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 이후로 마음이 좀 가벼워진걸까, 눈물도 나지 않고 우울하단 생각도 훨씬 덜 들었다.
여전히 폭식에 구토라는 형태로 스스로를 자해하고 있는 점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습관적인 행동일 뿐, 예전처럼 '나는 먹을 가치도 없는 존재야'라는 의미부여는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역시 나의 긴 우울의 원인은, 머지 않은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미 그 전부터 천천히 경험해갔던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들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얘기를 모두 털어놓고 가슴 깊이 나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나니, 훨씬 기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나 자신만이 실패의 귀인요소였다. 나만 이상하고, 나만 모자라고, 항상 보통의 타인에 모자라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죽여왔다.
지금은 덜하다. 여전히 매일 먹고 자고 놀고 토하고의 연속이지만, 왠지 '오로지 나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나름의 자기합리화에 성공해서 그런가보다.
이런 자기합리화가 아직 두렵기도 하다. 스스로의 게으름을 유년시절의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함으로서 나중에는 어떤 일에서건 남탓을 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은, 잠시만은,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조금 더 쉬고 싶다.
이 아픔을 부모님 당신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용기가 생길때 까지, 조금은 더 쉬고싶다.
완전히 화해하고 당신들의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줘.
미안해요.....머리로는 당신들을 이해하는데, 아직 마음이 당신들을 온전히 용서하질 않고 있나봐.
난 참 이기적이죠. 그래도 어쩔수가 없어요....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