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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감나무 아래 묻고 돌아왔습니다
게시물ID : gomin_891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아침뱃살
추천 : 8
조회수 : 33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1/05 01:24:55
골짜기에는 새 한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잎 떨어진 감나무들만이 맑은 열매를 가득 매달고
가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작고 굽은 할머니의 몸 위에 흙을 끼얹고
향기 가득한 국화송이를 가득 올렸습니다

사흘 전 이 때
제가 홀로 독한 술에 단감을 깎아먹고 있을 때
할머니는 작은 방에서 혼자 마지막 숨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있는 아들 내외를 부를 기운도 없어
입버릇같던 아이구 소리 한 번 못내고
밖으로 나온 혀가 검게 물들었습니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아들과는 문지방 하나 건너에 있었건만
그 거리는 영영 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야 택시를 붙잡아 달려가 만난 할머니는
낯선 사람들 손에 의해 냉장고 선반에서 나와 나를 맞았고
늘 내가 볼을 부비던 좁은 이마엔
하얀 머리칼이 온기가 있는 듯 없는 듯 힘없이 손에 쓸렸습니다
앙상한 손이 너무 뽀얗기에 다른 이의 것인양 낯설었고
옆으로 구부정하게만 눕던 몸이 바로 누워 있으니
허리가 아프시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담담하고 멍한 아버지의 눈길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고 하루를 보냈지만
꽃송이 가득한 목관 위에 할머니를 눕힐 때
눈물이 터져버린 아버지를 보고 말아서
지금도 나는 온 하늘이 울고있는 듯 합니다

감나무 가득한 골짜기에 할머니를 묻고 왔습니다
빈 방에 가득하던 지린내는 지워냈지만
할머니 눕던 자리에 남은 비듬 몇 조각이 너무 작아 서럽습니다
방 구석 쌓아둔 기저귀들의 잃어버린 주인이 그립습니다
영안실 쓰레기통에 남몰래 두고 온 옷보따리가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합니다
삼백리 먼 곳에 묻고 온 할머니가
여태 서울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자취방에 돌아와 그날 못 다 마신 술을 마시며
깎다 만 단감 하나를 바라봅니다
달라진 것 없는 혼자의 일상에
어느땐가 찾아올 이 빠진 자리가 두렵습니다
가을 골짜기에서 늙은 할머니가
철없는 이 손자를 계속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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