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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노예
게시물ID : panic_890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airoS708
추천 : 21
조회수 : 2298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7/06 15: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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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일하게 된 첫날은 날씨가 제법 후덥지근했었다.
그날 아침, 주인은 창고에서 자고 있던 나를 끌어내었다.
그런 주인의 한 손에는 제법 사용해서 거뭇거뭇해진 걸레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벗겼다.
그리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내 몸을 대충 닦아내기 시작했다.
걸레의 불쾌한 촉감과 거친 손길.
내가 번뜩 정신이 들었을 땐 눈앞에 미간을 찡그린 주인이 있었다.
한동안 그는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혀를 한번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쯧, 이 정도면 됬겠지.'
내가 알몸이 되어 널부러져 있음을 깨달은 건, 주인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다시 옷이 입혀질 때였다.
이렇게 정신없이 나는 노예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나의 노예생활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주인이 원할 때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것.
하지만 일을 쉬기 위해선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했다.
차라리 시간을 정해줄 때가 가장 힘들지 않다.
시간만큼만 일하면 되니까.
제일 난감한 때는 주인이 일을 시킨 후 어디론가 가버렸을 때이다.
그가 돌아와서 쉬어도 된다고 하기 전까지는 일을 쉴 수가 없다.
그가 원하는 일이지만 그가 없더라도 해야했다.
 
진짜 힘든일은 주인이 잠자리에 들 때이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더라도 방향이 어긋나거나 빗나가서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발로 나를 차서 움직이거나
손으로 나를 직접 움직였다.
예전에는 나에게 이 시간만 하라고 정해주었기에
밤에 조금이라도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힘이 약해졌다는 등 불만에 가득차서
밤새 일하지 않은 날이 없다.
 
그리고 그는 내가 힘든 일을 할때마다 220칼로리의 에너지바를 주곤 했다.
220칼로리에 강조된 문구와 여행 이벤트가 그려진 에너지바.
1등에게는 제주도 여행을 3박 4일로 보내준다고 써있다.
그 에너지바를 먹을 때마다 나오는 당첨쪽지는 유일한 나의 즐거움이었다.
단조로운 나의 일생에 가장 변화가 있는 일.
 
그러던 어느날.
누워있어도 땀이 나는 더운 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나에게 성질을 부렸고
밤새 일을 해야하는 밤이었다.
그가 잠에 들자 나는 에너지바를 조심스레 뜯어보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가 깨지않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를 보며 꺼내든 쪽지에는
[1등 당첨]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자유롭게 제주도를 즐겨보세요!
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이 문구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전에도 한번 나왔던 쪽지.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자유.
나는 그 문구에 놀랍도록 집중했다.
자유.
조심스레 손끝으로 글자를 쓸어보았다.
매끈하면서도 힘없이 구부러지는 쪽지위의 그 두글자를.
자유.
나의 입은 천천히 움직여보았다.
작은 소리에 주인이 깰까 두려워
목구멍으로 어떤 기운도 내뱉을 수 없었지만
자유.
그것은 뜨거운 것이었다.
마치 태양을 삼킨 마냥 가슴이 뜨거워졌다.
처음으로 밤새 일한 아침
뜨거워진 나를 주인이 구석에 던져두었을 때에도
나는 식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 뜨거운 기운은 점점 커져
마치 코를 세차게 맞은 듯이
코끝이 찡해지며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이 두글자가 목구멍까지 솟아올라왔다.
속이 메스꺼웠지만 그것마저도 나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던 그의 눈.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의 입.
나를 함부로 대하던 그의 손.
나를 밀고 차던 그의 발.
천천히 그를 보던 나는 더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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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2시 16분께 부산 수영구의 한 주택건물 2층에서 선풍기 과열로 추정되는 불이 나 1시간만에 진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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