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벗어나 선로를 따라 며칠을 걸어가다보니 네이아그라 폭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거진 산맥 사이로 커다란 물줄기가 떨어지며, 그 위로는 커다란 산맥이 장관을 이루었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이퀘스트리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겠지.”
'꼬르륵'
배가 고픈 것도 잊고 한참을 바라보다 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조금 민망해졌다.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 이는 없었지만, 신사적이지 못 한 행동에 부끄러웠다.
호숫가에서 목을 축인 뒤 서둘러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 했던가. 다행히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열매를 몇 개 따다 한곳에 모아뒀다. 그리고 그 과일을 먹으며 가방을 풀어 도구들을 나열했다.
"부싯돌, 나이프, 밧줄, 실, 응급치료 도구들, 그리고 하모니카. 이렇게 펼쳐보니 정말 별거 없네."
폭포소리를 들으며 모아둔 과일들을 먹으며 주변 경치를 바라보니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길을 떠나는 내내 고향 생각에 우울했었던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순간이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널브러진 도구들을 가방에 넣은 뒤 나는 산맥의 높은 곳으로 올랐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폭포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음악 소리와 같아 힘든 것도 잊고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후우... 후우... 다 왔다.”
숨을 돌리고 산 밑을 내려다봤다. 지도를 펼쳐 눈으로 그 길을 따라가 보니 제일 처음 메인해튼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우 사나흘을 걸었을 뿐인데 메인해튼은 발굽만 하게 보일 정도로 작았다. 해상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도시가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 크리스탈 산맥을 따라 가다 보니 크리스탈 신전이 보였다. 너무 멀고 안개에 가려져 실루엣만 간신히 볼 수 있었지만, 그 위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지도와 풍경을 번갈아 보는 것에 심취해 해가 지는 것도 잊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산에서 내려갔지만 이미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곳에서 횃불에 의지해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타는 냄새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서둘러 그쪽으로 가보니 스무 마리 남짓한 포니들이 모여 악기 연주를 하며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길을 잃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내려가야 하죠?”
“지금 제정신인가. 이렇게 어두운 산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네.”
“네? 그럼...”
“일단 여기 와서 앉게나. 자칫하면 얼어 죽을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낮때만 해도 따뜻했던 공기가 겨울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그들 곁으로 가 모닥불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희뿌연 갈기와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연륜을 설명해주는 유니콘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을 장로라고 밝히며 내게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아... 마르치알레. 마르치알레 트레블 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곳에서 길을 헤매는 거지?”
“그러니까...”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메인해튼을 막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내 운명을 찾아, 별을 찾으려는 것.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줬다.
“자네는 타고났군.”
“네?”
“우리와 같은 영혼을 타고났다는 이야기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과 같은 영혼이라니. 나는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그에게 다시 질문하려던 순간 그가 먼저 이야기했다.
“태양과 달과 별을 따라가며 그것을 노래하고, 수많은 곳을 여행하는 이들. 그들을 집시라고 부르지. 자네도 우리와 같은 집시의 영혼을 가진 자라는 뜻일세.”
“집시... 라고요?”
그의 말에 의아해하던 중,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음료를 가져다줬다. 고마워하며 그 음료를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입에 넣었다. 달콤하게 퍼지는 향기가 과일주스라는 것은 알았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색다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 이거 마셔!”
“이건, 뭐죠?”
“우리 방식으로 만든 과일주스야. 어때? 맛있어?”
“정말 맛있네요. 고마워요 아가씨.”
내게 음료를 줬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한다.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본 아이는 기뻐하며 부모로 보이는 이들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들 품속에 숨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감사의 의미로 다시 한 번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장로에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제게도 집시의 영혼이 있다면, 저도 당신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자네 같은 자라면 환영이라네. 하지만 조건을 걸겠네.”
“그게... 뭐죠?”
“집시들은 각자 자신만의 악기를 다룰 줄 안다네. 자네도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만 우리들 과 지낼 수 있어. 자네에게 음료를 건넸던 아이도 독주쯤은 손쉽게 해내지.”
“악기 말인가요?”
"그래. 원래 이방인은 받지 않는 게 우리 습성이지만, 자네 같은 경우엔 우리를 따라가는 것이 운명일지도 모르네. 한 달 안에 세 가지 악기를 연주할 수만 있다면 그대를 우리 동료로 받아들이겠네."
어릴 적에 집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만져보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힘이 약해 무엇하나 제대로 들고 연주하는 게 쉽지 않았던 내게 아버지께서 하모니카를 선물해 주셨다. 어렸던 내가 불기엔 내 주둥이가 너무 작았지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에 난 매우 기뻤다.
나는 가방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그들 앞에서 연주했다. 벌써 십수 년도 더 지난 낡은 악기지만 음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저 녀석, 보통이 아닌 거 같아."
"저 하모니카 꽤 낡았는데?"
연주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연주 속에 담겨져 있던 내 감정들을 그들이 느낀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가 다시 내게 달려와 말을 걸었다.
"오빠, 오빠도 우리랑 같이 가자 응?"
"저기, 그... 그게..."
"그래, 어서 와 친구."
"환영하네. 마르치알레."
내게 마실 것을 나눠줬던 아이가 다시 내게 달려와 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들도 나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떠날 때부터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외로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여행길을 혼자 간다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여행하는 집시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제 그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오빠 눈이 파란색이야. 신기하다..."
"그래?"
"그런데 오빠 이름 너무 어렵다... 마르... 뭐라고 했더라. 헤헤..."
"너무 어려우면 그냥 마르코라고 불러. 내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부르거든."
"응! 마르코 오빠!"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일 일을 위해 나는 그들 곁에 텐트를 쳤다. 내일부터 길고 긴 여행길이 시작될 것과 한 달 안에 두가지 악기를 배울 생각을 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