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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종점
게시물ID : panic_73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lackface
추천 : 13
조회수 : 183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9/28 03:26:39
"경민아! 한숟갈이라도 먹어. 어제 저녁부터 한끼도 안먹었잖아. 응?"
방 밖에서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다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올해로 3년째..

또 시험에 떨어졌다. 3년전 군에서 막 제대한 나는 학교를 복학할 것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것인가란 주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나는 긴 고민끝에 지방대 나와서 중소기업에 취직 하는 것 보다는 그나마 안정적인 공무원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공부하기를 3년.. 3년동안 지방직 국가직 가리지 않고 여러번 시험을 보았지만 번번히 합격 문턱에서 쓴잔을 마셨다.

그리고 어제밤 또 한번의 불합격 소식을 들은후 모든 의욕을 잃어 버렸다. 정말 이번엔 될줄 알았는데...
울다 지친 나는 새벽녘에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더 이상 부모님께 죄송해 얼굴을 보여드릴 낯도 없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콱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전에 '자살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나약해서 그런거야' 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문뜩 떠올랐다. 
그렇게 정처없이 길을 걷고 있던중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357-1 ㅇㅇ순환
우리동네 마을 버스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끌리 듯이 그 버스에 올라탔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리고 싶었다.
버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기사 말고는 승객이라곤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당연했다. 지금 시간대가 이러니..

어?
이상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막차 시간은 11시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연장 운행이라도 하나.. 더 이상 생각하기엔 머리가 너무도 복잡해서 그냥 멍하니 창밖만 바라 보았다.

'어쩌지.. 시험을 한번 더 볼까.. 아니 3년이나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안됐는데 1년 더 한다고 되겠어..
그래 애초에 내 주제에 무슨 공무원이야.. 요즘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는 놈들도 합격 하기 힘든게 공무원 시험인데..
학교나 복학할까.. 그건 싫은데..'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꿈을 꾸었다. 지독한 악몽
누군가와 손을 잡고 강으로 빠지는 꿈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내 다리를 붙잡고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게 악몽이라면 제발 깼으면 하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살며시 흔들며 나를 깨웠다.
"손님 종점이에요"
눈을 떠 보니 기사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자고 있는사이 다른 승객들도 탔는지 사람들이 차례차례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몇시인가 싶어 시계를 본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22시 04분.. 분명히 새벽 1시에 이 버스를 탔는데..
시계가 고장난건가 싶었지만 문뜩 창밖을 본 나는 흡소리가 입으로 나올정도로 놀랐다.

꿈에서 나온 그 강이었다. 그냥 비슷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할수도 있었겠지만 
내 느낌상 꿈에서 나온 그 강이 확실했다.

"내리세요"

기사는 나를 내려다보며 아무 음색없는 목소리로 읖조렸다.

"아저씨. 이거 이따가 다시 출발하죠? 요금 낼테니까 그냥 앉아 있을게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슨일이 있어도 여기서는 내리면 안될것 같았다.

"내리세요"

"아뇨. 제가 집에 급한일이 생겨서 돌아가봐야 할것 같은데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



기사는 한참을 기계음처럼 말을 반복하더니 내 손목을 낚아 채서 문으로 끌기 시작했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아.. 아저씨 잠깐만요"

그 순간 돌아본 기사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서서히 부풀기 시작했다.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내리세요"

이미 그의 얼굴은 몇배는 부풀어 올랐고 군데 군데 실핏줄이 튀어 나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종점인데.. 내리셔야죠?"

기사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졸도 해버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어제 그 버스를 탔던 정류장에 누워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출근시간인지 정류장에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았다.

'꿈 이었구나..'

꿈이라기에는 너무도 생생했지만 어제 그 일이 현실이라고 하는게 더 말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해봤자 미친놈 취급만 당할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니 부모님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디 갔었니? 나는 니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한줄알고.."

"그냥 잠깐 친구 만나서 술한잔 하고왔어. 시험이야 한번 더 보면 되지 뭐"

엄마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거실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제밤 22시경 승객 13명을 태운 버스가 강에 빗길에 미끌려 침수되 버스기사 박모씨를 포함한 승객 7명이 사망하였고
6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경찰은 사고원인을 밝히며 실종자들의 수색을..'

내 손목에는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걸 말해주듯이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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