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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889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11 23:18:5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NxRndXRFNMI






1.jpg

강만수접었다

 

 

 

반으로 접었다

내가 그에게 준 마음을

 

두 개의 접힌 선이 직각이 되게 또 반으로 접었다

 

한 번 더 또다시

한 번 더 더 접어나갔다

 

그런 식으로 오십 번 백번을 접고 또 접었다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은 무제한이다

 

그가 내게 돌아올 수만 있다면

접어놓을 수 있다

 

되돌아온다면 그에게 접었던 마음을 하나씩 펴보이리







2.jpg

강신애신례원

 

 

 

열차에서 내린

물빛 원피스는 낯설었지

너는 익숙한 수조

익숙한 음향에서 나오지 않았지

처음 와본 시골 역

하얀 길을 무작정 걸어

지루한 호스가 뱀처럼 기는 허름한 카페

커피를 두 잔째 주문하고

나는 먼 지평선의 중독

소멸에 대한 중독을 생각했지

너는 엉킨 테잎을 쭉쭉 펴고 있었지

물앵두 그림자 어른거리는 너의 편린

사과 잎이 마르고

이끼 낀 화분에 앙금처럼 가라앉는 고요

막다른 벽에서 회유하는 물고기들이

치렁한 초록 나뭇잎 사이를 헤엄쳐

커다란 저수지로 스며드는 것을 보았지

작은 역다시는 지나갈 수 없는







3.jpg

윤희상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나주 장날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높게 쌓아놓은 채 다듬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낯선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남기고 간다

 

"그것을 언제 다 할까"

 

그러자할머니가 혼잣말을 한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4.jpg

박후기흠집

 

 

 

이가 깨져 대문 밖에 버려진 종지에

키 작은 풀 한 포기 들어앉았습니다

들일 게 바람뿐인 독신(獨身)

차고도 넉넉하게 흔들립니다

때론

흠집도 집이 될 때가 있습니다






5.jpg

이상국물 속의 집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 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엄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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