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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실화] 무당의 예언
게시물ID : panic_890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로공부er
추천 : 35
조회수 : 5932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6/07/06 18: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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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이 실화가 될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무당 실화 요청글을 보고 올립니다.

 

 

 

 

 

이 글은 저와 관련된 어머니의 실화입니다.

 

 

 

 

제 나이 10살무렵

인천에서 강원도 모 도시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러 동업자들과 사업장을 차리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 뜻이였죠.

 

부모님은 사업 준비로 늘 정신이 없으셨고

저는 지방 아이들의 몰인정한 왕따에 시달리느라 늘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활달하던 제가 의기소침해 진 것이 교우 관계 때문인걸 아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듬해 동네 아주머니의 권유로

여러 일을 물어볼겸 인천에 용하다 소문난 무당을 찾아 가기로 하셨었습니다.

 

 

이 무당은 이제 갓 스물 넘은 애띤 처자로 내림굿 받은지 얼마 안되서

이른바 신빨이 가장 쎈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들었댔습니다.

더 소문 나기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용한 신기 한번 덕 보자고 하는 꼬드김에

 

어머니께서는

줄곧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끌려 내려와야만 했던

아버지의 사업운을 물어볼겸 방문 하셨댔습니다.

 

 

경기도 어디 등지에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였는데

골목 안에 간신히 알아볼만큼 작은 깃발을 걸고 간판도 허름하게 단 집이였답니다.

 

미리 예약을 했다는 이웃 아주머니 말에 대문을 밀고 들어가

머리가 빠글빠글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전하니

바지춤에 대충 손에 흐르는 물을 닦고는 방 안에 들어가 말을 전해주더랍니다.

 

 

어머니께서는 이때까지도 영 무당집 같지 않다며 심각한 기색없이 두리번 거리셨댔습니다.

 

말 그대로 마당이라기에도 옹색한 시멘트 바닥을 끼고 있는 작은 주택이였으니까요.

 

 

 

 

그리고 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새로 도배를 했는지 하얀 벽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신들의 좌상과 탱화에 둘러 싸인 가운데에

무당이라기엔 너무 어리고 연약하게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더군요.

 

이유는 모르지만

머리도 쪽지지 않았고 한복 같은것도 제대로 걸치지 않아 순간 잘못 들어온줄 알았답니다.

 

의아해할 찰나에 동행한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그 앞에 앉았는데

상 위를 더듬어 쌀알을 뿌리고 만지는 손길이 익숙해 보이지 않았고

조심히 눈을 들어 얼굴을 보니 여기저기 삐져나온 잔머리 사이에 그윽히 떠있는 눈 사이는

시린 퍼런색이더랍니다.

 

 

 

'아....장님이구나..'

 

 

딸 둘 둔 어미 마음에 어머니께선 마음이 괜히 짠해져 있으셨는데

옆구리를 누가 쿡 찌르길래 퍼뜩 정신이 들었고

조심스레 맹인 아가씨에게 남편이 올해 사업을 하는데 잘 될런지..와

자식들이 전학을 와서 적응을 잘 못하는거 같은데 이것이 잘 해결될런지를 물어보셨답니다.

 

2-30초 침묵이 후,

그 맹인 아가씨는 남편의 사업은 생각보다 안 풀릴건데 아주머니께서 대비를 잘 해두면 말년엔 필 것이다..

라고 말을 했다는 군요.

 

영 찝찝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폭삭 망한다는 말은 아니었으니 반만 믿자..라 생각하시며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식은 셋인데..막내는 아들인가요??"

"..세명 아닌데요??"

"..으흠..첫쨰 둘째는 딸이 맞는데..막내가 아직 없어요??"

"(..딸 둘인건 어찌 알았지??..있지도 않은 아들 얘기 하는거 보면..돌팔이 같은데..)네에,..없어요.."

 

 

 

머쓱하게 보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맹인 아가씨는

 

"...(쌀을 두어번 뿌리고 거두는 행위를 반복하더니..)..큰 따님이 ,,으흠..안 좋네.."

 

 

그러고는 한참을 쌀그릇에 쌀을 만지작 거리더니

큰 결심한듯 말해주었답니다.

 

 

"올 7월에 물귀신이 노리고 있고 11월에 길바닥에 사는 지박령이 데려가려고 할 겁니다.

 7월까지는 물에 못 들어가게 하시고 11월 한달은 혼자 길가에 못 나가게 하세요."

 

 

 

너무 뜻밖의 말에 정신이 황망해 지신 어머니를 공허한 눈으로 빤히 보던 맹인 아가씨는

작게 고개를 흔들더니

 

 

"11월까지 무사하면 따님 걱정은 앞으로 안해도 될 정도로 잘 풀리겠지만..

 만일 화를 입는다면..내년 부턴 악삼재가 낄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셔요."

 

 

 

 

어머니는 던지다 시피 돈을 두고는 인사도 안 하고 돌아오셨답니다.

같이 가자고..용하다고 꼬드겼던 아주머니는 그 후 며칠을 재미로 본거라고 신경쓰지 말라고 본인 말을 번복하셔야 했죠.

 

 

 

 

그 해 여름 7월 중순,

 

저는 단체로 단 스카우트 야영에서 냇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사람 바글거리는 사이에서 익사를 할뻔 했습니다.

순간 돌에 미끄러지는가 하더니 오른쪽 다리가 한도 끝도 없이 하류를 향해 끌려 가더군요.

그해 스카우트 야영은 저희 학교에서도 처음으로 타지로 간 야영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친구집도 못 가게 하고 철저하게 단속 하시던 어머니의 노고가 무색하게

저는 저를 왕따 시키던 아이의 협박이 무서워 그 일당들 중 한명의 피아노 발표회에 가게 되었고

 

11월 29일

학교 후문에서 150미터 떨어진 좁은 2차선 도로에서 택시와 주차된 차에 두번 부딫침니다.

사고 지점은 막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곳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머리와 다리가 다쳤고

단순 골절임에도 부러진 부위가 좋지 못해서 그 후 3년 동안 총 8번의 수술을 하게 됩니다.

머리에 고인 피는 3번에 걸쳐 피스톤으로 빼내었는데 다행히 뇌진탕은 안 되었지만

그 후에도 원인 모를 두통과 기절로 오랜 기간 고생을 했습니다.

 

 

후에 삼재를 겪을때 너무 고생스러워서 다시 그 무당을 찾아가 방책을 듣고자 하셨지만

이미 이사를 갔는지 그 곳에 없다는 말을 전해 들으셨고

전화번호도 사라져서 속수무책으로 악재를 감당하셔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길게 고생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고 나서 어머니꼐 들은 이 이야기는

저를 늘 오싹하게 만듭니다.

절 다니시지만 무당이니 하는 것은 별로 믿지 않으시던 어머니꼐서는 그 후에는 그런 것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하십니다.

 

 

아..

 

무엇보다

스쳐 지나갔던 그 셋쨰가 2년 후에 태어났으니까

그 무당이 한 말은 모두 들이맞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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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는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5/read/3056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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