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회는 어디서부터 썩었는지 항상 고민하게 만든다.
온몸으로 전이된 암세포처럼 안썩은 부분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성처럼 종교를 몸에 두르고 태어났다.
물론 바꾸려고 들면 현대 과학으로 바꿀수 있지만 성 정체성에 의심이 없으면 바꾸지 않는것처럼
종교적 정체성에 대하여는 의심이 없기에 바꿀 맘은 없다.
하지만 구역질 나도록 싫은것은 내 종교가 아니라 지금 이나라의 교회다.
내부자의 입장에서 곤욕스러운 점은 교회는 왜 의심없이 아멘을 강요하는지 이다.
내 교회의 목사님은 괜찮은 분이라 생각한다. 일면 훌륭하신 분이다.
교회로 자신의 곳간을 채우는 일 없고, 설교자로서 자신의 말에 정치적 색을 입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목사님도 항상 교인들에게 아멘을 강요한다.
일단 아멘 하면 무엇이 바뀌는 걸까?
아멘 아멘 아멘 하면 내가 구원의 확신이 생기는건가?
구원파처럼 한번의 구원이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는 이상한 논리만큼 기성교단의 아멘 강요도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아멘 강요는 자신이 얼마만큼 예수님의 삶과 비슷하게라도 살아 왔는지의 고민을 차단한다.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대로 행하는 삶이 얼마나 진실되겠는가
심지어 우리가 신앙에 대해 고민이라도 할라치면 이단의 길로 빠질 수 있다며 미리 차단해버리는 목사도 본적이 있다.
교인들은 또 어떤가.
흔히 목사들은 자신들을 주님의 종이라 표현한다.
교인들은? 주님의 자식이다.
누가 위에 있는지 판단하는것 만큼 어리석은게 없을 수 없으나 종과 자식의 관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인들은 목사를 신 다음으로 여기는 듯 하다.
예전에 본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모 교회의 모 목사님의 생일 잔치가 기억난다.
그 교회는 부활절 아니 크리스마스에라도 그렇게 성대하게 주님의 탄생이나 부활에 대해 기뻐했을지 의심이 든다.
양치기에게 아무리 양치기개가 소중한들 그가 키우는 양만큼 소중할까
내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 교회의 암의 최초 발원지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목사는 맹목적인 아멘을 강요하고, 교인들은 세뇌되어 아멘을 반복한다.
목사는 설교에 본인의 정치적인 색깔을 입히고 교인들은 아멘한다.
믿음에 대한 고민은 차단한다.
나는 지금 오유에 접속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아멘하지 말아라. 마음에 울림이 없는 설교에 아멘하지 말아라.
기본적으로 안티 기독교 인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안겨 주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반성거리를 던져준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바이러스와 같다.(안티 기독교 인들에게 바이러스로 비유한점 사과드린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온몸에 열이나면서 아프고 나면 몸은 건강해진다.
안티기독교인들에게 호되게 당해봐야 대한민국 기독교는 건강해 질 수 있다.
건강해져서 몸에 내성이 생기게 되면 그 바이러스는 더이상 몸을 해칠수 없게 된다.
하지만 몸에 다른 허점이 있다면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공격할 것이다.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더 까줬으면 좋겠다. 더 비열하게 공격해야 한다. 치부를 낱낱히 들어내버려야 한다.
다시는 그런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구렁이 담넘어가듯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머리에 각인 시켜야한다.
하나 더 부탁하고 싶다.
종교자체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종교자체의 문제는 우리 개독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종교가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맞을 수 있을까?
나 자신으로서도 오유에 가끔 올라오는 그런 글은 거부감이 든다.
결국 종교와 무신론자의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존중해달라. 나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믿을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