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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손목
게시물ID : panic_890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4
조회수 : 154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7/08 21:02:43
손목

대학 동기가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하고 전화를 했다.
반 년만에 목소리를 들었고, 만나게 되면 1년 만에 보겠네 하고
퇴근하던 길에 멍 때리며 대충 듣고 대충 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2주 후 주말은 그녀 집에서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당일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일을 끝나고 저녁에 그대로 그녀 집으로 갔다.
도착하니 손수 만든 요리를 대접 받고, 업무상 불만을 들어주고
방문 선물차 가지고 간 술과 안주를 비울 즈음에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그럼 이만 자자며 상쾌하게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았지만
안절부절하며 계속 뒤척이는 그녀 때문에 좀처럼 자질 못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사실 말 안 한 게 있어"라며 내키지 않는 투로 말했다.
"2주 전부터 그랬는데... 손목이 나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침대 정면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옷장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저 옷장 사이에서 손가락이 나와 있었어
 그때는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하고 신경쓰지 않았거든
 그런데 다음 날 책장 너머로 손가락이 보인데다
 그 다음 날은 탁자 옆에 손이 보였어"
라고 그녀가 말했다.
말한 순서대로 시선을 옮겨보니 그 "손"은 분명 침대를 향해 이동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본 것도 아닌데 괜히 오싹했다.
"그래서 있잖아"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어제 침대 끝자락에 손목이 보이는 거야"
그러니 어쩌면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힘 없이 이어진 말에
여러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대로 내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더니 갑자기 웃으며 "거짓말이야"라고 했다.
"누가 자러 오면 괜히 겁주려고 지어낸 이야기야. 무서웠어?"
하고 웃는 그녀가 너무 즐거워보여서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아까전부터 그녀에게 말 못 한 게 있었다.
손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녀를 잡으려고 쭈그린 남자가 점점 앞으로 기울기 시작해서
이야기가 끝날 때는 그녀를 덮쳤고,
그 후 웃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지만

나는 천천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눈을 감았다.
어느 틈엔가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24862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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