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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웅 : 아 후손들때문에 뜬금없게 취향 들킴;;
게시물ID : dungeon_4101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은털여우]
추천 : 2
조회수 : 131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10/02 11:03:35
단군취향.png

이미지파일 이름이 '단군 취향' 이라는것에 신경쓰이지만 넘어갑시다.

개천절을 맞이하여 나온 이벤트 크리쳐입니다.

... 근데 삼국유사를 보면 말입죠;;

古朝鮮(王儉朝鮮)
고조선(왕검조선)

魏書云 "乃徃二千載 有壇君王倹, 立都阿斯逹(経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白州地或 云 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髙同時."
위서(魏書)에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서, 아사달(阿斯逹)[1]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불렀으니 고(高;요임금)[2]과 같은 때였다."라고 하였다.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庻子桓雄 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徃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고기(古記)에는 "옛날에 환인(桓因)[3]의 서자 환웅(桓雄)이 있어서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기를 탐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정(太伯山頂)[4]의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그곳을 신시(神市)라 부르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부른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니 무릇 인간의 360여 일들을 주관하여 세상에 있으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霊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軰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 而婚之孕 生子號曰 壇君王倹.
이때 한 범과 한 곰이 있어서 같은 굴에 살았는데, 항상 신웅(神雄)에게 기도하기를 변화하여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때 신이 신령한 쑥 한 줌과 마늘 20매를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으면서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이 받아서 이를 먹고 3·7일(三七日;21일) 동안 삼가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지만 범은 삼가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함께 혼인을 맺지 못하므로 매양 단수(壇樹) 아래에서 아이 가지기를 바라며 빌었다. 웅이 이에 가화(假化)하고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배니 아들을 낳으므로 단군왕검이라 불렀다.


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 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旀逹.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即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 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당고(唐高) 즉위 50년 경인(庚寅)[5]에 평양성(平壤城)[6]에 도읍하여 처음으로 조선(朝鮮)이라 칭했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또는 궁홀산(弓忽山)[7]이나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림이 1500년이었다. 주(周) 호왕(虎王;무왕)[8] 즉위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阿斯達)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 삼국유사 기이 제1 고조선(왕검조선)


... 환웅님 저런 스타일 좋아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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