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는 새 한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잎 떨어진 감나무들만이 맑은 열매를 가득 매달고 가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작고 굽은 할머니의 몸 위에 흙을 끼얹고 향기 가득한 국화송이를 가득 올렸습니다
사흘 전 이 때 제가 홀로 독한 술에 단감을 깎아먹고 있을 때 할머니는 작은 방에서 혼자 마지막 숨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있는 아들 내외를 부를 기운도 없어 입버릇같던 아이구 소리 한 번 못내고 밖으로 나온 혀가 검게 물들었습니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아들과는 문지방 하나 건너에 있었건만 그 거리는 영영 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야 택시를 붙잡아 달려가 만난 할머니는 낯선 사람들 손에 의해 냉장고 선반에서 나와 나를 맞았고 늘 내가 볼을 부비던 좁은 이마엔 하얀 머리칼이 온기가 있는 듯 없는 듯 힘없이 손에 쓸렸습니다 앙상한 손이 너무 뽀얗기에 다른 이의 것인양 낯설었고 옆으로 구부정하게만 눕던 몸이 바로 누워 있으니 허리가 아프시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담담하고 멍한 아버지의 눈길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고 하루를 보냈지만 꽃송이 가득한 목관 위에 할머니를 눕힐 때 눈물이 터져버린 아버지를 보고 말아서 지금도 나는 온 하늘이 울고있는 듯 합니다
감나무 가득한 골짜기에 할머니를 묻고 왔습니다 빈 방에 가득하던 지린내는 지워냈지만 할머니 눕던 자리에 남은 비듬 몇 조각이 너무 작아 서럽습니다 방 구석 쌓아둔 기저귀들의 잃어버린 주인이 그립습니다 영안실 쓰레기통에 남몰래 두고 온 옷보따리가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합니다 삼백리 먼 곳에 묻고 온 할머니가 여태 서울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자취방에 돌아와 그날 못 다 마신 술을 마시며 깎다 만 단감 하나를 바라봅니다 달라진 것 없는 혼자의 일상에 어느땐가 찾아올 이 빠진 자리가 두렵습니다 가을 골짜기에서 늙은 할머니가 철없는 이 손자를 계속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