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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50.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게시물ID : history_182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2
조회수 : 13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03 01:13:40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blog.daum.net/carilla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쉬어가는 페이지랄까?
효제충신의 여러 군상들 사이에 빼어난 의술을 펼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나라 에서는 명의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때의 구암 허준을 들수 있는데
그보다 수천년전에 이미 천하의 의성이라 하는 명의들이 있었다.
중국 고대 신화에 보면 신농씨가 백가지 풀을 맛보고 의약을 발견했다 하니
천하의 의사들의 시초는 신농씨가 아닌가 한다.
 
고대에도 환자는 있었을 것이고 어느곳에나 환자를 돌보는 의술은 있었겠지만
그것을 이론적으로 논해서 의술의 조상이 된것은 편작 이었다.
 
음양과 수리에 기초한 진단과 치료법은 정밀.명확하여 후세의 의원들이 계승.정리 하면서도
그 근본을 바꿀수는 없었다.
후세의 태창공은 편작에 가까운 명의라 할수 있다.
이제부터 편작과 창공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미호자 불상지기(美好者 不祥之器)
 
편작(扁鵲)은 발해군 정현 사람이다.
성은 진(秦)씨이며 이름은 월인(越人)이었다.
젊었을적에 여사의 관리인으로 있었다.
 
손님중에 장상군 이라는 사람이 자주 들르곤 했는데 여사의 관리인이 여럿 있었으나
오직 편작만이 그가 기인인것을 알고 정중히 대접 했다.
 
장상군이 편작의 여사에 10여 년을 드나들다가 어느 날 편작을 은밀히 불러 자기 앞에 앉히고 말했다.
"나에게는 의술에 대한 비방이 있다.
내가 이제 늙어 이것을 그대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그대는 절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라."
"삼가 가르침을 받겠나이다."
 
이어서 장상군이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그 속에 든 알약 한개를 편작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상지수와 함께 먹으라.
30일이 지나면 네 눈에 괴이한것이 보이고 사물을 꿰 뚫어 볼수 있을것이다."
 
장상군은 비방이 적힌 의서들을 편작에게 모두 물려주고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거동은 세상의 인간이 아닌듯 했다.
 
편작은 장상군의 말대로 이슬과 나무에 맺힌 물과 함께 알약을 먹었다.
한달이 지나자 놀라운일이 벌어졌다.
담장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고 사람들의 내장속이 보이기 시작 했다.
자세히 보니 오장의 기혈이 엉키고 뭉친것등 병의 원인이 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천기누설이기 때문에 그저 명목상 진맥을 하는척 하고 병상을 말했다.
 
편작은 그날로 의사가 되어 제나라로 가기도 하고 조나라에 가 있기도 했다.
편작의 의술이 워낙 뛰어나서 조나라 사람들이 그를 편작 이라고 부르기 시작 했다.
 
진(晉)나라 소공(정공?)때에는 여러 대부들의 권세가 공족보다도 강했다.
그때는 조간자가 대부가 되어 조나라의 국사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간자가 병이나서 닷새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걱정에 빠진 대부들이 편작을 초청 했다.
 
한참동안 조간자를 진찰한 편작이 나와서 말 했다.
"혈맥이 정상인데도 깨어나지 못하니 이것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오.
옛날 진(秦)목공이 이렇게 죽은 상태로 있다가 7일만에 깨어난 일이 있소.
그때 진목공이 깨어나서 이렇게 말 했소.
ㅡ나는 그동안 천제를 만나러 갔었는데 매우 즐겁고 유쾌한 시간 이었소.
천제가 내게 말 하기를
'앞으로 당진(晉)에서 큰 난리가 나서 5대에 이르도록 안정되지 못하다가
후에 영명한 군주가 나타나 패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나
그 패주는 얼마 살지 못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이 장차 천하를 호령하면서
너의 나라 섬진(秦) 을 격파한뒤에
음란하여 남녀 구별 이 없어지리라.'
라고 말했소ㅡ
 
결국 진(晉)나라는 헌공때 내란이 일어나고
문공때 패자가 되고 양공때 효산에서 진(秦)나라를 격파하고 돌아와 맘껏 음란을 즐겼소.
지금 조간자의 증상도 그와 꼭 같으니
조간자는 사흘이 못가서 반드시 깨어날 것이오.
그가 깨어나면 반드시 무슨 말을 할것이니 잘 들어 두시오."
 
편작이 떠나고 이틀이 지나 조간자가 깨어나더니 여러 대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소.
그동안 천제를 만나고 왔는데 매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소.
그곳에는 많은 악기가 연주되고 여러가지 춤이 있었소.
그때 한마리 곰이 나타나 나를 공격하려 하자 천제가 나에게 그 곰을 쏘라고 명 했소.
그래서 내가 활로 그 곰을 쏘아 죽였는데
또다시 갈색곰 한마리가 내게 달려들어서 내가 또 그 곰을 활로 쏘아 죽였소.
천제가 몹시 기뻐하며 내게 한쌍의 네모난 상자 두개를 주었소.
또 천제가 말씀 하시기를
ㅡ진(晉)나라는 대대로 쇠약해져서 7대 후에 망할것이요
진(秦)나라는 점차 강해져서 주나라를 멸할것이지만 이또한 오래가지는 못할것이다ㅡ
라고 하셨소."
 
조간자의 가신 동안자가 그 말을 기록해 보관 했다.
동안자가 편작의 이야기를 조간자에게 낱낱이 보고하니 조간자가 크게 놀랐다.
그래서 조간자는 편작을 불러 땅 4만 무 를 상으로 주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편작이 괵(?)나라에 갔더니 방금 태자가 죽었다고 했다.
편작은 궁문으로 가서 괵나라 중서자를 만나 물었다.
"태자가 어떤 병을 앓다가 죽었소?"
"태자는 혈기의 운행이 불규칙 하여 숨결이 뒤엉켜 있다가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안에서 폭발하여
내상을 입어 병이 생겼습니다.
정기가 사기를 누르지 못하고 사기가 체내에 쌓여 양기의 작용이 느려지고 음기가 급증하여
그것이 갑자기 역상하여 죽었습니다."
 
"죽은것이 언제요?"
"닭이 울 무렵이었습니다."
"입관을 했소?"
"죽은지 반나절도 안되어서 아직 입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제나라 발해군의 진월인 이라는 사람인데 멀리서나마 태자의 명성을 들어 존경했으나
이제 태자가 죽었다 하니 참으로 애석하오.
그러나 증세를 들어본즉 내가 살릴수 있을듯 하니 내가 태자를 만날수 있게 해주시오."
 
"선생은 허망된 말을 하시지 마십시오.
어떻게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바는 옛날 상고시대때 유부 라는 의원이 병을 치료하는데
탕약이나 주류.석침.고약 같은 기구도 없이 잠시 옷을 풀어 헤쳐 병세를 살폈으며
오장의 수혈에 따라 피부를 갈라 살을 열어 막힌 맥을 소통시키고 끊어진 힘줄을 이었습니다.
뇌수를 눌러 황막을 통하게 하고 장과 위와 함께 오장도 깨끗이 씻어 정신을 다스려 신체를 조정했습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해 했다면 태자를 살릴 수 있다고 하겠으나
당신은 시신도 보기전에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니 어린 아이인들 그 말을 믿겠습니까?"
 
"속는셈 치고 시신을 보여주기라도 하시오."
"큰일날 소리 하지 마시오.
매를 맞고 쫓겨나기 전에 어서 돌아 가십시오."
 
이 말을 들은 편작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하며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의술이란 대롱을 통하여 하늘을 쳐다보는 격이며 
좁은 틈 사이로 그림을 보는 일과 같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오.
나의 의술은 맥을 짚어보거나 얼굴빛을 살펴본다거나 소리 같은 것을 듣지 않고도
그 병이 어디 있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병이 양 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음 을 미루어 알 수 있고
음 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양에 대해 논할 수 있습니다.
병의 징후는 그 표면에 드러남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무슨 병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지극히 많은것이오.
그대가 나의 말을 못 믿겠으면 바로 궁으로 들어가 태자를 진맥 해 보시오.
틀림없이 그의 귀에서 소리가 날것이고 코는 벌렁거리고 있을것입니다.
또한 그의 두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음부에 이르게 되면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태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것이오"
 
중서자는 편작의 말을 듣자 눈앞이 아찔하고 현기증이 일어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혀가 굳어진듯 말을 하지 못했다.
중서자가 급히 궁으로 들어가 괵군에게 이 말을 전했다.
괵군이 듣고 깜짝 놀라 궁 밖으로 달려나와 편작에게 말 했다.
"일찌기 선생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이런 작은나라를 방문해 주시어 태자의 병에대해 말씀해 주시니 천만 다행입니다.
선생께서 오지 않으셨으면 태자를 영원히 잃을뻔 했습니다."
괵군은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편작은 곧바로 태자가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태자와 같은 병세를 시궐이라 합니다.
그것은 양기가 음기 속에 들어가 위를 움직이고 침범하고
중경과 유락을 얽히게 하여 막히게 하고 삼초의방광 부분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그 때문에 양맥은 아래로 떨어지고 음맥은 위에서 다투며 회기는 닫혀 통하지 못합니다.
음맥은 위로 올라가고 양맥은 몸 속을 순행하여 아래로 내려와 고동은 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음기는 바깥으로 올라가 끊어져서 음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 윗부분에는 양기와 단절된 낙맥이 있고 아래에는 음기가 끊어진 적맥이 있습니다.
음기가 부서지고 양기와 끊어진 맥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몸은 움직이지 않고 죽음과 같이 되었지 아직 완전히 죽은 상태는 아닙니다.
대체로 양이 음의 지란장 에 들어가면 사람은 죽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은 다 오장이 몸속에서 역상 할때 갑자기 일어납니다.
훌륭한 의원은 증세를 잡아내지만 평범한 의원들은 의심하고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편작은 제자 자양을 시켜 숫돌에 침을 갈게 하고 구것으로 태자의 삼양과 오회혈에 침을 놓았다.
그러자 잠시후 태자가 소생 하였다.
 
편작은 또 제자 자표를 시켜 고약을 만들고 팔감의 약재를 만들어 태자의 양쪽 겨드랑이 밑에 붙였다.
그러자 태자가 일어나 앉게 되었다.
 
다시 음양을 조절하여 탕약을 복용 시키자 20일쯤 뒤에는 예전처럼 회복 되었다.
 
그렇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편작이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라고 칭송 했다.
그러나 편작은
"나는 죽은사람을 살린게 아니고 살수 있는 사람을 살린것 뿐이다."
라고 말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편작이 제나라에 들렀을 때였다.
환후가 그를 빈객으로 초청 했다.
편작이 환후의 얼굴을 살피고는 깜짝 놀라 말 했다.
"전하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아직은 피부와 살 사이에 있어 치료하면 간단히 나을수 있습니다."
"그럴리가 있소?
나는 이처럼 매우 건강하오."
 
환후는 웃어 넘겼다.
편작이 떠난후 환후는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의원이라는 것들은 욕심이 많아서 아무 병도 없는 사람을 치료하여 돈을 벌려고 한다."
 
닷새후에 편작이 다시 환후를 찾아왔다.
"전하의 병이 지금은 혈맥속에 있습니다.
더 깊어지기 전에 속히 치료 하셔야 합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소"
환후는 불쾌한 목소리로 쏘아 붙였다.
편작은 그냥 물러 갔다.
또 닷새후 편작은 다시 환후를 만나러 갔다.
"전하의 병이 지금은 장과 위 사이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 하지 않으면 병이 더욱 깊어져서 치료할수 없게 됩니다."
환후는 이번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편작이 돌아가자 환후는 매우 불쾌해 했다.
다시 닷새후 편작이 환후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편작이 환후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환후가 비꼬듯이 물었다.
"오늘은 나의 병이 어디에 있소?"
그러나 편작은 씁쓸히 웃을뿐이었다.
 
편작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행장을 꾸려 제나라를 떠났다.
길을 떠나며 편작이 제자들에게 말 했다.
"병이 피부와 살 사이에 있을때는 탕약이나 고약으로 치료할수 있었다.
병이 혈맥에 있을때는 침술로 치료할수 있었다.
장과 위 사이에 병이 있을때는 술과 약으로 고칠수 있었다.
그러나 병이 골수로 들어가면 사명 이라도 어쩔수 없다.
지금 환후의 병은 골수에 깊이 들어가 있다."
 
그후 닷새쯤 뒤에 환후는 정작 앓기 시작 했다.
환후의 가신들이 급히 편작을 찾았으나 편작은 이미 멀리 떠난 후였다.
환후는 얼마 못가 죽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람이 병의 증후를 알아 명의에게 치료받으면 고칠수 있으며 몸은 살아 날수 있다.
사람이 걱정하는것은 병이 많은것이고
의사가 걱정하는것은 치료법이 적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병에는 6가지의 불치병이 있다.
 
첫째.
교만방자하여 도리를 따르지 않는것.
둘째.
자기몸을 경시하고 재물을 중시하는것.
셋째.
의식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것.
넷째.
음양이 오장 가운데 함께 있어 혈기가 안정되지 못하는것.
다섯째.
몸이 허약해서 약을 복용할수 없는것.
여섯째.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것 등이다.
 
위의 여섯 가지 중 한 가지만 지니게 되어도 병이 중하게 되어 치료하기 힘든 불치병이 된다.
 
편작의 명성은 천하에 퍼졌다.
한단에서는 부인을 존중한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전문의 의술을 폈다.
낙양으로 가서는 사람들이 노인을 존중한단 말을 듣고 귀.눈.관절염 등의 전문의 노릇을 했다.
진나라의 수도 함양으로 가서는 진나라 사람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소아과 전문의로 활약 했다.
편작은 이처럼 의사로서 그 지방의 풍속애 따라 적응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秦)나라 태의령 이혜는 자신의 의술이 편작만 못한것을 시기하여 사람을 시켜 편작을 척살 했다.
지금까지도 천하의 진맥하는 사람은 모두 편작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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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창공은 제나라의 태창의 장관으로 임치 사람이다.
성은 순우(淳于)씨이고 아름은 의(意)이다.
젊어서 의술을 좋아 했다.
 
고후8년
같은 고을 원리의 공승 양경에게 사사했다.
양경은 나이 70에 아들이 없었다.
그는 순우의에게 여태까지 배운 의술을 모두 버리게 하고 자신의 비방을 모두 가르친 후에
황제.편작의 맥서를 전수했다.
이로써 순우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색깔로 오장의 병을 진단하고
병자가 죽을지 살지를 짐작하고 의심나는곳을 발견해서 치료법을 결정 했다.
또 약학에 대해서도 매우 정통하게 되었다.
 
가르침을 받은지 3년이 되자 남을 치료해주고 죽을지 살지를 판단하는것이 항상 결과가 좋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노니는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집에 안주하지 못했으며
의사이면서도 환자를 치료해주지 않아서 환자들에게 원성을 사는일이 잦았다.
 
효문제 13년
어떤 사람이 그런 순우의를 고발하여 그는 역전거에 실려 장안으로 압송 되었다.
순우의에게는 다섯 딸이 있었는데
그 딸들이 아버지에게 매달려 울자 순우의가 꾸짖었다.
"자식을 낳아도 아들이 없으니 위급합을 당해도 도움이 될만한 놈이 없구나."
 
 
 
그러자 막내딸 제영이 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장안으로 압송되는 순우의를 따라 나섰다.
이윽고 장안에 당도한 제영이 황제에게 서장을 올렸다.
"소첩의 부친은 관리가 된 이래로 제나라 땅에서는 청렴함으로 칭송을 받아왔습니다만
지금 법에 연좌되어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첩이 애통하게 생각하는 바는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고
육형을 받은 사람은 떨어진 부위를 다시 붙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잘못을 고쳐 새롭게 살려고 해도 그 방법이 없으니 끝내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원하건대 첩을 관비로 삼아 아버지의 형벌에 대한 죄를 속죄케 하여
그로 하여금 잘못한 점을 고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상서문을 읽은 황제는 그 뜻을 가엾게 여겨 순우의의 죄를 용서하고
나아가 그해에 육형법을 폐지 해 버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마도 여기까지가 사마천의 기록의 끝인듯 하고 이 이후에는 태창공 순우의가 자필로 쓴 글인데
사마천의 손을 거치지 않고 후세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라 한다.
 
이하의 내용은 효문제가 글을 내려 순우의에게 여러가지의 질문을 한것에 대해
순우의가 답서를 올린것인데
그 내용이 매우 길고도 장황하다.
또한 전문적인 의술에 관한 내용이고 그 내용역시 모두 비슷하며
태창공이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고치고 어디사는 누구는 어떤 증세여서 살리지 못했다는 내용 뿐이므로 
이곳에 반드시 옮겨야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서 그 내용을 적지 않는다.
 
다만 그 내용의 개략만을 밝혀두기 위해 압축하고 간추려서 설명 해보기로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황제는 순우의에게 어떠한 경위로 의술을 배우게 되었으며
스승은 누구이고 공부는 몇해나 했으며
순우의에게 치료를 받아 효험을 본 환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가 등을 물었다.
 
순우의는 자신이 의술을 배우게 된 내력과 스승 양경에 대한 이야기와 전국의 왕후장상과 공경대신.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치료하고 효험을 본 내역을 상세히 적어둔 기록을 바탕으로
황제에게 자세히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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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창공은 환자를 치료하기에 앞서 먼저 진맥을 하고
그 맥이 순조로운 사람은 치료하고 그 맥이 역행하는 사람은 치료 하지 않았다.
맥이 순조로운 사람이어야만 마음이 안정되어 정밀하게 진단하고 치료 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함에도 태창공은 스스로 실수 할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글의 말미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 하였다.
 
여인은 아름답건 추하건 궁중에 있으면 질투를 받게 마련이고
선비는 현명하건 불초하건 조정으로 들어가면 의심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편작은 그 걸출한 기량으로 인해 화를 입었고
창공은 자취를 감추고 은둔 했건만 형벌을 면치 못했다.
다만 창공은 막내딸 제영 때문에 그 여생을 안녕히 보낼수 있었다.
 
노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ㅡ아름답고 좋은 사람은 불길한 그릇이다.ㅡ
라고 하였으니
편작같은 인물을 두고 한 말씀 이었을까?
창공 또한 이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으로 편작.창공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 보았다.
 
편작은 기이한 인연으로 뛰어난 의술을 얻어 천하를 주유하며 환자들을 돌보았고
그 비법을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다.
그러나 때로는 상을 탐하는 인물로 평가 되기도 했고
결국은 재주를 시기한 다른 의사의 질투심 때문에 죽었으니
노자의 말대로 좋은것은 불길함의 그릇인가?
 
창공은 위대한 의술을 배웠으면서도 그 명성 때문에 일신의 해를 입는것이 두려워서
깊이 은신하고 환자를 돌보지 않았으나
결국 그로인해 송사에 휘말려 죽음을 당할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창공이 꾸짖어 말한 ㅡ아들이 없으니 모두 쓸모없는것들 뿐이다ㅡ 라는 말과는 반대로
막내딸 제영의 덕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요즘이야 그런일이 없지만 세상의 아비된자들이 생각해 봐야할 기막힌 일이라 할수 있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독자들이 잘 알고있는 삼국지에도 화타(華陀) 라는 유명한 명의가 나온다.
화타는 당시 내과 외과를 구분했고 마취약을 개발해 수술에 사용했다.
침.뜸.약 등을 이용해 모든 병을 치료 했으며 손만 닿으면 병이 치유되는 명의 였다.
그는 독화살을 맞은 관우의 오른팔을 수술로 치료 하기도 했다. 
 
조조가 두통으로 시달리고 있을때 조조의 신하중 한사람인 화흠이 화타를 불러 치료를 권유했다.
진맥을 한 화타는 조조의 통증의 원인이 뇌대에 있다며 수술을 권유했으나
조조자신을 죽이려는 첩자라고 생각해 화타를 감옥에 가두고 결국 처형했다.
화흠이 조조에게 화타를 데려올때 했던말이
ㅡ진정 편작과 창공 같은 사람 입니다ㅡ
ㅡ편작창공지류(扁鵲倉公之流)
라고 했던것을 보더라도 편작과 창공은 당시의 중국에서 매우 이름이 알려진 명의 였던듯 하다.
 
그러나 편작.창공은 물론 화타 마저도 그 재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어려움을 당하고 말았으니
너무나도 뛰어난 재주는 그 생명을 위험하게 할수도 있는것인가 하는 생각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세상의 의술이란 주로 사람을 살리는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의 의술은 대부분 금전을 탐하는 방편으로 전락 하였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의사 개인만의 문제인가?
대기업의 끝없는 욕심으로 의료 영리화가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거기에 국가는 그러한 대기업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국민의 등골을 빠는 정책을 실현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현세의 의술은 국민의 복지와 곧바로 연결 된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들이 공평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수 있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가가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고
지금처럼 소수재벌들의 이익만을 대변하여
국민의 대표적 복지분야인 의료마저 개인의 사유물로 만들려 한다면
그러한 정부는 반드시 국민의 저항을 받을것이다.
 
옛말에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 했으니
성난파도가 배를 뒤흔드는데도
뒤집어지지 않은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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