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전 일이네... 1999년, 나는 군인이었고, 그녀는 학생이었지. 어쩌다 헤어지게 되었는데 당시 나는 군인신분이라 나갈 수도 없어 괴롭기만 했었어. 당시 답답하고 벅찬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류시화의 시한편을 읽어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하고 끊었어.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수화기 너머의 그녀도 울고 나도 울었지.
그렇게 우리 짧은 4개월간의 사랑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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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걸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 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들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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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겨우 시 한편을 읽어준게 마지막이었어. 헤어진지 5년이 지나서 우연히 그녀를 보게되었다.
4개월의 만남에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고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됐다.
그리고 결혼하게 되었고... 지금은 애 셋 낳고 지지고 볶으며 잘 산다.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오유인들이 있다면 기운내라고... 인연은 결국 연결되게 되어 있다. 나도 믿지 않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그 말을 믿게 된다. 인연이라는 이유로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인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고 살아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