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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단편] 사측카페
게시물ID : panic_891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못된야옹
추천 : 26
조회수 : 1795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6/07/11 08: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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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야옹의 첫번째 단편. 
<사측카페>
 
 
 
 
 
 
 
오늘도 우리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카페 안에 앉아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늘 가던 학교 앞 단골 카페가 아니라는 것 정도. 그녀의 손에 이끌려 처음 와보는 으슥한 동네. 그런 낯선 으슥함 속에서 홀로 덩그러니 세워져 있어 뭔가 주변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낡은 카페. 허나 내부의 모습은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카페보다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 ‘역시 그녀의 안목은!’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던 이 카페. 덕분에 난 이 카페에서 오늘이야 말로 그녀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끄집어내기로 결심했다. 이곳이야말로 오늘의 내게 매우 잘 어울리는 안성맞춤인 장소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쉽게 보기 힘든 고스로리드레스를 입은 여 종업원이 따뜻한 커피 두 잔과 먹음직스러운 크림치즈 베이글이 담긴 접시를 테이블위에 사뿐히 올려놓고 사라졌다. 난 잔을 입으로 가져가 고소한 커피 향을 음미하고는 살짝 목을 축였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지현아, 우리 결혼하자.”
 
정식으로 교제한지 고작 6개월 만에 결혼하자는, 솔직히 결심은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고작 이십대 초반에 사뭇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말. 하지만 진심이었던 그 말에 라떼를 홀짝이던 그녀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나도 성급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녀는 유일한 낙이었고 희망이었으며 빛과 같은 존재였다.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란 나를 그녀만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고 그 누구보다 날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난 절대 그녀를 놓치기 싫었다. 다른 그 어떤 누구에게도 그녀만큼은 빼앗기기 싫었다. 그녀는 잔을 살며시 테이블위에 내려놓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난 미칠 듯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뒤로하고 두 눈을 감은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별로 긴 시간은 아니었다. 대충 3분~5분? 귓가로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내게 그녀의 달달한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오빠라면….나도 좋아.”
 
과거에 보았던 쇼프로그램 몇 개가 스쳐지나갔다. 파트너를 매칭 시켜주던 프로그램. 마음에 들던 파트너에게 선택되어 꽃다발을 받은 남자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두 눈을 뜨자,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얼굴을 붉힌 채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너무나 벅찬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게 느껴졌다.
 
“고마워, 지현아!”
“바보같이 왜 울려고 그래. 사진 찍어서 평생 놀려먹어야겠다. 후후.”
 
지현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짓궂게 웃었다.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난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 절대 이 여자가 눈물 흘리지 않도록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난 활짝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내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커플들의 축복어린 환호성이 들려왔다. 난 그들에게 화답하듯 품속에서 미리 준비했던 반지를 꺼내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카페 내부에 울려 퍼졌다. 나와 지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난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비명을 질렀을 거라 추정되는 여성 하나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여성의 목덜미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잔혹하게 찢어져, 그녀가 숨을 헐떡거릴 때마다 속에서 붉은 핏줄기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내가 보기에도 얼마 안 있어 그녀가 죽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그렇게 죽어가는 여성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입으로 무언가 질겅질겅 씹고 있는 괴이한 남자였다. 그는 붉게 충혈 된 두 눈 만큼이나 붉은 핏물에 젖은 입을 씰룩거리며 여성의 목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그 속에서 그녀의 끊어진 혈관과 살점 등을 끄집어내 입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후루룩”
 
마치 면을 흡입하는 것 같은 소리와 진한 피비린내가 얼어붙은 카페 안에 흘러 퍼졌다. 누군가의 토악질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난 내 팔을 부여잡은 채 떨고 있는 지현에게로 눈을 돌렸다. 지현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창백한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걸을 수 있겠어?”
 
지현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난 알겠다고 하고는 그녀를 등에 업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정체모를 미친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죽은 여성의 머리를 부욱 뜯더니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여성의 가슴부위에 입을 대고 게걸스럽게 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내 툭툭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구르던 여성의 머리는 카페 종업원의 발 앞에서 멈춰 섰다. 순간 종업원의 얼굴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끼야아아아아악!!!!”
“시발 저게 대체 뭐야!!”
“뛰어!! 잡히면 죽는거야!!”
“으아아아아!! 비켜!!”
 
종업원의 비명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카페 안은 아비규환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서로 먼저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어디선가 등장한 괴물들이 서로 뒤섞인 비명으로 가득한 피바다. 그 속에서 난 필사적으로 지현을 업고 몸을 움직였다. 운이 따라 준 것일까? 카페 안으로 들어온 것들은 처음 놈을 포함해서 넷. 그 넷은 서로 찍은 사냥감에 집중한 탓인지 우리를 비롯해 타깃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잡혀 죽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피로 물들어 있던 건 비단 카페만이 아니었다. 낯설기 그지없는 이 거리엔 이미 안에 들어왔던 놈들과 같은 것들이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줘! 아, 아 안 돼! 크아악!!”
“컥!!!”
 
사방에서 뜯고 뜯기는 이들의 불협화음이 고막을 쉴 새 없이 울려댄다. 난 최대한 정신을 바로잡으며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처음 왔던 거리이기에 지리를 전혀 몰랐고, 지현은 이미 기절한 듯 내 등에 업혀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순간 나와 함께 빠져나왔던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 하나가 다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동시에 연달아 달려든 두 놈의 괴물에게 순식간에 머리가 물려 뜯겨져 나갔다. 이내 두 놈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괴성을 지르며 지체 없이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야수의 포효와도 같은 섬뜩한 음성이 귀를 후비고 들어왔다. 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난 다리가 후들거려 멍하니 서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머리로는 뛰라고 수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음에도 두 발은 마치 접착제라도 발라둔 듯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놈과 불과 1~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게 되었을 때 난 간신히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시발!!”
 
거센 욕설을 한차례 내뱉은 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쪽으로는 죽은 사람들의 파헤쳐진 시신 등에 비해 놈들의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 이쪽부터 다 먹어치우며 카페 부근까지 내려왔던 모양이었다. 난 달리며 슬쩍 뒤를 돌아본다. 놈과의 거리는 생각보다 많이 벌어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신체능력인 것인지 뛰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던 나조차 혀를 내둘렀다. 점차 멀어지기는커녕 좁혀지는 놈과의 거리. 아무래도 이대로 달리기만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어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간 업혀있던 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오빠….”
“정신이 좀 들어?”
“응….”
 
지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는지 대답하는 음성에 힘이 없었다. 일단은 어디서 숨 좀 돌리며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르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무엇보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속력을 더 내는 것은 고사하고 이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자 여전히 피 묻은 입을 씰룩거리며 뛰어오는 놈이 보였다.
 
‘저 미친 새끼는 시발, 지치지도 않나!’
 
소름 돋는 붉은 눈이 가늘게 찢어지며 입을 씰룩이는 꼴이 마치 날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때마침 하늘이 도운 것일까? 저만치 쓸 만한 쇠파이프 몇 개가 어지럽게 굴러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현아, 걸을 수 있겠어?”
 
내 물음에 지현은 작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난 죽을 힘을 다해 쇠파이프가 어질러져 있는 곳까지 조금 더 속력을 내고는 잽싸게 그녀를 내려놓고 쇠파이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법 묵직한 무게감에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어차피 이대로 도망만 가다간 결국엔 잡힌다. 그럼 뒷일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어차피 죽을지언정 모험을 해보는 것이 훨씬 나았다. 지현의 걱정 어린 눈빛을 뒤로하고 난 야구 타자처럼 쇠파이프를 양 손으로 부여잡고 자세를 잡았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순간이것만 막상 실로 겪게 되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내 모습에 놈은 잠시 주츰 거리나 싶더니 다시금 나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라 판단한 모양이다. 한방에 끝내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내가 당하면 지현이도 죽는다. 그렇게 만들 순 없다. 집중하자, 집중해. 머리만 제대로 후려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그렇게 놈이 펄쩍 뛰어올라 내 지척까지 다가 왔을 때 난 이를 악물고 지체 없이 쇠파이프를 온힘을 다해 휘둘렀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맹렬한 속도로 궤적을 그리던 쇠파이프는 정확하게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얼마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꽤나 먼 거리까지 날아간 놈은 저만치 우뚝 솟아있는 전봇대에 부딪히고 나서야 바닥에 처박혔다. 놈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눈 코 입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분간하기 힘들만큼 함몰되어 끔찍하게 일그러진 놈의 머리에서 꾸역꾸역 핏물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살았다. 다행이었다. 난 놈의 피로 얼룩진 쇠파이프가 꺼림칙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다른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지현은 말없이 내게 와락 안겼다. 그녀의 몸은 많이 떨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지현이 넌 오빠가 지켜줄 테니까….”
 
지현은 품에 안긴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찰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저만치서 이쪽으로 맹렬히 달려오는 놈들의 무리까지 눈에 들어왔다. 대충 어림잡아도 7~8마리.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난 재빨리 지현의 손을 붙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현은 내 속도를 따라오기 버거워 보였다. 높은 굽의 힐을 신고 휘청거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다시 업고 뛰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결국 지현은 내 손을 놓치며 바닥에 넘어졌다.
 
“오빠!!”
“지현아!!”
 
지현의 뒤로 일그러진 얼굴의 죽다 살아난 놈이 침을 흘리며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 뒤로 나머지 무리의 모습도 확연히 가깝게 느껴진다. 지현은 넘어지면서 다리를 삐끗한 모양인지 쉽사리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달려가 그녀를 업고 도망치려면 저 일그러진 놈은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것도 단 한방에 끝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뒤따라온 무리에 둘러싸여 전부 죽게 된다. 어쩐지 오늘 너무 쉽게 일이 풀리나 했다. 난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조금 전과 같은 모험이 아니다. 이건 그냥 같이 죽으러 불길로 뛰어드는 꼴과 다르지 않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오빠!!!!!”
 
지현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나를 향했다. 놈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제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 두 다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내게 잘해줬던 그녀의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처음에 말했던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녀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고, 그래서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인생을 걸지는 않을 거라고. 난 아까와 달리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위기역시 충분히 불확실한 미래의 한 부분이다. 누가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상황을 직접 겪게 될 줄 알았는가? 바꿔 말하면 이 상황이나 지현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듯,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란 법도 없단 이야기다. 난 내가 생각해도 소름끼칠 만큼 잔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확정적이었다. 난 미련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해 지현아….’
 
순식간에 처음 듣는 그녀의 비명과도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일 따위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사랑 한다’ ‘지켜주겠다’ 속삭여 놓고는 결국 이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위기에 처하면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멋있는 영웅이 될 수 있는 까닭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짜여 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대사를 읊고 몸을 날리고 하는 것 뿐, 그 주인공 역시 현실에선 나와 다르지 않을 평범한 보통 인간이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각본 따위 없으며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설정 버프 따위도 없다. 그렇기에 난 이런 현실에서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희생해 상대를 살리는 숭고한 희생과 살리지도 못할 일에 덤벼들어 같이 개죽음 당하는 건 절대적으로 별개의 이야기이다. 전혀 다르다. 난 개죽음 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택했을 뿐이다. 노력도 했다. 그러니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필사적으로 정신을 바로잡았다. 어느새 지현은 목이 뜯겨져나간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머리가 일그러진 놈은 지현의 위에 올라타 그녀의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고는 게걸스럽게 입을 놀리고 있었다. 그녀는 축 늘어진 채 놈의 입놀림에 맞춰 몸을 들썩거렸다. 아까 카페에서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웠던 반지가 피로 물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도 잠시, 뒤따르던 나머지 무리들 역시 그녀의 몸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머릿수라면 순식간에 지현을 흔적하나 없이 깨끗이 먹어치울 것이다. 이렇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벌어진 시간을 이렇게 헛되이 쓸 수는 없다. 최대한 빨리 멀리 도망쳐야만 한다. 난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는 재빨리 몸을 틀었다. 그런데….
 
“정말 너무하네.”
 
순간적으로 들려온 지현의 음성에 난 막 뛰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뼈와 살이 죄 뜯겨나간 처참한 몰골의 지현이 놈들을 헤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뜯어먹느라 정신없던 괴물들은 지현의 손짓에 따라 하나 둘 흔적도 없이 눈 녹 듯 사라져 버린다. 이윽고 완전히 그녀가 일어났을 때 놈들은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지현역시 물어 뜯겨진 흔적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원망어린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지, 지현아….”
 
그때였다.
 
[빠바바밤! 빠바바밤!]
 
갑자기 어디선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이내 지현의 머리 위쪽 허공에 누군가 급하게 휘갈겨 쓴 것 같은 큼지막한 단어 하나가 생겨났다.
 
[failed]
 
난 의아한 얼굴로 지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사뿐사뿐 내게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내 뺨을 후려 갈겼다.
 
“지현아…?”
“나쁜 놈.”
 
의아함도 잠시, 화끈거리는 뺨을 부여잡고 지연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을 때와 같이 어지럽게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나와 지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일그러지며 뿌연 안개에 휩싸였다. 이내 얼마 안 있어 안개로 휩싸인 주변의 풍경은 점차 그 농도가 옅어지기 시작해 어느 샌가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는 고급스러운 카페 내부의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난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놀라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페 내부의 모습은 아까 전 지현에게 내가 반지를 끼워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전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와 내가 서있다는 것과 카페 내부에 손님이 한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꿈이라도 꾸었단 말인가? 볼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과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지현의 눈빛을 보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지현아….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이름 부르지 마. 역겨워.”
 
지현은 내 말에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테이블위에 신경질적으로 쾅 내려놓았다. 그리곤 나를 지나쳐 카페 밖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 채 일종의 패닉과도 가까운 상태로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난 테이블 위에 놓인 빛을 잃은 반지를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잠깐 졸아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타당해 보인다. 그럼 대체 어디서부터가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이란 말인가. 미친남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아니면 결혼하자 고백했을 때부터? 도무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때 문득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잘린 여자의 머리를 보고 제일 먼저 비명을 지르던,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던 그 여 종업원이었다. 왜일까? 고스로리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 여자의 모습마저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러게 왜 안 구하셨어요? 결혼까지 생각하신분이…. 저 같아도 따귀 날렸을 것 같아요”
“네?”
 
난 비단처럼 고운 목소리로 말문을 연 그녀의 음성과 어울리지 않는 경멸에 찬 두 눈과, 눈이 마주치자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두 눈빛 못지않게 진한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한 숨을 내쉬었다.
 
“오늘 여기 처음이시죠?”
“아, 네….”
“여자 친구 분은 아니, 정정할게요. 조금 전까지 여자 친구였던 분은 이 카페 회원이세요. 막 오픈 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종종 들르시는 단골 고객 중 한 분이시죠. 그리고 오늘처럼 데리고 온 남자 분을 측정하세요.”
“측정…요?”
 
갑자기 뜬금없이 측정이라니…. 아무리 내 상태가 보기 흉했어도 그렇지, 이번엔 이 여자까지 날 놀려먹을 참인가? 얼얼한 뺨만큼이나 속이 뜨겁게 끓기 시작했다. 헌데 이 여자,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도 있나? 내가 막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찰나에 혀를 차고는 지가 먼저 입을 여는 걸로 선수를 쳤다.
 
“쯧쯧. 이렇게 정보가 없는 현대인도 처음보네요. 다른 의미로 신선한데요?”
“무슨 말이죠?”
“후, 설명해드리죠. 사측카페라고 들어본 적 없으세요?”
“사….뭐요?”
“사측카페요, 사측카페! 사랑측정카페. 설마 처음 들어 보세요??”
 
이 여자의 말을 들으니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측정기술의 도입에 관한 기사가 생각났다. ‘사랑, 우정 등 여러 인간의 감정들을 측정해드립니다.’라는 신선한 도입부가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럼 이곳이 그 측정카페라는 곳인가? 이런 내 어렴풋한 얼굴을 읽은 것인지, 이 고스로리종업원은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행히 그건 들어보신 것 같네요. 이곳은 여러 감정들 중에서 ‘사랑측정전용’이구요. 우정측정이나 신뢰도측정 등 여타 ‘다른 감정들의 측정업소’들도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는 추세랍니다. 한 업소에서 복합적인 감정의 측정은 ‘홀로그램장치’의 특성상 불가능 하거든요. 아직은 기술력의 한계랄까요?”
“그럼…. 아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꿈이 아니라 다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환상 같은 거란 말이죠?”
“네, 생각했던 것보단 이해가 빠르시네요. 설마 현실에서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후후. 즉, 여자 친구 아니, 여자 친구 분이셨던 분은 오늘 당신의 사랑을 테스트 해보신 거랍니다. 이제 확실히 이해되시죠?”
 
종업원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테블릿PC를 내게 들이 밀었다. PC의 바탕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명단이 띄워져 있었다.
 
<고객 예약 명단>
 
1.김우주 고객님:11월 2일 오전10시에 현대 <1.연쇄살인범>컨셉 예약되셨습니다.
2.박상철 고객님:11월 2일 오후 7시에 현대 <2.귀신빙의자>컨셉 예약되셨습니다.
3.최지희 고객님:11월 3일 오후 1시에 조선시대 <3.노비와추노꾼>컨셉 예약되셨습니다.
4.김지현 고객님:11월 3일 오후 4시에 현대 <4.잘생긴좀비들>컨셉 예약되셨습니다.
5.최강희 고객님:11월 3일 오후 6시에 조선시대 <3.노비와추노꾼>컨셉 예약되셨습니다.
6.이박명 고객님:11월 4일 오전 10시에 현대 <5.정치가의거짓말>컨셉 예약되셨습니다.(중복예약으로 예약이 강제 취소되었습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위기 상황을 여러 각도로 구성해 최대치로 끌어 올렸을 때의 마음이 이전과 같은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보시는 바와 같이 ‘시대배경’이나 ‘컨 셉’은 고객님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 하시는 거고요. 현재는 5가지 종류밖에 없지만 차차 컨셉의 종류도 늘어 날거에요. 여자 친구 분이셨던 분은 매번 남자 분들을 데리고 오실 때마다 한결같이 4번만 선호하시더라고요. 좀비 매니아신가봐요. 후후.”
“…그렇군요.”
“제가 여기서 일한지 한 달 조금 넘었는데, 아직까지 자기 목숨을 걸어가면서 상대방을 지켜주는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그렇게 침울해 하지는 마세요. 지난주의 어떤 분은 시작하자마자 자기혼자 살겠다고 도망가 버렸거든요. 홀로그램이 종료 되었을 때 그 남자의 표정이란…. 킥킥. 그 남자에 비하면 손님은 그래도 제법 활약 하신 거예요. 여자 친구 분이셨던 분이 지금껏 데려왔던 남자 분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시고요.”
“네….”
“자,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홀로그램장치 특성상 고객님은 1분씩밖에 못 받거든요. 곧 예약손님이 오실 때라서 준비해놔야 해요.”
“…아,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생긋 웃고는 품에서 팜플렛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며 ‘언제 한번 예약하시고 방문해주세요.’ 라는 말을 끝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11월 ‘막대과자 날’ 기념행사>
 
1.아메리카노 2잔쵸코와플 주문시 사랑측정 15% 할인.
2.카페라떼 4잔+치즈케잌 2조각 주문시 사랑측정 10% 할인 (1번 컨셉에 한함)
3.크림치즈베이글+그릭요거트 주문시 사랑측정 5% 할인 (주문 수량에따라 1%씩 추가할인 및 멤버십 포인트 적립)
4.…….
5.….
 
*11일 당일에는 행사상품에 종류와 상관없이 모두 사랑측정 50%할인과 추가적립이 적용됩니다. (카드결제 제외 / 현금결제만 적용)*
 
‘꽉!’
 
난 팜플렛을 신경질적으로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춥다. 이제 곧 겨울이 오려나보다. 징글벨, 징글벨. 캐롤이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도 멀지 않았구나.
 
“그날은 지현이랑…. 아, 이제 솔로지….”
 
난 고개를 저으며 촉촉해진 눈가를 소매로 쓰윽 닦았다. 문득 조금 전 종업원에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자 친구 분이셨던 분은 매번 남자 분들을 데리고 오실 때마다 한결같이 4번만 선호하시더라고요. 좀비 매니아신가봐요. 후후’
 
솔로가 되었다는 것보다 측정카페에 데려와서 내 마음을 시험해보았던 것보다 그녀가 나랑 사귀면서도 다른 남자들을 만나왔다는 게 더 슬펐다.
 
“후….어장관리였던 건가….”
 
버스정류장으로 힘없이 걷던 난 저만치 보이는 커다란 휴지통에 손에 들린 구겨진 팜플렛과 그녀에게 주려했던 반지를 꺼내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뭔가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사랑 측정이라….”
 
그 어느 때보다 씁쓸한 마음이 나를 감쌌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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