가까워보인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가 ‘지금까지 억눌려 왔지만 이제는 저항할 것이고 영광의 날이 올 것’이라는 내용의 "Hey ha"를 부른다. 이번에 개봉한 실황영화와 그 전에 나왔지만 국내 정발은 안 된 DVD에서는 그런데, 2013년 11월부터 수정된 공연에서는 로베스피에르가 국민의회의 전언을 알리면서 짧게 "Hey ha"의 후렴을 부른 다음에, 로낭과 부르주아 혁명가들 간의 싸움이 일어난 후, 로낭의 솔로파트가 이제 말은 필요 없고 싸울 때가 왔다고 노래하며 시작해 모두가 함께 ‘저 끝까지 가기를 원한다’고 노래하는 "Pic et pic"이 나온다.

갈등은 그렇게 짧고 암시적으로 드러날 뿐 부르주아와 하층민을 아우르는 혁명파 전체의 단결이 주를 이룬다. "A quoi tu danses?"는 1789년 6월 20일에 국민의회 회의장이 폐쇄되자 테니스 코트(정구장, 구희장)에서 의원들이 모여 헌법이 반석 위에 설 때까지 해산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테니스 코트의 선서’와 6월 23일에 루이 16세가 국민의회의 해산을 명령했는데 불복을 선언한 친림회의를 표현한다. 이 넘버에서 국민의회의 진보파를 대표하는 로베스피에르는 허름한 차림의 민중들 사이에서 강렬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이제까지 우리 민중은 압제자들에게 조종당해왔다’는 것을 규탄하고 민중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 뮤지컬 공식 홈페이지의 인물 설명(링크)에서 로베스피에르는 제3신분 의원의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분파를 형상화한다고 나오고, 그 설명대로 이 뮤지컬 속 로베스피에르는 실존인물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옮기기보다는 급진적 혁명가의 전형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Hey ha"와 "A quoi tu danses?"에서 구체제를 신랄하게 규탄하며 단호한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공포정치나 기타 현실정치에서의 구체적 행보는 드러내지 않는다. 역시 실존인물인 당통과 데물랭도 구체적인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혁명가의 전형처럼 보인다. 당통이 "Au Palais royal"에서 팔레 루아얄의 하층민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나 "Hey ha" 앞에서 존중을 말하며 싸움을 말리는 모습 등에서 호탕하고 사교적이며 쾌락주의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상퀼로트와 교분을 나눈 초기 행보를 암시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한된 공연시간에 복합적인 실존인물을 다루기는 힘들 테고, 이렇게 전형으로 다루는 것이 프랑스 혁명의 한 측면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데에는 더 좋을 것 같다.

4. 그저 한 인간으로서

"La sentence" : 올람프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인 로낭을 사랑하게 된 고뇌를 표현하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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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당시 지배층의 전형으로, 로낭과 솔렌이 혁명적 민중의 전형으로, 데물랭과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부르주아 출신 혁명 지도자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혁명의 여러 측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면, 여주인공 올람프는 이런 진영 구분을 떠나 한 개인으로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 중의 여러 진영에서 한쪽에 속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지, 이런 대립 진영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은 또 다른 클리셰지만. 올람프는 귀족 출신에다 왕실 가정교사를 하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충성심을 품고 있었는데, 빈농 출신 혁명가인 로낭에게 한눈에 반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속해 있던 것을 배신해야 하나 갈등하게 된다. 로낭이 "La guerre pour se plaire"에서 반대 진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을 괴로워 하기는 하나, 확고한 혁명파로서 자기 진영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지는 않는 것과 대비된다. 올람프는 "La sentence"에서 “내게 내려진 판결은 나의 생각이 저지른 불경에 대한 대가”, “이 고통 속 내가 저지른 실수는 너를 바라본 것 뿐”이라고 노래하며 인간적 고뇌를 토로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조차 "Je vous rends mon âme"에서 “저는 단지 어머니이고 싶었습니다”라며 인간적 고통을 토로한다.

"Ça ira mon amour" : 데물랭의 혁명에 대한 열망을 연인에게 속삭이듯 표현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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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그러나 이 뮤지컬이 이런 개인적인 것과 혁명이라는 사회적인 것을 분리해서 다루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Ça ira mon amour"에서는 “걱정 마, 내 사랑, 모든 벽에 소중한 자유를 새길 거라고 약속할게.”라고 하고, 공연에서 빠졌고 이 실황영화에도 안 나오는 "Le temps s'en va"에서는 “이 새로운 세상에서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내 사랑, 너를 위해.”라고 노래하며, 사회적 움직임인 혁명이 개인적 사랑을 위한 것이기도 함을 표현한다. 개인적 감정과 공적 대의 사이의 갈등은 문학을 비롯한 서사 작품들에서 즐겨 다루어져온 주제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이기도 하고, 공적 대의도 결국은 공동체 속의 개개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유를 위해 일어섰던 프랑스 혁명이 비상사태 극복을 위한 일시적 유보라는 주도자들의 정당화 논리를 받아들이더라도 어쨌든 개인적 자유의 억압인 공포정치로 흐르며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의 합치를 이루지 못한 것도, 프랑스 혁명이 놓친 기회 중의 하나다. 그러나 혁명은 개인적 자유와 권리를 모두의 힘으로 이루고자 일어섰고, 그런 의도는 이후의 과정 및 결과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
 
5. 결론

"Pour la peine" : 역사를 바꿔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커튼콜(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마지막 인사하는 것)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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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마지막 커튼콜 곡 "Pour la peine"은 “우리 영혼이 혼란에 빠질 때 대포소리가 울리리라”라며 혁명전쟁과 공포정치와 나폴레옹 전쟁 같은 혁명의 불행한 과정과 결말을 암시하면서도, “이 고통의 대가로 역사를 바꾸어야 해”라고 노래한다. 프랑스 혁명이 아무리 고결한 이상을 내세웠어도 그것이 소중한 목숨들을 희생시킨 것을 ― 논란의 여지없이 ―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두 도시 이야기”와 “스칼렛 핌퍼넬”을 비롯한 많은 서사 작품들에서 프랑스 혁명은 유혈낭자하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 부분만 다루는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도 이런 부정적인 면을 아주 주목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면하지도 않은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통 속에 있었기에 역사를 바꾸어야 했다고 강변한다. 낡은 것들이 무너지고 백지가 열리는 것 같은,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가 열리는 시작을 이 뮤지컬은 장엄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1990년대 이후 공산권의 몰락에 이은 세계적인 보수화 물결에 힘입어, 프랑스 혁명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 조명하며 그것을 파시즘과 공산주의 공통의 전체주의의 원조로 해석하는 ‘수정주의 해석’이 널리 퍼졌다. 수정주의 해석 역사학의 대표자인 ‘퓌레에 대한 응답’이라고 선언하는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피에르 세르나 등)의 서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아무도 혁명과 전체주의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던 나태하고 시대착오적인 논변에 설득당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 아주 다양한 문제의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망하고, 토론하고, 질문하게 됐다. 이 문제의식에는 사상 및 인간의 유통 및 전파, 자유, 시민권의 형태, 정치참여의 수준, 주권의 발명, 법의 공표, 최초의 노예해방을 비롯한 자유화와 해방의 여러 형태 같은 것들이 있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양상들이 곤경, 폭력, 내전, 약탈을 없애지는 못한다. 혁명은 자신에 대한 오해와 자신이 놓친 기회를 모두 짊어진 채 나아간다. 이러한 양상들은 모두 이런 점을 인지하면서 혁명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34-35쪽) 이 책은 프랑스 혁명사 연구소(IHRF)의 학자 다섯 명이 쓴 책인데, 이 연구소의 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선배들과는 또 다르게 급진적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이 공화주의와 공화정의 발전사 미친 영향을 탐구하며, 수정주의에 대항해 프랑스 혁명의 의의를 높인다. 이 감상문에서는 이런 역사학의 논쟁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은 그런 확실한 역사학적 논리를 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혁명의 현재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상징적이고 감정적인 방법으로 재조명한다. 프랑스 혁명이 제시한 자유와 평등의 원칙 그리고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당장의 혁명에서는 평등한 권리를 얻는 데 실패한 빈민, 여성, 식민지 노예 등에게까지 권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고무했다. (공포정치라고 일컫는 자코뱅 집권기도, 빈민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던 혁명 초기의 온건한 흐름에 반발한 상퀼로트의 압력에 의해 집권한 것이었고, 혁명 초기의 온건파 부르주아 지도자들이 의도했던 바를 넘어서서 보통선거를 규정한 1793년 인권선언을 낳았다.) 그렇게 혁명은 혁명가들이 닿지 못했던 지점까지 닿는 원칙을 자기 안에 품고 있어 혁명가보다 멀리 나아간다. 자신에 대한 오해와 자신이 놓친 기회를 모두 짊어진 채 나아간다.

6. 기타

아르투아 백작(오른쪽)과 오귀스트 라마르(중간). 왼쪽은 올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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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식 페이스북)

또 다른 실존인물로 루이 16세의 동생이고 혁명적 움직임을 강경하게 진압할 것을 주장했던 아르투아 백작이 등장한다. 후일 재위에 올라 샤를 10세라고 불리며 프랑스 혁명의 유산을 부정하려 들다가 1830년 7월 혁명으로 폐위되는데 이런 이후의 일까지는 이 뮤지컬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루이 16세에게 삼부회 회의장인 메뉘 플레지르를 폐쇄하라고 요구하는 등 혁명 진압을 요구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밀회를 우연히 목격한 ― 그들인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 로낭을 몰래 제거하려고 하는 등 반동인물로 등장한다. 아르투아 백작과, 그의 정보원이자 여주인공 올람프를 짝사랑해 어설프게 집적대는 인물인 오귀스트 라마르(Auguste Ramard)와 라마르의 부하 두 명은 말과 몸으로 개그를 하며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은 이 극에서 중간 중간 휴식과 웃음을 준다. 진지하게 보자면 뚜렷한 신념이나 어떤 개인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 없이 그 때 그 때 자기 이익을 좇으며 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부류는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축에 들지는 못할지라도, 역시 역사를 이해하려면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 인간 전형이자 사실은 가장 흔한 인간상으로서 중요할 것이다.

역사적 사건 및 소재가 여기저기 깨알처럼 등장하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이 뮤지컬의 재미이다. 프랑스 혁명 노래 중 후에 프랑스 국가가 되는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다음으로 유명할 “싸 이라(Ça ira, 잘 될 거야)”가 "Ça ira mon amour"의 제목과 가사, "Au Palais royal"의 간주 등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의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가자,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다.)’는 "Hey Ha"의 후렴에서 ‘Allons enfants, Le jour de gloire est, Le jour de gloire est à, Le jour de gloire est à rêver.’로 변형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1792년 9월 베르됭 함락 소식에 파리가 공포에 질렸을 때 당통이 한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대담하고, 더욱 대담하며, 항상 대담할 필요가 있다.”라는 연설은 "Au Palais royal"에서 ‘De l'audace et toujours de l'audace’라는 구절로 인용된다. 또 "Ça ira mon amour" 앞에 데물랭이 팔레 루아얄에 모여 있던 군중에게 무장을 선동하여 이틀 후 바스티유 습격으로 이어진 무장봉기의 계기가 된 연설이 거의 그대로 인용된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 중 하나인 국민주의 내셔널리즘은 “Vive la nation(국민 만세)”라는 구호로 부랑아 소녀 샬롯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데, 아쉽게도 이번에 개봉한 영화의 한국어 자막에서는 “프랑스 만세”라고 번역되었다. "A quoi tu danses?"에 인용되는 테니스 코트의 선서의 선서문과 3일 후 친림회의의 국민의회 해산 명령 및 불복 선언, "Fixe / Les Droits des l'hommes"에서 장엄하게 등장하는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까지, 해당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억을 떠올리며 즐기거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배경 역사를 공부하며 찾아보고 즐길 역사적 소재들이 많다.

이 영화는 동명의 뮤지컬을 공연하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그래서 노래와 춤을 통해 서사가 진행되고 무대장치의 변화를 통해 장면이 전환되니, 일반적인 영화만 본 관객이라면 형식에서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기회에 뮤지컬 장르 고유의 재미도 느껴보시기를 바란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샹송에 기반을 둔 특유의 아름다운 가락, 전위적이고 거대한 무대장치, 전문 댄서의 대거 기용, 평대사는 적고 주로 노래를 통해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그 때문에 서사 전개가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고 이 뮤지컬도 어느 정도 그렇다.) 등이다. 이 뮤지컬은 전문 댄서들의 군무를 통해 프랑스 혁명 속 민중의 운동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거대한 무대장치의 독특한 사용과 스크린 투영을 통해 베르사유 궁, 팔레 루아얄, 생 드니 성당, 바스티유 감옥 등 배경 변화를 전위적으로 표현한다. 제작자 도브 아띠아(Dove Attia)와 알베르 코엔(Albert Cohen) 콤비는 앞서 “십계”, “태양왕”, “모차르트 락 오페라”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그들의 무대 연출 기법과 주제의식이 더욱 발전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위에서 말했듯 이 뮤지컬은 인물들을 하나의 전형으로 표현하여 프랑스 혁명 속 다양한 집단의 모습을 상징적,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집단이 혁명의 흐름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며 참여한 프랑스 혁명의 양상을 나타내기에 알맞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때문에 극을 구성하는 여러 축과 여러 넘버들이 균등하게 무게 있어서, 주인공인 두 연인의 존재감이 도리어 흐릿하고 그들에게 감정 이입이 덜 될 수 있다. 그래도 노래와 춤과 무대 연출 등이 아름답고, 프랑스 혁명이라는 지금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사건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진다. 9월 18일에 한국 개봉해서 지금도 상영 중인데 상영관과 상영 횟수가 적고 곧 내려갈 것 같으니 가능하고 내키신다면 얼른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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