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죽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짓을 했다 싶은데,
고등학생 때 죽고 싶어서 환장했던 날이 있었다.
어느 날 결심하고 기차 선로에서 투신 자살을 하려고 했다.
선로 차단기 옆에서 기차가 언제쯤에나 지나갈까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가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에 죽을 곳을 찾으려고 길을 걷는데
전자제품 가게에 텔레비전이 보였다.
아까 기차가 안 온 게, 열차 고장 때문에 그 전 역에서 정차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인근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인 13층 맨션으로 갔다.
10층 난간 쯤 올라갔을 때, 이 정도 높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어서 바깥을 내다봤더니
옆 계단 윗층(옥상이었을지도)에서 사람이 투신 자살했다.
핸드폰으로 일단 구급차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목격자라서 경찰이 이것저것 묻는 바람에 투신 자살할 찬스를 놓쳤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와서 마지막 수단을 쓰려고 끈으로 목 매달아봤다.
끈이 끊어졌다.
못 죽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때였다. 살자고 결심한 게.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날은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신 증조부님의 제삿날이었다고 한다.
나는 증조부님이 막아주신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