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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림댄스
“자, 하나 둘, 하나 둘! 지방을 분해시키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지금 나는 내 몸의 건강미를 더욱 잘 표현하기는 개뿔, 젖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사타구니가 최대한 선정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한 쫄쫄이를 입고 춤을 추고 있다. 이제 고작 17살인 주제에…….
“좀 더 복근을 의식하고 허리를 쭉 펴 보세요.”
지금 내가 추고 있는 춤은 슬림댄스(Slimdance).
내가 직접 개발해서 지금 전 세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달리고 있는 다이어트 댄스다. 덕분에 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고, 한 때는 완전히 포기했던 발레리나의 꿈에 다시 도전 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2년 가까이 발레를 쉬었지만, 얼마든지 복귀할 수 있다.
“아니, 아니. 거기서는 좀 더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넓게 벌려야지. 왜 네 멋대로 안무를 바꾸는 거야?”
저 미친 안무가가 또 지랄이다. 내가 개발한 춤인데도 불구하고 슬림댄스에는 안무가가 따로 붙어있다.
“그러니까 뒷머리는 바닥에 대고, 무릎은 굽혀서 허리를 높게 띄우고 최대한 다리를 벌리란 말이야.”
저 안무가가 하는 일은 딱 하나뿐이다. 슬림댄스 사이사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수시로 집어넣는 것. 방금 저 안무가가 지시한 동작을 그대로 따라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안무가는 전직 매춘부로, 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온 잡년이다.
슬림댄스는 일반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쳐스케너(Texture scanner)를 통해 내 모습을 저장한다. 텍스쳐스케너로 스캔된 물체는 그 ‘D-비전(Dimension Vision)’이라는 출력장치를 통해 겉모양 뿐만 아니라 질감까지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그래서 슬림댄스 디스크를 산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집 거실에서 진짜 나와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다이어트를 위해 개발된 슬림댄스를 구입한 사람의 대부분은 남자들이다.
텍스쳐스케너는 나의 피부 질감은 물론 뼈와 근육과 내장, 머리카락과 주름, 심지어 몸속 점막의 느낌까지 그대로 재현해 준다. 슬림댄스의 디스크를 구입한 남자들이, 완벽하게 질감이 재현된 내 가짜몸을 가지고 무슨 역겨운 짓을 하고 있을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제 막 17살이 된 젊고 늘씬한 내 몸을 마음껏 즐기고 있겠지…….
텍스쳐스케너로 제작한 디스크의 판매는 나의 슬림댄스가 최초였다. 많은 남자들을 기쁘게 하는 숨은 기능(?)이 알려진 순간 텍스쳐스케너를 통해 출연하려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다. 포르노 배우들조차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자신의 몸을 간접적으로 주물럭거릴 수 있다는 것에 난색을 표할 정도였으니, 연예인들이나 일반인들이 기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나는 왜 이 짓을 계속 하고 있냐고? 계약 때문이다. 이 계약을 어기게 되면 나는 죽는 것이 나을 정도가 아니라, 죽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종이 쪼가리에 서명 한번 잘못한 죄로, 세계 유일한 텍스쳐스케너 스타가 되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한 창녀가 되어버렸다. 슬림댄스 제작사에게는 지금의 내가 최고의 행운이자 유일한 돈줄이다.
슬림댄스 버전 1.0은 평범한 다이어트 댄스였다. 하지만 지금 제작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다이어트 댄스가 아니라, 마치, 그러니까, 이것은……. 젠장! 도저히 내입으로 설명을 못하겠다. 그래도 무슨 말 하는 지는 대충 알겠지?
지금 제작중인 슬림댄스 버전 2.0에서의 춤동작은 거의 대부분 엎드려서 엉덩이를 내밀고 있거나, 누워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다.
“자, 다음동작은 쪼그리고 앉아서 허리를 위아래로 계속 움직이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자,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까 잘 봐. 이렇게, 이렇게 부드럽지만 강하게, 조금 난폭한 듯 리드미컬하게. 잘 보라니까!”
때때로 제작사 사장보다 창녀 출신의 저 안무가 년이 더 미워질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성질 같아서는 실룩거리고 있는 저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다.
내가 춤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변태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다. 슬림댄스로 건강을 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춤으로 감동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5살 때부터 해오던 발레를 통해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로잔느 국제 콩쿨을 준비하던 16살 때, 엄마와 아빠가 사업실패로 동반 자살을 하였고 빈털터리로 세상에 던져진 나는 춤을 추면서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생각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 역겨운 춤을 추고 있다.
“아, 좋아요. 원투, 원투! 허리를 조금만 더 관능적으로 흔들어 보면 어떨까요? 예 좋아요 그거예요.”
내가 움직이고 있는 동작은 더 이상 춤도 아니다. 하지만 춤이라는 미명 아래 계속 몸을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내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흐느적거리는 몸놀림. 나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오늘도 춤을 춘다.
나를 동정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상한 질투와 혐오감에 불타는 여성단체들과, 신사인 척하지만 슬림댄스 디스크를 몰래 구입하는 쓰레기들의 모임이 텍스쳐스케너상품의 금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엄청난 수요를 가진 상품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슬림댄스 1.0은 전세계적으로 5,000만장 이상이 팔렸다. 이제 곧 발매될 슬림댄스 2.0은 선주문만 8,000만장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제작사에서는 발매날 1억 장을 동시에 발매하겠다고 한다. 모두가 1억 장 당일 매진을 예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몸 깊숙한 곳의 감촉을 자신의 민감한 신체 부위로 느껴보려는 남자들을 위해 나는 모종의 특별한 준비를 해두었다.
남자들의 민감한 신체부위가 들어올 예정인, 나의 민감한 신체 부위 속에는 가지 혹은 굵은 오이가 충분히 들어올 정도의 플라스틱 원통을 삽입해 두었다. 그리고 그 원통 속에는 사람의 뼈라도 자를 만큼 날카로운 칼날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텍스쳐스케너로 그 질감이 완전히 구현된 칼날은 아마도 사람의 손가락이나 발기한 해면체 정도는 닿는 순간 두 쪽으로 갈라놓을 것이다.
출처 | http://www.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