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지(金自知. 1367-1435)
개성부 유후 김자지의 자(字)는 원명(元明)이니, 연안부 사람으로 밀직제학 김도의 아들이다. 자지는 나이 18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해 이름을 날리면서 모두 명성과 덕망과 업적이 있었으며, 사람됨이 정중하고 미덥고 확실하면서 총명하여 음양(陰陽), 복서(卜筮), 천문, 지리, 의약, 음률 등을 널리 읽었으며, 불교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여러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상(喪)을 치르는 일은 한결같이 문공가례(文公家禮)에 의해 하라." 하였다.
(죽을 때)나이 69세였다. 2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조상과 부의를 내렸으며, 문정(文靖)이라 시호를 내리었다. 학문을 부지런히 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이르고, 몸을 공경히 가지고 말이 드문 것을 정(靖)이라 이른다. 처음 봉상시에서 시호를 논의함에 있어 도덕박문(道德博文)의 "문(文)"자도 아울러 함께 논의하였던 바, 임금이 말하기를, "자지가 비록 어질기는 하나, 도덕이 있고 박학이라면 과하지 않겠는가."하여, 드디어 이를 고친 것이다. 아들 아홉을 두었으니 김위, 김경, 김잉, 김유, 김하, 김해, 김비, 김수, 김구이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 17년2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