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네번째단편] 각종 매체가 만들어낸 MP
게시물ID : panic_891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못된야옹
추천 : 20
조회수 : 117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7/12 11:58:17
옵션
  • 창작글
 
 
 
못된야옹의 네번째 단편 (2014년 수정본)
<각종매체가 만들어낸 MP>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래 TV에서만 접하던 고달픈 고교입시 전쟁을 몸소 경험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 반에는 심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통칭 M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라는 것이 지금처럼 이웃집 아무개가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듯 흔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학년이 올라갈 때면 매번 같은 교복에 같은 까까머리들의 일사 정연한 집합 안에서 개개인의 얼굴을 구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가 되어 반을 배정받은 그 첫날부터 그 비슷비슷한 무리 속에서 유독 M이라는 녀석만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아니,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앞서 말했듯 튀는 얼굴 따위의 그런 외모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M의 행동은 실로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수업시간에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만게쿄 샤링간!(만화경 사륜안의 일본발음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에 등장하는 기술이름)’이라고 외쳐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가 하면, 점심시간엔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모래를 파며 눈이 마주친 사람한테마다‘요술램프가 묻혀 있을지 몰라’라는 것이었다. 헌데 누가 봐도 정신병자로 밖에 안 보이는 그 M이란 녀석은 그런 기괴한 행동을 보이면서도 시험 성적은 전교에서 손가락에 들 정도로 우수해 교사들은 쉬쉬 하며 넘어갈 뿐, 딱히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학교 측에서는 공부는 잘하면서 가끔 이상행동을 보이는 M보다야 성적이 바닥을 기는 소위 노는 녀석들이 더 골칫거리인 모양이었다. 어찌됐건 M이 학교의 위신을 톡톡히 세우고 있던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녀석의 이상행동이 특별히 반 아이들에게 위협적인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렇게 자주 보이는 것도 아니었기에 교사들만 쉬쉬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인 듯 했다. 때문에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은 녀석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싸움 좀 한다는 양아치 무리들도 M한테만큼은 돈을 뜯지 않을 정도였으니, 누가 보면 M이 이 학교 짱이라도 된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심지어 갓 입학한 1학년 새내기 후배들 중에는 그렇게 믿는 무리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껄끄러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반에서 A라는 여자애 하나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고작 점심시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게 다였지만 문제는 M도 같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담임교사도 M의 이상행동을 익히 아는 터라 겉으론 태연한 척 쉬쉬하고 있었지만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담임교사를 비롯해 교사 몇 명이 교내를 샅샅이 뒤지며 우왕좌왕 정신없는 5교시 수업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갑자기 교실 뒷문을 열고 M이 들어왔다. 녀석은 평소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평온한 모습으로 자리에 가 앉았지만 교실 안에는 불안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섣불리 M에게 뭐라고 하는 이는 없었고, 심지어 막 교실로 돌아온 담임교사마저 M에게 어딜 갔다 이제 들어 오냐는 당연한 질책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감만이 실내를 가득 메우는 어이없는 상황은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 되었고, 종이 치기 무섭게 담임교사는 무책임한 얼굴로 아무 말도 없이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 나가셨다. 반에 남은 나를 비롯한 모두는 서로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며 겸연쩍은 웃음을 주고받을 뿐. 아무도 M을 보지 않았다. 마치 그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슬그머니 눈을 굴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내가 M과 눈이 마주친 것은. 녀석의 눈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 반이 배정된 이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다를 것 없는 특유의 그 공허한 눈빛은 지금역시 전혀 달갑지 않았다. 녀석의 첫인상은 평범함 그 자체였다. 어딘가 특별한 것 없이 너무도 온화한 M의 인상은 소심한 성격이었던 내가 먼저 말을 붙일 수 있었을 만큼 부드러웠다.
 

“안녕? 난 P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하하”
 

서투른 인사말과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내게 녀석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땐 무심코 넘어갔던 그 한마디였음에도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대체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엔 무슨 의미가 담겨있던 것일까? 역시 상황이란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모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던 녀석의 그때 그 한 마디가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칼보다도 차갑고 섬뜩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난 M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말은 안했지만 왠지 눈을 돌리면 A다음으로 실종되는 건 내가 될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씨익-
 

녀석은 한쪽 입 꼬리를 볼썽사납게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마치‘그래봤자 다음은 너야’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덕분에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난 역시 A의 실종과 녀석은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종례시간이 끝날 때 까지도 A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담임교사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녀는 혹시라도 A와 연락이 되거나 보게 되면 자기한테 연락 하라는 말을 끝으로 다시금 반을 빠져나갔다. 이내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는 아이들 사이로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내게 M이 다가왔다.
 

“오늘 시간 있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아, 저, 그게…”
 

차마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어 머뭇거리는 내게 M은 아까전과 같은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난 A완 달리 너와의 유대를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
“…아직까진 말야.”
 

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녀석의 텅 빈 두 눈을 마주한 채로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다.
 

“가자! 안내할게.”
 

녀석은 그렇게 말하곤 내 가방을 낚아채 저만치 걸어갔다. 그리고 난 어쩔 수 없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녀석의 집으로 향하는 지옥행 열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
 

 

 

 

 

녀석의 집은 공포영화 속 사이코들의 그것처럼 음산하거나 습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3층짜리 연립주택 형식으로 좀 낡았다는 것 말고는 지극히 평범했다. 한편으론 그래서 더 소름 돋는 것도 사실이었다. 난 의미심장한 얼굴로 녀석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M의 집은 3층이었다.
 

“엄마. 나왔어!”
 

문을 열자마자 어린애마냥 뛰어 들어가는 M을 따라 난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안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조용했다. 제법 고급스러운 벽지와 아이보리색상의 소파가 유독 눈에 띄었다. 시선을 옮기자 저만치 베란다의 열린 문틈으로 건조대에 걸린 옷가지 등이 펄럭거리는 게 보였다.
 

“아직 일이 안 끝나셨나보네. 자! 내방 구경시켜줄게.”
 

난 거실에 서서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던지다말고 내 팔을 낚아채는 M의 손에 의해 녀석의 방에 떠밀리다시피 발을 들여 놓았다. 방안은 그야말로 난잡함 그 자체였다. 벽과 천정에는 각종 애니메이션과 영화 포스터 등으로 도배되어 벽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길 다란 컴퓨터 책상 위에는 크기별로 다양한 피규어들이 정신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컴퓨터는 언제부터 켜져 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이름 모를 영화의 한 장면이 모니터의 바탕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실에 비해서 공기가 너무나 탁하고 습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창문까지 온통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는 탓에 통풍이 잘 되질 않아 그런 것 같았다.그런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M은 나를 잡아끌어 인형 따위 등으로 어지러운 침대에 앉히더니 ‘잠깐 여기서 기다려.’란 말을 하고는 거실로 나가 오렌지 주스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자, 마셔.”
“고, 고마워.”
 

뭐가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주스 잔을 건네받은 난 힘겹게 고맙다는 말을 겨우 입에 올릴 수 있었다. 녀석은 주스를 한 모금 홀짝이곤 컴퓨터로가 재밌는 것을 보여준다며 하나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난 그 틈에 주스를 슬그머니 침대 밑에 내려놓았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터에서 하나의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밀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한 손에 메스를 든 채 누워있는 여성에게로 다가간다. 여성의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고 손과 발은 족쇄 같은 것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여성은 이미 죽은 듯 메스가 살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미동조차 없다. 순식간에 여성의 복부에서 시작된 핏줄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피부조직의 사실적인 표현은 물론 피의 색감 등이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지금껏 보았던 잔인한 그 어떤 영화보다 CG효과와 연출력 자체는 꽤나 뛰어난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무리 잘 만든 영상이라도 이런 부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취미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런 남의 마음도 모르고 M은 나를 돌아보고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멋지지 않아?”
 

다른 사람이었다 해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겠지만 녀석이 말하자 불쾌함 보다 섬뜩함이 먼저 느껴졌다. 난 마지못해 녀석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였다. 거실 현관에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철컥!’
 

M은 보고 있으라는 말 한마디를 끝으로 밖으로 뛰쳐나갔고 홀로 남은 난 멍하니 영상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작 보여준다는 게 이런 거였나? 괜스레 죽을지도 모른다며 긴장했던 내가 조금은 바보같이 느껴졌다. 문득 어쩌면 M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정상적인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또 M이 A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M은 A와 전혀 연관 없을 거란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왜 이런 생각’이 든 걸까.
 

“잘 보았니?”
“응. 보고 있었어.”
“급하게 끝내느라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만화랑 비슷하던데”
“그럼 다음엔 더 노력 할게.”
“…쟤는 안 돼. 유일한 내 친구야.”
“그래?”
 

거실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영상 속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절정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차마 사람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힘들만큼 참혹하게 변한 여성의 모습. 왜일까? 왠지 모르게 여성의 얼굴이 낯익게 느껴졌다.
 

“엄마가 오셨어.”
“어!!? 어, 어.”
 

갑작스레 방으로 들어오며 말하는 M의 목소리에 난 화들짝 놀라며 어색하게 반응했다. 마치 야한 영상을 방에서 몰래 보다가 부모님이 들이닥쳤을 때와 비슷한 반응. 영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벌어진 결과였다. 난 머쓱한 얼굴로 녀석의 뒤에 서있는 중년 여성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녀석의 어머니인 모양이었다. M의 어머님 역시 푸근한 인상에 평범한 40대 주부의 모습이었다.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향 같은 것이 코끝을 스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간단한 인사말을 끝으로 난 다시 M에게 끌려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각종 애니메이션과 평범한 영화를 시청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누구나 인터넷만 된다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매체들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난 M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끔찍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딱히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
 

 

 

 

 

다음날 학교에 도착했을 때 반은 그 어느 때보다 술렁이고 있었는데 화제는 단연 A와 M의 관한 것이었다. 난 어제의 일도 있고 해서 괜스레 먼저 M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좋은 아침.”
“어. 안녕. 근데 어제 깜빡 말을 못해준 게 있어. 미안해”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난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물었다.
 

“뭔데?”
“어제 맨 처음 보여준 영상 있잖아.”
“어. 그게 왜?”
“그거 제목을 말 안한 것 같아서.”
 

별 시답지 않은 일을 가지고 자기 딴엔 굉장히 미안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서 제목이 뭔데?”
“혹시 원피스(일본 해적 만화)란 애니메이션 아니? 거기서 버기(*몸이 조각조각 났다가 다시 도로 붙는 능력의 악마의 열매(토막토막열매)를 먹은 캐릭터)라는 캐릭터가 있거든!”
“어.”
“그걸 모티브로 삼아서 ‘토막토막 열매는 가짜야. PS:엄마도 거짓말쟁이’ 라고 제목 붙였어.”
“…어.”
 

난 유치찬란한 녀석의 말에 짜증이 치밀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영상에 구지 자기가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녀석의 이어지는 말에 난 점점 심장이 쪼그라드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조각조각 나누는 것 까진 만화랑 같았는데, 다시 붙여도 살지는 못하더라고. 역시 다 거짓말쟁이였어.”
“어…?”
 

난 어제 녀석의 방에서 보았던 영상 속 여성의 얼굴이 왜 낮이 익었는지 그제 서야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난 너와의 유대를 잃기 싫다고 말했잖아?”
 

마치 입을 뻥긋 거리기라도 하면 다음엔 내 차례라고 경고하는 듯한 M의 목소리.
 

영상 속 여성은 어제 5교시부터 실종 된 A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꿈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A는 역시나 아직까지 행방불명 상태였다. 반의 술렁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 오늘 아침엔 A가 학교에 나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갑자기 교실 문을 열고 A가 뛰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갖고 있는 몇몇은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힐끔힐끔 교실 문을 흘겨봤다. 하지만 나만은 그럴 수 없었다. A가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왔다. 당장이라도 담임교사에게 아니,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일이었음에도 난 움직이지 못했다.
 

M은 내가 신고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내게 영상을 보여준 것이었다. 영상을 보고도 눈치 못 채는 둔한 나를 위해 대놓고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말이다. 설사 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신고한다고 쳐도 과연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하루가 넘게 흘렀다. 영상이며 A의 시신이며 이미 말끔하게 처리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잠시 녀석의 유치한 연기에 속아 잊고 있었다. 왜 교사를 비롯한 아이들이 M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지. 아마 M이 그저 그런 바보였다면 이미 진즉에 무슨 조치를 취했을 것이었다. M은 단순한 바보가 아니었다. 놈의 머리는 비상했다.
 

그렇게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수업이 끝났을 때, 담임교사는 뭔가 비장한 얼굴을 하곤 교실로 들어오셨다. 무슨 굳은 결심이라도 한 모양인지 다소 긴장된 그녀의 얼굴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윽고 교탁에 몸을 올린 그녀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M…. 혹시 어제 A를 보지 못했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어제 교실에 M이 나타났을 때 이미 물어봤어야 했던 말이었다. 누가 봐도 유일한 용의자는 M인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찌됐건 담임교사가 이렇게 M에게 물었다는 건 더 이상 학교 측에서 묵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반증하는 모양새이기도 했다. 이미 A의 집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벌써 진즉에 경찰에 실종신고가 되어있을지도 몰랐다. 뜻밖의 담임교사의 물음에 반 아이들 역시 동요하는 게 보였다. 마치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을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는 것 같은 긴장된 얼굴들이었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교실 안엔 냉랭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아뇨. 하지만…”
 

M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녀석이 말끝을 흐리자 그녀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M에게 향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M을 볼 자신이 생긴 모양이었다. 총대는 담임교사가 메고 있는 셈이었기에 말은 안 해도 모두 그녀를 의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녀가 책임 질것이라는 그런 무책임한 기대감으로 수많은 감정을 내포한 눈들은 그렇게 M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제 저하고 P가 A가 교문 앞에서 누군가의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봤어요. 그렇지 P?”
 

P는 다름 아닌 내 이름이었다. 녀석은 나를 돌아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난 그렇다는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말에 반 아이들 대다수는 나를 M을 보는 그 눈으로 바라봤다. 불신이 가득한 불안감에 젖어있는 겁에 질린 그런 눈 말이다.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 하는 거야!!”
 

벼락처럼 소리치는 그녀에게 난 어젠 너무 경황이 없어 깜박 잊은 바람에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둘러댔고 그녀는 떨리는 내 목소리에 괜스레 미안하셨는지 ‘알았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나무라진 않으셨다. 그렇게 종례시간은 끝이 났고, 멍하니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어있는 내게 M이 다가와 속삭였다.
 

“잘했어 P. 우린 이걸로 더 질긴 유대를 가지게 된 거야.”
 

녀석은 웃고 있었다. 마치 수백 마리의 뱀이 내 전신을 훑는 기분이었다.
 

 

 

 

 

***
 

 

 

 

 

그렇게 며칠이나 흘렀을까. 부모님께 진지하게 전학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가 무슨 일 있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난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적당히 둘러대었다. 덕분에 전학은커녕 호된 꾸중만 들었다.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날이 갈수록 내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다.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고, 머릿속에는 온통 A의 처참했던 모습과 그 뒤에서 씩 웃는 M의 얼굴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부터 M이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게 영 꺼림칙했는데 녀석은 결국 1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내 자리로 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 말이야.”
 

난 몽롱한 눈으로 살짝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B 되게 상냥하지 않니?”
 

B는 우리 반에서 상냥하기로 유명한 여자아이였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언제나 활짝 웃으며 상냥하게 대해주는 그런 아이. 덕분에 이 반에서 유일하게 M을 사람처럼 대우해주는 아이이기도 했다. A가 실종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상냥한 성격이라 할지라도 B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니까. 내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M은 B를 살짝 흘겨보고는‘그래서 말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아무래도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싫은데 엄마가 B가 맘에 드신데. 그래서 말인데 P 네가 B좀 불러내 주면 안 될까? 내가 말 걸기는 좀 그래서 말이야. 어제 보셨던 영화가 인상 깊으셨던 것 같아.”
 

충격이었다. B를 불러내 달라는 말보다 엄마가 맘에 들어 한다는 말이 더 소름끼쳤다.
 

“왜? 싫은 거야?”
 

얼굴을 빤히 들이대며 되묻는 M. 녀석의 얼굴엔 어느 샌가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럼 이번 타깃은 너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딩동댕동’
 

때마침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흘러나오자 M은 아쉽다는 듯 ‘그럼 이따 대답해줘’라는 말을 끝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난 종소리 덕분에 한숨 돌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녀석이 아닌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난 도무지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M의 부탁을 거절하면 분명 내가 화를 당할 것이었고 그렇다고 승낙하자니 애꿎은 B가 희생양이 될 게 자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민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애석하게도 M의 부탁을 들어주는 쪽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본래의 얼굴을 끄집어낸다. 내면 깊숙이 숨죽이고 가면 뒤에 숨어있던 진짜 얼굴. 그 얼굴로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비단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여기에 해당되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는 명분으로 포장된 이기심을 주저 없이 방출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은 동료의 피와 살을 뜯어 먹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돈이 없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빵 하나를 훔쳐 달아나는 인간도 있고, 돈을 탐해 남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는 인간도 있다. 환경적 요인이든 태생적 요인이든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과이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살인범은 살인범이고 강간범은 강간범이다. 덕분에 난 지금 살인 공모자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난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선택인거 차라리 생각만이라도 고쳐먹기로 했다. ‘처음부터 모든 건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다.’ 라고. M이 A와 같은 시간에 사라졌던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으며, 영상 속 여성은 A를 닮았을 뿐 A는 아니었다고. M이 영상에 이름을 붙인 것 역시 유치한 행동 중 하나일 뿐이고, 담임교사가 물었을 때 나를 끌어들인 건 단순히 무서운 마음에 그랬던 것이라고. 즉, A의 실종은 그저 A혼자만의 행동이거나 우리가 모르는 제 3자에 의한 일이라고. 그러니 내가 오늘 B를 불러내줄지언정 아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설사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 내 잘못이 아닌 것이라고. 그저 난 M의 부모가 다른 부모들처럼 자식이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나 궁금해 하는 정도의 단순한 호기심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역시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 하고나니 오히려 이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그만큼 M의 치밀함을 반증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맘때의 난 결국 살기위해 B를 선택했다. 정말 지독히도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였다.
 

 

 

 

 

***
 

 

 

 

 

다음날 아침 B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자책해도 이미 소용없었다. 이로써 M이 범인이 아니라는 가설은 명확하게 ‘아니다’로 결론 났다. 이번 역시 증거는 내가 M과 B를 만나게 해주었다는 것뿐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덕분에 부정했던 영상 속 A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되었던 거라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난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내가 살기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는 내게 어느덧 M이 다가와 말했다.
 

“역시 너와 나의 유대란…후후.”
 

녀석이 특유의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들이 밀었다. 당장이라도 녀석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번엔 일처리를 똑바로 못해서 좀 불안해.”
“…….”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화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이라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난 이 미친 모자와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일처리를 똑바로 못했다니…. 불과 몇 초 전까지 자책으로 머리를 쥐어뜯던 나는 B의 대한 죄책감보다 다른 걱정이 앞섰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M은 이런 내 낌새를 눈치 챈 모양인지 ‘걱정하지 마.’라며 웃음 짓는다. 마치 나를 공범이라고 생각하는 말투. 아니, 어쩌면 난 이 모자 보다 더 저질인지도 몰랐다.
이내 M이 다시 입을 열었다.
 

“1년 전에 감명 깊게 봤던 기사가 있어. 너도 알 거야. 꽤나 떠들썩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게 영화나 만화와는 다른 새로운 감동을 주더라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비로소 어떤 느낌일지 시험해 보려고 해.”
“…….”
 

그리곤 녀석은 비장한 얼굴로 침묵으로 일관하던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너와 나는 이미 끊을 수 없는 유대를 맺고 있으니까.”
 

M녀석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난 왜인지 모르게 M이 말한 기사가 자꾸 신경 쓰여 집에 돌아가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보았고, 그 기사는 다름 아닌 17살의 소년이 부모형제를 처참하게 살해한 끔찍한 패륜사건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M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
 

 

 

 

 

여기까지가 7년 전 내가 겪었던 일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난 그 이후 M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 전학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얼마 후 실종되었던 A와 B의 참혹한 시신과 M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허나 그 어디에도 M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커녕 정신병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치료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부가 서비스. 매일 같이 A와 B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그 후에 M이 나타나 ‘너와 나는 이미 끊을 수 없는 유대를 맺고 있으니까.’ 라며 입 꼬리를 올리며 끝이 나는 그런 꿈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죽은 A와 B가 내게 거는 저주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끝없이 계속 될 것 같았던 그 꿈은 유난히 ‘서툴렀던 어느 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꿀 수 없었다. 그 옛날 B를 꾀어낸 자책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의의로 너무 간단했다. 7년 전 여러 매체에 찌들어 광적으로 중독 된 M의 눈에는 아마 보였을 것이다. 내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게. 어쩌면 그래서 처음부터 내게 스스로 나 자신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난 담배를 문 채로 마치 ‘서툴렀던 그 어느 날’의 나처럼 평온함에 젖어 감상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이번 역시 ‘대상’은 좀처럼 내가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을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 지 할게요. 돈도 다 가져가세요! 제발 목숨만은 제발!!!!”
 

숨 한번 고르지 않고 다다다 뱉어내는 것 치고는 너무 성의 없게 느껴졌다. 어떻게 된 게 그 수많은 년 놈들이 다 같은 대사를 읊을 수가 있는 걸까? 내 눈매가 가늘게 찢어졌다. 혹시나 이번엔 다를 거라 여겼던 나를 자책했다.
 

“아가리 안 닥쳐?”
“그럼….”
“닥치라고.”
“컥, 커헑!”
 

눈물 콧물 범벅인 더러운 얼굴로 ‘그럼….’이라니? 뭘 바라는 거야, 대체. 난 품에서 칼을 꺼내 짜증스럽게 놈의 목에 쑤셔 박았다. 놈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져버렸다. 이게 보기엔 쉬워보여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잘못 찔러서 어찌나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는지… 그땐 진짜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젠 제법 능숙해져서 그런 실수 따위는 하지 않는다. 뭐 피를 뒤집어쓰는 것 역시 제법 줄어들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어느새 내 손에 들린 대형 톱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마 위의 생선을 손질하듯, 누워있는 놈의 몸을 여러 토막으로 나눠버린다. 덕분에 문득 그리운 옛 생각이 또 한 번 스쳐지나갔다. 난 반쯤 타버린 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피 범벅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유성매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저만치 이놈을 향해 고정되어 있는 삼각대 위 캠코더로 다가가 가볍게 스위치를 누른다. 이내 캠코더가 작은 테이프 하나를 뱉어냈고, 유성 매직을 든 내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래, M. 네 말이 맞아. 너와 나의 유대는 끊을 수 없지.”
 

난 들고 있던 테이프와 매직을 캠코더 위에 슬쩍 올려놓았다. 그리곤 칠흑같이 캄캄한 어둠속으로 유유히 스며들어갔다.
 

 

 

 

***
 

 

 

 

 

남자가 떠난 자리에는 끔찍하게 토막 난 남성의 시체 한구와 옆쪽에 길쭉하게 솟아있는 삼각대. 그리고 삼각대 위에 설치된 낡은 캠코더가 있었다. 캠코더 위에는 작은 테이프 하나가 뉘여 져 있었는데, 원래는 공백이어야 하는 측면에는 검은색 굵직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토막토막 열매는 가짜야. PS:엄마도 거짓말쟁이 -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