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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청년회 (반공+기독+정치깡패(준군사조직))를 재건하겠다!
게시물ID : sisa_5533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이복스
추천 : 6
조회수 : 148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9/28 10:17:44
링크: http://m.cafe.daum.net/action-conscience/lkVr/153?q=%3Cb%3E%3Cfont+c&sns=kakaotalk

행동하는양심실천본부라는 곳에서 주도를 하나본데...
저들이 재건하겠다는 서북청년회의 역사와 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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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http://mirror.enha.kr/wiki/%EC%84%9C%EB%B6%81%EC%B2%AD%EB%85%84%ED%9A%8C )
...
1947년 삼일절 기념식을 따로 가진 좌·우익이 시가행진 중 남대문에서 충돌한 사건을 비롯하여 부산 극장사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사무실 점령사건, 정수복 검사 암살사건 등 좌익 세력에 대한 테러를 주도하고 경찰의 좌익 색출 업무를 도왔다. 제주도 4.3 사건에서 언급되는 토벌대로 불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식 군대나 경찰이 아니라 이 서청이다. 유명한 홀어멍 따먹기도 이 사람들이 주로 했다.

이 밖에 월남한 이북 청년과 학생들의 생계를 돕는 지원사업을 하였고, 활동자금은 한반도 서북부 출신 실업가들과 미 군정청 고위관리들, 이승만 계열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의존하기도 했고, 각 지방단의 유지로부터 염출하거나 미 군정청의 원조물자를 유출하여 자금화하였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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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http://ko.wikipedia.org/wiki/%EC%84%9C%EB%B6%81%EC%B2%AD%EB%85%84%ED%9A%8C
...
1947년 1월 이선파(李鮮波)를 위원장으로 한 서울중구지부, 평안북도 청년들의 서부지구, 청단지부(靑丹支部), 인천지부 등이 잇따라 결성되었고, 1947년 6월 10일 임일(林一)을 위원장으로 하여 대전에 남선파견대본부(南鮮派遣隊本部)를 설치하였다. 서북청년회는 좌우익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우익진영의 선봉역할을 하였다.

1947년 3·1절 기념식을 각각 가진 좌우익의 시가행진중 남대문에서 충돌한 남대문충돌사건, 공산주의를 찬양·고취하던 민족예술제를 광복청년회와 합동으로 저지시킨 부산극장사건, 부산좌익청년운동의 본부격인 민주애국청년동맹의 사무실을 습격하여 서북청년회 부산지부의 간판을 건 좌익단체사무실점령사건 및 대북공작 등이다. 이러한 격렬한 반공투쟁은 모두가 공산치하의 학정에 못 이겨서 자유를 찾아온 그들의 과거경험이 크게 작용한 데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렇게 서북청년회가 대공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1947년 4월에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이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지청천은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이범석(李範奭)이 만든 민족청년단(民族靑年團)과의 갈등 속에서도, 전국 청년의 대동단결을 전제로 한 청년조직을 강력히 추진하여,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기존 청년단체들의 통합공작을 시도하였다.

통합공작에 참가한 단체는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을 비롯하여 광복청년회·대한독립청년단·청년조선총동맹·서북청년회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북청년회는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어 심각한 대립이 계속되다가,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고, 합동반대파는 문봉제(文鳳濟)·김성주(金聖柱) 등이 중심이 되어 서북청년단을 재건하였다. 이 조직은 1948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으로 흡수 통합됨으로써 자연 해체되었다.[1] :261~264

배경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이승만은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보존하고 있다. 1949년 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말한 이 대통령의 발언록이 보존돼 있다. 이승만은 모슬포경찰서와 성산포경찰서를 신설하라는 대통령령도 공포(49년 1월 18일)했으며, 서북청년회 단원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기념관엔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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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원 단체의 정체성을 요약하면 '북한 출신 기독교계열 정치깡패'들입니다..
근데 이런 단체를 재건하겠다니...

그년 애비시절로도 모자라서..이승만 시절이라니요...
정말 나라가 미처돌아가는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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