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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단편] 나라도 괜찮겠어요? (下)
게시물ID : panic_891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못된야옹
추천 : 14
조회수 : 11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7/13 12: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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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못된야옹의 여섯번째 단편
「나라도 괜찮겠어요?」
 
 
 
 
 
 
 
시간은 빛처럼 빠르게 어느덧 새벽 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동안 들어온 물건들의 검수와 진열 및 정리를 진영은 그 어느 날보다 빠르게 완료하고 있었다. 그녀가 올 거라는 확신이 있는 이상 최대한 그녀에게 잘 보이기로 마음먹은 그였기에 정리 따위로 옷과 손에 먼지가 묻은 채로 그녀를 맞이하면 안 될 거라 생각한 이유에서였다.
 
이윽고 마지막 하나 남은 주류의 정리를 끝마친 진영은 누가 볼 새라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2시 48분’
 
진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창고로 들어가 낡은 싱크대로 손을 가져갔다. 녹이 슬어 과연 돌아가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수도꼭지를 돌리자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차가운 냉수가 콸콸 쏟아진다. 손톱 밑부터 구석구석 그 어느 때보다 깨끗이 물에 손을 맡긴 진영은 어느덧 수도꼭지를 잠그곤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비록 아직 가을이라고는 하나 차가운 온도만큼은 그 어떤 한 겨울 못지않았기에 생긴 결과물이었다. 하긴, 대한민국의 계절을 누가 4계절 이랬던가? 조금 덜 추운 겨울과 조금 덜 더운 여름만 있을 뿐인 것을. 진영은 떨리는 손을 대충 휴지로 닦으며 생각했다.
 
그때였다.
 
“딸랑딸랑”
 
진영은 저만치에서 들려온 종소리에 묘한 기대감과 설렘을 동반한 채 지그시 CCTV의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매장에 설치된 모든 CCTV는 창고에 있는 모니터로 전부 볼 수 있었기에 냉장고 음료를 채우거나, 라면 등과 같은 박스로 들어오는 상품을 정리할 때면 항상 바로 카운터가 있는 바깥으로 나가기보단 창고안의 CCTV를 먼저 확인하는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물건을 사러 들어와서 고르는 데에만 15분을 넘게 소비하는 손님도 있었기에 어차피 카메라로 보면 될 걸 구지 나가서 멀뚱멀뚱 카운터에 서있을 필요는 없다고, 그러니 급할 건 없다고 생각하는 진영이었다. 뭐 일하게 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터득한 요령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뭐 별거 아닌 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는 만족스러웠다.
작은 우월감에 심취한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CCTV를 바라보던 진영.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의 표정은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
 
“아, 씨. 뭔데?”
 
CCTV는 총 4대. 바깥을 제외한 매장의 구석구석을 24시간에서 단 1분 1초조차 쉬지 않고 주도면밀하게 읽고 있을 카메라이건만 이상하게도 화면에는 그 어떤 사람의 모습도 비춰지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진영은 의아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리고는 이내 다시 휴지로 손에 남은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딸랑딸랑”
 
별안간에 또다시 들린 종소리에 진영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치 누구든 간에 장난질을 치는 거라면 요절을 내버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고.
 
“아, 씨 진짜… 뭐….”
 
아무래도 손님 상대를 해야 하는 서비스업종이기에 친절은 그야말로 생명과도 같았으나 지금 진영은 그런 사소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더 급급했다. 덕분에 창고에서 나오며 욕 짓거리를 내뱉은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차피 일하게 된 첫날부터 밀려드는 물건들과 씨름하느라 자연스럽게 내뱉기를 수 십여 차례. 하지만 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런 진영을 보는 손님마다 딱히 그에게 불쾌감을 내비추지는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진영이 이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진영은 창고에서 나오는 그 순간 익히 잘 알 고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목구멍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욕 짓거리를 끄집어 낼 엄두를 결코 낼 수 없었다.
 
“지, 지현씨….”
“어머! 진영씨! 전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막 그냥 가려던 참이었어요!”
 
진영의 마음에 싹튼 한 송이의 꽃이 활짝 피는 순간이었다.
 
 
 
 
 
 
 
***
 
 
 
 
 
 
 
“그리고 보니 항상 이 시간대에만 오시네요?”
 
진영은 그 어느 때와 달리 침착하게 한마디 한마디를 대범하게 건넸다. 평소의 그의 성격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묘하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네, 일이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그나저나 진영 씨 헤어스타일 바꾸셨네요? 뭔가 닭 벼슬 같은 게 훨씬 잘 어울려요!”
“아, 뭐…하하.”
 
비록 닭 벼슬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렸긴 했지만, 잘 어울린다는 이어지는 말에 진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성에게 듣는 칭찬이었다.
 
“근데 진영씨는 여자 친구 있어요?”
“네. 네, 네? 뭐라구요?”
“여자 친구분 있으시냐구요.”
 
나름 침착하려 애쓰던 진영이었지만 막상 지현의 입에서 여자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 아뇨, 없는데… 여자 친구는 무슨….”
“헐, 왜요? 딱 봐도 진영씨 여자들이 가만 안나뒀을 스타일인데.”
“그럼, 지현씨가 가만 안나둬 보실래요?”
“네?”
 
어떤 용기로 이런 말을 내 뱉었는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최악의 경우 준규 녀석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기는커녕 아예 이 여자와 만날 수조차 없을 수 있었다. 진영은 뒤 늦은 후회를 곱씹으며 세심하게 그녀의 표정을 살피기 바빴다. 근데 이상한 건 이런 진영보다 오히려 그녀가 더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정말 뭔가 못 할 말을 억지로라도 끄집어내려는 것처럼. 적어도 진영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에…?”
“그러니까, 그럼….”
 
이윽고 그녀는 말문을 열었으나, 그다지 실속은 없는 말이었다. 그저 질질 끌기 바쁜 마치 애간장을 녹이기 위한 준비운동처럼 그녀는 말끝을 흐릴 뿐, 좀처럼 말을 이어가질 않았다.
하지만 진영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예 초보인 진영이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할리는 만무했고, 그저 이것 역시 그의 잘난 촉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되려 득이 된 것일까? 할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그녀는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빠르게 입을 움직였다.
 
“젋괞촪요?”
“네?”
“저라뢴촪요?”
“저, 무슨 말씀이신지….”
“젋도괞찮냒요”
“…….”
 
그러나 진영은 너무도 빠르게 발음하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와 그녀 사이에서는 묘한 알 수 없는 몇 마디만이 오갈 뿐, 분위기로 보나 표정으로 보나 뭔가 상황이 진전되었다고는 생각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러니까 잘 안 들리는데요!!”
 
참다못한 진영은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소리쳤고, 그 모습에 지현의 표정 역시 약간이나마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건 정말 짧은 시간인 찰나에 불과했다. 이내 지현은 조심스럽게 진영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고, 이번엔 조금 전처럼 무척이나 빠른 속도도 아니었기에 진영역시 똑똑히 제대로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저라도 괜찮겠어요?”
“네?”
“여자 친구로 저라도 괜찮겠냐구요!”
 
진영은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져 감을 느끼며 그저 멍하니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
 
 
 
 
 
 
 
“괜찮으시다면 이거 받아주세요!!”
“이, 이게 뭔데요…?”
“제가 만든 초콜릿이예요. 오늘이 페페로데이잖아요. 혹시나 해서 만들어 봤어요. 뭐 진영씨가 받아주실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이 잠이 깨어 몽롱한 이 순간까지 가시지 않는다. 이내 잠이 드는 순간 까지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그녀의 채취가 묻은 초콜릿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제 입었던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침대위에 드러누워 있던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기 무섭게 진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내 책상위에 놓인 작은 시계의 바늘이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뻗은 건가.”
 
진영은 끈적하게 왁스로 굳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아침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씻기는커녕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바로 잠든 모양이었다. 진영은 엉거주춤한 포즈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손에 들려있는 작은 상자를 들여다본다. 동시에 익숙한 환청과 환상과도 같은 것들이 그를 훑고 지나갔다.
 
[제가 싫은 게 아니라면 이거 받아주세요.]
[제가 만든 초콜릿이예요. 오늘이 페페로데이잖아요. 혹시나 해서 만들어 봤어요. 뭐 진영씨가 받아주실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꿈이 아니었던 건가?”
 
진영의 입가의 음흉한 미소가 감돌았다. 조금 전 잠에서 깨기 전 까지만 해도 분명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게 묘하게 두근거렸다. 동시에 문득 준규 녀석에게 전부다 털어 놓아 이번만큼은 기필코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휴대전화를 집으려던 진영은 끝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이왕이면 끝까지 가보고 나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지금 녀석에게 전화를 할지언정 녀석이 납득할 수 있는 증거는 오로지 자신의 말이 전부였기에, 차라리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그녀와 가까워진 후, 녀석이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을 이야기하며 그녀와 함께 녀석의 앞에서 가소롭게 웃어주는 게 훨씬 이득이란 생각에서였다. 더군다나 그날이 오면 지금과 달리 아주 흥이 나다 못해 펄쩍펄쩍 뛰며 콧노래라도 불러 주며 한껏 야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영은 상상만으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어느새 침까지 줄줄 흘려가며 실성한 듯 마구 웃기 시작했다.
 
“크하핫핫핫! 준규 너 이 새끼 나한테 어떤 말을 할지 기대 하겠어 푸핫하핫!”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진영은 아직까지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듯 키득거리며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초콜릿 상자를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웃음이 멈춘 것도 잠시,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단조롭지도 않은 상자의 포장을 바라보며 진영은 또 한참이나 미친 듯이 웃을 뿐이었다.
 
“크핫핫핫!! 준규 이 새끼야! 넌 이제 끝났어! 푸할할할!!”
 
 
 
 
 
 
 
***
 
 
 
 
 
 
 
진영이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기껏해봐야 남자라는 특성상 오래 걸릴 일도 없을뿐더러 요 근래 처음으로 자신만의 멋이라는 것에 심취한 진영에게 딱히 오래 걸릴 이유 또한 없었다. 저녁대신에 간단히 그녀가 준 초콜릿을 먹고 나와서인지 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그녀가 처음 주었던 캔 커피처럼 초콜릿 역시 소장하고 싶었지만, 배고픔 앞에 장사 없다던가? 딱히 집에 먹을 만한 게 없었던 진영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처음 껍질을 뜯었을 때만 해도 내심 후회하던 마음이 곧이어 혀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그 달콤한 감각에 매료되어 오히려 먹길 잘했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바람 참 따뜻하고만.”
 
덕분에 집을 나서며 진영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바람이 따뜻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말 그대로 진짜 다뜻 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11월 중순이 되어가는 날씨의 모습은 참으로 변화무쌍 했으니 말이다. 얇은 가디 건 하나만으로 만족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패딩 점퍼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게다가 그 역시 오늘은 두꺼운 하늘 색 패딩점퍼를 입고 있었기에 그가 내 뱉은 말은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바람을 방불케하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 그가 따뜻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던 건 오로지 지현이라는 한 여자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설렘이라는 감정을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지현이라는 존재는 그 어떤 손난로 따위로도 잠재울 수 없는 이 추위를 씻은 듯이 날려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조금은 이른 시각인 10시 40분이 막 넘어갈 무렵 그는 익숙한 편의점의 간판을 바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폈다.
 
“웃샤! 오늘 하루도 그럼 파이팅 해 보실까?!”
 
 
 
익숙하게 시제점검을 빠른 속도로 끝마치고 살며시 입 꼬리를 올리자 사장은 뭔가 다른 사람 보듯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사라졌다.
 
“내가 뭐 실 수 한 거라도 있나? 오늘따라 왜 저래?”
 
아무렴 어떠랴? 이제 고작 이틀도 안 남았는데. 진영은 오로지 남은 이틀 동안 그녀와 어떻게 하면 더 가까워 질 수 있을까 하는 설레는 고민만을 할 뿐이었다. 이미 그녀에게 여자 친구로 자신이 어떻겠냐는 말과 초콜릿까지 받은 마당에 딱히 고민이랄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진영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로 접속했다. 오늘은 FF상품만 들어오는 날. 물건 정리하느라 시간을 마구 허비할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조금이나마 확실하게 이성의 대한 상담을 받고 싶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톡을 보내 상담을 받아 본 들 지금까지의 내 행실과 상황을 뻔히 아는 놈들이 진심어린 조언을 해줄리 없었다. 그건 준규 역시 마찬가지였고 더구나 녀석에게는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생각한 방법이었다.
 
진영은 익숙하게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한 후 로그인 버튼을 클릭했다. 이내 붉은 글씨로 휘갈겨져 있는 ‘네 주제에 잠이와?’ 라는 커다란 대문이 그를 반겼다. 뭐 솔직히 예전에 피규어 수집에 대한 정보 및 의견 등을 들어보기 위해 두어 번 쯤 글을 올려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이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었었다. 글이 올라가기 무섭게 무슨 매크로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달리는 댓글들의 속도는 절대 평범한 게 아니었다. 거기다 되도 않는 농담이나 악플보다는 진심어린 충고와 격려등의 조언들이 훨씬 많았고, 진영은 그 답글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었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 이곳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어줍잖은 오프라인의 인간들보다 몇 배는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람들이었다.
 
“페페로데이날 여자 한테 고백을 받았는데, 조언 좀 구합니다. 뭐 이정도면 되겠지?”
 
진영은 빠르게 글을 입력하고는 엔터버튼을 가볍게 터치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지루한 기다림을 달래기 위해 담배라도 하나 태울 요량으로 그는 매장 밖으로 몸을 옮겼다.
 
매장 바깥으로 몸을 다 빼내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진영만의 착각) 바람이 기분 좋게 그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내 익숙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불을 붙인다.
 
“후.”
 
아직은 야심한 새벽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로엔 몇 안 되지만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런 도로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늘 상 그의 작은 일탈의 근원을 만들어준 커다란 건물은 언제나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저기는 야근하는 사람이 전혀 없나보네?”
 
진영은 주변 상가건물들에 몇몇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창가들과 비교해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보면 저 건물에 불이 들어오는 걸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무슨 목적으로 운영되는 건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이 그가 사는 동네가 아닌데다가 이제 고작 일 하러 나온 지 4일 째, 그것도 야간에 출근하는 그로써는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뭐 궁금하지도, 궁금해 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었으므로 진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다시금 니코틴을 깊게 들이키며 시선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어라? 저게 뭐지?”
 
진영에 눈은 건물의 옥상 부근에서 멈춰있었다. 그곳엔 무슨 가느다란 나무 같은 것이 솟아나 있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나뭇가지로 보이는 부분이 심하게 하늘거렸다. 건물과의 거리는 대략 5~60미터 남짓. 그 거리에서 그것도 8층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건물의 옥상을 은은한 달빛 만에 의존 한 채 양 쪽 눈 모두 0.7이라는 저급한 시력을 가진 주제에 안경도 쓰지 않고 렌즈마저 착용하지 않는 진영이 제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확실하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에 웬 나무? 그것도 달랑 하나만?”
 
건물 옥상에 나무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작은 꽃 같은 식물 등을 화분에 옮겨 심어 옥상에 모아두는 집도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나무로 보이는 그것의 위치였다. 처음엔 몰랐는데 안력를 집중하자 그것의 위치는 옥상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난간으로 보이는 경계선 바깥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제대로 된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저렇게 위험한 위치에 화분을 놓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가만, 저런 게 어제도 있었던가?”
 
진영은 차근차근히 처음 이곳에 와서 저 건물을 바라보았던 날부터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 불과 어제까지 저런 나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뭐, 누가 새로 갖다 놨나보지. 나도 참, 별 것도 아닌 것을.”
 
진영은 별것도 아닌 것에 다 예민하게 구는 자신을 자책하며 거의 다 타들어간 꽁초의 심지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튕겨냈다. 그리곤 자신의 발 앞에 놓인 휴지통에 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다. 이내 매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가운 유리문에 손을 얹던 진영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그 건물의 옥상.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몹시도 애처롭게 하늘거리는 그 나뭇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진영은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입을 쩌 억 벌릴 뿐이었다.
 
‘다다닥다닥!’
 
 
 
 
 
 
 
***
 
 
 
 
 
 
 
진영은 허겁지겁 매장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카운터로 들어가 숨을 죽였다. 그의 이마에선 이런 날씨와 맞지 않게도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있었는데 그게 그가 얼마나 좀 전의 상황에 당황했던 지를 반증해주는 듯 했다.
 
“부, 부, 분명 움직였어… 움, 움직였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그는 다시금 조금 전의 상황을 애써 떠올려 보았다.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건물의 옥상. 그곳에 있던 정체불명의 나무로 추정되는 무언가. 그건 진영이 시선을 마주하기 무섭게 미친 듯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이 걸어 다니는 듯 한 움직임. 비록 어두워서 정확히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건 평범한 나무가 아니었다. 아니, 나무라는 건 그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었을 뿐, 처음부터 그것은 나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어떤 나무가 건물의 옥상 난간 위에서 좌우로 미친 듯이 움직인단 말인가. 그 이질적인 섬뜩한 모습에 진영은 미친 듯이 매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사, 사람이 있었던 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그의 긴장감은 한층 더 격해졌다. 만약 사람이 있었다 한들 누가 이런 야심한 시간에 난간위에서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겠는가. 진영은 그 기괴한 모습을 떠올리고는 바짝바짝 마르는 입가를 무의식적으로 쓰윽 닦아냈다.
 
“하지만….”
 
진영은 결국 자신이 나무로 본 정체불명의 그것이 사실은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었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는 편이 그의 상식적으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섬뜩했다. 만약 사람이 확실하다면 그건 99% 투신자살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자신은 누군가 자살하려는 광경을 지켜본 꼴이 되지 않는가. 진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손톱만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 순간 이었다.
 
‘띠리링!!’
‘띠링!’
‘띠리리링!!’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울린 기계음 소리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움직였다.
“시발!!!!”
 
순식간에 카운터 밑으로 몸을 숙이는 진영. 아무래도 엄청나게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어 연속적으로 계속 울리는 소리에 그는 용기를 내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내 조심스럽게 빼꼼히 카운터 위로 머리를 들어 올린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불빛을 번쩍거리며 쉴새 없이 기계음을 내 뱉고 있는 자신의 휴대전화였다.
 
“에라이! 야동 보다 열린 방문소리에 놀란 가슴, 모니터 속 배우의 신음소리에 놀란다더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의 현대판 속담) 딱 그 격 이고만.”
 
진영은 그제 서야 아까 자신이 사이트에 글을 올렸던 것을 떠올렸다. 잠시나마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달래기라도 할 겸 그는 지체 없이 휴대 전화를 움켜잡았다. 이내 자신이 올렸던 글을 클릭했다. 역시나 불과 십여 분 사이에 자신의 글에는 댓글이 무수하게 많이 달려있었다.
 
“어디보자….”
 
그는 조심스럽게 스크롤을 내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삶이무의미함: 그런 무의미한 일 따위로 조언을 구하는 당신은 참 무의미해 보입니다.]
 
“뭐야 이 사람은!”
 
진영은 짜증을 표출하며 다시 금 스크롤을 내렸다.
 
[듀라라라: 근데 님 혹시 듀라라라 애니 말고 원작 소설을 읽어 보셨음? 겁나 재미짐.]
 
“…….”
 
[몰라ing: 그냥 아무도 모르게 죽어보지 그래요? (절대 자작소설 홍보 아님)]
 
“당산역에서 자살합니다. 보러오세요……. 에? 지금 나 뭐래니….”
 
진영은 잠시나마 소설에 빙의 되었던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순한사자: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빠져나올 수 있다고요. 비록 저는 순하디 순한 호랑이도 아닌 사자이지만 감히 이 말을 건네고 싶네요.]
 
“음…?”
 
[못된야옹: 나이트메어 완결 못내서 죄송. 하지만 너무 유치해서 쓸 맛이 떨어짐. 야옹!]
 
“뭔데 이 개생키는….”
 
[환상괴담: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조언을 구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조언을 구하고 싶으면 그쪽의 포샵 없는 사진부터 첨부하시죠. 설마 사진 하나 없이 이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이런 염병할 사람….]
 
“…….”
 
[코요태와방3: 연가시는 보셨나요?]
 
[황금우산: 제 우산은 순금일 것 같지만 알고 보면 14K랍니다. 그 쪽만 알고 있어요. 호호]
 
“에이 싯팔!!!”
 
진영은 참다못해 휴대폰을 저만치 구석자리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온라인을 믿었던 자신을 수없이 자책 했다. 아무리 다른 주제이지만 반응들이 너무 제각각이었다. 아니, 제각각을 떠나서 아예 자신에게 티끌만큼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시발, 피규어 이야기 할 때는 그렇게 호응 좋더만! 에라이! 쓸모없는 새끼들!!”
 
진영은 짜증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은연중에 다시금 주머니에서 담배 각을 뒤적거리던 그는 그제 서야 조금 전 있었던 기괴한 체엄을 떠올리게 되었다. 잠시 동안 너무 열불이 났던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다. 동시에 찾아온 공포.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서 이렇게 숨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억 누르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야 어찌 됐 건 만약 그게 사람이라면, 그것도 자살하려는 사람이라면 유일한 목격자인 그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영은 저만치 볼품없이 나뒹굴던 휴대전화를 다시 움켜잡는다. 그리곤 천천히 매장 밖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겨 나갔다.
 
 
 
 
 
 
 
***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몸을 다 빼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그야말로 ‘허탈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의 풍경은 그렇게 공포에 벌벌 떨던 아까전의 자신이 보던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봐야 고작 맞은편의 건물 옥상위에 있던 정체 모를 나무가 없어진 것 뿐이었지만 말이다.
 
“대체 그건 뭐였지?”
 
진영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건너편의 옥상에는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어제까지의 그가 보던 것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그럼 뭐 헛것이라도 봤다는 건가?”
 
하지만 재차 아무리 두 눈을 세차게 부비며 바라봐도 풍경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결국 진영은 자신이 잘못 봤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떠랴? 차라리 그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찰에 신고하려고 휴대전화를 들고 나온 자신의 수고가 무용지물이 되었긴 했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 졌으니 말이다. 이로써 다시 그녀와의 핑크빛 러브 스토리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묘하면서도 허탈한 웃음을 흘리던 그는 이내 영양가 없는 댓글로만 가득한 휴대전화의 바탕화면을 뒤로하고 주섬주섬 뒷주머니에서 담배 각을 꺼내려 했다.
 
“윽, 뭐야 갑자기….”
 
긴장이 탁 풀려서일까? 그는 갑자기 찾아온 아랫배의 통증을 느끼며 서둘러 매장으로 들어가 작은 열쇠꾸러미 하나와 얼마 남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뛰쳐나왔다. 그리곤 매장 문을 잠그기 무섭게 그 옆으로 굳게 닫혀 있는 셔터를 들어 올리며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한 손은 항문에 갖다 댄 채 복잡 미묘한 표정을 하고서.
 
 
 
 
 
 
 
***
 
 
 
 
 
 
 
진영이 일하던 매장의 특성상 화장실은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바깥이라고 해봐야 고작 바로 매장의 옆 건물이었다. 다행히도 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낡은 푸세식 화장실은 아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긴, 서울에서 그런 화장실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든 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진영이 생각하기에 이 매장 화장실의 단점은 많이 음침하단 것에 있었다. 매장의 바로 옆 건물은 총 3층짜리 건물로 3층은 잘 모르겠고, 2층은 학원 1층은 야채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진영이 근무를 하는 시간에는 그 어느 곳도 문을 여는 일이 없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는 이 매장의 특성상 새벽시간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매번 셔터를 들어 올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건물 안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적잖게 마음에 걸리던 진영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셔터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5미터 정도 전방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존재했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으로 좌측엔 남성용 낡은 소변기가 하나 있었고 우측엔 삐걱거리는 녹슨 미닫이문이 하나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여성용의 특정 화장실이 아닌, 보통 대변이 목적인 공용의 좌변기로 쓰여 지는 모양이었다.
진영은 망설일 것 없이 미닫이문을 세차게 열어젖히며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안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특유의 작은 문 사이즈 덕분에 일어서면 바깥쪽 화장실 문 위, 활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정확히 정면으로 비춰졌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워 진영은 항상 큰일은 집에서 보고 나오자는 주의였다. 그로 인해 지금껏 화장실은 항상 소변만, 그것도 정 급할 때만 이용하던 진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복통에 시달리는 그에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으므로 진영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좌변기에 몸을 앉혔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내가 뭘 잘못 먹었나? 갑자기 웬 설사?”
 
뿌지직 거리는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항문에서부터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무언가를 느끼며 진영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진영은 미리 준비해 온 두루마리 휴지로 항문을 쓱쓱 닦아내고는 자연스럽게 바지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그랬던가? 미칠 듯한 욕구를 후련하게 해소하고 나자 다시금 잊고 있었던 소름 돋은 감각들이 그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진영은 서둘러 벨트를 옭아 메고 밖으로 나올 생각이었다. 손이야 매장 안에 있는 세면대에서 깨끗하게 성의껏 닦아낼 요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벨트를 매만지고 있던 순간이었다.
 
‘또각’
“…….”
‘또각또각’
“…?”
 
처음엔 솔직히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마치 그가 제대로 들어줄 것을 강요하듯 다시 한 번 세차게 흘러 퍼졌고 순간 진영은 온몸을 타고 흐르는 알 수 없는 전율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또각또각’
 
진영은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도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들만 일어난 단 말인가. 그는 정말이지 신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은 신께 전달되지 않은 모양인지 여성의 구두 굽 소리와 미묘하게 닮은 그 정체불명의 소리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그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또각또각’
 
‘대체 뭐냐고 대체!! 왜 나한테 자꾸 이런 일이!’
 
속으로 갖은 욕을 퍼부으며 그렇게 얼마나 화장실 안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을까. 주저앉아 문에 귀를 붙이고 있던 진영은 불현 듯 들리지 않는 소리에 안심 반 불안 반의 오묘한 심정으로 슬며시 문에서 귀를 때였다.
 
분명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바깥으로 나갈 엄두는 결코 낼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소리의 주인공이 바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 누가 알겠는가? 별안간 지금껏 봐왔던 공포물들의 장면들이 하나 하나씩 그의 머릿속에서 스트립쇼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이곳에서 지체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껏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매장 문을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잠궈놓는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게 아니라고 한 들 이곳에 계속 있다간 설사 정체모를 누군가로 인해 죽지는 않을지언정 정신병이라도 걸려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영은 슬며시 용기를 쥐어짜내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있었던 탓인지 다리에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진영은 몸을 움직이며 오른쪽 뒷주머니에 들어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여차하면 경찰에 신고부터 할 요량이었다. 휴대전화를 가져왔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게 이윽고 몸을 전부 일으킨 진영은 제법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열린 창틈 사이를 통해 빠르게 전방을 노려봤다.
 
‘헛!’
 
하마터면 소리라도 지를 뻔 했다. 진영이 마주한 창틈 사이로 보이는 2층 계단에는 웬 정체불명의 여성이 뒤를 돌은 채 서 있었는데,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여성은 티끌만큼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헌데 웃긴 것은 전혀 움직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의 긴 머리칼만은 쉴새없이 휘날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실내임에도 말이다. 거기다 빛이라고는 이 화장실의 조명이 전부일 터인데도 여성의 모습만은 너무나 정교하게 보인다는 게 진영의 심장을 더 쫄깃하게 만들었다. 마치 어릴 적 즐겨보았던 ‘매직아이’처럼 확실한 색의 구별조차 되지 않는 희미하게 보이는 배경과 달리 짙은 붉은색 코트에 검정 미니스커트, 거기에 백옥같이 창백한 흰 다리와 요염한 붉은 빛의 하이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미친 듯이 나부끼는 갈색 머리칼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 신비한 모습에 진영은 무서우면서도 넋이 나간 듯 하염없이 그런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 볼 뿐이었다.
 
“대체 저건….”
 
‘으드득’
 
그때였다. 슬며시 여성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무슨 톱니바퀴들이 어긋나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를 동반한 채 천천히 돌아가는 여성의 머리. 넋이 나가있던 진영은 그저 그런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완전히 여성의 머리가 돌아가 진영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제 서야 진영은 심장이 멎는 듯한 끔찍한 감각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그건 단순히 여자의 머리가 180도 돌아갔다는 것 하나만의 공포가 아니었다. 완전히 돌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성의 안면은 그가 살아오면서 본 그 어떤 끔찍한 고어물등과 결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의 안면은 마치 시멘트에 으깨진 두부처럼 볼품없이 일그러져있었는데, 그 일그러짐의 강도가 너무 심해 무슨 검붉은 찰흙덩어리를 반죽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조차 구분하기 힘든 모습이었으나 분명 진영은 그 안면으로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강한 시선을 느꼈고, 무엇보다 그 조각 조각난 안면의 틈새 사이로 입으로 보이는 시커먼 덩어리가 마치 웃는 것처럼 미묘하게 들썩거리는 모습에 그야말로 정신을 잃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건 이미 경찰에 신고니 뭐니 그런 것을 초월한 상황이었다.
 
진영은 있는 힘껏 화장실 안쪽 문을 염과 동시에 날다시피 몸을 날려 바깥쪽 문을 걷어찼다. 동시에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화장실을 뛰쳐나가 저만치 보이는 셔터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육중한 몸을 날려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커다란 맹수의 그것처럼 보였다.
 
‘드르륵! 쾅콰쾅!’
 
이내 셔터 문이 부서지는 듯한 강한 충격과 함께 진영은 몸을 구르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허나,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는 저만치 셔터 문 안쪽으로 펼쳐진 칠흑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점차 드러나는 기묘한 각도로 꺽인 팔다리를 삐걱거리며 천천히 기어오고 있는 여자의 모습. 진영은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발버둥쳤다.
 
‘다다닥. 기기긱.’
 
“젠장!!”
 
그는 차가운 욕설을 내뱉으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무작정 도망치기 보다는 호주머니 속에 있을 열쇠꾸러미를 찾는 것에 더 열중했다. 무턱대고 이렇게 도망치는 것 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저 것과 자신과의 거리를 벌려두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왠지 모르게 셔터 문을 닫아 잠궈 버리면 더 이상 자신을 쫒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찰그락’
 
이윽고 지갑과 담배 각이 뒤섞인 주머니 속에서 힘겨운 사투 끝에 열쇠 꾸러미를 낚아챈 진영은 필사적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재빨리 반쯤 열려있는 셔터 문을 향해 몸을 날린다. 덕분에 더욱 더 가까워져 이젠 적나라하게 여자의 얼굴이 진영의 동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초인적인 정신력과 힘을 끌어낸다 했던가? 평소의 연약한 정신력의 진영이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이내 그의 손끝으로부터 셔터의 차가운 기운 느껴지기 무섭게 진영은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드르릉!!’
 
미끄러지듯 빠른 속도로 닫혀 내려가는 셔터. 재빨리 진영은 셔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자물쇠로 들고 있던 열쇠꾸러미를 가져갔다.
 
‘쾅!!’
 
동시에 뭔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셔터가 고장 난 연처럼 몹시도 휘청거렸다. 그 충격에 진영은 뒤로 구르다시피 다시한 번 넘어져버렸고, 들고 있던 열쇠꾸러미는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진영에게는 다시 열쇠를 가지러갈 시간도, 절망할 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건 얇디얇은 셔터의 문과 바닥이 맞닿는 비좁은 공간을 비틀며 무언가 삐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건너편에 있을 여자의 손이었다. 으깨진 안면에 비해선 비교적 정상적인 그것의 희고 가는 손은 이리저리를 왔다갔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셔터의 끝부분을 움켜잡고 힘껏 밀어 올렸다.
 
“흐아악!!”
 
진영은 목구멍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않은 채로 뒷걸음질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발버둥 쳤다. 몇 초 안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진영은 생과 사를 오가는 끔찍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겨운 사투 끝에 떨리는 두 다리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도망치려는 그 순간, 진영의 귓가에 하늘이 찢어지는 듯 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발목으로부터 차가우면서도 섬뜩한 이질적인 감각이 전해져왔다.
 
‘다그다닥드그득득’
‘그그극.’
‘기기기긱기긱’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절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그 기괴한 소리와 함께 셔터에서 3분의 2가량 빠져 나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여자의 창백한 가늘고 긴 손. 그리고 으깨진 두부 같은 모습의 검붉은 여자의 얼굴. 더 이상 진영은 비명을 지를 기운도, 도망칠 여력도 없음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정신을 유지할 기력조차도 없음을.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정지된 물결 속에서 자신만이 유유히 헤엄치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진영은 자신의 사고가 정지되어가는 것을 미약하게나마 느끼며 눈을 감았다.
 
‘덜썩’
 
끝내 공들여 만든 모래성이 부서지듯 볼품없이 무너져 내리는 진영. 그런 진영을 바라보는 기괴한 여자의 입으로 보이는 부분이 묘하게 꿈틀거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여자는 진영의 발목을 잡아끌며, 다시금 천천히 셔터 안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을 끝마친 맹수가 먹잇감을 입에 물고 유유히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듯, 저마다 뒤틀려 삐걱대는 여자의 관절에서는 한결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바닥에 여자의 긴 머리칼이 끌리는 소리와 진영의 옷가지가 끌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스스슥’
‘찌익. 찌이익’
 
그때였다.
 
“그건 아니잖아?”
 
별안간 들려온 음성에 기괴한 여자는 움직임을 멈추곤 으깨진 얼굴을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렸다. 그런 여자의 맞은편에는 갈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와인색 코트에 짧은 검정 스커트로 코디한 붉은 하이힐의 여성이 서있었는데, 옷차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얼굴만 빼고 본다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기괴한 여자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
 
“뭘 꼬나봐? 내가 말했지, 그 추악한 면상 나한테 보이지 말라고”
“기기긱, 기기기긱”
 
여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괴한 모습의 여자는 긴 머리칼을 넘실거리며 마치 뭐라고 화답이라도 하듯 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움켜잡고 있던 진영의 발목은 놓은지 오래였다.
“닥치라고, 이 개 같은 년아! 네년만 보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기가 욱신거린다고!”
 
맛깔나게 욕을 내뱉은 여성은 자신의 옆구리를 손으로 짚으며 기괴한 여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눌리기라도 한 건지 기괴한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힘없이 떨군다. 그리곤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영을 바라본다. 긴 머리칼로 가려져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런 것 같았다.
“언니면 언니답게 처신해야지 않겠어? 남이 공들인 밥에 재 뿌리지 말고 그냥 얌전히 아무 대나 처박혀 있으라고!”
 
앙칼진 여성의 음성에도 기괴한 여자는 그저 전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칫! 너란 년은 정말.”
 
여성은 혼자 작게 중얼거리곤 천천히 진영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진영의 지척까지 도달한 여성은 다시 한 번 기괴한 여성을 쏘아보며 낮게 입을 열었다.
“알았으면 그만 사라지지 그래? 지희씨? 확 그 지저분한 몸뚱이를 믹서기로 갈아 버리기 전에. 애초에 이것한테, 너 같이 저급한 년 따위보다 내 쪽이 훨씬 어울린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털퍼덕 자리에 주저 않은 여성은 기괴한 여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천천히 진영의 몸을 쓸어 만진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을 천천히. 그리곤 살며시 진영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간다. 갈색 컬이 들어간 긴 머리가 진영의 얼굴을 모조리 뒤 덮는다. 허나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여성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부드럽게 그의 귓불에 키스하듯 입을 밀착시켰다.
 
“하아.”
 
마치 채취를 느끼기라도 하듯, 눈을 감고 뜨거운 숨을 진영의 귓속으로 뱉어내는 여성. 그리곤 만족한 듯 묘한 눈웃음을 흘리던 그녀는 그의 귓속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진영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후후훗.”
 
그렇게 교태 섞인 묘한 웃음이 끝나기 무섭게 촉촉하게 젖은 농염한 여성의 빨간 입술은 진영의 입으로 끈적하게 포개져가기 시작했다.
 
 
 
 
 
 
 
***
 
 
 
 
 
 
 
“아아악!!! 저리가!! 저리가!!!”
“저리가라고!! 으아아아악!!!!”
 
새벽 2시.
 
진영은 불이 꺼진 방 구석진 자리에서 바들바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책상위에 물건이란 물건들은 모조리 허공에 던지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진영의 일상이 시작되기 무섭게 굳게 닫혀있던 방문이 활짝 열리며 중년의 여성이 뛰어 들어왔다.
 
“진영아! 진영아!!!”
“가!! 가라고!!!!”
책상 밑으로 몸을 억지로 구겨 넣어가며 비명을 지르는 진영의 모습에 주름진 여성의 눈가엔 어느덧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진영아! 아무것도 없잖니!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잖아!!”
“어, 엄마 눈엔 저게 안보여? 안보이냐고!! 아악!!”
“진영아! 제발 정신 차려!! 진영아!! 흐흑….”
 
여성은 끝내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방을 뛰쳐나왔다. 벌써 열흘 째였다. 진영이 이렇게 된 것은. 평소 성격이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말썽 하나 부린 적 없는 비교적 착한 아들이었다. 하다못해 군대 영장이 날라 왔을 때조차 오히려 자신보다 더 침착했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무슨 일을 겪었기에… 흐흑….”
 
진영이 변한 것은 그야말로 갑작스러웠다. 아빠 되는 사람의 외도로 이혼하게 된 후,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기에 낮에는 일을 해야 했고, 그 탓에 평일에는 진영과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인지 진영과 자신의 사이는 알게 모르게 점차 서먹서먹해져만 갔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진영에게서 외로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랬다고 한들 진영의 갑작스런 변화는 그야말로 괴상망측했다.
 
처음엔 병원에 어떻게 해서든 데려야가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떠한 정신질환이라도 전부 받아들이고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방문을 걸어 잠군 채 시도 때도 없이 고함을 지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뭐든지 허공에 던져버리며 도망치는 둥, 마치 자신 말고 뭔가가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듯한 소름 돋은 행동에 그녀는 점점 먹었던 마음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진영아,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진영아….”
 
그녀는 진영이 이렇게 된 것이 모조리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되어가지고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추악한 어른들의 이면이나 보이고, 하다못해 작은 관심은커녕 생계를 꾸려야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그를 외로움 속에 내팽개친 채 외면해 버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흐흑… 흐흐흑….”
 
그렇게 그녀는 몸에 힘이 풀린 듯 벽에 기댄 채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쿵 쿵 치며 자책하고 또 자책하며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그녀는 불현듯 얼마 전 준규 대타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는 진영의 문자를 떠올렸다. 서둘러 그녀는 거실 식탁에 놓여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어 진영의 친구인 준규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진영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한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아르바이트를 하고나서부터였다. 그렇다면 그 아르바이트에 이 문제의 해답이 있을 수도 있었고, 그 아르바이트를 소개시켜 준 어떻게 보면 원흉인 준규에게 그 열쇠가 있을 거라 그녀는 생각했다. 동시에 이제야 그 생각을 떠 올린 자신의 어리석음 역시 자책했다.
이윽고 준규의 번호를 찾기 무섭게 그녀는 서둘러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받아! 받으라고!!”
 
하지만 그녀의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수화기너머로 준규의 음성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가 끝나면 통화료가 부과….’
 
“얘는 벌써 자는 거야 뭐야!!”
 
그녀에게 지금이 새벽 2시가 넘었다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전화를 받지 않은 준규 녀석이 괘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럴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야 겠어! 잘하면 아들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어!!”
 
그녀는 부랴부랴 거실에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침대에 벗어둔 도톰한 가디 건 하나만을 낚아채고는 무서운 속도로 다시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곤 들어올 때 대충 벗어 둔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으며 현관 문 손잡이로 손을 가져가는 찰나, 그녀의 귓가에 낮 익으면서도 차가운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엄마….”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건, 너무나 온화한 얼굴의 평소 자신이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의 아들, 불과 열흘 전까지의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그 모습 그대로인 진영이었다.
 
“지, 진영아…? 진영아!!!”
 
그녀는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뛰어 들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의 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상봉한 것처럼 그녀는 복받치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흘리며 진영을 더 꽈 악 끌어안는다.
 
“켁켁. 숨막혀 엄마!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갑자기 왜이래!?”
“고마워서… 고마워서… 흐흑… 이렇게 돌아와 줘서 너무 고마워서… 흐흑….”
 
진영의 뾰로통한 말에도 그녀는 진영을 놓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그저 안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엄마도 참, 내가 뭐 어디 갔다 왔어? 왜 그래? 후후”
“그냥…. 다 너무 고마워서! 흐흑… 하늘이 도왔구나, 도왔어….”
“으, 응…그래. 하늘이 도왔지. 암, 돕고말고….”
 
눈물범벅으로 흐느끼는 엄마와 달리 진영은 마치 만지기 싫은 것을 만지듯, 불쾌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 아니 ‘그녀’를 엉거주춤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 누가 들을 새라 작게 중얼거렸다.
 
“그쪽 아들 말고, 날 말이야… 후훗.”
 
 
 
[下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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