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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골목 청소
게시물ID : panic_888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32-0
추천 : 13
조회수 : 14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6/29 23: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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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골목 안에서 그녀들을 발견한다.
매번, 치마와 속옷이 벗겨진 채로 실컷 누군가에게 농락당하고 버려진 그녀들이 그곳에 쓰러져있다. 거리를 청소하면 할 수 록 매일 더욱 심하게 더럽혀지는 사실처럼, 언제나 골목에 존재하는 그녀들이 나를 절망케만든다.

그녀들이 싸구려 인생을 소비하는 한심한 것들이라면 동정할 만한 이유도 없겠지만, 모두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뿐인 나와 비슷한 존재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렇다.

곁에 있던 동료들이 다가왔다.
그들의 모습은 푸른 복장과 그늘진 피부가 새벽녘 세상과 닮아 있었다. 모두가 어떤 사실을 감지한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걸어왔다.

"후, 또야?"
"질리지가 않는 구먼."
"경찰은 뭘하는 건지, 이런 동네 딸아이 무서워서 키우겠나."

모두가 플라스틱 빗자루를 지팡이처럼 기대어 서있다. 그렇지 않으면 힘없이 차가운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어째? 경찰 불러야하나."
"그래야 쓰것지."
"내가 신고하지."

정돈되지 못한 수염을 긁적이며 난처한 시간을 인내할 무렵, 옆에 있던 동료가 전화기를 꺼내 경찰에게 신고를 했다. 그는 신호음이 가는 도중 몇번이고 반복해서 한숨을 내뱉었다. 마치 아직 해뜨지 못한 세상처럼, 깊고 어두운 입김이 그의 입가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 누군가 플라스틱 천을 끌어 가져왔다. 낙옆을 쓸어 담는 용도의 것이었다. 그것을 펼쳐 시체 위를 뒤덮었다. 더이상 시신을 지켜볼 수 없어서 우리들은 그녀들을 시야에서 숨겨야 했다.

혹 이런 가슴 갑갑한 장면들에 질려버린 까닦이기도 하였다. 

신고하고 몇분이 지나도 경찰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불안해진 모양으로 한 명씩 담배를 꺼내 라이터 불을 붙여 한모금씩 뿜어냈다.


"이러니까 일이 터지지. 허참!"
"형님 그러니 견찰 아니요, 개도 안물어간다는 견찰!"
"허, 그래도 너무한거 아니냐 한 두번도 아니고, 에이 씨 왜이리 늦는거야!"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타박하길 몇분 더 지났을까 드디어 사이렌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차에서 내린 복장 경찰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언제 목격했느냐, 목격장소가 어디냐, 누굴 본적 있느냐 같은 시덥지 않은 질문을 내던졌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언제나처럼 언제나의 대답을 한다.

언제나의 새벽, 언제나의 골목 안, 언제나 우리들 뿐.

그런 시덥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와중에 더 많은 사이렌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골목에 몰려든다..

여느 때처럼 호기심어린 구경꾼들과 의심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경찰들, 그리고 상황에 지친 우리 청소부들까지, 새벽녘까지 그녀들 뿐으로 적막하던 골목이 어느세 복잡하게 변해 있었다.

고요함이 소란스럽게 변한다고 하여도 범인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장소에 없는 범인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일이 반복될 것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것은 단지 쇼였다, 터진 일을 되지도 않는 수습으로 감추는 그런 종류의 쇼다.

"동생은 어때? 이 구역 강씨한테 맞기고 자네는 딴데로 하는게......"
"그럼 강 형님한테 죄송하잖습니까 전 괜찮습니다."
"...... 허 그 친구, 정말 괜찮겠어?"
"네, 뭐 경찰들이 알아서 하겠죠."

딸아이 가진 직장 동료에게 이런 장소를 떠넘긴다는 건 참으로 꺼림찍한 일이다.

"전 신경쓰지 마세요."

경찰들이 우리들을 물러나게 했다. 더이상 수사할 껀덕지가 없다는 뉘앙스다. 시간이 흐르자 구경꾼들도 줄어들고 마침내 경찰들도 노란 테이브를 덕지덕지 사방에 붙여놓고는 사라졌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씁쓸한 커피를 마시면서 분주해진 거리를 떠난다. 더이상 세상은 어수룩하니 어둡지 않고 해가 떠올라 있었지만 밝은 햇살 속에서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옅은 불안함이 피부에 스며들고 있었다. 동사무소 직원실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에 손이 떨렸다.

주변에 있던 직장 동료들 모두 인사치례 없이 과묵히 퇴근하였다. 그들 역시도 나와 같은 느낌에 휩쌓였던 모양이다.

직원실을 빠져나오며 동사무소 일원들과 마주쳤지만 인사없이 그들을 무심히 지나쳐갔다. 의아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도망치듯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수근거리는 대화소리가 곧 뒤에서 들려왔다.

"아마도 오늘도 그....., 있었나 봐요."
"아이고 꺼림찍해라, 그래도 잘도 계속 일하네 정말 신기한 사람들이야."
"그러게요, 그렇게 할 일이 없나."

그들에게 화를 내지도 못했다, 시원찮은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저 도망치듯이 더욱 빠르게 걸어갈 뿐이었다.

거친 숨과 함께 집에 도착해보니 온 몸에서 노곤함이 느껴졌다. 땀으로 축축해진 옷이 매우 찝찝하다.

신발을 내던지듯 벗어버리고는 욕실로 냉큼 달려 들어갔다. 찬물로 몸을 씻어 그 충격에 머리를 텅비워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씻어봐도 그녀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뒤로 밥을 먹으면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TV를 켜서 채널을 여럿 돌려봤지만 영상 속에서 조차 그녀들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잔상이 남아 있었다. 

결국 포기한 채로 이불에 누워 눈을 감아보지만 당연스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뜬 눈으로 멍하니 누워있었다. 갑갑함이 휘몰아 쳐왔다. 시원한 바깥 공기가 필요했다. 

이불을 걷어차듯 일어나서 대충 옷을 걸친 채 저돌적으로 밖에 나섰다. 아직 자정까지 여유로운 시간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사람들로 꽤 북적였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홀로 거리를 걷다보니 갑작스레 얼큰한 찌개와 소주가 땡겨왔다. 아무래도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바꿔주는 것이 틀림없었다. 입맛이 싹 사라졌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던 식욕까지 되살아났으니 말이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식당이 많은 부분의 시내 쪽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골목이 지나쳐가야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녀들이 존재하는 바로 그 골목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쾌해진 기분 때문인지 그런 소소한 문제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어버렸다.

"뭐 문제 있겠어, 단순히 지나가는 것 뿐인데."

따위로 스스로 납득하면서 지나쳐가기로 결심했다.

골목은 불길할 정도로 어둡다. 그 깊은 그림자가 어째서 이 곳에서 그런 일들이 자주 생기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사건을 위해 준비된 장소처럼 소름 돋는 분위기가 여기저기 골목 구석마다 흘러다녔다. 

덕택에 자연스레 인적도 줄어들면서 점차 모두에게 잊혀진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매일 출근하는 일터였기에 익숙해져버린 장소였다.

길 고양이들이 울어대고 무너져가는 빈 집들 속에 희뿌연 무언가가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이 곳을 스쳐가는 바람조차 적막하여서 괴기함을 붙돋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든다. 이 골목 온갖 구석을 청소하면서 자세히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 으스스한 기운조차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적막한 장소에서 어떤 소란스러움이 갑자기 나타난 것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다. 너무나 고요하기 때문에 작은 소음도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골막 안 쪽에서 들려왔다.

"그만두라니까!"
"좋으면서....., 왜그래."

골목안에서 들리는 남녀의 다툼소리, 피가 역으로 휘몰아치는 기분이다. 유쾌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반전되어 버렸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불쾌감이 넘실거렸다.

안을 들여보기 전에 벽에 붙어서 조심스레 고개를 치켜들고 훔쳐 본다.확실히 여자와 남자로 보이는 두 그림자가 옥신각신하는 장면이다. 남자의 손이 위험하게 움직였다. 여자의 몸을 훑으며 쾌감을 탐닉하는 것 같다. 거기에 저항하듯 여자가 소리쳤다.

"야, 손때 미친 새끼야!"

여자가 핸드백을 휘두르며 남자를 내려친다. 남자는 한대 맞고는 억 하고 휘청거렸지만 끝내 물러서지 않고 여자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아이씨 아파!, 함 대주는게 그리 힘드냐."
"발정난 것도 아니고 씨발!"
"그래 발정났다, 쌍년아 좀 대줘!"
"아이 씨발, 손 때라니까."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엇언가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필요했다. 골목 빈집들을 허물면서 치우지 못한 시멘트 조각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 중에 적당히 휘두를 만한 크기의 덩이를 집어들었다.

나는 흉기를 지니게 되었다. 
손이 떨려왔다, 숨이 헐떡여지고 심장이 너무나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여자의 흐느끼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원치 않은 상대에게 자신을 유린당하는 고통과 절망이 섞여있는 절규였다.

더는 생각할 틈없이 맹렬히 안으로 달려가 여자의 몸에 자신의 흉물스러운 물건을 집어넣던 남자의 머리를 힘껏 시멘트 조각으로 내리쳐버렸다. 반 난체가 되어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여자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시멘트 조각을 반복적으로 내려치며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눈 앞에 피로 가득히 물든 두 손이 보여져 왔을 때였다. 겨우 숨이 진정되고 나서야 그때쯤에 비로소 나는 여자가 중얼거렸던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 자기야."

깜짝놀라 여자를 바라보니 그녀의 손에는 반지가 보였다. 은빛으로 가득 찬 사랑의 맹세 도구였다. 그리고 내가 쓰러트린 남자의 손에도 같은 것이 있었다. 머리를 후려치듯 매우 강한 충격이 느껴져왔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

시멘트 조각에 흘러내리는 살점과 피들, 역한 냄새가 내 몸에서 풍겨나온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여자에게는 괘씸함도 들었다.
이런 바보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다니 참으로 끔찍하다.

두려움이 피부를 흘러내려 전신을 감돌았다.

"어쩌지 이, 이거 큰일났네......"

세상이 나를 내쳐버린 기분이다. 온 사방이 붉게만 보인다. 저기 주저앉아 눈만 깜박이는 저 여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영원히 붉게 물든 세상에 살아갈 것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아니, 하지만 방법은 있다.

"그래 나만 죽인 것도 아니잖아 그러고보면......, 어차피 언제나 여기는."

그녀들이 존재하니까.
겨우 힘이 들어간 몸을 일으켜 여자에게로 향해간다. 나를 착각하게 만든 괘씸함에 벌을 주기 위해서 힘껏 남자를 내려쳤던 만큼 시멘트 덩이를 휘둘렀다.

검푸른 밤이 지나가고 어수룩한 새벽이 온다. 언제나 반복되는 하루의 흐름이다. 

마치 어제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콧노래가 직원실에서 흘러나온다. 딸 아이에 대해 자랑하기도 하고 일끝나고 한잔 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렇게 거리로 출근하면 언제나처럼 골목 주변부터 둘러보게된다.

설마하니 하면서 다들 숨을 죽인 채 골목 안으로 고개를 내밀어본다.

그리고 역시나 언제나처럼, 그녀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어럽쇼, 저기 누가....., 어 남자가 같이 있는데?"
"캬, 범인아냐? 여자가 당하는 와중에 잡았네 보네."
"대단하구만, 쩝 목숨을 잃긴 했어도 용감하니 범인잡고 갔다니."
"그나마 한은 풀었구먼."

언제나의 장소, 언제나의 시간, 언제나의 그녀들이 변해버렸다.

우리는 힘없이 빗자루에 기대지 않았다. 
우리는 한숨 내쉬듯 담배 연기를 내뿜지 않았다.
우리는 갑갑함을 토로하며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껄껄대면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만족스럽게 그들의 곁에서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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